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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6일 토요일 소백산 첫째날
자차이용 : 사니조은 고인돌 님과
산행코스 : 죽령 – 연화봉 – 비로봉 ( 주목감시초소에서 비박)
산행거리 : 약 15 km 산행시간 : 약 9시간
https://www.ramblr.com/web/mymap/trip/371711/2147587
거리 15.2 km
소요 시간 9h 19m 19s
이동 시간 6h 12m 4s
휴식 시간 3h 7m 15s
평균 속도 2.5 km/h
최고점 1,457 m
총 획득고도 762 m
난이도 보통
철쭉꽃이 화사하게 피어있는 연화봉이 저녁 노을에 붉게 물들었다. 산 아래 계곡에 흐르는 옅은 안개도 황금빛이다. 하루 종일 철쭉꽃에 취해서 산을 누비던 산꾼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숲 속에서 지저귀던 산새들도 둥지를 찾아 숨어들었다. 연화봉 정상에는 고요함 속에 오직 저녁 햇살만이 바람에 흐르는 안개를 따라 이리저리 흔들인다.
배전반에 붙어있는 일몰 풍경사진
소백산 등산로에 설치된 전기 배전반 철제 캐비닛에 붙어 있는 연화봉 일몰 사진이다. 그 옆에는 눈 내린 겨울 풍경도 붙어 있지만 나는 이 무렵 철쭉꽃과 저녁노을이 어우러진 풍경이 제일 가슴에 와 닿는다. 그리고 나는 직접 그런 풍경을 내 눈으로 보고 싶었다. 산에서 그것도 큰 산에서 일몰 풍경을 본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더구나 집에서 두 세 시간 떨어진 곳에 있는 산은 더욱 그렇다.
그래서 생각한게 비박 산행이다. 무엇이 통했는지 내가 별다른 말을 꺼낸 것 같지도 않은데 고인돌 형님이 국망봉 비박 얘기를 먼저 꺼냈다. 그리고 비박 산행 경험이 여러 번 있는 사니조은 님이 맞장구를 치며 계획이 구체화되었다. 인원이 많지 않으니 의견을 모으기가 어렵지 않다.
날씨를 보고 날짜를 잡았다. 토요일에 산에 올라 하루 산행을 하고 비로봉 아래에 있는 주목 감시초소에서 잠을 자기로 했다. 각자 준비물은 침낭 하나다. 그리고 사니조은이 버너와 식사를 준비하고 고인돌 형님이 라면을 그리고 나는 간식거리를 준비하기로 했다. 겨우 1 박 2일이니 먹을 것을 그리 많이 준비하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나는 토마토 네 개를 배낭에 넣고 전철로 가는 길에 재래시장을 지나가면서 김밥 세 줄, 시루떡 하나를 샀다. 왠지 부족한 듯하지만 이미 10 kg 넘게 나가는 배낭이 터질 듯이 부풀어 있어 더 이상 넣을 수 없을 것 같다.
청량리역 대합실
7시 38분에 출발하는 희방사역행 기차를 타기 위해 여유있게 청량리역에 6시 50분쯤 도착했다. 대합실로 올라가는데 앞에 낯익은 얼굴이 보인다. 수원에서 버스를 타고 단양으로 직접 가기로 한 고인돌 형님이다. 지난 밤 두 번째 버스가 투입되어 여유가 있을 줄 알았는데 아침에 확인해보니 그것마저 매진이라 한다. 원래 우리는 10시 33분에 출발하는 단양행 기차를 타려고 계획했으나 어제 이미 자리가 매진되어 7시 38분차로 변경하고 차표를 예매했었다.
지난 달만 하더라도 한산했던 대합실이 활기에 넘친다. 활기에 넘친다기보다 일단 의자가 가득 찼고 역 안에 있는 상점들이 북적거린다.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고 여행을 떠나는 들 뜬 기분은 느낄 수 없다. 모두 조용한 가운데 꼭 필요한 행동만 하는 분위기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어느 정도 극복이 되어서 소위 생활방역으로 전환된 지 몇 주 지났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은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직장에도 나가지 못하는 ‘자택 격리’상태를 오랫동안 유지하는 것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그런 ‘Lock Down’ 조치 없이 대형 집회 금지 또는 접촉자 자가격리와 감염자 동선 추적 등 엄격한 통제하에 정상적인 생활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이런 것도 처음 겪는 생활방식이다보니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만일 이런 상황이 앞으로 2~3개월 더 진행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다. 힘이 왕성한 동물을 우리안에 가둬놓은 것처럼 철창에 몸을 부딪혀보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끼는 젊은이들이 생겨날 것이다. 작은 빌미만 제공해도 금방 터질 듯이 도전하여 폭력사태로 번질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날씨가 덥고 후텁지근해지는 한여름에는 불쾌지수가 높아진다. 평상시에도 거리에서 자주 다툼이 벌어지는데 코로나 사태로 인해 그 빈도나 정도가 더 높아질 것 같다.
