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어지럽다. 마치 파도가 일렁이는 조각배 위에 있는 것 같다. 삶이 원래 그러하다는 말이 가슴을 친다. 사람들이 배를 타고 가다 심한 풍랑을 만났다. 거센 바람으로 돛대까지 부러졌다.
놀란 사람들이 갑판 위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아우성쳤다. 사람들이 뛰어다닐수록 배는 더욱 심하게 기우뚱거렸다. 한 수도승만은 예외였다. 그는 배의 중앙에 가부좌를 틀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 바깥의 소란은 자신과 무관한 듯 눈을 감고 명상만 할 뿐이었다. 이윽고 풍랑이 잦아들었다. 겨우 정신을 수습한 사람들 이 수도승에게 따졌다. “배가 뒤집어질지 모르는 판국에 어떻게 가만히 있단 말이오? 뭐라도 했어야 하지 않소.”
수도승이 대답했다. “당연히 자기 일을 해야지요. 나는 여러분이 뛰어다니는 동안 단단히 배의 중심을 잡고 있었소.” 풍랑이 거셀 때 배 위를 뛰어다닌다고 풍랑이 멎을 리는 없다. 어쩌면 그것은 배의 상황을 더 위험스럽게 만들지 모른다.
수도승처럼 배의 중앙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배의 복원력 회복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나라가 벌집 쑤셔놓은 듯 요란할 때는 수도승처럼 행동하는 것도 훌륭한 애국이다.
결코 수수방관하자는 것이 아니라 부동(不動)의 동(動)을 하자는 얘기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자기 소임을 성실히 수행하면 된다. 식당 종업원은 열심히 음식을 만들고, 공장 직원은 좋은 제품을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
학교 교사는 교육에, 신부는 기도에 충실하면 된다. 그것이 나라의 복원력을 높이는 일이 될 것이다. 세상이 상식대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꼭 소리칠 필요가 없다. 나부터 상식을 지키고 행동하면 된다. 거짓말하지 않고 약속을 잘 지키는 행위는 훌륭한 상식이다.
타인에게 배려하고 겸손하게 행동하는 것도 좋은 상식이다.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고 경청하는 태도 역시 중요하다. 이것이 나라를 바르게 세우는 상식의 기초이다. 조선의 선비 이양연은 이런 시를 남겼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어지러이 함부로 걷지 마라. 오늘 내가 걸어가는 이 발자취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터이니.” 길이 없다고 말하지 말자. 눈길이 어지럽다고 말하지도 말자. 지금 내가 걷는 발자취가 누구에겐가 그 길이 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