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이 아름다운 테마 여행
2024년 11월 14일 테마(Theme) 여행을 떠났다. 단풍이 아름다운 설악산과 그 주변의 유적지를 둘러볼 계획이다. 풍요의 물결이 출렁이던 텃밭엔 가을걷이로 스잔한 바람마저 불어오는 겨울의 길목에서 모처럼 얻은 일상의 한가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기회다 보니 상추객(爽秋客)의 마음에는 기대와 설렘이 가득하다. 문만 열면 언제든지 볼 수 있는 내 집 앞 저 산을 불들인 단풍이지만 울긋불긋 단풍의 절경을 연출하는 국내의 유명 산 설악은 쉬 찾을 수 없었던 탓일까 특히 단풍에 거는 마음이 풍선처럼 부푼다. 출발 시간이 가까이 오자 삼삼오오 짝을 이룬 여행객들이 단출한 복장으로 아침 인사를 나눈다. 담임목사의 기도가 끝나자 버스는 엔진에 불을 댕기고 힘찬 행군을 알린다.
어느새 도착한 설악산(雪嶽山), 속초시, 양양, 인제, 고성군에 걸쳐 있는 해발 1,708m의 고산(高山)이며 한라산, 지리산 다음으로 높은 대한민국 명산이다. 추석 무렵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하여 여름이 되어야 녹기 때문에 부쳐진 이름 설(雪), 크고 험하다 하여 악(嶽)을 붙여 만든 산(山)이라 해서 설악산이다. 1945년 해방과 분단으로 북한 땅이었으나 한국전쟁이 휴전된 1953년에 우리나라 영토로 복속되어 참 다행이다. 연로한 객들은 험산에 오르기가 불가능한 터, 다행히 케이블카의 도움으로 해발 700m의 권금성(權金城)까지의 등반은 누워 떡먹기였다. 고려 말기에 권 씨(權氏), 김 씨(金氏)가 외환을 피하려고 세운 산성이라는 설이 있지만 확실하지 않다. 다만 난중지안(難中之安)을 위하여 세운 성이 분명하여 설악산성이라고 부르는 천혜의 자연산성이다. 여기에서 서쪽으로 저 멀리 설악의 주요 능선이 한눈에 잡힌다. 일명 공룡능선 코스다. 설악동에서 시작하여 3㎞의 비선대(飛仙臺), 3.5㎞ 이후의 마등령(馬等嶺)까지의 공룡능선을 지나서 5.1㎞의 희운각(喜雲閣) 대피소를 거쳐 대청봉(大靑峯)에 이르는 코스다. 기암괴석(奇巖怪石)과 단풍이 어우러진 절경에 감탄하며 저마다 인증 숏에 분주하다. 자연을 배경 삼아 모델이 되어 또 하나의 추억 앨범을 장식한다.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다고 배꼽시계가 알려 준다. 하산 길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오후 목적지는 동해 연안에 형성된 석호 가운데 하나인 고성의 화진포(花津浦)다. 석호(潟湖)는 바닷가에서 사취(砂嘴, 바다 가운데로 길게 벋어 나간 모래톱), 사주(沙洲, 해안이나 해안 근처의 수면 상에 나타난 모래와 자갈로 이루어진 석호를 가진 퇴적 지형), 연안주(沿岸洲, 해안선을 따라 해안의 토사, 침전물, 파괴물 따위가 퇴적하여 바다 위로 드러난 땅) 등에 의해 와해되어 바다 일부가 바깥 바다(外海)와 분리되면서 생긴 호수다. 넓고 푸른 동해안에 자연 호수가 있고 명산 설악이 뒷배경이 되어 있는 천혜 자연의 화진포 경관은 명소의 품위에 손색이 없다.