단양으로 가는 기차가 빈 자리 없이 가득 찼다. 단순히 소백산 철쭉꽃을 보러가는 인파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동안 소원했던 사람들과의 모임도 갖고 친인척 방문하는 사람도 늘어난 이유일게다. 6월 6일 오늘이 현충일이라서 공식적인 휴무일이다. 아직 생산직 노동자들 중 토요일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도 공휴일에는 쉴 수 있어 모처럼 나들이에 나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코로나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되어 가는지 기차가 만차다.
10시 조금 넘어 희방사 역에 도착했다. 여기서 죽령 옛길을 걸어 죽령까지 갈 생각이었는데 배낭이 무거운 걸 염두에 두고 고인돌 형님이 택시를 불렀다. 걸어가면 1시간 조금 더 덜리는 거리를 택시로 10분만에 도착했다. 전에 차단막으로 가려놨던 옛 휴게소는 이미 다 헐리고 새로 짓는 건물이 한창 공사중이다. 도로 양쪽 빈 공간에는 주차된 차량으로 가득찼다. 산악회 버스도 한 대 보인다. 이미 이른 시간에 모두 산으로 올라갔는지 사람들은 많이 보이지 않는다.
이번이 올 해 들어 네 번째 찾은 소백산이다. 이제 죽령에서 올라가는 등산로는 눈에 익었다. 포장도로를 따라가며 길 주변에 피어있는 자연을 탐방한다. 콘크리트 길이지만 국립공원 관리공단 차량이나 기상관측소 그리고 천문대에 근무하는 사람들만이 드물게 차를 타고 이동하는 관계로 오염이 심하지 않은 곳이다. 이런 도로가 있어 접근이 용이하지만 이미 죽령이 해발 689 m 라서 왠만한 동네 산 꼭데기 높이와 다름없다. 가파르지는 않지만 서서이 고도가 높아지면서 주변에 피어 있는 야생화가 아름답다. 찔레꽃이 은은한 향기를 풍긴다. 고광나무 꽃은 하얀 꽃잎도 예쁘지만 향기가 그윽하다. 보리수나무 꽃도 이제 막 피기 시작했고 쥐다래 꽃도 예쁘다.
일찍 도착한데다 어짜피 해 지기 전까지 비로봉에 도착하는 것이 우리 일정이기 때문에 몸도 마음도 여유가 넘친다. 길 가에 피어 있는 꽃들을 다 살펴보고 그늘 아래 있는 쉼터에 들러 간식도 먹어가면서 완전히 신선놀음이다. 햇볕은 따갑지만 그늘에 들어서면 시원하다.
희방사 역에서 내려 죽령까지 택시로 이동한다.
물참대 꽃은 다 지고 말발도리 꽃이 피었다. 쥐오줌풀과 미나리아재비 꽃은 이제 곳곳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민들레는 꽃이 다 지고 씨앗이 익어가는데 늦게 핀 꽃이 샛노랑 색으로 강렬한 인상을 풍긴다.
제2연화봉에는 새로 지은 대피소가 있고 강우(降雨) 관측소가 있다. 지난번처럼 대피소 취사실로 올라가 야외 테이블에 앉아 김밥으로 점심을 먹었다. 이른 봄 길 가에 피어있던 할미꽃이 다 지고 이제 씨앗이 하얗게 익어간다. 할미꽃이라는 이름이 꽃대가 둥글게 구부러져 있어 그렇게 부르는 것도 있지만 꽃이 지고 나면 씨앗에 달려있는 하얀 깃털모양의 날개가 마치 할머니의 흰머리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소백산은 백두대간의 중요한 기점이다.
새로 지은 연화봉 대피소
대피소에서 내려와 강우 관측소 안으로 들어갔다. 넓지 않은 공터에 솜방망이 꽃이 많이 보인다. 작년 이맘때 이 산길을 걸어 올라가면서 보았던 꽃이다. 올 해는 어디서도 아직 본 적이 없는데 이런 곳에서 만나게 되니 무척 반갑다. 공터에는 미나리아재비와 쥐오줌풀도 무더기로 피어있다. 아마도 사람들의 왕래가 잦지 않은 덕에 자연이 조화롭게 잘 보존되어 있는 것 같다.
