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를 어디서 찾는가?
지금 『도전』이 총 11편이다.
상제님 개벽지도가 전부 나뉘어져 있다.
물론 책은 한 권으로 붙어 있으니,
그런 대로 지도가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상제님 공사, 태모님 공사 내용 도수에 따라
상호 내용을 맞춰봐야 한다.
여러 도수를 조합해서 봐야,
상제님 태모님의 후천 오만 년 청사진이 나온다.
『도전』 보는 묘미가 거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전』은 일단 많이 보는 사람이
가장 강력한 신앙의 힘을 갖고 있는 것이다.
양적으로 많이 보라.
많이 보다 보면, 어떻게 봐야 하는지 알게 된다.
그러면서 『도전』 보는 재미가 솔솔 난다.
아주 잘 곤 소뼈다귀를 씹으면
그 뼛속에서 흐물흐물 진국이 우러나오는 것처럼
『도전』을 많이 보면, 상제님 태모님 말씀의 진국을 맛볼 수 있다.
그리고 거기서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받는다.
강력한 깨달음, 기쁨, 희열 같은 걸 느낀다.
“아, 후천개벽이 이렇게 오는구나.” 하고,
선천문화가 마무리되면서 후천으로 들어가는
개벽 과정이 섬세하게 그려진다.
그렇게 되면 개벽에 대한 확신 정도가 아니다.
유치한 때깔 다 벗고, 개벽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도전을 잘 보면 진리의 핵심이 깨진다
처음 입도할 때부터 『도전』을 잘 보면,
상제님 진리를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려서,
누가 말할 때
'아, 저 얘기의 핵심은 무엇이다.’ 하는 걸 금방 안다.
그리고 팔관법에서
상제관 우주관, 증산도 근본사상(인간론),
원시반본이나 보은·해원·상생, 진법 또는 천지공사,
개벽의 실제상황, 증산도 구원론,
그 다음 종통맥, 수부론, 일꾼론 등의 내용을 들으면,
들을 때마다 기분 좋고 상제님 진리가 더욱 강렬하게 깨진다.
그러면서 진리의 고갱이만을 언어로써
쫙 뽑아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누구에게 진리를 전할 때, 군더더기가 떨어져 언변이 말쑥해진다.
그런 사람이 누구에게 진리를 얘기해 주면,
힘이 붙고 정신이 깨진다.
다른 사람 얘기 열 번 듣는 것보다
그런 사람 얘기 30분 듣는 게 낫다는 신뢰를 받는다.
『도전』을 제대로 본 사람과 안 본 사람,
적당히 본 사람은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그건 신명세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틈틈이 꾸준히 보라
도전은 틈틈이, 그리고 꾸준히 보라.
그게 어느 정도 몸에 익으면,
뉴스를 보든 다른 일을 하면서도 볼 수 있다.
아주 지극한 정신으로, 『도전』 보는 혼이 되어 보게 된다.
일꾼은 『도전』 보면서
상제님 태모님의
도통심 경계의
언저리를 서성이며
문을 두드리고,
상제님 태모님의
정신 세계로 들어감으로써,
도통 받을 수 있는,
그리고 상제님 도를
완성할 수 있는
일꾼의식을 갖게 된다.
때문에 『도전』을 안 보면 참 일꾼이 될 수 없다.
많은 사람을 살려낼 수 없다.
포덕을 제대로 할 수 없다.
포교를 해도, 그들의 근본신앙을 깨서
사상신앙 하는 큰 일꾼으로 만들 수 없다.
처음 입도할 때,
“상제님은 이런 분이다.
우리는 상제님을 만나기 위해 인간으로 온 것이다.
이번에 개벽을 한다.
개벽상황은 3년 동안인데,
이런 일이 벌어진다.
이 땅에서 상씨름이 붙고 상씨름이 넘어간다.
그러면서 병겁이 온다.
그 때 우리는 의통으로 사람을 살린다.
그것을 위해 우리는 육임을 완수하는 것이다.”
이런 상제님 진리의 틀을 잡아줘야 한다.
육임 조직의 정신은 무엇인가?
어떻게 해야 그 사람을 단박에
3년 5년 신앙한 사람보다도
더 강력한 일꾼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가?
그대들은 조직의 천재가 돼야 한다.
조직의 화신이 돼야 한다.
조직을 할 수 없으면 큰일꾼이 못 된다.
이 가을의 추수사업이라는 건
상제님 도로써 인간 정신을 묶는 것이다.
앞으로 만나는 이들을 도문으로 끌어들여
강력한 일꾼으로 변화시키려면,
하루하루 쓸데없는 시간 다 정리하고,
상제님 진리에 매두몰신해서
현장중심으로 뛰어야 한다.
그래야 진리가 제대로 열린다.