또한 여기는 우리 근대 역사의 유적지가 있어서 찾는 이들의 발길에 잔잔한 여운을 남기는 곳이다. 경내에는 김일성(金日省), 이승만(李承晩), 이기붕(李起鵬)이란 우리 근대역사의 걸출한 인물들과 관련된 별장이 모여 있다. 김일성 별장은 1937년 일제가 중일전쟁을 일으키면서 원산에 있던 외국인 휴양촌을 화진포에 강제 이주시킬 때 당시 셔우드 홀 선교사 부부가 독일 망명 건축가 베버에게 의뢰하여 1938년에 세운 휴양시설이다. 한국전쟁 때 훼손되었다가 2005년에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1948년~1950년까지 북한의 김일성 일가가 이곳을 휴양지로 이용하면서 지금은 ‘김일성 별장’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김일성의 자녀 김정일과 김경희가 어릴 때 이곳에서 지낸 흔적도 보존되어 있다. 이후 도보로 5분 거리에 아주 작은 이기붕 별장이 있다. 그의 아내 박마리아 권사가 주로 사용했다고 해서 박마리아 별장이라고도 한다.
다시 걸어서 10분 거리 떨어진 언덕에 이승만 별장을 찾았다. 이곳은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 우남(雩南) 이승만 박사를 기념하는 공간이다. 우남은 1911년에 처음으로 이곳을 방문했고 1953년 휴전협정이 체결된 이후 42년 만에 다시 이곳을 방문했다. 이때 우남은 군사적 요지인 이곳을 휴양지로 정하고 자연을 벗 삼으며 남북통일을 구상했다. 1954년에 건축하고 우남이 4.19 혁명으로 하야한 1960년까지 사용했다. 그 후 방치되었다가 1999년 7월 육군에서 복원하여 이 대통령의 역사적 자료와 유품을 전시하다가 별장 위에 있는 육군관사를 고성군과 육군복지단에서 2007년 2월에 보수, 7월에 ‘이승만 대통령 화진포 기념관’으로 개관하였다. 자유와 민주라는 양대 골격으로 대한민국을 설계한 우남의 역사를 이렇게라도 보관한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자유와 민주를 훼손하려는 무리들이 나라를 어지럽게 하는 작금에 깊어가는 가을만치 애국심도 마음에 깊어가는 시간이었다.
어둠이 소리 없이 내려앉는 귀가 길, 하루의 순간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유독 설악의 단풍이 지워지지 않는 영상으로 떠올랐다. 사람은 두 종류의 식물, 봄꽃(春花)과 가을단풍(秋楓)과 같이 분류하기도 한다. 춘화는 화려하고 예쁘지만 곧 지고 나면 몰골이 탈색되어 흉측할 정도로 변한다. 낙화되면 사람의 발에 밟힌다. 단풍은 울긋불긋 온산을 뒤덮고 예쁘게 장식한다. 그것도 추풍에 못 이겨 이내 낙엽이 되지만 바람에 나뒹구는 잎새를 사람은 손으로 다시 줍는다. 사람도 누구나 세월의 물살에 쓸리면 낙화나 낙엽처럼 떨어지고 볼품이 없어지겠지만 봄꽃처럼 버리거나 혹 단풍처럼 고이고이 간직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말이다. 그 위에 사랑의 속삭임 한 마디 적어 누군가에 날리고 싶은 내 책 속 책갈피가 된 단풍잎 같은 사람으로 살면 좋겠다. 설악산 단풍은 내 남은 길을 안내하고 있다. “심긴 후에 자라나서 모든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나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마가복음 4:32).
강원관광버스
권금성 케이블카
단풍으로 물들인 설악산
권금성에서 바로본 속초시
설악산의 명물 울산바위
저 멀리 공룡능선이 보인다.
권금성 정복 기념 단체 사진
화진포에 있는 셔우드 홀 선교사 휴양별장인데 후에 김일성이 쉬었다고 해서 지금은 김일성 별장이라고 부른다.
금강송이 우람하게 운치있다.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이승만 대통령의 흉상
이승만 별장 안에 대통령과 영부인이 다정하게 앉아 있는 모습
천혜의 절경 화진포 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