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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믿음} 정이철 <노승수 목사 계속 미숙한 신학적인 주장으로 자신을 불리하게 해>
아래 사진은 위 링크 글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다음은 {페북} Hyd Cliffeㅡ{Daum} 카페 {플레비언 교회개혁연대} 카페지기 ‘주의 검을 보내사’, 실명實名: 김문정ㅡ 님 담벼락에서 옮겨 옵니다. 들여쓰기 없이 ‘-’를 써서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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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埰同 (2021.07.10.08:46)
Hyd Cliffe 님이 {기독교 강요}에 적힌 글을 인용하셨으니, 저도 인용합니다. {기독교 강요 제3권} [14장] <13항>에서 옮깁니다.
≪하늘에서는 율법을 완전히 준수하는 의義 외에는 허용하지 않는다.≫
Hyd Cliffe 님은 “그러나 그리스도가 율법으로 칭의를 받아서 부활하고 그 의를 우리에게 전가하지 않으면 보혈만으로는 반쪽 복음이며 헛된 믿음이라는 충격적인 율법의 듣보잡 용도에는 아멘하지 않습니다.” 하셨습니다.
베드로 사도께서 [오순절 성령 강림 강설]에서 그리스도 부활을 증거하시면서 예언의 성취로 인용하셨던 메시아 시편, <시편 16편>에 적힌 “생명의 길”을 두고도 제가 설명해 드렸습니다. 물론, ‘지키면 산다.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언약, 율법의 축복대로 의인義人 그리스도, 그분 부활의 생명을 낳은 그 “생명의 길”을 칼빈 선생님 말씀을 빌려 말하면 “율법을 완전히 준수하는 의義”의 길입니다.
또한 로마서 2장 13절도 적어드렸고, 디모데전서 3장 16절도 적어드렸고, 그리스도 죽음과 부활을 증거한 히브리서 5장 7절도 적어드렸습니다. 다시 적어 드립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롬 2:13)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분은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 (딤전 3:16)
그분께서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분께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리셨고, 그분 경건하심 때문에 들으심을 얻으셨느니라. (히 5:7)
주검보 님은 “경건의 비밀”로 디모데전서 3장 16절 전체ㅡ그리스도 비하와 승귀ㅡ를 나열하셨습니다. 그런데 로마서 2장 13절에 적힌 “의롭다 하심”과 디모데전서 3장 16절에 적힌 “의롭다 하심”은 전혀 관계가 없는 것으로 생각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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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내가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어라.” 하시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비로소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해 죽게 됐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어라.” 하시고, (막 32:34)
예수님께서는 왜 이제야 극한 공포恐怖에 휩싸여 심히 놀라셨을까요? 이단 여호와 증인들은 “비로소 심히 놀라시며”를 내세워 “예수가 하나님이면 십자가 고통이 그 얼마나 큰가를 미리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야 알게 돼, 그것도 극한 공포에 따른 심한 두려움에 휩싸인 것을 보면, 이는 예수가 하나님이 아니라는 뜻이다.” 말하며 예수님 신성神性을 부정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개혁신앙인들은 이 구절에서 우리와 한결같으셨던 예수님, 예수님 인성人性의 유한성有限性을 생각하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두려움을 겟세마네 기도로 극복하신 뒤 “생명의 길”인 십자가의 길로 적극(능동)가심으로써 ‘우리 맏형님’이 되실 예수님께, 또한 ‘우리 주와 그리스도’가 되실 예수님께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려 우리를 향한 그분 사랑을 묵상할 것입니다. 물론, 그 사랑은 인간 언어 한계를 뛰어넘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제게 보이셨으니, 주 앞에서 제게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했음으로 (행 2:2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해 각각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행 2:38)
바울 사도께서 그리스도 십자가를 말씀하실 때는 칼빈 선생님 말씀1)대로 항상 ‘죄 사함’을 주는 그 십자가에는 ‘의롭다 하심’을 얻으심으로써 부활하신, 그리스도 부활이 내포돼 있었습니다. 또한 바울 사도께서 십자가만 말씀하시거나 부활만 말씀하실 때도 “바울이 부활만 말해도 그에게는 늘 십자가가 전제돼 있었고, 십자가만을 말할 때도 그에게는 부활은 당연한 귀결이었습니다.”는 서철원 목사님 말씀2)대로 십자가에는 부활이 내포돼 있었고 부활에는 십자가가 내포돼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대주의 누룩을 제거하지 못하신 채 그 세대주의 신학에 새관점 신학을 짬뽕해 버리신 서철원 목사님께서는 새관점 대표 신학자 제임스 던 이른바 “예수의 전권주장”론을 내세워 “예수는 율법을 예사로 범하셨다.”고 주장하셨습니다.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그들의 관원들이 그분을 알지 못하고 또한 안식일마다 읽는 선지자들 음성도 이해하지 못해 그분을 정죄함으로써 선지자들 예언을 성취하게 했다. 그들은 그분에게 죽일 만한 죄를 하나도 찾지 못했다. 그러함에도 빌라도에게 그분을 죽여 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그분을 두고 기록된 것이 다 이뤄진 뒤에 그분을 나무에서 내려 무덤에 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셨다. (행 13:28~30)