제일 놀라운 것은 따로 준비되어 있었다. 빈 공터 땅바닥에 무수히 많은 작은 꽃들이 피어있다. 둥지에서 갓 부화한 새끼 새들이 먹이를 달라고 입을 벌리고 있는 것처럼 앙증맞은 모습이다. 바로 용담과 구슬붕이 꽃이다. 꽃이 하두 작아서 쉽게 눈에 띄지 않기에 귀한 존재다. 우죽하면 새끼손톱보다 더 작은 구슬붕이를 큰구슬붕이라고 이름지었을까. ‘큰’자를 뺀 그냥 구슬붕이는 말 그대로 작은 구슬만하다.
기상관측소 뜰에 핀 구슬붕이
솜방망이 꽃
덩굴개별꽃
솜방망이
나는 이 구슬붕이를 백두대간을 걸을 때인 2018년 우두령에서 삼마골재로 가는 길에 석교산 정상에서 처음 보았다. 땅에 납작 엎드려 있는 꽃을 사진에 담으려면 나도 최대한 낮은 자세로 임해야 한다. 이제까지 주말마다 산에 다니면서도 석교산에서 구슬붕이를 본 이후 한 번도 보질 못했다. 그러니 기대하지 않았던 구슬붕이를 만났으니 그 기쁨은 더욱 큰 것이다.
고인돌 형님의 안내로 기상관측소 전망대에 올라갈 수 있었다. 마침 북한 땅 백두대간을 몇 차례 다녀온 적이 있는 뉴질랜드인 로져 쉐퍼드의 북한 백두대간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개마고원과 칠보산 그리고 금강산 등 낯익은 지명의 사진들이 걸려있었다. 어떤 곳은 산 8부능선까지 개간하여 농사를 짓고 있는 땅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오지여서 수려한 자연경관이 잘 보존되어 있는 느낌이다.
기상관측소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 - 단양방면
기상관측소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 - 단양방면
기상관측소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 - 비로봉방면
제2연화봉에서 천문대가 있는 연화봉까지도 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가 이어져 있다. 아래에는 이미 다 져버린 미나리냉이가 길 가에 가득 피어있다. 흔한 꽃이지만 이렇게 늦은 시기에 무리지어 핀 모습은 나름대로 아르다운 풍경이다.
산에서 내려오는 사람에게 비로봉의 철쭉이 어떠냐고 물었다. 그는 꽃이 져서 볼 품 없다고 한다. 천문대를 지나 연화봉에 이르자 철쭉꽃이 만발해있다. 그의 말대로 시기가 이미 지난 느낌이다. 그래도 한꺼번에 많은 꽃이 피어 있으니 전체적으로 화사한 느낌을 준다. 어차피 코로나로 인해 찾는 사람도 많지 않은데 무슨 흥이 난다고 화려한 자태를 오래 갖추고 있을까 싶다.
연화봉에는 멋진 일몰 장면을 촬영하려는 야심찬 진사님들이 카메라를 설치해놓고 해가 넘어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지금 시간이 3시 30분인데 여름 해는 7시 넘어야 산을 넘어간다. “그 때까지 이렇게 앉아서 기다릴 건가요?” 하고 물으니 그렇게 하고 싶은데 국공들이 일몰 두 시간 전에 하산하라고 해서 난감하다고 한다. 좋은 작품을 찍으려면 카메라도 좋아야 하고 실력도 좋아야 하겠지만 피사체 모델이 중요하다. 노을에 물든 철쭉꽃 뒤로 아스라한 소백산 능선을 담을 수 있다면 한 번쯤 국공의 횡포에 맞서서 해 떨어질 때까지 버텨보는 것도 괜챦을 것 같다.
