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 대원사 벚꽃 길에서 / 곽주현

보성 대원사 벚꽃 길에서 / 곽주현 아침 하늘이 뿌옇다. ‘카톡, 카톡’ 스마트폰이 몇 번 울린다. 날씨가 괜찮을 것 같다며 모이자 한다. 몇 년 전만 해도 친구들과 만나려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전화를 해야 해서 번거로웠는데 스마트폰의 에스엔에스(SNS)는 참 편리하다. 어제 밤비가 와서 친구들과 산행을 할까 말까 연락하다 오늘 일기예보를 다시 보기로 했다. 그런데 비가 온 티를 내는 지 쌀랑하다. 오늘 산행은 보성 대원사 벚꽃 길을 걷자는 문자가 뜬다. 모여서 승용차 한 대로 가자며 화순에 사는 친구의 농막으로 오라고 한다. 날씨가 찌뿌둥하므로 가까운 길을 걷자는 친구도 있었으나 계획대로 진행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농장에서 차 한 잔 마시고 10시에 출발했다. 대원사 가는 길 주변에 봄꽃들이 활짝 피고 있어 모두가 꽃길이다. 꽃들은 순차적으로 동백, 진달래, 개나리, 벚꽃, 목련, 철쭉꽃 순으로 피는데 언제부터인가 시간차가 없이 한꺼번에 꽃망울을 터뜨린다. 지구 온난화를 실감하기 어려운데 봄꽃들이 같은 시기에 피는 것을 보면 변화를 뚜렷이 느낀다. 입구에 왔는데 차에서 내리지 말고 계속가라고 안내를 한다. 예년에는 입구 주차장에 차를 두고 걸어서 가게 했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차안에서 벚꽃을 보고 가라는 플래카드가 눈에 띈다. 말하자면 드라이브스루(Drive-through)하라는 거다. 이곳 벚꽃은 시내 쪽보다는 사나흘 늦게 피는데 올해는 같은 시기에 개화하고 있다. 좁다란 길 양 옆으로 피어난 벚꽃이 터널을 만들어 5킬로미터쯤 계속된다. 이 꽃길은 많은 사람들이 떠밀려 가는 길인데 걷는 사람이 없으니 왠지 꽃을 보는 감흥이 뚝 떨어지는 느낌이다. 이렇게 활짝 핀 벚꽃 길은 여러 사람이 걸으면서 꽃에 취한 듯 ‘아, 와 와’하고 감탄사를 주고받는 맛이 있어야 좋은데 말이다. 흐드러지게 피어난 벚꽃에 흥을 주체할 수 없는 누군가는 승용차를 멈추고 사진 찍기에 바쁘다. 차들이 밀려 있어도 두꺼운 얼굴로 스마트폰을 열어 찰칵 찰칵을 계속한다. 요즘 스마트폰은 카메라 성능이 좋아서 원근감을 잘 살릴 수 있고 파노라마 사진 촬영 등 다양한 기능이 있어 편리하다. 그 성능을 다 나열할 수 없음만큼 만능이다. 배우자 없이는 살아도 스마트폰 없이는 못산다는 우스갯말이 있을 만큼 귀한 물건이 되었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가는 스마트폰이어서 그 활용법을 몰라 나처럼 연식이 좀 된 사람들은 기본적인 기능을 익히는 것도 어렵다. 대원사 경내에 들어섰다. 이 절은 백제 무열왕 503년에 창건되었다고 하나 확실한 증거는 없다한다. 입구에 티베트박물관과 커다란 부처상이 굽어보고 있어 괜히 어깨가 움츠려진다. 그 아래 작은 연못에 박물관 건물과 부처상이 거울처럼 비추고 있어 네가 하는 짓을 다보고 있으니 여기서 만이라고 몸가짐을 조심하라는 듯 봄바람에 잔물결이 경고하듯 일어난다. 절 안쪽으로 좀 더 걸어 들어가면 깨진 종을 얼기설기 땜질을 큼직한 범종을 볼 수 있다. 대원사가 가난했던 시절, 1970년대에 고물상에서 운영 자금을 빌렸는데 돈을 갚지 않아 고물상 주인이 종을 조각 내서 가져간 것이라 한다. 훗날 절 형편이 나아지자 수소문하여 되찾아 대충 땜질을 해서 놓아두고 있다. 가난하면 불도를 닦는 곳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발자국도 낮게 걸어야할 사찰 안인데 스마트폰으로 전화를 해대며 조심스러움을 깨는 사람들이 더러 있어 민망하다. 내 스마트폰에서도 진동이 오지만 열어보지 않기로 한다. 몇 발자국 더 가면 담 밑에 털실로 짠 빨간모자를 키 작은 100개의 석불이 오순도순 이야기 나누듯 앉아있다. 