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차 선지식 순례 제따와나선원 일묵스님 법문
‘ 2022.7.16 심행 정리
여기 처음 오신 분? 다들 여기 처음 와 보십니까?
간단히 제가 이제 저희 선원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를 드리겠습니다. 뭐 아시는 분은 아실 수도 있는데
저희가 이제 ‘제따와나’라는 이름은 원래 뜻이 ‘제타 숲’ 이라는 뜻입니다. ‘제따’라는 말은 부처님 당시에
태자 이름입니다. ‘아나따메띠까’ 라고 ‘급고독장자’라고 들어 보셨지요?
그분이 이제 이 ‘제타’왕자가 소유하고 있던 숲이 그게 ‘제따와나’인데, 그 숲을 보고 워낙 아름다운,
여기가 수행하기에 아주 좋은 곳이구나! 이렇게 생각해서 급고독장자가 이제 그 제따 왕자한테
찾아가서 이제 이 숲을 사고 싶어 하니까,
그때 그 일화는 대부분 다 알고 계실 거고요.
그래서 이제 금화를 깔고 이렇게 해서 사게 됐는데, 그때 그 급고독장자에 대해서 이제 정성에 감동을
해서 이제 그 왕자가 그 숲에 있는 나무는 자기가 보시하겠다.
그래서 이제 이걸 ‘제따와나아나타삐따 라마’인데, 급고독장자의 빨리어 원래 이름이거든요. 아나타삐따
라마, 이 절이라는 뜻이에요. 그래서 ‘제따 숲’인데 ‘아나타삐따까’ 장자가 보시한 절이다.
그래서 ‘제따와나 아나타삐따까 라마’가 이게 원래 이름인데 간단하게 줄여서 이제 ‘제따와나’라고
이야기하고, ‘제따 숲’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제 그 이름을 ‘제따와나’라고 정한 것은, 아무래도 이제 좀 부처님 당시에 어떻게 이제
수행을 했고 또 어떤 방법으로 수행했는지 거기에 대한 관심이 좀 많았거든요.
마침 제가 출가한 지 한 10년이 지나고 나서 부터, 우리나라에서 초기불교가 소개되었는데, 그래서
그런 거를 쭉 공부하다가, 그래도 부처님 당시에, 우리가 똑같이 할 수는 없겠지만, 부처님 당시에 이
‘제따와나’라고 하는 절에 부처님께서 한 45년 법을 설 하시면서, 19안거를 제따와나에서 지내셨거든요.
그러니까 반 가까운 세월을, 제따와나에서 안거를 보내셨기 때문에, 그래서 부처님의 그런 이제 자산이나
또 생활 방식이 가장 잘 남아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고, 그 ‘제따와나’에서의 그런 삶의 모습이나 수행
방법을 좀 닮아가자는 의미에서 ‘제따와나’라는 이름을 짓게 됐고,
그래서 이제 보시면 알겠지만 기원정사에 가 보신 분은 ‘제따와나’를 이제 기원정사라고 하잖아요.
기원정사에 가 보신 분은 알겠지만 이제 지금은 아름다운 숲 속에 이제 이런 벽돌로 된 흔적이 남아
있잖아요. 그렇지요?
그래서 우리가 이제 거기서 좀 착안을 해서 외형적으로도 좀 그 비슷한 모습을 하면 좋겠다 해서 이제
우리가 외벽을 할 때 벽돌로 하게 되었고, 또 이제 아마 ‘나란타대학’이라고 가 보신 분들 있을텐데,
‘나란타대학’이 보면 가운데 기둥 같은 것도 있고 그래서, ‘나란타대학’ 하고 기원정사나 인도에
있는 그것을 좀 모델로 해서 건물을 짓게 되었고,
여기 있는 부처님은 이제 여러분들이 ‘사르나티’라고 그러지요? 초전법륜을 굴리신 곳인데, 녹야원에
가며는 거기에, 이제 작은 박물관이 있는데 그 박물관에 있는 부처님 중에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세 종류의 부처님을 보고 사르나티에 있는 그 부처님을 보고 그 부처님을 모델로 해서,
우리가 이제 좀 한국식으로, 작가는, 또 이건 작가의 작가가 만드는 거라서, 한국식으로 조금 재해석을 한
것 같아요. 똑같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기본적인 모양은 비슷하고, 그렇게 해서 이제 외형적으로는
제따와나가 이제 만들어 졌고요
여기 이제 수행을 하는 거는 아무래도 부처님 수행 당시에 어떻게 수행했나, 그거에 대한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부처님 초기 경전에 나오는 걸 보면, 이제 오래된 고전으로 갈수록 부처님 가르침을 보면 대체로
사성제로 요약할 수 있는 겁니다. 그 중에서 이제 우리가 수행을 어떻게 하느냐? 이거는 팔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팔정도가 초전법륜경이라고 최초로 부처님께서 이제 법을 설하신 내용이, 제일 처음에 이제 다섯 비구를
앉혀 놓고 설하신 내용이 뭐냐 하면 팔정도예요. 그때 이제 팔정도를 설하시고 팔정도를 이야기하시다
보면 바른 견해, 정견이 사성제, 팔정도들을 설하시면서 이제 또 사성제에 대한 언급도 나옵니다.
