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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수필의 전략과 방법
1. 여행수필의 용어에 대하여
우리나라 수필문학은 여행문학으로 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여행문학이 수필문학의 선도자인 셈이다. 정철(鄭澈)의 《관동별곡(關東別曲)》, 김인겸(金仁謙)의 《일동장유가(日東壯遊歌)》, 김진형(金鎭衡)의 《북천가(北遷歌)》 홍순학의 〈연행가〉등은 여행가사로 여행문학이며, 박지원(朴趾源)의 《열하일기(熱河日記)》는 한문으로 된 기행문이며, 유길준(兪吉濬)의 《서유견문(西遊見聞, 1895)》은 근대 최초의 기행문이다. 최남선(崔南善)의《백두산근참기(白頭山覲參記)》는 좋은 여행수필이다. 교통수단이 발달하여 여행의 영역이 넓어진 현대 들어 더 많은 여행문학 작품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지금까지의 여행수필을 모든 논의 자들이 기행수필이라고 말하고 있다. 기행문이나 기행수필이 다 같이 여행을 통해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글로 쓴 것이라는 점에는 다름이 없었기 때문에 기행문과의 동일선상에서 이야기되고 있다.
현대인들은 여행을 기행이라고 말하지 않고 여행이라고 하기 때문에 필자는 기행수필을 부르기 쉽게 여행수필로 하고자 한다. 필자는 이미『경상남도 여행수필집』(2005. 6.), 『전라남도 여행수필집』(2006. 10)을 발간할 때 제목의 용어 때문에 고민하다가 기행수필이나 여행수필이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여행수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최원현은 기행수필의 형태로 일정(노정) 중심의 수필, 느낌 중심의 수필, 역사․유래 중심의 수필, 디카(디지털 카메라) 기행수필을 들고 있고 최승범 교수는 음식에 관한 산문집 『풍미기행』(시선사, 2006-06)을 펴냈다.
최씨는 이미 『풍미산책』, 『한국의 먹거리와 풍물』 등 음식 관련 산문집을 여러 권 펴낸 바 있다. 여행길에 맛본 다양한 음식에 대한 감상을 수필형식으로 써내려간 책들이다.
이제 여행수필도 다양한 테마별로 분화하고 있는 것이다.
2. 기행문을 넘어서
최근 들어 여행이 보편화 되면서 눈에 띄게 많아진 게 바로 여행에 관한 글들인 것 같다. 그것들은 일반 잡지 뿐 아니라 문학지에서도 쉽게 만나게 되며 더러는 장편수필의 유형에 포함 시키거나 연작 형태로 연재를 하여 독자에게 새로운 수필형태처럼 다가가기도 한다.
임어당은 “10년 독서, 10년 여행, 10년 집필”하는 인생을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 바 있다. 글쓰기에 있어서 여행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글이다.
‘여행처럼 신선하고 여행처럼 다정다감한 생활은 없다. 보고 듣는 모든 것이 새것들이다. 새것들이니 호기심이 일어나고 호기심이 있어 보니 무슨 감상이고 떠오른다. 이 객지에서 얻은 감상을 쓰는 것이 기행문이다. 객지에서 얻은 감상, 그러니까 어디로고 떠나야 한다. 가만히 자기 처소에 앉아서는 쓸 수 없는 글이다. 멀든, 가깝든, 처음이든, 여러번째든, 어디로고 떠나야 객지일 것이니 기행문에는 (1) 떠나는 즐거움이 나와야 한다. (2) 노정(路程)이 보여져야 한다. (3) 객창감(客窓感)과 지방색이 나와야 한다. (4) 그림이나 노래를 넣어도 좋다. (5) 고증을 일삼지 말 것이다.’
이태준도 일찍이 여행의 소중함을 설파하였다.
수필은 자기가 체험한 소재 가운데 제재를 골라 의미를 부여하고 형상화하는 문학인 것이다. 그러므로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인격 수련은 필수이다. 자기와 글은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색의 샘물이 마르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며 깨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독서와 여행과 사색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친 것이 아니다.