맞은편에는 큰 나무 한그루가 있고 사람 키보다 더 큰 염주가 걸려있는데 염주알 크기가 어른 주먹만 하다. 그네처럼 매달린 염주줄 안에 성인 손바닥만 한 빨간모자를 쓴 불상이 갇혀 있는 것처럼 서있다. 모든 번뇌를 염주 안에서 씻으며 살라는 가르침 같기도 하고 세상의 모든 것은 부처님 안에 있다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시골 마을 작은 정자처럼 생긴 연지문(蓮池門)으로 들어간다. 문 가운데에 한 아름 크기의 큰 목탁이 덩그렇게 매달려 있었다. 뭐 이런 것도 있냐며 친구들과 싱겁게 웃고는 기둥에 붙은 팻말을 읽는다. 여기에 들어오는 사람은 머리를 3번 부딪치고 통과해야 된다고 한다. 첫 번째 부딪침은 나쁜 기억을 사라지고 하고 두 번째는 나의 지혜를 밝히는 것이고 마지막은 나의 원수를 잘 되게 하라는 머리 부딪침이란다. 장난처럼 머리를 맞대고 통과하니 이런 글귀도 보인다. 사랑으로 은혜를 많이 베풀어라. 세상이 좁아서/언제든 만나지 않으랴.마음으로 원한을 절대 만들지 말라. 세상이 좁아서/어디서 피할 수 있으랴. 경내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체험하고 되새겨보게 하는 조형물들이 이곳저곳에 있어 흥미롭다. 극락전을 지나 뒤쪽으로 오면 사람 가슴 높이 만큼 크고 밥상처럼 넓적한 화강암바위가 있다. 바위 위쪽이 세숫대야 깊이와 넓이로 둥글게 파져있고 어른 발자국 두 개도 음각으로 조각되어있다. 물이 반쯤 채워진 돌그릇위로 홍매화꽃잎이 날아와 커다란 꽃잎 수반을 만들어 주는 풍경이 이채롭다. 원형의 돌그릇과 발자국은 삶과 죽음은 돌고 돈다는 불교의 윤회사상을 이렇게 표현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능선을 오르듯 한 참을 걷다보면 경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수관정(睡觀亭)이라는 문패가 붙은 작은 집에 닿는다. 수관정이라,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잠을 바라 볼 수 있는 곳이라는데 안을 들여다보니 웬 관(棺)이 하나 놓여있다. 사람이 죽어야만 들어가는 나무 상자다. 좀 으스스하다. 옛날 어릴 적에 고향에서 보았던 상여 집에 있었던 것과 꼭 같다. “이곳은 미리 자신의 죽음을 체험해보는 곳입니다." 라는 글귀가 방 벽에 무슨 표어처럼 붙었다. 기둥에는 죽음체험은 이런 단계를 밟는다고 1번부터 15번까지 설명되어있다. 그 중 12번 순서가 이해하기 어렵다. ‘이제 바람 기운이 날아가고 마지막 숨이 급하게 마셔지면서 모든 것이 끊어짐을 희미하게 느끼며……바르도의 공간입니다.’ 바르도의 공간? 티베트 언어인데 틈새, 중간 상태를 뜻한다고 한다. 즉 삶과 죽음사이에 생겨나는 중음의 상태, 저승과 이승의 중간계를 뜻한다.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곧바로 저승으로 가지 않고 죽음의 순간과 다시 환생할 때까지의 시간차를 바르도라고 말한다는데 맞게 설명한 건지 자신이 없다. 다른 친구들은 딴 곳으로 가고 같이 있었던 친구가 한 번 죽어보라며 장난스럽게 권한다. 관 속으로 들어가 누우니 그 친구가 뚜껑을 덮어 버린다. 완전히 어둠의 공간이 되었다. 눈을 감았다 떴다를 몇 번 반복했다. 똑같이 새까만 어둠만 가득했다. 죽으면 이렇게 되나? 잠시 바르도의 시간으로 들어가 본다. 하필 그 때 스마트폰이 바르르 떨며 신호음이 울린다. 친구가 놀래서 급히 뚜껑을 열어준다. 관이 진동을 해서 무슨 일인가 싶어 섬뜩했단다. 함께 웃었지만 유쾌하지는 못했다. 장난하듯 연습을 해서 그런지 ‘죽음이 가볍네’ 라고 느끼면서 내려오는데 무언가 허전하다. 스마트폰이 없다. 수관정으로 급히 뛰어 가보니 스마트폰이 주머니에서 나와 관 속에서 여태껏 바르도의 시간 중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