연화봉
우리는 비로봉에서 일몰을 보기로 했다. 연화봉 전망대에서 비로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의 모습은 가슴을 짜릿하게 한다. 지리산과 덕유산 그리고 태백산이나 이 소백산처럼 큰 산들은 시원하게 벋은 등줄기를 볼 수 있어 좋다. 날이 맑은 덕택에 제1연화봉을 거쳐 천동삼거리 그리고 소백산 최고봉인 비로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사스레나무
관중 군락지
벌깨덩굴
두루미풀
감자난초
연화봉을 떠난 산길은 한 동안 숲속으로 이어진다. 사스레나무와 신갈나무 등 주로 낙엽 활엽수가 길 양쪽으로 깊은 숲을 이룬다. 나무 아래에는 이른 봄 눈이 녹자마자 제일 먼저 고개를 쳐들고 나와 고운 꽃을 피우는 모데미풀에 이어 각종 야생화와 풀들이 땅을 덮는다. 보라색 빛깔이 진한 벌깨덩굴 꽃이 여기저기 잔뜩 피어 있다. 감자난초꽃도 심심챦게 많이 보인다. 작은 산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큰앵초도 이 소백산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늘을 좋아하는 관중은 숲 속에 또 다른 숲을 만들었다. 그리고 다른 풀들이 끼어들지 못하도록 촘촘히 붙어 동그란 잎으로 땅을 뒤덮고 두루미 목처럼 길고 하얀 꽃대를 올린 두루미풀은 작은 거인들이다. 나무밑에 무리지어 피어있는 두루미풀을 보고 있으면 들판에 두루미떼가 내려앉아 있는 모습이 꼭 저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숲 길을 벗어나자 눈 앞에 제 1연화봉으로 오르는 계단이 펼져진다. 이 계단이 설치되기 전에는 통나무를 땅에 묻어놓은 통나무 계단이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산 아래에는 옛날과 현재의 모습을 비교해 놓은 사진이 세워져 있다.
고인돌 형님은 그새 나무 계단 끄트머리 전망대까지 올라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조망대에서는 오늘 우리가 걸어온 길이 매우 선명하게 보인다. 제2연화봉부터 연화봉 그리고 여기 제1연화봉까지 이어지는 백두대간 길이 아주 늠름한 모습이다. 반대편에는 우리가 가야할 비로봉까지의 오르막 길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펼쳐진다.
제1연화봉으로 가는 나무 데크에서 바라본 풍경 - 연화봉 방향
제1연화봉으로 가는 나무 데크에서 바라본 풍경 - 비로봉 방향
제1연화봉으로 가는 나무 데크에서 바라본 풍경 - 철쭉꽃이 한창이다.
제1연화봉부터는 잔잔한 오르내림이 이어진다. 고인돌 형님이 제일 앞장서서 시야에서 사라지더니 천동삼거리 사이 중간쯤에 있는 전망대에서 기다리고 계신다. 여기서는 단양방면으로 멀리 월악산까지 볼 수 있다. 오늘은 미스트인지 미세먼지인지 조금 끼어있어 단양시내마저 잘 보이지 않는다. “여기 어때?” 여기서 야영을 하면 어떠냐는 물음이다. 나무로 되어 있는 바닥위에 얇은 매트를 깔고 우선 저녁을 먹기로 했다. 마루금에서 조금 내려와 있어 풍기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직접 와 닿지는 않지만 오면서 몸에 밴 땀을 식히기에 충분하다. “좋네요!” 우리는 모두 흡족해한다. 미리 씻어온 쌀을 넣고 밥을 지었다. 그리고 또 다른 버너로 라면을 끓였다. 좀 어설프지만 푸지만 만찬이 준비되었다. 집에서는 여러가지 반찬을 늘어놓고 먹더라도 결국 손이 가는 것은 한 두가지 반찬뿐이다. 산에서는 집에서 즐겨먹지 않는 햄과 김치만으로도 산꾼의 식욕을 돋우는데 충분하다. 짧은 시간에 저녁식사를 마무리하고 소주 한 병을 비웠다. 철쭉 꽃 만발한 속리산에서 지는 저녁노을을 보며 느낄 수 있는 최고의 만찬을 즐긴다.
“여기서 자리를 펼까?”하고 묻는 사람이나 “그럴까요?”하고 되묻는 사람이나 조금 마뜩지 않은 것 같다. 저녁이 되니 땀이 식은 뒤에 한기가 찾아온다. 바람이 차고 몸이 으슬거린다. 뒷정리를 하는 시간은 무척 짧다. 조리할 때 쓰던 코펠을 대충 닦아서 넣고 남은 밥은 비닐봉투에 담았다. 머물렀던 자리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철쭉꽃 속에서 저녁을 맞이한다.
