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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장 43-51절. 와 보라. 요약설교
1. 오늘 성경 본문은 빌립과 나다나엘과 예수님에 대한 말씀입니다.
빌립은 예수님을 믿고서, 친구 나다나엘에게 전도했습니다.
이 나다나엘이란 사람은 나름대로 열심히 유대교를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보통 종교인이 아니라,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며 시중드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말씀했습니다.
2. 오늘은 <어떻게 나를 아십니까?>란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로, 오늘 성경에서 빌립이란 사람은 예수님을 믿고서, 친구 나다나엘에게 전도했습니다.
45절.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1. 내가 믿는 예수님을 전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절망 가운데서 죽어가는 사람에게 참된 소망을 전해주는 전도를 열심히 하시기 바랍니다!
2.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KFC)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의 창업자인 할랜드 샌더스(Harland David Sanders, 1890~1980년)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은 많지 못합니다.
(1) 그는 초등학교를 중퇴한 학력 밖에는 없습니다.
아버지는 여섯 살 때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가 일하러 나가시면, 어린 두 동생을 돌봐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열두 살 되던 때, 어머니마저 재혼하여 가정을 떠나 가버렸습니다.
그는 열 살 때부터, 막노동판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농장 인부로부터 시작해서, 자동차 페인트공, 전차 차장, 연락선 기사, 보험 설계사, 철도 노동자 등 온갖 일을 안 해본 것이 없었습니다.
(2) 그러다가, 이십대 초반에 결혼을 하고, 큰 꿈을 갖고 조그만 사업에 손을 댔는데 완전히 망해버렸습니다.
그러자, 부인이 도망가버렸습니다.
이제 살고 싶은 의욕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죽으려고 술과 수면제를 몽땅 먹고, 고속도로로 차를 몰고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힘이 없어서 길가에 차를 세우고 쓰러져버렸습니다.
어떤 운전사가 이것을 보고 구급차를 불러 병원으로 후송했습니다.
의사가 수면제를 다 토하게 해서 생명을 살려냈습니다.
그러나 의식이 깨어나자 샌더스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습니다.
“누가 내 생명을 살렸냐? 나는 죽어야 할 사람이야!”
살려준 은인에게 도리어 화를 버럭 내고, 팔에 꽂은 링거를 빼 던지고 난리를 피웠습니다.
그러다가, 의사의 진정제 주사를 맞고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3) 그러던 어느 날, 이 샌더스는 병원에서 청소하는 흑인 아줌마가 노래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4) 초라한 흑인 청소부 아줌마인데, 발뒤꿈치는 동전 한 닢이 들어갈 정도로, 세 군데나 갈라져 있었습니다.
샌더스는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흑인에다가 청소부 주제에 뭐가 그리 좋아서 흥얼거리나?
그런데, 그 청소부의 얼굴은 천사 같고 눈동자가 빛났습니다.
기쁨과 행복이 흘러넘쳤습니다.
(5) 그래서, 하도 신기해서 물었습니다.
“아줌마, 뭐가 그렇게 기쁩니까?”
아줌마 대답이 “예수 믿고 구원받았으니 기쁘지요.”
샌더스가 다시 “예수 믿고 구원받으면 그렇게 기쁜 것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청소부 아줌마, “그럼, 청년도 예수 믿으면 나보다 더 기쁠꺼야!”
(6) 이렇게 해서, 샌더스는 아줌마의 권유에 따라서, 병원 교회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감동으로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흑인 아줌마처럼, <내 주를 가까이 하려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하고 찬송했습니다.
괴로운 생각이 들려 하면, 늘 찬송을 했습니다.
(7) 이제, 건강이 좋아져서, 퇴원하게 되었습니다.
샌더스가 병원에서 나올 때 흑인 아줌마가 돈을 좀 주었습니다.
(8) 그래서, 사장에 가서 닭 한 마리를 사서 부위별로 잘라 튀겼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요리 만드는 것이 그의 취미였습니다.
튀긴 닭고기를 자기가 먹어봐도 너무 맛있었습니다.
그런데, 성령님의 감동으로, 이것은 나만 혼자 먹어선 안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남은 돈으로 시장에 가서 다시 세 마리의 닭을 샀습니다.
그리고, 세 마리를 요리해서 팔았습니다.
이번에는, 아홉 마리를 샀습니다.
다시 20마리를 사서 팔았습니다.
(9) 시장에는 샌더스의 닭튀김 요리가 너무 맛있다고 소문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샌더스는 조그마한 가게를 빌려서, 간판을 달았습니다.
