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대의 바람둥이 카사노바는 저녁식사로 굴을 즐겼다. 인체가 곧바로 에너지로 사용할 수 있는 글리코겐과 아연이 많다는 것까지는 몰라도 굴을 먹은 효과는 몸이 먼저 느꼈기 때문이다. 클레오파트라도 굴 요리를 즐겼다. 멜라닌 색소가 분해되는 과정이나 칼로리의 많고 적음을 따질 수는 없어도 혈색이 좋아지고 날씬함이 유지되는데 피할 이유가 없었으리라.
어린아이와 노약자들에게도 바다의 우유라는 굴은 권장식품이다. 굴이 제철을 맞았다. 국내 최대 산지인 한려수도 해역은 굴의 싱싱함으로 활력이 넘친다. 냉동기술이 발달해 여름에도 굴 요리를 먹을 수 있는 세상이라지만 갓 따낸 생굴을 먹는 데 비할까? 그 맛을 찾아 한려수도의 심장부 통영을 찾아갔다.
쪽빛 굴 창고 = 남녘이라지만 아침 바닷바람은 맵다. 비릿하면서도 짭조름한 냄새에 코끝이 찡하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니 이내 폐부 깊은 곳까지 기도가 뻥 뚫린다. 아직 한산한 동호항 부둣가에서 어업순시선에 올랐다. 한국의 청정해역, 한려수도의 굴 양식장을 둘러볼 참이다.
고성에서부터 새의 목덜미만큼이나 가늘게 이어지는 길목을 빼면 통영은 섬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막상 부두를 떠나자 바다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거제도와 한산도를 비롯해 크고 작은 섬들에 둘러싸인 통영 앞바다는 마치 호수 같다. 큰 파도라곤 도무지 없을 것 같은 잔잔한 수면엔 대신 부표가 빼곡하다.
통영을 비롯한 한려수도 해역에서 우리나라 굴의 90%가 생산된다. 통영 앞바다에선 그중 60%가 난다. 바위에 붙은 자연 굴을 따는 서해안과 달리 100%로 양식이다. 하지만 신선함은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보증한다. 수입품의 품질 유지를 위해 해마다 수질검사를 나온단다. 동행한 통영 굴수협 엄철규씨의 이런저런 설명이 끝날 무렵 배는 거제대교가 걸린 견내량을 지났다. 한창 작업 중인 배에 다가갔다. 조그만 어선에 달린 바지선에는 벌써 키 높이로 굴이 쌓인 통이 여럿이다.
켜켜이 쌓인 껍데기를 어렵게 들어올리면 수줍은 듯 드러나는 우윳빛 생굴. 잔뜩 머금은 바닷물을 따라 내고 생굴을 떼어 그대로 입 안에 넣었다. 표면에 남아 있던 바닷물이 찝찔하게 다가오는 순간 껍데기에서 갓 떨어져 나온 생굴의 땡글땡글한 촉감이 입안 가득 퍼진다. 조심스럽게 한 입 깨물면 뽀얀 살점의 맛이 상큼하게 느껴진다. 오물오물 씹을수록 조화를 부린다. 내장이 터지는 순간엔 씁쓸하다가 차츰 살점과 뒤섞여 구수하게 변한다. 모두 씹어 삼키고 나면 달콤한 맛만 남는다. 이래서 '푸른 바다' '맑은 하늘' '하얀 바람'이 응축된 생굴의 참 맛은 "달다"로 기억되는 모양이다. 주인 눈치를 힐끔 살피곤 염치 불고하고 몇 개를 잇따라 입에 털어넣었다. 바다로 배를 채웠다.
곳곳 굴 공장 = 바다에서 걷어 올린 굴은 먼저 작업장에서 껍데기를 벗기는 작업을 거쳐 수협 공판장에서 경매된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해 12월까지 나오는 중간 크기의 굴은 김장용으로 쓰인다. 1월 이후 나오는 씨알 굵은 굴은 요리용. 대부분 공장에서 냉동과 통조림 포장 공정을 거쳐 국내외로 팔려나간다.
굴 양식장이 많다 보니 곳곳에 굴 까는 작업장이다. 작업장마다 30명 정도의 여공이 일한다.이런 작업장이 300여 곳. 1만명 가까운 인력이 굴을 까서 하루 5억원 정도의 수입을 얻는다. 이래저래 통영에는 굴에 기대 사는 사람들이 많다.
통영 시내 서쪽에 위치한 도산면의 한 작업장에 가봤다. 20m쯤 되는 작업대 양쪽으로 선 아주머니들의 손놀림에 굴은 쉽게 껍데기를 벗는다. 크기별로 양동이에 담긴 굴이 탐스럽다. 여기서도 한 입. 입 안에선 바다의 추억이 다시 살아난다. 주인 아주머니는 "멀리서 손님이 왔는데 밥상을 안 차릴 수 없제" 하며 굴을 한 바가지 퍼담더니 부엌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 차려진 식탁엔 데친 굴과 굴 양념으로 버무린 김치, 굴 국이 푸짐하게 올려졌다. 냉면그릇에 퍼온 밥을 보고 기함을 한 것도 잠시뿐, 밥 도둑은 순식간에 밥을 몰아 입 속으로 사라졌다.