구슬댕댕이
저녁 7시가 다 되어간다. 해는 서쪽 하늘 아래로 금방이라도 떨어질 태세다.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해 지는 시각인 오후 7시 30 전에 비로봉에 올라야 저녁 노을을 볼 수 있다. 마지막 남은 햇빛이 소백산의 굴곡을 더욱 뚜렷하게 보여준다. 비로봉 아래 철쭉 군락지에는 마치 과수원의 사과나무처럼 큰 철쭉나무에 연분홍 철쭉꽃이 가득 피어있다.
주목 감시초소로 들어가는 입구에 배낭을 벗어두고 바쁜 걸음을 옮긴다. 뒤돌아본 서쪽 하늘에는 옅은 미스트 속에 태양이 녹아서 흩어지는 느낌이다. 주변이 조금씩 어둑해지는데 갑자기 주목감시초소에서 대금 소리가 울려퍼진다. 뜸북뜸북 뜸북새 ~ 오빠생각이다. 누군가 주목감시초소에 우리보다 일찍 자리잡고 여유를 부리는 모양이다. 날이 저물면 잠자리를 찾아들어야 하는 것은 인간의 몸에 아직도 떨칠 수 없는 동물의 습성때문이다. 감시초소에 우리가 비비고 들어갈 자리라도 있을지 모르겠다.
저녁노을
뒤돌아본 풍경 - 연화봉 뒤로 도솔봉이 보인다.
아구장나무 꽃
비로봉 방향
비로봉에 다 이르렀을 때 아직도 남아있는 산꾼 두 명을 만났다. 부부 산꾼이다. 이 시간에 아직도 산에 사람이 남아있는 것을 보고 저으기 놀랐는데 그들도 나를 보고 의아해하는 모양이었다. 비로사쪽에 차를 두고 왔기에 다시 그 쪽으로 내려가야 한다면서도 그들의 발길은 그 반대편인 주목군락쪽으로 향한다. 대금 소리가 어디에서 나는거냐고 묻기에 주목감시초소를 가르켜 주었다.
비로봉에 올라갔을 때는 이미 해가 다 지고 미명만 남아 있었다. 아마도 해가 산 너머로 넘어가기 전에 흐릿한 미세먼지에 다 녹아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아직 남아있는 미명에 비친 소백산 줄기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오늘 지나온 연화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의 굴곡이 뚜렷하다. 제1연화봉의 마루금 뒤로 연화봉이 솟아있고 그 뒤쪽 멀리 도솔봉 마루금이 실루엣으로 비쳐 진다. 연화봉 오른쪽으로 제2연화봉 기상관측소 전망대가 이정표 역할을 해준다.
천국으로 가는 길 - 비로봉 정상까지 수 많은 계단을 올라야 한다.
연화봉 방향 - 멀리 오른족에 제2연화봉 기상관측소가 보인다.
소백산의 푸른 들판은 알프스의 초원을 연상시켜준다.
소백산 정상은 비로봉이다. 비로자나불은 석가모니불을 뜻한다.
이제 해는 지고 서서히 어둠이 내려앉는다.
반대편 북쪽으로는 내일 가야할 국망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이다. 국망봉을 지나 겹쳐있는 마루금은 신선봉과 민봉이고 그 뒤쪽으로 봉긋하게 솟아있는 봉우리는 영춘면에 있는 형제봉 같다. 백두대간은 이들 신선봉이나 형제봉을 빗겨서 지나간다. 국망봉을 지나 여기서는 보이지 않는 상월봉에서 늦은맥이로 내려섰다가 고치령으로 이어지는 길에 신선봉 갈림길과 형제봉 갈림길을 지난다.
낮에는 정상석 앞에서 인증사진을 찍으려고 길게 줄을 늘어섰던 산꾼들이 모두 내려간지 오래다. 천지 사방 나 혼자서 소백산 비로봉 정상에 서 있다. 저 아래에서 들리던 대금 소리도 멈추고 사위는 풀벌레 우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해가 졌지만 아직 길은 보인다. 산에서 내려와 주목 감시초소에 들어가니 어두운 방 안에 사람들이 가득하다. 문 정면에는 비로봉에 올라갈 때 만났던 부부 산꾼이 벌써 잠자리까지 펼쳐놓고 저녁 먹을 준비를 하고 있다. 오른쪽 벽에는 대금을 불던 노인(나중에 인사를 하고 보니 53년생 풍기에 사는 박 씨성을 쓰는 분이다)이 널찍하게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그리고 왼편에는 고인돌 형님이 자리를 깔고 앉아 있다. 모두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넓지 않은 통나무 방 안에 우투커니 앉아서 어색한 침묵을 지키고 있다. 사니조은 님은 아직 비로봉 정상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나는 고인돌 형님 옆에 배낭을 내려 놓고 벽에 기대 앉았다.
