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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이 다가오자 햇빛이 도드라지는 요즈음
겨울나무에는 가을이 되어 잎이 질 때 부터
눈에 들어오던 겨울눈들이 더 도톰하게 자라고 있다
거뭇한 나무작대기로 서있던 나뭇가지에서
어느 봄날 순백의 꽃잎이 펼쳐지면 아니 벌써 이렇게 됐나?
기적이라며 깜짝 놀라는 봄날
그러나 그렇게 지나듯 만나는 봄꽃은 너무 짧다
봄 아기를 포대기에 꼬옥 보듬은 겨울눈의 볼록한 숨을
지켜보는 시간만큼 봄날은 더 길어질 수 있다
이 우직한 생물이 제게 부여된 조건들을
꿋꿋이 견디며 겨울눈을 품고 설레는 걸 보면
우리에게도 그까짓 부대끼던 오늘을 날리고
또 내일을 살아갈 겨울눈이 돋는다
나무들의 겨울눈 중에서도 겨울 꽃눈이 돋보인다
이미 도톰한 꽃봉오리 모양을 갖추고
그 위에 나뭇가지와 같은 회갈색 솜털옷을 입었다
겨울 햇빛이 꽃눈을 감싼 솜털 위에서 빛나면
그 자체로도 맑은 꽃송이다
봄이 오면 목련꽃을 보러 제일 먼저 달려가려는
가까운 곳의 나무가 있다
뒤 산자락 아래 커다란 산목련 나무를 나는 지난해 봄
진달래에 물들어 걷던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만났다
추운 겨울을 낮게 구부려 슬레이트 지붕들을 활짝 들어올리며
목련꽃은 순정한 빛을 비추었다
꾸밀 것 없는 낮은 집들과 좁은 골목길
꼬불꼬불한 길을 달려와 잠시 엔진소리를 내고 있는
버스가 두세 대 놓인 종점이다
그 고단하고 때가 낀 사람 세상에게
장에 갔다온 엄마처럼 목련나무는 새 옷을 입혀주었다
가득한 빛 그 빛 아래서 머뭇머뭇 서 있다 돌아왔다
잎이 진 각종 나무가 등에 햇살을 지고 서있다
오래된 나무들이 보인다
방 한 칸 크기는 될 은목서에 가린
단층집 앞으로 들어가려니 개들이 왁자하게 맞는다
개 짖는 소리에 집안에서 안주인이 나온다
이곳은 나무를 기르는 육묘원이었던 곳이라 한다
울타리로 심은 나무들이 벚나무와 산목련과 백목련들이었다
어릴 적부터 이 동네서 자랐던 한 사람이라 할 수 있었다
결혼하여 외지로 나갔다가 30여년 전
남편과 함께 다시 돌아와 나무를 기르며 살아왔다 고 한다
나무 한 그루가 한 사람과 같다 하던 시아버지 말씀은
나무와 함께 살아갈수록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고 한다
산목련이 피면 밤이 되어도 동네가 환해요
길 건너에서 보면 더 환하지요
목련이 필 즈음이면 창문 밖을 자주 쳐다본다는 그녀
꽃 핀 목련나무를 떠올리는 순간 밝은 빛을 입는다
산목련나무는 버스 종점을 지나 안동네로 돌아가는
산 아랫길에 네 그루가 서있다
나무들은 가지초리가 가지런히 파아란 하늘을 향하여
동그랗게 팔을 모은 생김이 기도를 올리는 것 같다
아직 겨울눈은 크지 않다
먹을 머금은 붓끝 같다
목련은 별칭이 목필(木筆)이기도 하다
한겨울이면 도심보다 조금은 더 춥다는 이곳
산동네 할머니들이 털목도리로 머리를 감싸고
추위에 몸을 구부리고 꼭 목련 겨울눈처럼
나무 아래를 지나간다
밤이 되어도 산동네가 환하도록 목련이 꽃피는 날은
일년 중 겨우 일주일 남짓이다
여름부터 가을 겨울 동안
나무는 겨울눈을 오래 오래도록 품는다
진정 봄은 침묵으로부터 오는가 보다
첫댓글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군요. 좋은 글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