자기에게 예수님을 믿게 해주고, 돈을 주신 흑인 아줌마를 생각하면서,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치킨 장사가 날로 번창하여, 오늘날에는 전 세계를 석권하는 유명한 <캔터키 후라이드 치킨> 체인점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샌더스는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10) 샌더스는 가난할 때나, 억만장자가 된 후에나, 변함없이 흑인 아줌마를 생각하면서, 찬송을 불렀습니다.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천성에 가는 길 험하여도, 생명길 되나니 은혜로다. 천사 날 부르니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11) 그는 자기를 예수 믿게 해주고, 사업 자금을 대준 흑인 아주머니에게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고, 자기도 어려운 사람들에게 복음과 구제를 평생 힘썼습니다.
샌더스는 고아원을 지원하였으며, 노인들을 위해 양로원을 만들어 후원하고, 세계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을 도왔습니다.
오늘날도 샌더스의 정신을 이어받은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 선교회 즉 KFC는 여전히 고아원 선교, 양로원 선교, 해외선교에 힘쓰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빌립이 친구 나다나엘에게 자기가 믿은 예수님을 소개했듯이, 그리고 흑인 아주머니가 샌더스에게 전도했듯이, 성도님들도 가족들과 이웃들에게 전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가족과 친구와 이웃들이 예수님 믿고, 함께 천국 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둘째로, 나다나엘이란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이 나다나엘을 전도하신 내용입니다.
47절.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1. 나다나엘은 유대교에서 구원의 길을 찾으려고 열심히 노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다나엘은 유대교에서 참된 구원의 길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서 구원의 길을 찾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길을 잃으면, 안 됩니다.
(1) 지난 2002년 4월 15일(월) 오전 11시 22분에 중국 비행기 보잉 767-200기가 김해공항 북쪽 4.5㎞ 신어산에 추락했습니다.
사고기가 김해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심한 비바람이 불고 짙은 구름이 뒤덮여서 앞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관제탑과 교신한 후, 바람을 마주 보고 착륙하므로, 활주로 반대 방향으로 내리기 위해, 북쪽으로 선회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사고기는 선회 지점을 지나쳐서 항로를 이탈했고 결국은 산에 추락했던 것입니다.
탑승자는 모두 166명이었으며, 그중 38명이 살았고, 나머지 124명은 안타깝게 죽음을 당했습니다.
(2) 신어산 자락을 찾은 유가족들은 불타버린 비행기 잔해를 끌어안고 이렇게 통곡하며 오열하였습니다.
"어머니! 쇠도 녹인다는 불 가운데 얼마나 뜨거웠습니까?"
병원의 영안실을 모두 찾아다니며 숯덩이가 되어 알아볼 수 없지만 혹시나 하고 사랑하는 이들을 찾았습니다.
어떤 여인은 시신의 타다 남은 바지에서 남편의 이름을 발견하고 남편임을 확인한 뒤 혼절하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험한 모습만 뇌리에 남긴 채, 뒤돌아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3) 이것이 인간의 현실입니다.
길을 잘못 들면, 이렇게 사망으로 내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4) 여러분은 사망의 길을 가고 계십니까?
아니면, 생명의 길을 가고 계십니까?
인간은 이미 태어나면서부터 길 잃은 존재입니다.
인생이 어디서부터 왔으며 무엇 때문에 살며 어디로 가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요한복음 14장 6절에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I am the way and the truth and the life)고 말씀했습니다.
여기 길은 여러 길 중에 한(a) 길이 아니라, 오직 그(the) 길입니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는 독선적이고 편협하다고 주장합니다.
“왜 꼭 예수만 믿어야 천국 가냐?”는 것입니다.
(5) 한번은 제자가 공자에게 내세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 때, 공자는 제자에게, “이 사람아 이 세상의 일도 모르는데 죽은 후의 일을 어떻게 알겠는가?”
그래서, 공자는 “아침에 도(道)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했습니다.
(6) 석가는 바로 이 도(道)를 닦기 위해 출가했습니다.
하지만 이 길은 인간이 발견할 수 없습니다.
성철은 불교계의 위대한 승려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 길을 발견하기 위해 남다르게 애를 많이 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임종 시에, 구원의 길을 찾지 못했음을 솔직히 유언으로 고백했습니다.
<나는 평생 동안 수많은 남녀에게 진리가 아닌 것을 진리로 속였도다. 오호라, 내 죄가 수미산을 넘는도다. 나는 이제 산채로 무간 지옥에 떨어지나니, 한이 만 갈래나 되는도다.>
그러나 공자나 석가나 성철이 찾는 그 도(道)는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7) 한 이슬람교인이 기독교로 개종을 했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왜 기독교로 개종했습니까?”
그러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세상을 살다 길을 잃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가다가 보니까 죽은 사람이 있고, 산 사람이 있습디다.