“누가 대금을 부신거에요?” 얼마간의 침묵을 깨고 내가 좌중을 둘러보며 말문을 열었다. 물론 몰라서 물어본 것은 아니다.
박 만수 씨 (풍기에서 왔다는 노인의 이름이다)는 오랫동안 풍기에서 나는 인삼을 도소매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평소 퉁소나 대금을 배우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플라스틱으로 만든 피리를 하나 얻게 되었고 별도의 선생도 없이 음을 따라 불다가 대나무로 만든 대금을 선물받았다.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에서 연주도 할 만큼 실력이 늘면서 또 다른 사람에게서 대금 선물을 받았고 이렇게 세월이 흐르면서 취미로 굳어졌다고 한다. 즉석 연주를 부탁하였으나 박 선생은 겸언쩍어하며 사양한다.
부부산꾼은 58년 개띠로 청양에서 왔다고 한다. 서울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정년퇴직하고 노년을 전원에서 보낼 생각으로 청양에 땅을 사서 컨테이너 안에서 지내고 있다고 한다. 서울과 청양을 왕래하면서 지내는데 앞으로 청양에 사 놓은 땅에 집을 짓고 살 작정이라 한다. 오늘은 안주인이 몹시 지쳐 하산을 못하고 이 초소에서 밤을 보내고 내일 아침 일찍 내려갈 참이다.
부부산꾼이 밥을 다 짓고 고기에 상추까지 푸짐한 반찬으로 저녁을 먹으면서 우리에게도 권한다. 우리는 이미 라면과 밥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운 상태라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며 소가 쥐 보듯 무덤덤하게 앉아 있는데 정 대감 (부부 산꾼 남편이 정씨다 )이 배낭에서 술병을 꺼내면서 잔을 권한다. 무덤덤하던 좌중의 눈이 잠시 반짝 빛난다. “코스트코에서 산 싸구려 양주인데 한 잔씩 드셔보시지요.” 산중에서는 보통 소주나 막걸리를 마시는데 양주라는 말에 고인돌 형님도 박 선생도 컵을 꺼낸다. 나도 조금 따라 마셔 본다. 짧지만 뜨거운 여운을 남기며 양주 방울이 목줄을 타고 흘러내린다. 비로봉에서 내려온 사니조은 님도 합세하여 저녁에 마시다 남은 소주도 꺼내 놓는다. 좌중은 바야흐로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는 판이었다.
국공의 단속
밖에서 누군가 문을 잡아당긴다. 끈으로 꽁꽁 묶어 두었기에 잘 열리지 않자 문을 두드린다. 또 누군가 산꾼들이 밤 늦게 산에 올랐다가 찾아오는 줄 알았다. 문을 열자 장정 세 명이 헤드랜턴을 켠 채 들어온다.
“저는 소백산 국립공원 관리공단 북부사무소에 근무하는 박 종철 팀장입니다. 여러분들은 국립공원 관리법을 위반하셨습니다. 모두 신분증을 제시하여 주십시요.” 그들은 길을 잃고 찾아든 산객도 아니고 야영을 하기 위해 일부러 찾아온 비박꾼도 아니었다. 바닥을 둘러보더니 “불도 피우셨네요. 음주에 야생 산나물 채취까지 하셨네요. 야간 산행 금지법을 위반하셨습니다. “박 팀장은 머릿속에 들어오지도 않는 여러가지 법령을 읊어대며 신분증 제시를 독촉한다.
“이거 분위기 다 깨졌네! 그러지 말고 나 하나로 하고 끝냅시다.” 앉아서 조용히 지켜보던 대금 연주자 박 선생이 일어나 신분증을 꺼내 주었다.
“안됩니다. 모두 신분증을 꺼내 주세요.” 박 팀장은 더욱 강경해진다.
“우리가 이러는 거는 여러분이 미워서 그러는 게 아니고 국민의 안전을 생각해서 하는 겁니다. 전국적으로 단속을 강화하고 있어요.” 박 팀장은 묻지도 않은 말을 장황하게 읊어낸다.
“그럽시다. 우리 둘만 적어 내고 끝냅시다.” 이번에는 우리측에서 조금 밀어줘야 할 타임이다. 고인돌 형님이 분위기를 봐가면서 신분증을 꺼내 보여준다. 그리고 그렇게 끝나갈 조짐이 보였다.
