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컴의 면도날
Occam’s Razor 奥卡姆剃刀
오컴의 면도날은 결론이 똑같다면 가장 단순한 설명을 선택해야 한다는 추론의 법칙이다. 무엇을 추론하거나 설명할 때, 날카롭고 정교한 면도날(razor)로 필요 없는 것들을 제거해야 한다는 뜻이다. 설명의 단순성, 경제성, 직접성, 보편성, 절약의 원리 등을 상징하는 개념이 오컴의 면도날이다. 하지만 복잡한 설명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복잡하게 설명할 수밖에 없다면, 복잡하여 설명하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 그러니까 오컴의 면도날은 간단하게 설명하라는 뜻도 있지만 정확하게 설명해야 한다는 뜻도 있다. 오컴의 면도날은 ‘적은 논리로 설명할 수 있으면, 많은 논리를 세우지 말라’, ‘필요 없는 것을 가정해서는 안된다’, ‘필요 없이 복잡하게 설명하지 말라’, ‘가능하면 가정과 조건은 적어야 한다’, ‘보편적이고 일반적으로 설명하고 특수하고 개별적으로 설명하지 말라’ 등과 유사한 의미다.
오컴의 면도날은 오컴 사후에 (오컴의 추론 방식을 유추하여) 쓰이기 시작한 개념이다. 오컴(William of Ockham, 1287~1347)은, 그의 말로 인용되는, ‘필요 없이 개체를 배가하면 안된다(Entia non sunt multiplicanda praeter necessitatem)’라고 직접 표현한 적이 없다. 유명론자이면서 프란시스코 수사였던 오컴은 단순하고 직관적인 설명으로 신의 실체를 증명하고자 했다. 이에 관하여 오컴이 말한 것은 ‘명확하지 않거나 경험으로 이해되거나 성경의 권위에 의해 입증되지 않는 한, 어떤 것도 이유 없이 가정되어서는 안 된다’이다. 아울러 오컴은 유일한 실체는 신이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입증되지 않는 것을 복잡한 가정과 조건으로 입증하는 것을 비판했다. 이런 오컴의 견해는 유명론/명목론에 근거하고 있다. 유명론(Nominalism)은 실제 존재하는 개체(Individuum)만이 실재이고 추상적 개념이나 보편적 이념(idea)은 단지 이름이라는 이론이다.
오컴은 이성과 지성으로는 영혼의 불멸성이나 초월적 존재를 증명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오컴이 보기에, 인간의 이성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하고자 여러 가지 가정하는 것은 틀린 것이다. 유일한 실체는 신이고 신은 계시를 통해서만 알 수 있다. 이런 오컴의 견해 때문에, ‘간단하고 단순한 설명이 훌륭하다’라는 의미에서 오컴의 면도날로 명명된 것이다. 오컴의 면도날의 근거인 ‘필요 없이 개체를 배가하면 안된다(Entia non sunt multiplicanda praeter necessitatem)’는 프란시스코(Francisco) 스콜라 신학자인 존 펀치(J. Punch, Johannes Poncius, 1603~1661)가 말한 것이다. 펀치는 둔스스코투스(Duns Scotus, 1266~1308)의 책을 주석하면서 아퀴나스의 신 존재 증명에 문제가 있음을 발견했다. 둔스스코투스가 비판한 것은 결과에서 원인을 설명하는 아퀴나스(T. Aquinas)의 복잡한 논증 방법이다.
둔스스코투스가 보기에, 아퀴나스는 결과인 신(神)에서 원인을 찾기 때문에 여러 가지 가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펀치는 동시대 사람이었던 둔스스코투스와 윌리엄 오컴을 연결하여 단순하게 설명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사실 단순성의 원리, 경제성의 법칙은 아리스토텔레스, 프톨레마이오스 등 많은 사람이 했던 이야기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단순성의 원리가 자연의 법칙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Ptolemaios, c.83~168)는 천동설을 정립하면서 ‘단순한 가정’이 훌륭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훗날, 코페르니쿠스(N. Copernicus, 1473~1543)는 그가 말한 ‘단순한 가정’으로 천동설을 비판하고 지동설을 정립했다. 코페르니쿠스는 천동설이 천체 운행을 잘 설명하기는 하지만 너무 복잡하며, 태양을 중심으로 하는 단순한 가정인 지동설로 천체 운행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오컴의 면도날이 의미하는 것은 동일한 결론을 설명할 때, 가능하면 단순하고 명료한 설명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가장 좋은 설명은 전제와 가정이 없는 것이고, 그다음 좋은 것은 전제와 가정이 적은 것이고, 피해야 할 것은 전제와 가정이 많은 것이며, 반드시 피해야 할 것은 필요 없이 전제와 가정이 많은 것이다. 만약 필요 이상으로 복잡하게 설명하면 사고의 혼란을 초래하여 진위를 판정할 수 없다. 오컴의 면도날은 무조건 단순하게 설명하라는 것이 아니고, 정확하고 명료하게 설명할 것이며 증명되거나 경험되지 않는 것을 무리하게 추론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지만 오컴의 면도날 법칙은 위험할 수도 있다. 가령 복잡한 진화를 거친 생물을 단순하게 설명하는 것은 오류다. 반면 현대 심리철학에서는 (오컴의 면도날처럼) 인간을 단순한 물리주의 일원론으로 설명하고자 한다.★(김승환)
*참고문헌 William of Ockham, Summa Logicae, 1323.
*참조 <개념>, <물리주의>, <보편>, <본질>, <신>, <신 존재 증명>, <실재론>, <실체>, <온건 실재론>, <유명론/명목론>, <이데아>, <천동설>, <초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