돌아 올 수 있는 고향과 집을 두고 떠나는 여행은 그리움의 숲이다. 그 숲의 한자락을 위하여 다른 사람의 경험을 먼저 공부하고 캠코더를 사용하면서 길을 떠나 길 속으로 나는 돌아오곤 하였다. 한 편의 시처럼 마음의 영상으로 남아 있는 여행의 흔적을 묶어 보는 것, 그것은 자기 역사의 정리며 철학이다. 여행은 갈 곳에 대한 충분한 자료 섭렵이 필수적이다. 기후나 환경, 역사적 의의와 인물, 풍광과 잘 곳, 음식점, 마을의 풍습, 배경, 등을 충분히 알아보고 먹고 자며 들었던 것을 자신의 철학으로 녹여서 일기, 편지, 수필, 시, 안내문 등의 형식으로 쓴다. 여행의 동기, 여행에 대한 기대와 즐거움, 출발할 때의 날씨, 시간, 교통편, 여행 스케줄에 의한 시공간의 차례, 여행지의 특성, 역사, 자연 풍광, 특산물, 새로운 사실 등을 기록해야 된다. 그 지방의 지형이나 기후, 역사와 풍속, 특산물과 먹거리를 시간과 장소의 순서에 따라 엮어가고 지도나 사진 자료를 곁들어서 독자들의 길잡이 역할을 하여야 한다. 보고 들은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써서 충분히 독자들이 그곳을 떠올릴 수 있도록 구체성과 생동감이 넘치도록 해야 한다.
정목일은 좋은 수필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소하고 평범한 체험에서 금싸라기 같은 경이와 감동을 발견할 줄 알며, 인생에 대한 의미부여를 통해 독자의 삶에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수필이 좋은 수필일 것이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체험일지라도 ‘나는 왜 네가 아니고 나인가를 보여주는 개성, 독자성, 창의성이 있는 수필을 읽고 싶다. 새로움, 지적 흥미, 정서감, 감동, 진선미를 제공하는 수필이 좋은 수필일 것이다.
대중이 문화와 예술의 향수자, 창안자가 되면서 급속하게 대중과 독자들이 예술세계를 지배하는 거대한 세력으로 성장하고 문화시장 경제를 주도하고 있다. 대중의 손에 의하여 제품이 생산되고 소비시장이 움직이며 대중의 구미에 맞게 문화예술이 공연되고 있다. 이러한 문화의 대중화는 문학에도 변화를 가져왔고 독자중심의 대중화로 흘러가고 있다. 대중화의 보편적 가치를 외면할 수 없는 시대에 자기 성찰의 깊은 깨달음과 새로움의 전기가 나풀거리는 수필에 여행의 낯설음과 감동의 장은 이제 소득과 문화적인 성장으로 여행도 우리시대의 보편적인 행위로 떠오르고 누구나 이 순간과 이 낯설음에 대한 글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 동안 수필이 다양한 범위의 영역 속에서 다양한 소재를 소화해 왔다. 사회, 교육, 문화, 역사, 정치, 환경, 경제, 종교, 철학, 정치, 여행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식과 사고 속에 현실참여의 비판적 입장에도 기꺼이 참여 하였다.
우리는 작가 유홍준의 말대로 나라의 곳곳이 박물관인 국토에서 살고 있다.
국토의 어디를 가더라도 유형/무형의 문화유산을 만나게 된다.
자연의 풍경이, 전국에 있는 여러 사찰이나 문화 유적지들이 우리들의 보물이고
체험적인 지식의 원천이 될 수 있다.
우리들이 그것들을 누리고 수용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지식과 관심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런 지식들을 전달해주는 관련 서적이나 자료들은 다소 어렵거나 지루할 수 있다. 그것을 보다 친근하고 흥미롭게 풀어서 전달해준다는 것이 바로 여행수필의 참 가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특별히 시대의 특성상 여행수필에 대한 담론을 살펴 볼가 한다.
3. 여행수필의 시대
이유식교수는 수필과 여행수필에 대한 논지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기행문과 기행수필은 소재론상으로 보면 쌍생아요, 내용상으로 보면 사촌뻘이다. 그리고 서양식으로 말해 에세이에서 분화‧진화된 형식이 평론문이듯 기행문에서 분화‧진화된 형식이 바로 기행수필이다.
그런데 지난 시대에 있어서만은 적어도 기행문은 새로운 나라, 새로운 도시, 새로운 지역, 새로운 풍물에 관한 정보를 제공해 줄 수 있었기에 호기심과 관심을 충분히 끌 수도 있었다.
그러나 시대가 너무나도 많이 변했기에 공간개념도 확대 또는 단축되었다. 몰랐던 세계의 곳곳을 알게 되었고 또 멀기만 한 세계의 곳곳이 이웃처럼 거리 단축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곧 교통수단의 발달과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국내외 여행이나 관광 기회의 증대와 활성화에 기인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고 나아가 인터넷을 통한 사이버 여행, 수많은 관광안내서나 책자 등의 발간 그리고 매스미디어를 통한 빈번한 소개 등에 의해서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제는 지난 시절의 기행문류는 그 효용가치가 자연 소멸되었다. 그런 유의 글을 읽고 무슨 새로운 정보를 얻었다고 또 어떤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고 또 아니면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할 사람은 거의 아무도 없다. 불환지폐의 신세가 되어 글과 독자 사이에 이루어지고 있는 교환가치는 없어진 셈이다. 이제는 거기서 분화‧진화된 기행수필이 태환지폐로서 자리바꿈이 된 시대가 되어 있다.