성경에서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이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나오는 강설은 ‘메시아 시편을 인용해 예수님 죽음과 부활을 증거하신 베드로 사도 [오순절 성령 강림 강설]’과 똑같이 바울 사도께서 메시아 시편, <시편 16편>을 인용해 베푸신 강설인 [비시디아 안디옥 강설]입니다.3) 그런데 이단들처럼 확증편향에 사로잡혀 난독증에 빠진 Wolf이철 눈에 제가 아래에 옮기는 사도행전 13장 39절이 보인다면, “이것 봐라. 이 구절에서도 모세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한다고 하지 않느냐? 그리고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하지 않느냐? 그런데도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키시어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동물원 원숭이도 3 년만 가르쳐도 알고, 주일학생들도 세 시간만 가르쳐도 아는데, 왜? 성령 받았으니까! 서당개 3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했건만, 이 제정신이 아닌 미친 개 쓰레기 교수들아! 신학생들을 위해 교탁에서 내려와라!!!” 하는, 돈키호테 칼로 자기가 자신을 찌르는 듣보잡 주장을 할 것입니다.
①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人)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행 13:38)
② 또 모세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人)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행 13:39)
Wolf이철은 주야장천 “성경에 율법을 지키면 의를 준다는 구절이 단 한 구절도 없다.”고 주장하며 ‘그리스도께서 흠 하나 없이 온전한 율법준수로 얻으신 의義’를 부정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번호를 붙인 ①에 ②가 내포돼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즉, ①에 적힌 “죄 사함”에 ②에 적힌 “의롭다 하심”이 내포돼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①에 적힌 “죄 사함”에서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역시 죄罪와 함께 죽고(롬 6:10 상) ②에 적힌 “의롭다 하심”에서는 율법준수 순종으로 의義를 얻어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역시 의義와 함께 다시 살아났음(롬 6:10 하)을 알아야 합니다.
마지막 아담(人)으로 성육하신 어린양, 성 삼위 성자 하나님께서 육체에 계실 때, 육신으로 나타나셨을 때 그 마지막은 우리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달리신 일이었습니다. 그러면 이때 하나님께서는 어린양 그리스도에게 “의롭다.” 하셨습니까? 아니면, “너는 세상 죄를 짊어진 죄인이다.” 하셨습니까? 물론, “죄인이다.” 하셨습니다. 이 점에서는 그리스도 고난은 그분의 의義가 아닙니다.
심히 놀라신 뒤 극한 두려움 속에서 홀로 피땀 흘려 기도하신 마지막 아담(人), 그분 겟세마네 기도에서 보는 대로 마지막 아담(人)께 십자가 대속은 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으신 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얼굴을 돌리셔서 “세상 죄를 짊어진 너는 죄인이다. 죗값은 사망이다.” 하시는 형벌, 인간 언어 한계를 뛰어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형벌을 받아야만 하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치욕과 저주와 공포의 십자가 사형틀에 달린 마지막 아담(人)에게 “너는 의인義人이다.” 하시는 선고가 아닌 “너는 죄인罪人이다.” 선고하시며 얼굴을 돌리십니다. 이 점에서 튤립과 풍차의 나라 화란(네덜란드) 빌헬무스 아 브라켈 목사님께서는 ‘{그리스도인의 합당한 예배 제1권} 김효남, 서명수, 장호준 역 (서울: 지평서원, 2019)’ 1062쪽에서 “고난의 정의를 생각할 때 그리스도 (십자가) 고난은 의義가 아니다.” 하십니다.
그분께서 육체에 계실 때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분께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리셨고, 그분 경건하심 때문에 들으심을 얻으셨느니라. (히 5:7)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해 죽으셨도다. (롬 5:6)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분께서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딤전 3:16 상)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속하는 흠 하나 없는 어린양 마지막 아담(人)을 향해 “너는 율법의 저주를 받아야 마땅한 죄인罪人이다.” 하시며 “죗값은 사망”이라는 형벌을 내리십니다. 마지막 아담(人) 울부짖음 “제 하나님, 제 하나님, 어찌해 저를 버리시나이까?”(마 27:46)가 뜻하는 대로, ‘사망의 권세에 굴복할 수 있는 유한有限한 몸’을 입은 마지막 아담(人)을 사망의 권세 아래로 버리십니다.
