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자연법』
1. 헤겔의 마지막 대작인 『법철학』은 그의 정치-사회 사상이 집결되어 있는 작품이다. 헤겔은 근대에 급격하여 부상한 개인의 개별적 자유와 유용성과 같은 개념을 의심했다. 개인의 합리적 이기심이나 유용성이 개인의 진정한 자유를 보장할 수 있는 법적 공동체 수립과 보존에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그런 이유로 개인의 자유와 계약을 통한 시민사회의 토대에 비판적 시각을 보냈으며 도덕성이나 합법성과 같은 단일적인 개념으로는 자유에 이를 수 없다고 보았다. 그가 대안으로 내세운 것은 도덕성과 합법성을 총체적으로 구현한 ‘인륜성’이다. 그는 ‘인륜성’을 이론과 실제가 통합된 것이며, 자연적 상태와 법의 위엄, 개인의 자유적 자유와 공동체 속의 인륜적 자유의 ‘굴종적이지 않은 참되고 생동하는 합일’이라고 보았다. 인륜성은 개인의 개별성으로서는 성취될 수 없으며 오로지 공동체와의 총제적 합일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사고에는 고대 그리스 폴리스적 이상에 대한 전제가 배태되어있었다. 인륜성이 성취되는 곳은 바로 국가이자 민족이었다.
2. 헤겔은 <법철학>을 완성하기 오래 전에 발표한 『자연법』이라고 불리는 논문에서 이러한 인륜성에 대한 개념을 진술했다. 홉스의 ‘경험주의적 자연법’과 칸트의 ‘형식주의적 자연법’을 비판하며 ‘진정한 인륜성’으로의 선회를 주장한 것이다. 인륜성의 핵심은 ‘총체성’이다. 그것은 개인의 도덕적 자율에 대한 관습적 덕의 우위를 강조한 것이며, 개인의 자유를 넘어선 공동체의 자유를 우선시한 것이다. 공동체 속에서의 자유가 진정한 자유라는 것이다. 내적으로 전체와 통합된 개인은 전체와 일방적인 지배관계가 아니라 전체와의 직접적 합일 속에서 동등한 지위를 갖고 이러한 연관 속에서 그 개별성을 존중받는다고 보았다. 개인의 전체와의 합일은 전체에 대한 ‘경외와 신뢰와 복종’을 통해 이루어진다.
3. 헤겔은 <자연법>에서 부분이 강조될 때 발생하는 위험을 강조한다. 몸을 이루고 있는 신체 중 일부의 장기가 균형을 잃고 개별성을 과도하게 주장할 때 문제가 발생하듯이, 부분이 전체와의 통합을 잃었을 때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한 부분이 자신을 조직화하며 전체의 지배에서 벗어나고 이러한 개별화를 통해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거나 심지어 전체가 오직 이 역능을 위해서만 조직되도록 강제할 때에는 질병과 죽음의 시초가 현존하는 것이다.” 부분의 강조는 근대의 개인적 자유를 중시한 시민의 개별적 자유에 대한 은유이다. 개인의 자유가 과도하게 실현될 때, 공동체는 위협에 빠지며 결국 개인의 진정한 자유도 보장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4. 이런 이유로 헤겔은 전체주의에 대한 신봉자이자 프로이센 국가주의자라는 비판을 받게 된다. 하지만 몇몇 학자들은 헤겔의 진정한 목적은 결코 공동체에 대한 개인의 굴종이나 복속이 아니라 개인의 효과적인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모색이었다고 강조한다. 모든 사고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당시 개인의 자유는 결코 개별적인 방식으로 보장받을 수 없었다. 국가 간의 전쟁이 수시로 이루어졌고 갈등의 해결은 전쟁의 승패나 국제적 협상을 통해서 결정되던 시기에 개별적 자유에 대한 강조는 허구적 개념에 불과하다고 본 것이다. 또한 도덕과 법의 일방적 지배 또한 오히려 전체주의 위험성이 커지기 때문에 이 둘을 조화한 ‘인륜’의 가치를 중시한 것이다.
5. <자연법>의 내용 속에서 전체를 이탈하려는 부분의 독자성에 대한 공격은 계속 이어진다. 사물의 실체와 인간의 자유는 개별성으로 진행될 수 없으며 총제적인 합일 속에만 가능하다는 헤겔의 사유는 개별적 인간을 국가에 대한 복종을 당연하게 여기게 하는 위험한 사고로도 전개될 수 있지만, 그가 말한 총체성을 자유의 확장과 생존의 보장이라는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통해 볼 때 전체주의적 사고를 넘어선 개별적인 것과 공동체적인 것의 통합이라는 관점으로 재해석될 수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는 것이다. 헤겔은 공동체를 무시한 개인의 확장은 결국 공동체를 위협하고 그 결과로 개인의 파멸을 가져올 수 있다고 보았다. 헤겔의 이러한 사유는 20세기 미국의 대표적인 윤리학 논쟁인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에 중요한 논의점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첫댓글 ^^^ 공동체를 무시한 개인의 확장은 결국 공동체를 위협하고 그 결과로 개인의 파멸을 가져올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