일찍이 연암 박지원은 『열하일기』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하고 있다.
강물 소리란,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다른 것이다. 나의 거처는 산중에 있었는데, 바로 문 앞에 큰 시내가 있었다. 해마다 여름철이 되어 큰 비가 한 번 지나가면, 시냇물이 갑자기 불어서 마냥 전차와 기마, 대포와 북소리를 듣게 되어, 그것이 이미 귀에 젖어 버렸다. 나는 옛날에, 문을 닫고 누운 채 그 소리를 구분해 본 적이 있었다. 깊은 소나무에서 나오는 바람 같은 소리, 이것은 듣는 사람이 청아한 까닭이며, 산이 찢어지고 언덕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소리, 이것은 듣는 사람이 흥분한 까닭이며, 뭇 개구리들이 다투어 우는 듯한 소리, 이것은 듣는 사람이 교만한 까닭이며, 수많은 축(筑)의 격한 가락인 듯한 소리, 이것은 듣는 사람이 노한 까닭이다. (중략)따라서 이러한 모든 소리는, 올바른 소리가 아니라 다만 자기 흉중에 품고 있는 뜻대로 귀에 들리는 소리를 받아들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박지원이 청나라 건륭 황제의 칠순잔치를 축하하는 사신단의 일원으로 중국에 머무는 동안 기록한 수필 중 하나이다. 꽉 짜인 일정 때문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산을 넘고 강을 건너야 했던 와중에도 연암은 인식 주체의 상태에 따라 같은 사물이라도 다르게 받아들여진다고 봤다. 따라서 누가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가에 다라 다양한 여행수필이 가능한 것이다.
잠자는 곳과 먹거리의 특성과 교통 정보를 자세히 기록하여 정보제공의 역할도 할 수 있어야 한다. 때문에 실용성과 문학성, 그리고 역사의 현장감을 두루 가질 수 있어야 여행수필의 매력을 소화시킬 수 있다.
4. 여행수필의 특성
수필 형식의 기행문이 여행수필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수필인 동시에 기행문이어야 한다는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이유식교수는 < 기행문과 기행수필의 차별성과 변별성>에서 기행수필의 조건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단순한 기행문이 기행수필로 둔갑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아니면 기행수필의 질적 제고를 위해서라도 기행문과 기행수필의 차별성과 변별성을 따져 볼 필요가 있다.
기행문이란 여행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쓴 글로서 말하자면 사실을 위주로 한 기록성의 견문기이다. 그러나 기행수필은 이런 기록성에만 끝나지 않는다. 기록성의 자료(소재)를 바탕으로 하여 정서적 여과나 지적 여과를 거친 다음 문학성의 창출에 그 목표를 두어야 한다. 그것을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사진과 사진예술의 차이요, 양조관을 보면 숙성이나 증류과정을 거친 상태이다.
물론 소재론상으로 보면 기행문과 기행수필은 공통성과 공유성이 있다. 여행지의 자연환경, 역사와 문화 등의 인문학적 환경, 의식주의 생활환경이나 생활상, 그리고 생활문화, 유적이나 유물 그리고 기념물 등의 문화재, 풍속이나 관습, 그 나라나 해당 지역의 인심과 인정, 특이한 국민성, 여행지에서의 실수담이나 특수한 사건 등이 바로 그 소재들이다.
그러나 소재 처리나 주제의 형상화 그리고 구성법에 있어서는 차이점이 있다. 기행문이 다분히 견문의 나열식이라면, 기행수필은 취사선택식이다. 기행문의 주제가 분산식이거나 다초점적이라면, 기행수필의 경우는 반분산적이거나 집중적이다. 기행문의 구성이 시간의 순행구조에 의존한다면 기행수필은 순행구조일 수도 또 역행구조일 수도 있으며 아니면 또 다른 변조가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소재의 발견에 있어서도 차이점이 있다. 기행수필이 단순한 기행문이 아닌 소재의 새로운 발견이나 아니면 보는 관점에서 남다른 새로움의 발견도 있어야 한다.
그 다음 과정이 곧 문학성의 획득이요 창출이다. 여기서는 일단 주제 형상화를 위한 적확한 문체의 운용이라든가 구성의 미학적 배열이나 기교적 장치 등은 열외로 해 두고라도 우선 문학성의 획득을 위한 기본과정인 한 숙성이나 증류과정에 대하여 말해 보기로 하겠다. 거기에는 앞에서 말했듯이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소재에 따라 곧 정서적‧ 심적 여과냐 아니면 지적 여과냐 아니면 혼성여과냐다. 정서적‧심적 여과를 통해서라면 정서적 반응이나 감회 그리고 인생론적 명상이나 관조가 나올 수 있다. 지적 여과를 거친다면 인문학적 관조나 명상, 비교문화적 접근이나 해석 아니면 개별소재에 대한 작가 나름의 해석이나 의미부여 등이 나올 수 있다.
