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년생 김노인.
그저께오후에 아내와 함께 서울대 입구역에 있는 롯데 시네마에서 ' 82년생 김지영 ' 이란 영화를 보았다. 82년생이란 보통나이로 치면 지금 38살이다. 어린 애기가 하나 있고 건실한 직장인 남편이 있는 젊은 여인이 일상에서 부딪치는 문제를 수수하게 그린 힘든 생활이 있고 때로는 감동이 있는 그런 영화인데 참 볼만한 영화다싶어 아들과 딸에게 부부 함께 꼭 한번 가서 보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아내는 몇달전에 친구에게서 책을 빌려 읽었다고 하면서 책을 읽고 영화를 보니 감동이 덜하다고 한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한 늙은이 ' 47년생 김노인 '은 과연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 47년생 김노인의 면면을 볼 수 있는 몇가지를 적어본다.
1, 며칠전 아내의 김장 하는 것을 도왔다. 아내는 처음에 지인의 이야기를 듣고 지방에 있는 젖갈 공장에 멸치젖갈을 발주하여 왔는데 통을 열자 그 냄새가 온 집안을 진동하여 야단이 났었다. 심지어 나는 그 젖갈 어디 갖다 버리라는 이야기까지 했다. 그 젖갈을 찌꺼기는 버리고 국물만 짜서 병에다 넣어 겨우 냄새를 진정시켰는데 발주하여 도착한 절인 배추를 이 젖갈로 김장을 담았는데 우선 겉절이를 먹어보니 맛이 기차다. 이번 김장은 그 젖갈때문에 대 성공인것 같다.사실 겨울에는 김치 하나 맛 있게 돼 있으면 그게 최고 아닌가 ? 다른 식품들은 모두 보조식품이라고 하면 심한 말이겠지만. 더욱이 김장 한 날은 시장에서 사 온 알타리무우에서 떼어 낸 씨레기를 된장찌개로 하고 또한 생선 뱅어를 사 와서 뱅어조림을 해 놓으니 이 또한 신선도가 좋아 밥을 두 그릇이나 먹었다. 밥이 잘 먹히니 요즘은 체중이 매월 1kg씩 불어나는것 같다. 식사때가 기다려지는 요즘이다.
2, 아내가 시내에 있는 친한 친구집에 김장 도와주러 간다고 문제의 그 멸치젖갈을 두 병 가지고 갔는데 하룻밤을 거기서 자고 다음날 점심까지 먹고 온다고 했다. 집이 내 차지다. 아침에는 토스트에 사과 감 깎고 에그 치즈 꿀 발라서 맛있게 먹고 점심에는 어제 먹다 남긴 뱅어조림과 씨레기된장 김장김치에 막걸리 한 잔을 곁들이니 이 얼마나 진수성찬인가 ! 점심 먹고는 요즘 제 씨즌인 남녀 배구시합 좀 보다가 남성역에 있는 헬스클럽에 가서 런닝머신과 다른 운동 약 한시간 하고 가뿐한 기분으로 돌아온다.
3, 약 20일전에 2년마다 하는 건강검진을 사당동에 있는 대항병원에 가서 했는데 미리 대변을 준비해 가서 제출하고 위장내시경만 비수면으로 했다. 별 이상이 없다고 하며 며칠 있으니 변검사에도 이상이 없다고 연락이 왔는데 돌아가신 아버님이 대장암 수술을 받았으므로 가족력관계로 걱정이 되서 이상한 물 마시고 하루저녁 고역을 치르는 게 싫어서 대장내시경 대신 서초구 보건소에 가서 21,000원 주고 암표지자검사를 해서 괜찮으면 좀 안심이 될것 같아 피를 뽑아 간암 대장암 췌장암 전립선암 검사를 하니 약 2주후에 연락이 왔는데 다 이상이 없다고 한다. 대장내시경을 하지 않아 염려가 좀 되기는 하지만 일단 암표지자 검사라도 받았으니 그냥 넘어가 보자는 생각이다.그런데 요즘 혈압이 85-150사이를 왔다갔다 해서 매일 집에서 재어보고 있는데 병원에 가 보아야 하나 어쩌나 궁리중이다.
4, 요즘 가끔 오전중 머리가 띵하여 판콜을 먹곤 하는데 혈압관계인지 혹시 부정맥관계인지 원인을 모르겠는데 이것도 병원에 가 보아야 할 것같아 생각중이다.
5, 어제 저녁에는 아내도 친구집에 가고 없으니 TV에서 스포츠 맘대로 보고 밤 2시가까이 유희열의 스케치 북에서 '아도이'라고 하는 밴드의 음악을 들어보니 참 좋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젊을 때 악기를 하나라도 배워 두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후회도.
매주 화 목요일 저녁8시에서 한 시간동안 사당문화센타에서 수채화공부를 하는데 그리다 보면 제법 그림이 되어 나오는 걸 보고 내가 그림에 좀 자질이 있나 하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좋은 그림이 되면 하나 액자에 넣어 걸어놓을까싶기도 하고 인물화가 어려운데 열심히 해서 손자놈 초상화를 하나 그려 볼까 하는 욕심도 내어 본다.
6, 고등학교 등산팀 친구 4명과 남한산성을 남문에서 시작 다시 남문으로 내려오는 완전 일주를 두시간 반 정도 걸려 했는데 내 모든 힘을 다 하여 걸었는데도 다른 네명의 친구를 따라 갈 수가 없어 나 혼자만 한참 늦게 도착했다. 도무지 따라 갈 수 없는 까닭을 모르겠는데 아마도 체중이 전에보다 5-6kg가 늘어버려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 오리백숙집에 들어가 막걸리와 함께 먹는데 한 친구가 맑고 노란 담근주를 내 놓는데 색깔이 너무 아름답다. 30도짜리 소주에 담근 도라지술이라고 하는데 색깔에 취해 좀 마시다 보니 얼얼하다.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산에 가지고 간 깎은 사과와 감 그리고 맛동산 과자가 배낭에 그대로 들어있어 슬그머니 끄집어 내어 같이 노인석에 앉은 도라지술 가져왔던 친구와 옆에 앉아있던 우리보다 조금 젋어 보이는 양반과 계속 고속 터미널 올때까지 나누어 먹었는데 노인들이 이 짓을 하는 게 장난스럽기도 하고 주책스럽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지내놓고 보니 노인들의 추태가 아니었나싶기도 하여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82년생 김지영은 남편이 차마 처음에는 아내가 충격으로 받아들일까봐 정신병원에 가보자고 말을 못하고 고민을 하다가 결국 얘기를 하니 아내 김지영이 가자고 한다. 나에게도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는 이런 점이 있을지 모르겠다.
대충 이만하면 47년생 김노인의 일면을 조금이라도 엿볼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2019.11.24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