신선한 생굴만으로도 입이 뿌듯하지만 통영 시내에 있는 굴 요리 전문점 '향토집'(055-645-4808)에 가면 굴 요리의 다양한 변주를 볼 수 있다. 굴수협의 지원을 받아 지난 10년간 꾸준히 새 조리법을 개발해 통영의 명소로 떠오른 곳이다. 굴밥.숙회.구이.튀김.전.찜.뚝배기 등 온갖 굴 요리를 이곳에서 맛볼 수 있다. 1인분에 2만원 하는 풀코스(4인 이상 가능)를 주문하면 모든 요리를 골고루 다 맛볼 수 있다. 생굴은 동호동 굴수협 공판장 주위에 포진한 중매인 작업장에서 살 수 있다. 요즘 시세는 1㎏에 5000원 선이다.
이야기 보따리 가득 = 굴이 아니더라도 통영이 품은 이야기 보따리는 풀어도 풀어도 끝이 없다. 이순신과 조선 수군의 역사가 스며 있고, 소매물도.한산도.욕지도.사량도.연화도와 육지가 된 미륵도까지 한려수도의 아기자기한 섬들이 손짓하는 곳이다. 유치환.유치진.박경리.김춘수 같은 문인들과 나라 밖에서 더 유명한 윤이상까지 이곳 출신 예술인들의 이야기까지 다 듣고 보려면 일주일도 부족할 지경이다.
욕심을 접고 이순신 장군의 행적을 좇기로 했다. 통영에서 한산도로 건너가는 뱃길이 바로 한산대첩의 전승지다. 점점이 박힌 섬들을 보자니 '견내량 바깥의 섬에 배를 숨겼다가 한산 앞바다에서 몰아쳤다'는 전사가 실감이 난다. 전투 후 삼도수군통제사에 제수된 이순신은 통제영을 한산도에 설치했다. 충무공이 수심에 잠겨 달빛 바다를 조망하던 수루와 수군의 활쏘기 연습장인 한산정 등이 사당.집무실(제승당)과 함께 복원돼 있다. 통제영은 이후 여수와 거제 등을 전전하다 1604년 다시 통영으로 옮겨와 300여 년을 보냈다. 그래서 도시 이름이 통영이다. 통제사가 공식행사를 치르던 세병관(국보 305호)은 경복궁 경회루와 함께 가장 규모가 큰 목조건물로 기록된다.
충무공의 사당 충렬사와 세병관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은 청마거리를 거치게 된다. 시조시인 이영도가 운영하던 수예점을 바라보며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며 수없이 연서를 써대던 우체국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굴의 우윳빛과 꿋꿋한 바다의 푸름에 사랑스러운 핑크빛이 더해진 도시를 떠나는 길손의 마음은 푸근했다.
통영=최현철 기자<chdck@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여행정보]
대전 ~ 통영간 고속도로는 아직 진주까지만 뚫려있다. 여기서 남해고속도로로 바꿔 순천쪽으로 가다 사천IC를 빠져나온다. 사천 시내에서 33번 국도를 따라가면 통영에 닿는다. 문화.역사 유적은 대체로 남쪽 해안 가까이에 있다. 유치환 생가는 동호항 부근에 세워진 청마문학관으로 옮겨졌다. 여객선터미널 동쪽으로 유치환 거리, 서쪽으론 윤이상 거리가 있다. 여관이나 모텔은 여객선터미널 부근에 몰려있고, 바로 눈앞이지만 다리를 건너 돌아가야하는 미륵도 북쪽해안에 마리나리조트와 충무관광호텔(1급)가 있다. 현재 미륵도와 통영을 잇는 통영대교 아래에는 세계 최초라는 해저터널이 있다. 1932년 일본 사람들이 바다 양쪽을 막고 땅을 판 뒤 천장을 덮었다. 미륵도 남쪽 달아공원은 해넘이 명소. 섬여행을 떠난다면 배 출항시간과 출발 항구를 잘 알아봐야 한다. 한산도.욕지도.연화도.매물도행 배는 여객선 터미널(055-642-0116)에서 타지만 사량도 배편은 도산 터미널(055-647-0147)에서 떠난다. 맨밥에 김을 싸고 오징어 무침과 무김치를 별도로 준비하는 충무김밥이 굴과 함께 통영을 대표하는 음식. 어부들의 간편 도시락에서 출발한 만큼 서호항 근처에 원조집이 많다. 손바닥만 한 졸복에 콩나물을 곁들여 끓인 시원한 졸복국은 해장에 그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