가볍게 그러나 결코 만만하지 않은 철학과 유모어, 자기만의 다름이 있는 고만고만한 주제가 우리를 이끌어 주는 것이 수필이다. 수필은 친숙한 장르이면서도 조금만 소홀하면 치졸한 이야기의 수다로 전락하고 만다. 때문에 수필은 격조 있는 글이어야 한다.
감성의 풍요로운 들판이 있어야 하지만 그 속에는 사람냄새가 나는 생활의 면면이 있어야 구수한 이야기의 샘물을 마실 수 있다. 산다는 것이 소중하고 스쳐가는 한자락의 바람도 글감이 되겠지만 구질구질한 허접 쓰레기를 과감하게 버릴 수 있는 혜안이 있어야 한다. 때문에 수필은 가까이 하기에는 먼 당신일 수 있지만 가꾸기에 따라서는 평생의 연인으로 낯서른 신선함을 줄 수 있는 것이다.
붓가는 대로 마음내키는 대로 쓴 여러 종류의 글로서 무형식이 그 형식이며 무기교가 그 기교라고들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형식도 기교도 상상력도 필요할 때는 사용해야 지루한 타성에서 해방될 수 있다.
일찍이 수필문학의 원조인 16세기의 프랑스 몽테뉴는 ‘수필은 마음의 보행 그대로의 모습이다’라고 하여 지극히 자연스러운 인간적 심성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때문에 수필은 그 어느 문학보다도 가장 개성적인 독백형식의 문학이다. 수필은 작가 자신의 인생관, 자연관, 종교관, 철학관, 우주관, 개인의 취미, 기호, 습성, 지식, 교양, 사상, 감정, 역사의식 등 모든 심적 자세를 솔직하게 직접적으로 표백하는 글이다.
이성과 감정만 가졌다면 누구나 쓸 수 있는 만인의 문학이며, 그 분위기는 다정한 친구와 더불어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하는 야화(夜話)와도 같다.
특히 인생을 깊이 생각하고 인생에 대한 달관이 깃든 글로서 개성적, 관조적 인간성이 내포되게 위트와 유머로써 표현하며 짧은 글이나 격언 등을 인용하기도 하는 산문문학의 그 어떤 형식에도 해당하지 않는 일종의 산문을 뜻한다.
기행문은 여행을 소재로 보고 들은 사실적인 체험과 그에 대한 느낌이나 감상을 기록한 글이다. 때문에 수필의 특성과 기행문의 특성이 잘 어우러져서 수필의 깊은 맛과 여행의 생동적인 재미로움과 새로운 정보가 있어야 한다.
여행에는 그 목적과 이유가 반드시 있다. 목적에 충실하기 위하여 여행을 하기 위한 사전 준비를 철저하게 하여야 하고 보고 느낀 것을 자료화하여 보관하면서 경이로움을 서정적으로 감동적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된다. 감동을 위한 무리한 묘사와 과대 포장은 삼가야 한다. 사실성이 중요시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시 기행문『그리운 詩, 여행에서 만나다』라는 책도 나왔다. 장르의 혼합이다.
5. 여행수필의 전략
(1) 쉽게 이해되는 것.
어떻게 살 것이며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이 두 가지의 일이야말로 우리가 지속적으로 풀어 가야할 명제가 된다. 30년째 물방울만 그리고 있는 재불(在佛)화가 김창열은 “인간사의 모든 희로애락을 물방울에 녹여 없앤다”고 말하고 있다. 자신의 전생애를 물방울에 압축하고 있는 그의 작업은 전혀 지루하지가 않다. 볼수록 새롭다.
작가들도 전생애의 흔적과 삶의 골짜기를 언어를 통하여 어떻게 그리고 어떻게 발언해야 할 것인가에 고뇌하며 살아왔다. 세상살이의 복사와 재현 사이에 의미의 틈과 형식의 틈새가 있어 새로운 공간의 새로운 읽기가 되어 낯설게 다가 올 때 수필의 감동은 우리를 전율하게 한다. 한 편의 그런 글을 읽기 위하여 우리는 그렇지 못한 글과 조우하고 좋은 감동을 아끼며 기다리는 것이 아닌가.
(2) 소박한 것.
독자에게 풀어놓는 향토적인 구수한 이야기이면서도 자신의 체험적 진실을 그대로 증언하고 고백하는 글이어야 한다. 때문에 찡한 아픔이 있고 아지랑이와 같은 먼 그리움이 있으며 먼 하늘을 우러러 기원하는 내일에의 기대 지평이 열려 있다. 옳고 바른 말의 대립구조가 아니며 아름답거나 깔끔하거나 우아한 내용을 편력하는 것도 아니요 위대하고 심오한 지적 표현이나 사상적 주장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사소한 일상생활에서 일어났고, 일어날 수 있는 작은 일에 감동하는 살아있는 글이 되어야 한다.