인류를 위해 봉사하라
후천에 가면,
일꾼들의 도 계급이 정해진다.
입는 복식도 다르다.
그 때 도 계급이 너무 낮아서,
상제님 궁궐에 들어가 고개 한 번 쳐들지 못한다면
말이 되겠는가.
이 사람 만나면 고개 숙여야 하고,
또 저 상전 만나면 고개 숙여야 하고. 그러고 다닐 것인가?
그게 어디에 달려 있는가?
‘누가 사람을 많이 살렸느냐?’ 오직 여기에 달려 있다.
지금 사람 살린다는 게 무엇인가?
진리 전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포교라고 한다.
보험회사 다니면서 보험 들라고 쫓아다니는 보험설계사,
기술 하나 배워서 어떻게든 돈 좀 벌어보려고 밤새우는 사람들,
은행에다 한 푼 두 푼 저축해서 큰 집 장만하려고 애쓰는 주부들,
세상 사람들이 다 그렇게 산다.
상제님 일이 진짜로 후천 오만 년 자기 자리가 정해지고,
자손만대 조상만대가 살고 잘되는 일이라고 믿는다면,
우리 신도들이 다 바쳐서 생명 걸고 일할 것이다.
그런데 제대로 안 믿는다. 형식적으로 믿을 뿐이다.
자기가 잘되고 잘못되는 걸 떠나서,
이번 개벽에 천하만민이 넘어간다!
지금 대개벽의 물결로 들어가는, 사오미 개명 과정이다!
그런데도 세상을 위해 걱정도 안하는가!
아까 뉴스 한토막 들어보니,
이번에도 미국 사람들
수백만 명이 일자리를 잃는다고 한다.
대기업체에서 끊어냈다
하면 보통 수천 수만 명이다.
그런데 그들은 실직자 수당을 받고
양로원 같은 데 가서
봉사한다는 것이다.
그들과 인터뷰하는 게 나오는데,
그들은 의무적으로 봉사하는 게 아니다.
“실직자가 되어 하루종일 병원 같은 데 가서
환자 목욕시키는 일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소독도 하고, 마당도 쓸고, 가리지 않고 일을 합니다.”
한 50대 된 여성이 그런다.
상제님 일은 전 인류 봉사다.
인류를 위한 최상의 봉사가 상제님 진리를 전해주는 것이다.
이 일을 자신이 죽고 사는 문제라고 생각해 보라.
자기 형제, 동생, 부모, 자식이 죽는 문제라고 해 보라.
지금 전화가 왔는데,
가족 중 누가 사고가 나서 긴급 수술을 받아야 된다고 하면,
당장이라도 뛰어갈 것 아닌가.
도전 읽은 만큼 축복받는다
그런데 상제님이 말씀하신
이 천지대업을 제 일,
제 생명의 일,
제 가족의 일로 생각 안한다.
천하사 의식이 없다.
그 궁극의 원인이 어디 있는가?
『도전』을 안 봐서 상제님 태모님의
정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에 있다.
그래서 형식적인 신앙을 하는 것이다.
정신의 70%가 세속으로 빠져서,
천지대업을 집행하는 일꾼의
도심이 없이
거짓말 신앙을 한다.
혼이 되어 『도전』을 봐야 한다.
『도전』 읽은 만큼 축복 받는다.
『도전』을 제대로 본 만큼
상제님 태모님을 잘 모실 수 있고,
또 그 은혜가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져서,
그들을 감동시켜 깨어나게 하고,
그들을 참된 일꾼으로 만들 수 있다.
제대로 『도전』을 공부하려면,
스스로 진리에 대한 굶주림으로 진리를 갈망하는 절규
같은 게 터져 나와야 한다.
정신이 팔딱팔딱 살아서,
“나는 지금 너무도 무지하다! 나도 알고 싶다!
나도 깨달음의 대광명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하는 열망이 화산처럼 폭발해야 한다.
그러니 평소에 틈틈이 메모 잘 하고,
또 혼을 깨어나게 한 핵심 결론 같은 중요한 도훈 말씀은
『도전』에 옮겨 적으라.
그 말씀의 고갱이를 잘 요약해서 깨달음의 밑천으로 삼고.
『도전』 잘 보는 사람이 결국 지도자가 되는 것이다.
또 그런 사람을 지구촌에 내보내야,
상제님 태모님 말씀을 제대로 전할 수 있다.
상제님 태모님 말씀이 제대로 깨져 있으면,
영어를 제대로 못 해도 핵심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모두가 이번 사오미巳午未 개명에 정신 퍼뜩 차리고,
내 생명과 영혼 등 모든 걸 바칠 수 있는 데까지 다 바쳐,
증산도의 대세를 몰아가는 주역이 되자.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