그럼 누구에게 물어 보아야 하겠습니까?“
“그야 산 사람이지요”
“그렇다면, 마호맷은 죽었고, 예수님은 살았으니, 예수님께 길을 물어야 마땅하지 않습니까!”
(8) 그렇습니다!
① 인생의 삶과 죽음 생명의 궁극적 해답은 부활하신 예수님 외에는 가르쳐 줄 수 없습니다.
② 인간은 본래 낙원에서 살았습니다.
그곳은 죽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범죄로 말미암아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창 3:24).
③ 그렇지만, 하나님은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사, 우리 죄를 대신 지고 죽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는, 죄를 용서해주시고, 영생 천국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④ 예수님은 요한복음 14장에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한복음 14장 2-3절).
여기서 ‘아버지 집’, ‘처소’, ‘나 있는 곳’은 천국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인생은 “영원한 집을 찾아가는 길”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생명 길’ 되시는 주님과 동행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나그네 인생길에서, 주님 모시고 살므로, 이 땅 위에서 길 잃지 않고 승리하시다가, 마침내 천국에 모두 입성하시기 축원합니다!
셋째로, 예수님은 보통 종교인이 아니라, 천사들이 예수님 위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말씀했습니다.
51절.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1. 즉, 예수님이 말씀하시면 천사들이 순종하여, 예수님의 말씀대로 온 세상을 다스려 나갑니다.
예수님은 보통 인간이 아니시고,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2. 어떤 무신론자가 국전에 출품한 그림을 감상하기 위해 전시실 화랑에 갔습니다.
(1) 많은 그림이 있었지만 유난히 시선을 끄는 그림이 있었습니다.
그 그림은 보통 풍경화로서 한가로운 시골 전원을 그린 것이었습니다.
마을을 중심으로 해서 뒷산을 배경으로 하여 그림을 그렸던 것입니다.
(2) 산에서부터 흐르는 시냇물이 마을 한복판을 흘러내리며 하늘에는 구름이 두둥실 떠 있고 종달새가 지저귀며 날고 있는 정겨운 그림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찌나 생동감 있게 그렸던지 감상하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탄성이 새어 나오도록 했습니다.
화폭에는 시각과 후각과 청각이 어우러져 있었습니다. 붉게 타는 저녁노을과 함께 집집마다 굴뚝에서 연기가 나는데 그것은 밥을 짓는 것이며, 밥 내음이 온 마을을 휘감아 돌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앞마당에는 암탉과 병아리들이 졸고 있었으며, 외양간 소는 커다란 눈을 껌뻑이며 연신 여물을 되새기고 있었습니다.
시냇물은 졸졸, 종달새는 ‘노고지리, 지리 지리. 지리리리’ 지저귀는 그림이었습니다.
(3) 무신론자는 그림에 매료된 나머지 화가를 한번 만나 보고자 했습니다.
주소를 물어물어 마침내 화가가 살고 있는 집을 찾아냈고, 마침 화가는 뒷동산에서 그림을 그리던 중이었습니다.
무신론자는 화가를 향해 경외하는 마음으로 인사를 했습니다.
“그림을 하도 생동감 있게 표현했기에 어떤 분인가 해서 뵙고자 왔습니다.”
그러자 화가는 “무슨 대단한 그림도 아닌데요” 하며 겸손해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화가는 “저는 그리스도인인데, 선생님은 무슨 종교를 갖고 계십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무신론자는 “저는 신(神) 같은 존재는 안 믿습니다”고 했습니다.
(4) 그러자 화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아무리 그림을 잘 그렸다 해도 실물과는 비교가 안 됩니다.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실제로 이 모든 것들을 만드셨답니다.
마치 그림을 그린 사람이 존재하듯, 우주 만물을 만드신 이는 분명히 있답니다.
그림을 보고 화가의 존재를 인정한다면, 실물을 보고 창조주를 인정해야 하지 않습니까?
한낱 그림이 훌륭하다면, 하물며 실물을 만드신 이는 얼마나 훌륭하시겠습니까?
그분이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랍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무신론자는 이상스럽게 진한 감동이 왔고,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3. 만유인력을 발견한 과학자 뉴턴(Isaac Newton, 1642~1726년)에 얽힌 일화입니다.
(1) 뉴턴이 숙련된 기계공에게 태양계의 모형을 만들도록 했습니다.
각각의 혹성이 움직이도록 아주 정교하게 설계된 것입니다.
(2) 어느 날 무신론자이면서 과학자인 한 친구가 태양계의 모형을 보고 손잡이를 서서히 돌렸습니다.