(3) 가슴에 호소되는 것.
노향림은 「그리움이 없는 사람은/압해도를 볼 수 없네」라는 시를 노래하였다. 목포 앞 바다에 떠 있는 이 섬 출신의 노향림의 시비가 그 섬 주민의 열망으로 세워졌다고 한다. 그리움이 없는 사람이 어찌 고향을 볼 수 있으랴. 그리운 곳에는 우리를 부르는 소리가 있어 절대순수, 절대영원의 원형적인 소리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운 곳으로 돌아보며 이 혼돈과 고적의 세월을 살고 있는 것이다.
이 세계는 인연에 의하여 생멸을 지속하는 무상(無常)의 세계임으로 항상 동요와 불안에 충만된 미지의 세계, 탐욕이 불타는 번뇌의 세계라고 불가에서는 말하고 있다. 때문에 모든 존재는 상호의존적 관계에 있는 것이며 인연에 의하여 생멸을 지속하고 있어 나타났다가도 사라지고, 사라졌다가도 나타나는 것이다.
미생물에 있어서는 잘나고 강한 생물은 다 죽고 협력․협동․사랑하는 생물들은 지구상에서 생존해 가고 있는 것이다. 상대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상호 공존해야 오래가는 것이다. 현대과학에서 하고 있는 얘기들을 불가에서는 오래 전에 상호의존적 관계로서의 존재를 설명하였다. 인연법의 변화에 의하여 세계는 끊임없이 대립과 갈등을 조성하여 미망(迷妄)과 고뇌로 충만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시는 인연에 의하여 일어나는 새로운 창조이며, 근본번뇌인 갈애(渴愛)를 해소하는 깨달음의 하나이기도 하다.
「착한 눈동자 선한 귀로 그리운 곳으로 돌아보게」-정일근의 시는 시인 자신의 구도적 열망이며, 그리움의 전부이다. 에너지는 불변하지만 방향과 형태는 바꿀 수 있다는 것이 현대과학의 이론이다.
한국신화의 보고인 『삼국유사』에는 광덕스님과 엄장스님의 얘기가 있다. 먼저 열반하신 광덕스님의 "먼저 가네"라는 목소리를 듣고 산문 밖을 나선 엄장스님의 일화나, 바람에 풀이 눕는 방향을 보고 친구가 오고 있음을 알았다는 관기와 도성이의 이야기는 불교에서 말하는 이심전심, 심령과학에서 말하는 염력, 심리학자 융이 제시한 우연적 동시일치성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운 곳에는 우리를 부르는 소리가 있다는 그 에너지를 과학의 데이터는 풀 수 없는 일이며, 분명 그러한 에너지는 우리의 일상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간절하며 지극한 정신이 집중될 때 가능한 일인 것이다.
마음은 빛 보다 더 빠르다. 그러나 그 마음의 속도를 숫자로 풀이할 수는 없는 일이다. 빛보다 더 빠르게 마음이 움직이고 있거나 움직이었음을 우리는 솔직히 고백할 수 있을 것이다.
새벽이면 해운대 수평선과 오륙도가 바라보이는 동백섬을 돌기도 하고, 백사장을 걷는다. 그때 주위는 참으로 고요하며 아침해는 신비롭다. 초록잎 한 잎도 예사롭지 않은 생명의 환희로 차 있음을 본다. 나무가 말하고 풀들이 손짓한다. 부드러운 흙을 밟으며, 고향이나 어머니는 흙이었구나 하며 새삼 깨달을 때가 있다.
불가에서는 모든 것을 단절하라고도 하였지만 모든 존재는 인연에 따라 일어난다고 하였다. 그리움이 가득찬 에너지의 원천에는 우리를 부르는 소리가 있다. 때문에 그리운 곳은 생명이 있으며 영원절대의 세계를 의미하고 있다.
그리움이 한편의 시가 되듯, 이 세상풍진을 모두 맞아 갈등과 대립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는 그리운 곳, 잃어버린 본래의 자기에게 귀의하는 마음이 될 때 부처님의 “나는 자기에게로 귀의하노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4) 감동을 주는 것. 신선한 것, 특별한 것을 써야 한다.
지난 2000.9. 24. 부산 문우들과 함께 대구에 계시는 공산(空山) 이남석 (李南石) 선생님의 공산예원(空山藝院)에 간적이 있다. 그의 글씨보다 나는 그의 말에 공감을 가졌다. “잘 쓴 글씨가 아니라 좋은 글씨, 잘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최고다”, “지금 나는 사는 것이 미치도록 재미있다. 미치도록 글쓰고 싶다”고 하였다. 사는 것이 재미있고 미치도록 글쓰고 싶은 그의 심정은 폭포와 같이 쏟아지는 창작의 열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수필 또한 써고 싶은 감성과 이성이 물살처럼 일어날 때 가능한 것이다.