“나머지 분들도 신분증을 꺼내주세요. 지도증을 끊겠습니다.” 그러니까 두 명은 정식으로 과태료를 부과하고 나머지 네 명에 대해서는 과태료가 발생하지는 않지만 다음에 적발되면 중과하게 되는 지도증을 발부하겠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모두 하산할 준비를 해주세요.” 박 팀장은 단호하다.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박 선생의 입에서 쏱아지는 불만과 박 팀장의 비아냥 섞인 말투가 어두운 방안에서 교묘하게 섞이면서 이상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아무도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사건이 전개된다.
박 팀장과 함께 온 직원이 돌아가면서 나머지 네 명의 신분을 확인하며 서류를 작성하자 박 선생이 벌떡 일어난다.
“에이 씨팔! 꼭 그렇게 해야 되겠어? 나 풍기에 사는데 모처럼 좋은 사람들 만나 회포라도 풀어보려는데 어째 이러는거여? 나도 예전에 국립공원에서 일한 적이 있지만 그때는 이렇게 안했어. 나 하나만 벌금 때리고 끝내면 좋쟎어.” 그러면서 박 선생은 약간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주섬주섬 배낭을 챙긴다. 바닥에 깔아놓은 침낭과 자리까지 다 거둬 둘둘 말아 배낭에 걸어매고 밖으로 뛰쳐나간다. 여기서 잠을 잘 요량으로 한 잔 두 잔 마신 술이 무거운 배낭을 짊어진 박선생의 다리를 흔들어 댄다.
내가 따라나갔다. 찬 바람이 훅하고 볼을 스친다. 반팔 상의 위에 걸친 얇은 점퍼를 뚫고 한기가 몸을 감싼다. 겨울철 매서운 칼바람의 위용이 아니더라도 소백산은 이렇게 여름밤에도 차가운 기운을 뿜어내는가보다. 하늘에는 윤사월 보름달이 구름 속을 흐른다. 오늘이 보름인지는 몰랐지만 원래 계획은 오늘 밤하늘에 쏟아지는 별들의 잔치를 구경해볼 참이었다. 산에서 밤을 보낼 일이 내 평생에 몇 번이나 있을까? 가끔 무박 산행을 하는 날이면 새벽 밤하늘에 무수히 박혀 있는 별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서둘러 산행을 해야하는 바뿐 일정 때문에 별 구경은 정말 별 볼일 없이 끝나기 일쑤다. 그러니 오늘처럼 산에서 밤을 새우는 날에는 조금 여유있게 별을 보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해지는 법이다.
주목감시초소
단속현장
“정말 이렇게 가실겁니까?” 나도 별 다른 대안이 없으면서 박 선생에게 물어본다.
“그럼 가야지요. 저 개새끼들이 난리치는데 더러워서 있겠어여? 가다가 팍 ~ “박 선생은 풀 밭에 침을 밷으며 꺼내던 말을 삼킨다. 아직 술기운에 몸이 달아 있다.
“이제 들어가 보세요. 나만 가고 나면 괜챦을 거여.” 박 선생은 호주머니에서 명함을 거내 건넨다. “나중에 함 찾아 오이소. 혹시 명절 때 선물할 일 있으면 인삼으로 하면 더 좋구.” 박 선생은 생업으로 풍기 인삼을 거래하는 사람이었다.
박 선생을 보내고 다시 초소로 돌아오니 사니조은 님이 공단 직원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이번에 출동한 인원은 총 여섯 명이었다. 세 명이 안으로 들어왔었고 나머지 세 명은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밖에 있던 이들은 임시로 고용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나이가 들어서도 과거 산행으로 몸이 단련되어 공단 직원들과 함께 국립공원 내에서 발생하는 사고자 구조와 실종자 수색 등에 동원된다.
사니조은 님이 자기도 퇴직 후에 이렇게 국립공원에 채용되어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얘기하자 나이 지긋한 (65 세) 직원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다.
“그냥 조용히 들어가 계세요. 지금 여기서 이런 말 하는건 도움이 안돼요.” 우리는 이 말에 수긍하며 초소 안으로 들어왔다.
청양에서 온 부부 산꾼은 벌써 짐을 거의 다 챙기고 있었다. 남자는 빨리 자리를 털고 일어나 하산하자고 보채고 여자는 몸이 아파서 도저히 일어설 기운도 없다고 버틴다. 여자는 아직 펼쳐져 있는 침낭을 움켜쥐고 몸을 감싸고 남자는 그런 여자를 안쓰러운 눈으로 쳐다보며 어찌할 지 망설인다.