그런데 그리스도 구속 사역이 부활 없이 십자가로만 끝나면, 고린도전서 15장 16절~17절 바울 사도 말씀대로 그리스도 죽음은 헛된 죽음일 뿐입니다. 서철원 목사님 밀씀을 빌려 말하면, “부활 없는 십자가는 한 인간의 비극일 뿐”입니다. 이 지점에서 “지켜라. 지키면 산다. 의義를 얻어 영생을 얻는다.”는 율법의 축복을 약속하셨던 하나님께는,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아담(人)에게 “의롭다.” 해 영생(영화로운 부활의 생명)을 줘야 할 근거가 필요하십니다. 물론, 그 근거는 마지막 아담(人)이 율법준수(능동) 순종으로 이루신 의義입니다.
육신으로 나타나셔서 십자가에서 율법의 저주대로 사망의 권세 아래 굴복하셨지만,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그 의롭다 하심 결과로써 부활하신 마지막 아담(사람)!!! ‘지키면 산다. 의義를 얻어 영생을 얻는다.’는 율법의 축복대로 사망 권세를 이긴 영화로운 몸으로 부활하신 마지막 아담!!! 그리고 이 “경건의 비밀”을 알고자 하는 천사들(벧전 1:12)에게 나타나셨던 부활하신 마지막 아담!!! 그런데 율법이 약속한 생명, 영화로운 몸을 입으시고 ‘우리 맏형님’이 되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 주님과 그리스도’가 되신 마지막 아담,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칭의는 우리가 받는 칭의와 얽혀 있습니다.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경건하지 않은)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해 살아나셨느니라. (롬 4:25)
주님께서는 ‘①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② 이웃(형제)을 향한 사랑’을 온 율법과 선지자의 대강령(마 22:37~40)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강령이란 ‘613 개조라는 모세 모든 율법이 이 두 항목에 매달려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흠 하나 없는 어린양 1 년 생애에서 능동(율법준수) 순종의 극치가 드러나는 지점이 어디입니까?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얼굴을 돌리는 형벌을 내리심을 아심에도, 그래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극한 공포에 휩싸여 십자가의 길을 그토록 피하고 싶으셨음에도, 겟세마네 기도 뒤 십자가의 길로 적극(능동) 가셨습니다. 왜 적극 가셨겠습니까?
육체로 나타나신 뒤 그동안 “생명의 길”을 걸어오셨던 예수님께서는 사망 권세에 굴복하는 치욕의 길이기는 하지만 ‘② 우리 죄를 짊어짐’으로써 ‘① 하나님 뜻’에 순종하는 십자가의 길 역시 “생명의 길”임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에서 죽기까지(빌 2:8) 율법의 대강령 ‘①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② 이웃(형제)을 향한 사랑’을 흠 하나 없이 다 이루심으로써 “다 이뤘다!”(요 19:30) 하신 뒤 숨을 거두셨습니다.
우리 칭의와 얽힌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칭의를 부정하면 이는 곧 그리스도 부활을 부정하는 것임에도, 성경 지식과 신학 지식이 짧은 나머지 ㅡ그리스도 십자가와 부활을 분리해 십자가를 건너뛴 김성로 목사와 싸울 때도 ‘신학이 짧은 나머지 자기가 파 놓은 무덤에 빠진 정이철 목사’를 이창모 목사가 ≪김균진 교수도 “부활은 심판을 받은 예수를 하나님이 의롭다 인정하는 사건이며, 예수를 높이시는 영광의 사건이다.”고 말했다.≫며 무덤에서 건져내 줬음4)에도, 둘 다 까마귀 고기를 먹었는지ㅡ “그리스도가 칭의 받으셨다는 것은 곧 구원 받으셨다는 뜻이다. 대체 그리스도가 왜 칭의를 얻으셔야 한다는 것인가?”라는 듣보잡 주장을 하며 ‘그리스도께서 능동(경건, 율법준수) 순종으로 얻으신(획득하신) 칭의’를 부정한 Wolf이철…. 그리고 그 Wolf를 추종하는 Wolf창모 같은 서철원 교조주의 목사들…. 그들 믿음은 이단성 있는 믿음, 헛된 믿음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예장 합신 김병훈 교수님과 노승수 목사님을 지난해 가을 예장 합동 총회에 이단 제소한 예장 합동 경성노회는 ‘예장 합동 목포 시온교회 시절, 제가 목포 고등학교 2학년이던 1979년 부활절 때 세례를 받은, 제 모母 교단 예장 합동’을 욕 먹이는 꼴뚜기 짓을 한 것입니다. 우리나라 교회사나 세계 교회사에 길이길이 웃음거리로 남을 웃픈 코미디를 벌인 것입니다. ㅠㅠㅠ
①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人)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②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人)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행 13:38~39)
③ 우리가 원수 됐을 때에 그분 아들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됐은즉, ④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분 살아나심으로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롬 5:10)