여학교 때 공부하며 읽은 정비석의 <산정무한>은 충분히 금강산의 비경을 안내하였으며 그 감동은 남북의 금강산 길이 열리자 금강산 여행을 다녀오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단순한 시간의 경과, 여행한 차례가 아니라 5백년, 천년을 거슬러 그 시대에 도달해 보고 그 시대와 현재를 ‘나’라는 타임머신으로 연결시켜 옛과 지금이 함께 흐르게 해야 한다.
나만의 개성이나 독창적 생각이 나의 글쓰기 특성으로 분명히 드러나는 글이 되도록 한다.
(5)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
오늘을 직시하는 날카로운 비판, 온당하고도 합리적인 제언, 기발한 재치, 현대의 사회문제가 안고 있는 독소적인 요인, 죽음의 문제, 종교문제, 특히 종교적인 깨달음의 세계를 보여 주면서도 한국적인 향토성과 나라사랑, 그리고 휴머니티를 근간으로 하는 인생론적인 얘기 등이 해박한 지식과 차가운 지성을 바탕으로 묘사되어야 수필은 중후한 맛이 있다.
군더더기 없는 투명한 문장이 매끄럽게 흐르면서도 그 내용에는 자신을 객관화시키는 의지의 냉철함과 인생을 바라보는 여유로움이 있다. 그러면서도 이 시간과 이 공간의 사람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따뜻함이 있다.
한 편 한 편의 수필은 오육칠정에 허덕이는 현대인인 중생들에게 들려주는 깨달음의 법문이며 온갖 사람, 온갖 사건을 직접 체험한 사람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진실이며 해탈의 본래적 모습이기도 하다. 당당하게 그러나 여유있게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분위기를 만날 수 있어야 된다. 새로 보고, 들은 일에 대한 느낌이 중심이 되지만 그것들이 오늘 이 시대의 나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6) 단순하면서도 극적 전환을 주는 것.
수필은 정관적이고, 관조적이며 내밀한 정신의 세계로 침잠하는 태도와 생동적이며 본능적이며 다이나믹한 분위기가 조화를 이루는 양면성이 있다. 때문에 다정한 사람에게 나즈막하게 얘기를 들려주듯 하거나, 아니면 많은 대중을 향하여 자신의 견해를 호소하는 뜨거운 열기가 넘쳐 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이지적인 면과 열정적인 뜨거움이 씨와 날이 되어 수필의 세계를 이루고 있다.
(7) 삶을 통찰케 해주는 것.
“사랑하면 표현하라 !”
이 평범한 진리를 깨달아 가는데 시간은 필요하다. 그러나 황홀한 삶의 역사 속에 우리는 꿈★을 꾸고 그 꿈을 모아 하나의 작은 집을 짓는다.
어떻게 살고 사랑하였는지 노트에서 기록된 글을 통하여 그리움과 아픔, 그리고 잔잔한 사랑의 의미도 읽을 수 있다.
백과사전학파의 거두 디드로는 18세기 프랑스의 대표적 지식인이다.
그는 “나의 실내복과 헤어진 것에 대한 유감”이라는 이름 붙여진 흥미로운 에세이를 쓴 바 있다. 이 에세이는 디드로가 그의 서재에서 생각에 잠겨 우울하게 앉아 있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의 서재는 불과 2주만에 크게 변해버렸다.
2주 전 그의 친구가 실내복을 선물하였다.
새 선물에 기뻐한 디드로는 “다 헤지고 시시하지만 편안했던 실내복”을 버렸다. 실내복으로 갈아입은 디드로는 그의 책상이 새로운 실내복과 잘 어울리지 않음을 눈치 채고 책상을 바꾸었다. 책상을 바꾸고 나니까 이제는 벽걸이가 새 책상과 안 어울렸고, 그 다음에는 의자, 판화, 선반, 시계, 커튼의 순으로 바꾸게 되었다.이 모든 것이 “다른 모든 것을 그 자신의 우아한 분위기에 맞도록 강제하는 오만한 진홍색의 새 실내복”이라고 디드로는 결론 내린다. 그리고는 깨닫는다.
이전의 헌 실내복은 그 당시의 고물 가구들과 참 잘 어울렸다는 것을. 그리고 하나의 물건이 다른 물건들과 갖는 일관성과 통일성이 없이는 개별 물건의 아름다움조차 즐길 수 없음을 깨달았다.
이것을 현대의 소비가 갖는 중요한 특성의 하나로 디드로 통일성이라고 부른다.
