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택동(1893-1976)의 생애는 중공(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1949.10.01.)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 중공의 성립 이전까지의 모택동의 생애에 대하여 세계인의 평가는 대체로 후한 편이다. 그러나 그 이후의 생애에 대하여서는 인류사에서 가장 많은 인민을 죽게 만든 독재자로 평가된다.
좌파 이념의 성립에 공헌한 대표적인 이들로는 통상 마르크스, 레닌, 그람시를 꼽으나 모택동도 그 중 한명으로 꼽기도 한다. 모택동의 사상을 마오이즘으로 칭하며 이 글에서는 마오이즘의 핵심사항을 몇가지 짚어보기로 한다.
모택동의 사상이 마르크스 및 레닌과 다른 독특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노동계급(프롤레타리아)이 없는 공산혁명노선을 내세웠고 실제로 성공시켰다는 점이다. 마르크스가 공산당선언 등에서 주장하였던 공산혁명의 주체는 노동계급이었다.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소수의 자본가에게 자본이 집중되고 소자본가는 몰락하며 수많은 무산노동자들이 생김으로써 공산혁명의 조건이 성립된다는 것이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이후에 공산사회가 필연적으로 온다고 한 예언의 핵심 사항이었다.
러시아에서는 자본주의의 발달이 다른 유럽국가들에 비하면 비록 늦기는 하였으나 어느 정도의 노동계급이 존재하였고 그 계급이 공산혁명의 주체세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레닌의 입장이었다. 실제로는 쁘띠부르조아지 출신의 지식인그룹이 공산혁명을 이끌었지만 레닌의 공식적인 입장은 어디까지나 노동계급이 혁명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그런 노동계급이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제국주의열강들에 의하여 중국의 국익이 침탈당하고 국민들 대다수가 농민인 나라에서 모택동이 세운 전술은 마르크스와 레닌이 세운 노동계급주도가 아니라 농민주도의 혁명전술이었던 것이다. 모택동의 그런 전술이 성공함으로 해서 그 이후 전세계의 많은 후진국가들이 공산화된 하나의 이론적 기반이 되었다.
마오이즘의 핵심을 이루는 몇가지 전술을 아래에 소개한다.
첫째, 통일전선전술이다. 모택동은 주적인 일본제국주의를 물리치기 위하여 장개석이 이끄는 국민당과 두차례의 국공합작을 하였다. 그때 내세운 것이 항일민족통일전선전술이었다. 주적인 일본군을 앞에 둔 마당에 국민당과 공산당이 서로 싸우지 말고 통일전선을 이루자는 모택동의 주장에 그 당시 중국인민들은 대부분 동의하였고 공산당을 섬멸하고자 하는 장개석의 공격의 예봉을 피하는 명분이 되었다.
그러나 모택동의 내심은 공산혁명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모택동은 중일전쟁을 공산당을 확산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삼았는데 그것은 그가 중일전쟁 중 “공산당의 노력의 70%는 우리 자신의 발전을 위하여 쓰고, 20%는 국민당과 타협하는 데 쓰며, 10%는 일본군과 대항하는 데 쓴다.”라고 비밀회의에서 당간부들에게 한 말에서 알 수 있다.
둘째, 유격전술이다. 유격전은 세력이 강한 적과의 싸움에서 치고 빠지는 전술로 궁극적인 승리를 이끄는 전술이라 할 수 있다. 모택동의 유격전술은 ‘16자전술’로 압축된다. 적진아퇴 적퇴아진 적주아요 적피아타(敵進我退 敵退我進 敵駐我擾 敵疲我打 : 적이 진격하면 아군은 후퇴하고, 적이 후퇴하면 아군은 진격하며, 적이 주둔하면 아군은 소요를 일으키고, 적이 지치면 아군은 친다). 유격전이 성공하려면 주민과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그래서 유격전을 치르는 공산군과 주민은 물과 물고기의 관계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모택동의 유격전은 일본군이나 국민당과의 전투에서도 활용되어 궁극적인 승리를 가져온 전술이었다.
셋째, 신민주주의론이다. 모택동은 당시의 중국의 역사적 발전과정을 민주주의혁명과 사회주의혁명의 두가지 단계로 설명하였다. 현단계는 자산계급독재의 낡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신민주주의를 건설하여야 하는 단계라는 것이다. 식민지 반식민지 반봉건적인 사회를 독립적인 민주주의사회로 전환시키자는 것인데, 이는 무산계급 영도하에 민족자산계급과 더불어 반제 반봉건적인 연합독재 민주공화국을 건설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최종적인 사회주의혁명을 이루기 위한 전단계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넷째, 모순론이다. 모택동은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의 법칙이 유물변증법의 근본적 법칙이라고 하면서 중국공산당내에 존재하는 교조주의사상을 숙청하자고 하였다. 특정한 사상이나 방법론을 종교의 교리처럼 맹신하는 교조주의는 상황에 따른 유연한 대책을 외면하는 것으로 없애야 하는 것이었다. 역사적 상황에 따른 주요모순과 부차적인 모순을 구분하여 주요모순의 극복에 역량을 집중하여야 하는데, 당시 중국의 주요모순은 중국과 일본과의 모순이고 국내모순은 부차적인 모순이므로 국민당과 공산당의 싸움은 잠시 멈추고 항일민족통일전선을 형성하여 외적을 물리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섯째, 실천론이다. 모택동은 마르크스가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들’에서 “철학자들은 세계를 해석해 왔을 뿐이지만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라고 한 말을 강조하면서 실천 없는 인식은 있을 수 없고 이론은 실천의 검열 과정을 통하여 그 오류가 시정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이 아주 중요하다고 인정하는 문제는 객관적 세계의 규칙성을 알고 세계를 해석할 줄 아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 규칙성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능동적으로 세계를 개조하는 데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모택동의 이런 실천론은 그 속에 무시무시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인간개조에 대한 언급이 있었던 것이다. “개조될 객관적 세계에는 개조를 반대하는 모든 사람이 포함되어 있다. 그들의 개조는 강제적인 단계를 통한 연후에야 비로소 자각적인 단계에 들어설 수 있을 것이다. 세계인류가 모두 자각적으로 자신을 개조하며 세계를 개조하게 되는 그때가 바로 전세계적인 공산주의시대가 도래하는 때이다.”라고 한 모택동의 언급에 그 이후 공산세계에서의 엄청난 살육의 씨앗이 들어 있었다.
이상 다섯가지 정도가 마오이즘을 형성하는 핵심사항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PD계열은 마르크스, 레닌과 함께 모택동사상을 나름 열심히 공부하였는데 그에 비하여 NL계열은 거의 공부를 하지 않았다. 현재 한국의 좌파를 형성하고 있는 주도세력은 NL계열인데 그들의 학습의 수준은 매우 낮으므로 이 정도의 공부만으로도 그들을 능가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