그래서 이제 그런 거를 기반으로 해서 우리가 팔정도라고 하는 거를 좀 수행의 기본 틀로 삼고, 또
팔정도를 다른 말로 하면 중도라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이 부처님이 말씀하신 것 중에는 인도 당시의
문화처럼 너무 고행이나 한 극단으로 가지 않고 이거는 이제 적절한 균형감을 가지고 수행을 하기
때문이거든요.
너무 이제 감각적 쾌락에 빠지는 것도 한 극단이고, 그렇다고 이제 고행을 하는 것도 극단이니까 그 두
가지를 균형점을 찾아서 소위 말한 삼매라는 것을 이용해서 수행을 하면, 수행이 처음도, 처음이나
중간이나 끝도 좋은 수행을 할 수 있다. 이것이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감각적인 즐거움이 아니라, 이것은 삼매의 행복, 그러니까 벗어나는 행복을 기반으로 하는
수행이기 때문에, 그래서 이건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서 하는 수행이기 때문에 중도라는 면에서 본다.
그래서 이제 이 팔정도를 중도라고 하기도 하는데, 이 중도 수행, 이 중도라고 하는 수행을 어떤 식으로
이제 우리가 실제 구체적으로 실현할 것인가 하는 거에 대한 이제 고민을 하게 될 거고요
그거를 나름대로 이제 제가 좀 정리를 해서 수행 방법으로. 지금 그래서 저희는 중도 수행이라고 하는
거를, 이름 지어진 그 수행을 하고 있는데, 여러분들이 오늘 뭐 짧게 이지만 그 중도 수행 중에 잠깐
한번 체험을 하는 시간을 가지실 거고요.
바로 이 중도 수행을 이제 크게 나누면 우리가 일상, 우리가 이제 수행하는 과정을 크게 나누면 한 세
가지 부분으로 나눌 수 있어요.
첫째는 이제 우리가 제일 많이 알고 있는 좌선이라고 하는 게 있지요, 그렇지요? 앉아서 하는 수행이
있고
또 하나는 뭐냐 하면 경전에 보면 좌선과 경행이라고 하는 게 있습니다. 이건 이제 요즘 말로 하면
걷기수행 입니다. 이 걸으면서 적당한 거리를 이렇게 왔다 갔다 걸으면서 수행하는 방법 이게 이제
걷기 수행이고
또 하나의 수행법은 일상에서 우리가 밥 먹고 뭐, 여러분들 왔다 갔다 하고 차 타고 일하고 일상생활을
하면서 그 속에서 수행하는 것.
이렇게 해서 한 세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아무래도 일상적이 좀 조금 더 어렵겠죠. 왜냐하면 이제
일상 속에서는 우리가 부딪히는 경계도 많고, 또 욕망이나 화가 일어날 상황도 워낙 많기 때문에 그런
상황에서 수행을 하는 건 좀 더 어려워요.
그래서 이제 좌선과 걷기 수행 해서 조금 더 수행을 하면서, 이 수행의 힘이 이제 일상으로 들어가고, 또
일상에서 수행하는 것이 또 좌선과 걷기 수행에서 또 좀 더 향상되게 하는, 이런 방식으로 수행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세 가지, 좌선 수행과 걷기 수행 그리고 일상 수행이 있는데, 이제 좌선 수행에 하는 거는
주로 이제 ‘아나빠따사띠’ 라고 해서 우리가 호흡 수행을 합니다.
숨이 들어가고 나가는 이거를 이제 기본 주제로 잡아 수행 주제로 잡아서 하는 거고, 걷기 수행을 할 때는
이제 발걸음을 대상으로 하는 거, 일상에서는 조금 이제 우리가 제일 쉽게 접하는 게 감각 대상이잖아요.
그렇지요?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냄새 맡고 맛보고 이제 촉감, 몸의 감각을 활용해서 하는데 이거 오늘 다
설명드릴 수는 없고, 이제 그 중에서 제일 이제 기본이 되고, 결국은 이제 호흡 수행이나 자신의 상호
수행을 잘하기 위해서 또 걷기수행과 일상 수행을 하는데
나중에 이제 이 수행이 무르익으면 이 호흡 수행을 통해서 소위 말해서 선정이라고 하는 아주 고도로
마음이 깨끗해지고 집중되는 그런 상태를 얻을 수 있는데 이걸 우리가 바른 삼매라고 표현합니다.