오늘의 소비하는 주체는 누구나 이런 디드로 통일성을 추구한다.
이것이 욕망의 확대재생산 과정이다. 한 가지 욕구가 백가지 다른 욕구를 불러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소비 자본주의는 이 메카니즘에 의존해서 팽창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자칫 이 소비 욕망의 포로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측면도 보아야 한다. 점점 증가하는 소비 활동 속에 우리의 눈과 귀, 입맛과 취향도 점점 더 까다로워진다. 21세기 소비 자본주의는 오감이 매우 발달한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다.
성찰적 소비의 조건이 마련되는 것이다.
결국 디드로 통일성을 '충동 소비의 포로'가 되는 쪽으로 활용할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심미안과 문화적 격조를 높이는 성찰적 소비로 이어지게 할 것인가는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
이와 같은 디드로의 통일성과 같은 성찰의 패턴이 수필이나 여행수필에서 요구되는 것이다. 회고적 그리움이나 안내 위주의 먼곳 소개로 끝나는 글들은 이미 독자들의 시선을 붙잡아 둘 수 없는 것이다.
(8) 오랫동안 머리에 남는 것.
언제, 어디서, 어디로 갔다는 내용이 잘 나타나 있어야 하고 누구와 무엇을 보고 느꼈는가, 여행의 일정과 가는 도중의 일과 목적지에 도착하여 새롭게 본 것, 느낀 것, 등을 작은 메모수첩에 하나하나 기록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철저하게 기록하는 것 이상으로 좋은 것은 없다. 여행지에서 있었던 일이나 만났던 사람, 새로 알게 된 사실과 지식을 묘사한다. 그리고 느낌이나 생각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계획도 약간 언급하는 것이 여행의 기대와 즐거움을 지연시킨다.
수필은 가식 없는 언어로서 가슴에 직접 와 닿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나친 기교, 뒤틀린 언어, 전제된 우상에 곁따르는 분장도, 고답적인 자기 현시도, 독자를 혼란시키는 연막도 없는 것이어야 한다. 소박한 언어로써 가슴에 우러나오는 진실을 직접 호소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신의 삶과 사랑, 통찰과 아픔을 그대로 보여주면 좋은 것이다.
이것이 수필 창작의 첫 걸음이며 독자의 기억의 심연에 있던 서정과 서사를 자극하여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세상과 삶에 대한 성찰을 통하여 비판정신의 낙낙함도 함께 할 수 있을 때 글의 참다운 사명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버리기”, 생명존중“, ”무소유”, “자연친화”등으로 글을 써오고 계시는 법정스님은 거처를 숨긴 체 강원도의 한 암자에 칩거하며 언론과 세상으로부터 접촉을 끊고 자연 속으로 돌아가 생활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 자연은 “도시문명의 해독제”며 혼자 살면서 투철한 자기 통제 속에서 자신의 영혼을 맑게 건지는 것이다.
1817년 미국의 사상가 소로우가 명문의 하바드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그 화려함을 버리고 자신의 고향, 메사추세츠주 콩코드의 윌든 호숫가로 들어가 한 칸 짜리 통나무집을 짓고 단 하나의 침대와 세 개의 의자를 만들어 살면서 자연 속의 사색과 체험을 소로우의 노래에 쓴 것처럼 자연의 품은 생명과 생성의 근원이다.
“촛불이나 호롱불을 켜놓고 바깥소리를 듣습니다. 허공으로 기러기 날아가는 소리, 짐승들 지나가는 소리가 들립니다. 밤의 고요를 이슥하게 하는 소리들이지요. 도시에는 알 수 없는 소리입니다. 결국은 자신의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다. 새롭게 나를 찾기 위하여 , 또 다른 너를 보고 느끼기 위하여 산 속의 나무 곁에서 자유로운 우주의 숨결, 생명의 에너지를 호흡하며 너 대신 절절하게 나무를 껴안고 사랑과 울분을 삭혀야 하리라
낙타가 십리밖에서 물냄새를 맡듯이 작가는 시대의 변화와 희망을 알리고 이것을 이끌어내는 사람이다. 또한 문학은 대중문화시대에 소금과 같은 역할을 하여 속도의 시대에 “느림의 미학”을 지키는 첨병의 역할을 해야 한다.
인간의 뇌세포를 자극하여 신선한 서정을 회복하는 길이 사람의 행복을 보장하고 청춘을 사는 방법이다. 즐거움과 행복을 이끌어 내는 여행수필의 재미야말로 독자를 머물게 하는 시대의 총아가 될 것이다.
세월의 나이 속에 다양한 정보를 가진 작가들이 테마여행을 통한 삶의 통찰력과 무한한 서정의 하늘과 심원한 계곡의 철학을 펼치는 데는 여행수필만한 장르가 없을 것이다.
