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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경 속초 영랑호
고성에서 화진포를 감상한 뒤 7번 국도를 따라 남진하며 송지호 전설을 듣고 왕곡마을을 거닐며 양통집을 둘러본 뒤 길을 재촉하면 설악산 그림자가 가까워질 무렵 자그마한 정자 하나가 발길을 잡는다. 바로 청간정. 동해와 만나는 작은 언덕 위에 세워져 있는 이 정자는 동해는 물론 멀리 울산바위와 권금성 조망이 빼어나 관동팔경에 속했던 명소이건만 아쉽게도 동해안 팔경에 들진 못했다.
청간정을 나와 울산바위를 올려다보면 이내 속초 영랑호다. 우리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에서 뻗어 내려온 백두대간이 최고의 미모를 뽐내는 금강산을 빚고, 그 여세를 몰아 남한 땅에 정성을 다해 세운 설악산을 자신의 수면에 담고 있는 영랑호. 호수 너머로 울산바위가 펼쳐진 설악산이 손에 잡힐 듯 제 미모를 드러낼 땐 마치 설악의 품속에 안겨 있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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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랑호에 세워져 있는 안축의 시비. ‘영랑호에 배 띄우고’라는 시가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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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 이 풍광에 반한 인물이 있으니 바로 신라시대 유명한 화랑이었던 영랑(永郞)이다. 그는 동료인 술랑(述郞)·남랑(南郞)·안상(安祥)과 더불어 사선(四仙)으로 꼽혔는데, 그들과 함께 금강산에서 무예를 연마한 뒤 무술대회에 나가기 위해 경주로 가던 중 이 호수의 풍취에 매료되어 무술대회에 나가는 일조차 잊었다고 한다. 그래서 호수 이름도 영랑호가 됐다.
영랑호를 즐기는 법? 그건 바로 영랑처럼 걷는 것이다. 물론 자전거 여행도 괜찮다. 맑을 때뿐만이 아니라 비 오면 비 오는 대로, 바람 불면 바람 부는 대로 운치가 넘치는 호수길이다. 특히 영랑호 남서쪽 호숫가에 잠겨 있는 큰 바윗덩이인 범바위는 영랑호를 찾는 사람이라면 꼭 올라 봐야 할 곳. 범바위에 세워져 있는 월랑정은 바위와 나무에 가려 전망이 좋지 않으므로 정자 뒤편으로 돌아 범바위 정상까지 올라가 보자. 바다, 산과 어우러진 호수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조선의 지리학자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영랑호의 아름다움을 “구슬을 감춘 것 같다”고 표현했는데, 그 구슬이란 아마도 영랑호에 비친 설악의 풍광일 것이다. 영랑호 북쪽의 카누장 근처에는 자전거타기운동연합 속초지부에서 운영하는 자전거여행안내소가 있다. 영랑호를 한 바퀴 도는 데는 이것저것 구경을 한다 해도 자전거는 1시간30분, 걷는 데는 2~3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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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랑호 잔잔한 물결 너머로 설악산의 아름다운 모습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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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랑호와 청초호는 설악산이 거느린 남매다. 항구로 이용되면서 늘 고깃배들이 드나드는 청초호가 활동적인 오빠라면 백사장에 가로막혀 조용하고 제법 호수다운 풍치를 간직하고 있는 영랑호는 어여쁜 누이동생이다. 이번에 동해안 팔경 선정 과정에서 남매 중에서 누이동생이 뽑힌 까닭은, 시내와 바싹 붙어 있어 현대식 건물이 즐비한 오라비보다 자연스런 모습이 더 잘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 숙박
영랑호 주변에는 콘도인 영랑호리조트(033-633-0001)와 대호장(033-633-3405), 동수장(033-632-3678), 청명장(033-631-5663), 영랑호 동쪽의 장사항에 에이스모텔(033-636-3626) 등의 숙박시설이 있다.
울산바위가 눈앞에 펼쳐진 노학동에는 사조설악콘도(033-631-6931), 설악금호리조트(033-636-8000), 설악파인리조트(033-635-5800), 연호콘도(033-631-5000), 코레스코(033-635-8040), 현대훼미리타운(033-635-9090) 등 콘도가 많다.