그래서 이 중도 수행의 이제 형태는 세 가지로 나눌 수 있고 또 실제로 이제 수행하는 방법으로 보면
계, 정, 혜 이렇게 나눌 수 있지요. 좀 더 이제 중도수행은 한마디로 이제 여러분들이 괴로움이 일어나는
대표적인 원인이 뭐겠어요?
욕망과 집착과 화, 이거 세 개가 제일 우리 삶을 힘들게 만드는 요소일 거 아니에요, 그렇죠?
이거는 이제 우리 생각을 계속 이렇게 정신없이 넘치게 만들어서 우리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괴로움을
주는가 하면 또한 이제 이것에 반대 방향은 생각이 없어져서 노른해지는 형태가 있어요. 이걸 우리가
해태 혼침이라고 하는데,
이 해태 혼침은 또 이제 멍~해지면은 일시적으로는 생각이 없으니까 마음이 편해지지만, 사실은 이게
정신적으로 되게 멍한 상태로 되는 거라서, 게을러지고 무력해지는 상태라서 이거는 사실 지혜가
생기는 게 아니라 지혜가 없어지는 것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 두 가지 이제 대표적으로 탐욕이나 성냄 그리고 해태 혼침이라고 하는 이거를 이제, 이게
우리 삶을 굉장히 계속 이게 어리석게 만들고 괴로움이 일어나게 만드는 건데,
그래서 이거를 우리가 수행을 통해서 가라앉힘으로써 마음이 이렇게 가라 앉으면, 이 탐욕이나 성냄
그리고 이 해태 혼침이 가라 안기 시작하면 마음이 되게 고요해지고 차분해지고 행복해집니다.
그래서 이런 마음 상태가 이제 좀 제대로 된 상태를 우리가 삼매라고 하는데, 이런 삼매의 마음의
상태가 되면 그러고 나면, 이제 나중에 이 삼매가 형성되고 나면, 우리가 욕망이나 화남 이런 게 있을
때는 어떤 대상을 볼 때 내가 원하는 것만 보고 원치 않는 것은 안 보려고 하고 이렇게 되는 거요,
균형이 없는 마음이거든요.
그런데 이제 우리가 탐욕이나 성냄이 없고, 혼침도 없을 때는 정신이 또록또록 해 지거든요? 그래서
이런 상태가 되면 이제 우리가 현상을 볼 때 정말 있는 그대로로 지혜가 생길 수 있는 프로가 됩니다.
그래서 이제 중도 수행이라고 하는 거는 거의 다 호흡이나 또 일상 걷기 수행할 때 발 걸음 또는
일상에서는 감각 대상 이런 데 마음을 두면서 여기서 움직이는, 호흡에 가만히 두려고 해도 마음이
움직이게 돼 있어요.
그 움직이는 마음을 알아차리고 내려 놓고 하면, 이 속에서 이제 탐욕이나 성냄이나 이런 해태
혼침이나 이런 장애, 우리 마음의 장애 이런 걸 내려놓고, 이게 번뇌이기 때문에 그 다음에 마음이
고요해지는 이 고요한 마음 이거를 우리가 이제 바른 삼매라고 하는데
이건 고요하기도 하지만 쫄깃쫄깃하고 굉장히 집중된 마음 상태입니다. 그래서 이런 마음을 이용해서
아주 깊이 있는 현상 우리가 사는 이 현상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어보는 지혜를 개발함으로써 우리가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거고,
이게 이제 중도 수행이 하는, 중도 수행은 한마디로 말하면 우리 마음을 잘 길들여서 번뇌나 우리
마음을 괴롭게 하는 요소를 버려서 바른 삼매에 들고, 이 바른 삼매를 통해서 또 지혜를 개발해서
괴로움을 소멸하는 이런 구조로 돼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여기서 너무 길게 설명을 안 드릴 거고. 그냥 그래서 오늘은 이런 이제 처음에 이제 수행할
때는 바른 삼매를 하는데, 이 바른 삼매는 결국은 이제 탐욕이나 성냄이나 해태 혼침을 버리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하잖아요. 응?
이 지혜의 힘을 활용해서 이제 이 장애를 내려 놓음으로써 삼매에 들고, 이 삼매를 통해서 이제, 제가
처음에 이제 삼매에 드는, 바른 삼매를 갖는 아주 기본적인 걸 여러분들이 오늘 한번.
우리 정념 스님이 좀 알려줄 겁니다. 그래서 지도에 따라서 한번 수행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아주 기본적인 거를 한번 경험해 보시고 나중에 또 기회가 되면 좀 더 깊이 있는 수행을 한번
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오늘 그렇게 물러나고 그 다음은 좋은 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