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예방법과 선진국의 치매 마을
장수는 누구나 바라는 꿈이지만,
가끔 오래 사는 것이 무섭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본다.
그 이유를 물어보면 한결같이 ‘치매(癡呆, dementia)’에 대한 두려움을
첫손가락으로 꼽는다. 국민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가장 두려운 병으로
암(49.1%)에 이어 치매(33.7%)를 두 번째로 꼽고 있다.
통상 치매에 걸리면 뇌의 기억력, 언어능력, 판단력 등이 떨어져
일상생활이나 대인관계에 큰 지장이 발생한다. 또 집을 몰래 빠져나가고,
자기가 싼 변을 다시 먹는 등 인간의 존엄성마저 지킬 수 없는 상황에
몰리게 된다. 오래 살면서 치매에 걸리느니 차라리 사는 것을 포기하겠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치매가 장기화되면 환자 보호자들이 고통을 견디다 못해
함께 자살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이른바 ‘치매 간병 살인’이다.
수년 전 90대 치매 노모를 돌보던 60대 아들이 노모와 동반 자살하는
일이 있었고, 얼마 전에는 92세 노인이 동갑의 치매 아내를 살해하고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치매 환자의 부양이 본인이나 가족들에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를 보여주는 사건들이다.
치매가 무섭기는 하지만,
사람이 늙으면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병 가운데 하나이다.
따라서 노인이 많아지면 환자 수도 빠르게 늘어나게 된다.
우리나라 치매 환자 수는 2018년 현재 70만 5천 명 수준으로 조사되고 있으며,
치매 환자 1인당 연간 관리비용은 약 2,074만 원, 국가 전체의 치매 관리비용은
약 14조 6천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정부 추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치매 환자는 2025년 100만 명을 넘어서고,
2050년에는 27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치매 공포’, ‘치매 재앙’이라는 말이 나올만한 상황이다.
치매를 발생 원인별로 구분하면,
퇴행성 질환의 결과로 생기는 알츠하이머 치매,
뇌혈관에 문제가 생겨 생기는 혈관성 치매,
단백질 물질이 대뇌피질에 쌓여서 생기는 루이소체 치매 등이 있다.
이 가운데 뇌 속에 과다하게 쌓인 ‘베타 아밀로이드’라는 이상 단백질이
대뇌 신경세포를 죽게 해 걸리는 알츠하이머 치매(Alzheimer`s disease)가
전체 치매 환자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가장 흔하다. 알츠하이머에 걸리면
통상 8∼10년 후 죽음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치매 환자들은 대체로 치매를 앓기 전에 심한 건망증과 판단력에 문제를 보이는
‘경도(輕度) 인지장애’를 거친다. 따라서 이 단계에서 조기발견을 해 적극적으로
치료하면 치매로의 이행속도를 늦출 수 있다.
만약 경도 인지장애를 내버려두면 대부분 치매로 진행된다.
치매를 예방 또는 완화하는 방법으로써, 전문가들이 적극적으로 추천하는 것이
‘뇌 집중력 훈련’이다. 중·고등학생들이 영어 단어를 외울 때 몇 번이고
반복해서 외우는 것을 생각해보라.
치매는 조기 발견하면 치료하거나 관리하여 진행속도를 늦출 수 있다.
따라서 치매의 조기 발견과 조기 치료는 매우 중요하다. 인지저하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의 경우 조기에 치료할 경우 15%만 치매로 이행하며,
조기 치료에 실패할 경우 75%가 치매로 이행하고, 치매 예방을 위한 생활습관을
준수할 경우 치매 발병률을 50% 감소시키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보건복지부에서는 치매 예방 관리 방법으로
3권, 3금, 3행의 실천을 권고하고 있다.
여기서 3권(勸)은 3가지 실천을 권장하는 것으로,
‘1주일에 3번 이상 걷기’, ‘생선과 채소 골고루 먹기’, ‘부지런히 읽고 쓰기’
습관을 의미한다. 이 중 세 번째 사항은 뇌 건강 유지와 관련 있는 것으로,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뇌를 자주 활성화하라는 것이다.
독서 외에, 나이 들어 일본어나 중국어 같은 외국어를 배우는 것도 치매 예방에
아주 좋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리고 치매 예방법의 3금(禁)은
세 가지 나쁜 습관을 버리라는 권고이다.
구체적으로 ‘술을 적게 마실 것’, ‘담배 피우지 말 것’,
‘머리 다치지 않게 조심하기’이다. 늘그막에 머리를 다치면 일상행동에서
장애가 발생하거나 치매와 유사한 고통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년에 머리를 다칠 위험이 있는 운동이나 작업을 할 때는
꼭 보호 장구를 착용하는 습관을 갖는 게 필요하다.
3행(行)은 고령자들이 실천해야 할 3가지를 말한다.
3행은 ‘정기적으로 건강검진 받기’, ‘가족, 친구들과 자주 소통하기’,
‘매년 치매 조기 검진받기’이다. 정기적 검진을 통해 혈압, 혈당,
콜레스테롤 3가지를 관리하고, 이를 통해 고혈압, 비만,
당뇨병을 예방할 수 있게 된다면 치매 발생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
두 번째 실천사항인
‘가족, 친구들과 자주 소통하기’는 나이를 먹을수록 더 중요해진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소통을 활발히 함으로써 건강을 유지하고,
뇌를 활성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치매 환자들이 빠르게 늘어남에 이와 관련한 사업들도 퍼지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선 스트리트 뷰(view)를 이용해
노인들의 고향, 모교 같은 의미 있는 장소를 VR(가상현실)로 구현하여
인지기능 향상을 돕는 VR 고글(goggle)을 개발돼 판매되고 있다.
이 고글은 알츠하이머 시니어들의 고통을 경감시켜 주고,
기억력 회복과 우울증 해소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 일본에선 치매 환자가 마을을 벗어나 위험한 장소로 이탈할 경우
경보음을 발신하고, 119와 보호자에게 긴급 상황을 통보하는 스마트 밴드
(smart band)가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다. 경증치매 환자들이 자신의 주택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길 안내 애플리케이션’도 개발되어 판매되고 있다.
네덜란드에서는 최근 치매 환자들만 모여 사는 마을
(호그벡, Hogeweyk)이 만들어져, 치매 환자들의 재활과 노후생활을 돕고 있다.
4,500평의 부지에 식당, 커피숍, 미용실, 슈퍼마켓 등이 갖춰진 호그벡 마을에는
약 200여 명의 치매 노인들이 입주해 살고 있다.
노인들은 이곳의 주택에 입주하여 죽을 때까지 과거 익숙한 삶의 방식에 따라
살아간다는 게 특징이다.
치매 환자들은 마을 농장에서 농작물을 재배할 수 있고,
취미생활을 즐길 수 있으며, 마을 교회에서 신앙생활도 할 수 있다.
상점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간병인, 요양 간호사, 노인병 전문의들이다.
이들은 치매 환자를 관찰하면서 필요한 도움을 제공한다. 호그벡 마을이
좋은 반응을 얻음에 따라, 영국과 프랑스에서도 이와 유사한 치매 마을이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치매 노인들이 함께 모여 서로 교류하고, 농장 등지에서 주기적으로
노동하게 되면 우울증과 치매 증상 완화에 상당한 효과가 있다는 게
지금까지의 연구 보고이다. 그 결과 치매 치료에 들어가는 의료비용을
다소나마 절감할 수 있다는 설명인데, 치매 노인이 급증하고 있는
한국에도 머지않아 ‘호그벡’ 같은 치매 마을이 등장할 가능성이 내다보인다.
글 : 송양민 / 가천대학교 특수치료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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