제3경 양양 낙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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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낙산사 해수관음상. 2005년 화재로 검게 그을렸으나 지금은 예전의 인자한 미소로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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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에서 낙산사로 가는 길. 대포항과 물치항이 발길을 막는다. 두 군데 모두 횟감이 싸고 흥정하는 재미가 넘치는 시장이라 관광객들에게 제법 인기 있는 항구다. 시끌벅적한 바닷가 항구에서 흥겹게 흥정한 뒤 싱싱한 회 한 쌈 드는 맛. 이 즐거움이 없다면 대체 무슨 재미가 있으랴.
이렇게 부둣가에서 회 한 쌈 맛보고 길을 나서면 곧 양양 낙산사다. 관동팔경뿐만 아니라 동해안 팔경 중에서도 유일한 사찰인 낙산사는 바다처럼 크고 너른 절집이다. 의상이 관음을 친견했다는 이 절집은 오늘날 우리나라 4대 관음성지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2005년 동해안 지역에 발생한 큰 산불로 화를 입었다. 이때 일주문과 홍예문 등 건물 16채가 순식간에 불에 타 버렸고, 아름드리 소나무로 울창하던 숲은 잿더미가 됐다. 보타전과 홍련암이 화마를 피할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기적이었다.
이후 다시 복원작업을 시작해 2006년 홍련암 요사체인 연화당의 상량식 봉행을 비롯해 화재로 녹아 버린 보물 제479호 동종(2005년 7월 보물 지정 해제)도 원래 모습으로 복원해 제자리를 찾았다. 또한 홍예문 누각 복원, 칠층석탑·공중사리탑 보수처리공사 등의 불사를 거듭했고, 현재 천년고찰의 위용을 되찾기 위한 막바지 작업이 한창이다.
전통적으로 낙산사 최고의 일출 포인트는 의상대였고, 이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예로부터 많은 시인묵객이 이곳에서 해돋이를 감상하며 시를 짓고 그림을 그려왔다. 송강 정철은 <관동별곡>에서 낙산사 의상대에 올라 일출을 감상했고, 겸재 정선도 붉은 해가 떠오르는 동해를 배경으로 낙산사를 화폭에 담았다. 현대의 사진작가들도 “의상대 정자와 소나무 사이로 떠오르는 태양이 가장 빼어나다”고 말한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시도했을 낙산 일출 감상은 그리 만만치 않다. 날씨 탓인데, 이 길손 역시 오락가락하는 빗줄기 때문에 아쉽게도 회색의 바다만 바라봐야 했다. 그렇지만 날씨에 상관없이 언제나 들을 수 있는 것은 바로 홍련암의 해조음(海潮音)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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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상이 수도했다는 낙산사 의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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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대에서 왼쪽의 짧은 해안길을 따르면 홍련암. 의상이 기도를 끝냈을 무렵 관음굴에서 갑자기 붉은 연꽃이 떠오르면서 관음보살이 나타났다는 곳이다. 훗날 의상대사가 수도한 절벽 위에 정자를 세워 의상대라 불렀고, 관음보살이 나타난 자리 옆에 절을 지어 홍련암이라 했다.
귀띔 하나 하자면, 낙산 일출을 보려면 아무래도 낙산사 주변에서 잠을 자야할 터. 템플스테이를 이용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잠자리도 해결하고 108배를 하며 1300여 년을 이어온 관음 신앙도 배우고 새벽에 일출도 구경할 수 있으니 일거삼득이 아닌가.
>> 숙박
낙산사 입구와 낙산해수욕장 사이에 낙산비치호텔(033-672-4000), 낙산모텔(033-671-4181), 낙산 파크랜드모텔(033-672-7760), 굿모닝모텔(033-671-8817), 페블비치(033-672-7722), 낙산둥지모텔(033-672-4055) 등 숙박업소가 아주 많다.
하조대해수욕장 입구에 하우스여관(033-672-2285), 굿모닝하조대(033-672-0089) 등의 여관이 있고, 민박을 치는 집도 여럿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