그랬더니 모형에 달린 지구를 비롯해서 각각의 혹성들이 다양한 속도로 자전을 하면서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친구는 사뭇 놀라운 표정으로 “야, 정말 훌륭한 모형이군. 도대체 누가 만들었나?”
(3) 그러자 뉴턴은 “아무도 아닐세”라고 무심히 말했습니다.
“이봐, 이 모형을 누가 만들었냐 말이야?”
그러자 뉴턴은 “이건 누가 만든 게 아니고 여러 가지 물건들이 모아져서 우연히 저절로 이런 형태가 된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은근히 화가 난 친구는 “자네는 나를 완전히 바보 취급하고 있군. 이렇게 정교하고 훌륭한 모형이 어떻게 저절로 만들어졌다는 거야!”하고 소리쳤습니다.
(4) 이때, 뉴턴은 친구의 어깨에 손을 얹고서 말했습니다.
“이건 엄청나게 큰 우주의 작은 모형에 불과해. 이렇게 간단한 장난감도 설계자나 제작자 없이 만들어질 수 없다고 자네가 주장하지 않았는가? 하물며 이것의 근본이 되는 태양계가 설계자나 제작자 없이 우연히 생겨났다고 믿는 것에 대해서 자네는 뭐라고 설명하겠나?”
그러자, 그 친구는 아무 말 없이 그저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5) 뉴턴은 그의 책 <프린키피아>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태양 혹성 혜성으로 구성된 매우 아름다운 천체는 지성을 갖춘 강력한 실력자의 의도와 통일적인 제어가 있기에 비로소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그분은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주 만물의 자연계시를 통해 하나님을 뵙는 영적 안목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나다나엘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한 것처럼, 성도님들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시기를 축원합니다!
4. 오늘 성경 본문에서, 나다나엘은 예수님께 <어떻게 나를 아십니까?> 물었습니다.
48절.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1) 오늘 성경 본문에서, 나다나엘이란 사람은 예수님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친구 빌립이 예수님을 구약성경에 수 천 년 동안 예언된 ‘그리스도’라고 나다나엘에게 소개했습니다.
즉 45절에서 빌립은 나다나엘에게.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다나엘은 세상적 판단으로 “나사렛에서 무슨 그리스도가 나겠느냐? 상식에 어긋난 말을 하지 말라”고 일축해버렸습니다.
즉 46절에서.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고 했습니다.
그러자 빌립이 이르되 “와 보라”고 했습니다.
46절.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1. 그러나, 친구 빌립은 나다나엘에게 <와 보라>고 하면서, 억지로 예수님께로 끌고 갔습니다.
이처럼, 나다나엘은 피상적인 판단으로 예수님을 단순한 사람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몰랐습니다.
이처럼, 우리 인간은 예수님을 잘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잘 알고 계십니다!
(2) 예수님은 나다나엘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나다나엘의 마음속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나다나엘이 다른 사람보다 간사함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47절.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그러자, 나다나엘은 예수님이 자기와 사귀어보지도 않으시고, 어떻게 자기를 아시느냐고 의아하게 반문했습니다.
48절. 나다나엘이 가로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그러자, 예수님은 나다나엘이 아무도 모르게 무화과나무 아래서 기도하던 것도 다 아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48절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그러자, 나다나엘은 깜짝 놀라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했습니다.
49절.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1. ‘이스라엘의 임금’이란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스리시는 왕이신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과연,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의 마음도 아시고, 우리의 은밀한 행동도 다 아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사정을 다 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떠한 근심과 고통을 안고 살아가십니까?
창피해서 남모르게 고민하고 계신 안타까운 문제가 있으십니까?
남편의 문제입니까? 자녀의 문제입니까?
경제 문제입니까? 질병 문제입니까?
아니면, 남모른 죄의 문제입니까?
이 시간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 시간 부드러운 주님의 음성을 듣고, 모든 짐을 주님께 가지고 나오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날마다 우리의 짐을 대신 져 주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세상이 주는 것같지 않는 참된 평안을 주십니다!
이 시간, 우리의 죄의 짐, 질병의 짐, 가난의 짐, 남편과 자녀의 짐을 모두 주님께 내려놓으십시오!
빌립보서 4:6-7.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다 같이 기도하십시다>
사랑하는 예수님!
나의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주님께 나의 모든 짐을 내려놓습니다.
나의 죄 짐을 다 용서해주옵소서!
나의 질병을 모두 고쳐주옵소서!
나의 가난을 다 부요케 해주옵소서!
나의 남편과 자녀와 부모 형제의 문제를 모두 해결해주옵소서!
이제 광야 같은 세상에서 나그네 인생길을 주님 인도 따라서 잘 가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영원한 천국에 평안히 들어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