(9) 역사적 자료는 정확하게, 그리고 신중하게 인용해야 한다
역사적 인물이나, 역사적 사실을 주제로 글을 쓸 경우에는 사전에 충분한 자료수집을 한 후에 써야한다. 작가 자신의 왜곡된 역사관으로 사실을 오도하는 수필은 글스기의 근본을 흔드는 것이다. 때문에 충분한 역사적인 고찰과 전문가의 자문을 획득하거나 역사적으로 공인된 자료를 활용해야 할 것이다. 한편의 여행 수필을 쓰기 위하여 발품을 많이 팔아야 하고 역사책을 읽는 독서량을 넓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충분하게 여러 가지의 자료를 모으고 현장을 누비고 나서 자료의 취사선택을 하며 자신의 깨달음과 낯설음에 대하여 써야 할 것이다.
(10) 지나치게 흥분하는 것은 여행수필을 과장되게 미화할 뿐이다.
자기가 본 것 아는 것에 대해서 너무 도취해서 써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도 이미 그것을 알고 있을 가능성이 있으며 때로는 지나친 수식어를 동원하여 찬탄함으로써 오히려 유치한 분위기가 될 수 있다. 적절하게 찬탄하고 미화하며 독자들을 내가 깐 곳으로 안내하며 신나게 표현하여 감동의 물결은 “나도 가고 싶다. 가겠다”는 결심을 가지도록 하고 여행수필을 읽은 그대로 “과연 의미 있고 좋다 ”로 가야할 것이다.
(11) 디카수필로 즐기기
정목일은 ‘디카수필은 즉시성, 현장성, 기록성을 바탕으로 하는 수필쓰기이다. 하나의 사물이나 사건, 풍경은 오래 동안 가슴에 담아 우려내는 것이 좋을 수도 있지만, 순간의 진실과 감동은 시간이 지날수록 퇴색되고 굴절되기 때문에 즉시성과 현장성을 부각시키는 디카 수필에서 순수성을 여과 없이 살릴 수 있다. 수필 장르에 속하는 일기문, 기행문, 감상문의 경우는 즉시성과 현장성을 살리는게 효과적이기에 디카수필의 활용도가 많으리라고 본다.’고 했다.
정목일의 말처럼 디카수필은 가장 현장감 있는 수필이 될 수 있다. 사진을 찍고 그 사진에 맞게 글을 쓰는 것, 여행수필에서 제일 먼저 그리고 앞으로 많이 시도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글 위주의 수필에 현장의 칼라 사진을 충분하게 삽입함으로서 독자의 시각적인 흥미를 돋아야 할 것이며 여기에는 출판비의 부담이 높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시대는 사진이 곁들이지 않는 여행 수필은 그 만큼 독자를 유혹할 수 없다. 때문에 디카의 호용성은 기본이 되었다.
6. 여행수필을 잘 쓰기 위한 요점
조사한 내용(사진, 글 가리지 않고 모두다), 통계 자료(가장 최근 것), 간간히 자신의 생각을 조금씩 넣되 내용은 간략하게 하고 백과사전과 인터넷에서 그대로 배껴 쓰는 것 보다는 자신이 직접 많은 자료를 요약하고 다른 것과 섞어서 내용을 풍성하게 하는 것이 좋다.
1. 여행하는 곳에 대한 사전 정보의 입수
2. 여행의 목적과 동기, 교통, 숙박 일정표를 작성한다.
3. 여행하는 도중 얻은 정보(독특한 문화, 음식, 풍속, 언어 등 지방의 특성)나 느 과 특색 을 메모한다.
4. 여행을 다녀와서 여행자료( 새로운 견문과 감상)를 정리한다.
5. 여행 다녀온 뒤의 느낌을 사실성, 문학성, 역사성을 바탕으로 여행수필로 형상화한다.
기행문은 여행 중에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가다듬어 적는 글이다. 여행을 하다보면 그 지방의 풍토와 인정과 산업, 풍속, 명승고적 등을 관찰하며 새로운 경험과 신기한 감흥을 기록한다는 것은 쓰는 사람 자신은 산 지식을 얻게 되고 독자에게도 흥미 있는 경험이 되는 것이다. 기행문은 넓은 의미의 수필에 들지만 여행이라는 특수한 활동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수필과는 다르다. 그러나 이제 기행문의 틀에 얽매여 있을 이유가 없다. 여행을 바탕으로 인생의 관조와 심원한 철학과 사회비판의 발언까지 다양한 실수와 만남의 감격과 역사의 흔적에서 가지게 되는 상상력의 확대는 여행수필이라는 폭을 필요로 한다. 어쩌면 삶 또한 영혼으로의 긴 여행인지도 모른다. 과거에 비해 여행의 기회가 많아진 요즘 여행수필을 써 봄으로써 보다 아름답고 즐거운 여행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