그리스도 능동 순종에 감사하신 우리 개혁신앙의 선조 그레샴 메이천 목사님을 두고 “죽을 때가 되니 노망들었나 보다.”는 망발을 서슴지 않았던 Wolf이철…. 위 로마서 5장 10절은 Wolf이철 {성경}에는 없는 구절입니다. 그러나 자유주의 신학에 대항해 정통 기독교 신앙을 수호하는 일에 쓰임을 받으신 고故 그레샴 메이천 목사님, 그리스도 능동 순종에 소망을 두며 감사하신 그레샴 메이천 목사님을 우리 개혁신앙 선조로 모시고 있는 우리, 우리 {성경}에는 있는 로마서 5장 10절…. ③에 적힌 “화목”에서 우리는 ①에 적힌 “죄 사함”을 읽어야 합니다. 또한 ④에 적힌 “구원”에서 ②에 적힌 “의롭다 하심”을 읽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시려고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 아들이 많은 형제 가운데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 8:29)
백부장이 그 일어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 사람(人)은 정말 의인義人이셨다.” 말했다. (눅 23:47)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가운데 박해하지 않은 선지자가 있느냐? ‘의인義人이 오시리라.’ 예언한 선지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義人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됐나니, (행 7:52)
또 다른 곳에 이런 말씀도 있으니, “주님께서는 주님의 거룩한 자(의인義人)를 썩지 않게 하실 것이다.” 말했다. (행 13:34)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했으나 친히 말하기를 주께서 제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했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께서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행 2:34~36)
곧 하나님께서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다. (행 13:33)
거룩하게 하시는 분과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모두 한 분에게서 나왔다. 그러므로 그분께서는 그들을 형제로 부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셨다. (히 2:11)
이에 예수께서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마 28:10)
★ 양치기Dog 四季 朴埰同: 주의 검을 보내사 범 내려온다. Solus Christus! Sola Gratia! Sola Fide!
★ 라마드 목사님: 성경 본문이 네 왕이 되게 하라! Sola Scriptura!
★ 20세기 개혁신학의 보물로서 ‘확정성화’ 진리를 밝히신 존 머레이 목사님: 진리의 자기주장은 장엄하다!!! Soli Deo Gl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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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ttps://cafe.daum.net/reformedcafe/jMaU/114
2) https://cafe.daum.net/reformedcafe/jMaU/152
3) 이는 박영선 목사님께서 “김홍전 박사. 이름은 그렇게 안 알려지셨지만, 기독교 역사에서 10 대 학자를 뽑으라면 이분이 낄 것입니다. 그 정도로 대단한 분이십니다. 바울 이후로 어거스틴, 칼빈, 이렇게 꼽아 나가다 보면 김홍전 박사가 끼실 것입니다. 이렇게 단언하는 것은 우습지만, 이를테면 우리나라에서 내노라 하는 신학자들을 다 제치고 이분이 끼실 정도로 신학 세계가 방대하고 웅장한 분이십니다.”는 말씀으로 높이신 고故 김홍전 목사님, ‘김홍전 {사도행전 강해 제5권: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서울: 성약출판사, 2008)’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 ①, ②, ③]에서 배웠습니다.
4) {바른 믿음} 이창모 <부활은 성부께서 성자를 영광의 자리에 임명하심>
{바른 믿음} 이창모 <이인규 김한길의 이단몰이는 자기 무덤 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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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능동 순종 극치를 서술한 이 글은 “정이철 학동”을 자처한 김문정 님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한 글로서, {Daum} 카페 {개혁주의 마을}에 쓴 글입니다.
주의검을보내사 21.07.17 02:07
사계 님은 우리 주님께서 행한 가장 큰 계명의 실천이 뭐라 생각하세요?
병자들을 고치신 일?
오병이어를 베풀어 굶주린 자들을 먹이신 일?
어머니를 요한에게 맡기신 일?
하늘 영광 버리고 사람되어 오신 일?
세례 요한에게 의를 이루자 하시고 세례 받으신 일?
자기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신 일?
부모를 공경하시고 공생애 전까지 장자로서 목수 일 열심히 하면서 옛언약 하에서 충실히 사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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