“그냥 주무세요. 지금 이 시간에 어떻게 내려가려고 그러세요?” 마치 집주인이라도 되는 냥 푸짐한 인심을 베풀어본다.
“그 사람들 갔나요?” 여자가 애처롭게 바라본다.
“아직 밖에 있어요. 아마 박 선생이 어찌될까 걱정하는 눈치입니다.” 사니조은 님이 밖의 분위기를 전달해준다.
밖이 잠잠해졌다. 나는 배낭을 벽에 기대놓고 그 위에 머리를 얹어 놓고 반즘 누운 자세로 몸을 쉬게 한다. 오늘 하루 종일 걷느라 힘들었을 몸이다. 그리 추운 것은 아니지만 서늘한 기운이 엄습한다. 갑자기 전화벨이 울린다. 이 시간에 누가 전화를 하는가 하고 받아보니 고인돌 형님이다.
“박 대감, 뭐해?” 전화기 너머로 담뱃불을 붙이고 담배를 피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형님, 어디세요?” 짐작으로 박 선생과 함께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물었다.
“나 여기 박 선생과 함께 있어. 박 선생님 저 아래까지 모셔다드리고 올 테니 먼저 자.” 어안이 벙벙해진다. 이 시간에 약주에 취한 노인을 부축해서 상가리까지 모셔다 드리고 다시 올라오겠다는 것이다.
“예 형님, 저도 같이 갈께요. 기다리세요.” 하고 벗어둔 등산화를 끌고 다시 밖으로 나섰다.
두 노인(고인돌 형님은 박 선생보다 한 살 위다)은 비로봉쪽에서 내려오고 있는 중이었다. 산 아래까지 바래다 드리겠다는 고인돌 형님의 고집에 박 선생은 하산을 포기하고 되돌아오고 있었다. 멀리 풍기 시내의 불빛이 훤히 빛나고 밤하늘에 떠 있는 보름달이 소백산을 비춘다. 냉기를 품은 소백산 바람이 쌩 하고 계곡을 타고 올라 어설픈 산객들 볼떼기를 사정없이 때리고 지나간다.
우리 세 명은 비흡연자이면서 달아오른 분위기를 잡아줄 요량으로 박 선생이 권하는 담배를 한 개비씩 물고 연기를 삼켜본다. 얼마만이던가. 내가 산행을 시작한 것이 2016년이고 그 전에 일 년동안 베드민턴을 쳤으니 담배를 끊은 것은 2014년 9월이다. 담배를 끊은지 벌써 햇수로 6년이나 지났다. 담배를 끊었다가도 다시 피우는 경우가 왕왕 있다는 말에 혹시 나도 그리 될까 조심하는 편이지만 다행히 담배가 맛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두어 모금 빨아보고 반이나 남은 담배를 바닥에 문질러 끄고 초소 안으로 들어갔다.
구름에 가려진 보름달 아래 풍기면
폭풍이 지나간 후 가슴속에 담겨진 고뇌를 아는지 모르는지 주목감시 초소에는 긴 정적이 찾아왔다.
폭풍이 지나가고 난 것처럼 고요함이 밀려온다. 청양에서 온 부부산꾼은 다시 취침모드로 전환했고 사니조은 님은 다시 술 파티를 벌이려다 생각을 거둬들인다. 박 선생과 청양 산꾼은 버너 연료를 압수당했다. 박 선생은 다시 짐을 풀어 잠자리를 꾸미고 우리 어설픈 산꾼들도 각자 침낭 속에 파고든다. 오리털로 만든 침낭이지만 소백산의 차가운 밤공기를 막아낼 수는 없는 모양이다. 점점 더 침낭속으로 파고 드는 한기를 피해 내 몸은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간다. 지퍼를 머리끝까지 끌어올리고 몸을 둥글게 웅크려 본다. 입김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얼굴 전체를 침낭 속에 묻는다. 내가 꿈구었던 비박이 이런 것인가? 밤하늘 가득 빛나는 별빛도 또 지금 한창 소백산 풀밭을 비추고 있을 윤사월 보름달도 모두 꿈 속으로 잠긴다. 내일은 일찍 일어나 소백산의 해돋이를 볼 참이다.
첫댓글 그 때의 일을 저렇게 자세히 기억하는지,,기억력에 놀라고 갑니다 ㅎ
산행기는 그 때 적어 놓은 거에요. ㅎ
묵혀 두었다가 다시 되새김해보는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