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1차 짐을 싸기로 한 날입니다.
김희호 씨는 면접 이후, 처음 본 날부터 지금까지 “짐 같이 싸야 해!” 하셨습니다. 네, 같이 즐겁게 짐 싸고 싶습니다.
함께하는 시간이 늘면서 “나는 할 줄 모르니까, 다정 학생이 처음부터 다 싸 줘야 해.”의 의미에 가깝게 말씀하십니다.
경계합니다. 김희호 씨의 여행입니다. 김희호 씨가 하는 여행 준비입니다.
충분히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주인 노릇 하기를 바랐습니다.
7월 3일. 다음날, 짐을 싸기로 하였습니다.
“같이 짐 싸야 해!”
“맞아요, 희호 씨. 같이 짐 쌀 거예요. 근데 제가 희호 씨 집에 함부로 들어갈 수 없으니, 희호 씨가 옷 정도는 먼저 싸두셔야 해요. 저랑은 희호 씨가 싸둔 짐을 보면서 더 필요한 것, 놓친 것이 있나 확인만 할 거예요.”
“짐 같이 싸야 해!”
“네, 그럼요. 그런데 희호 씨가 옷은 혼자서도 골라보실 수 있잖아요. 몇몇 옷가지만 먼저 싸두실 수 있어요?”
“학생이 도울 거야, 다정 학생이 같이 해줄 거야.”
이를 여러 번 반복합니다.
결국 옷은 준비하기로 하신 듯합니다.
여행 준비라 하면, 응당 짐을 준비하는 것까지도 설레는 일입니다. 함께 가는 이와 같이, 즐겁게 짐 싸면 얼마나 좋을까. 김희호 씨도, 저도 이를 기대했던 순간입니다. 다만, 지금은 다 해주는 모양새 되는 것을 경계합니다. 김희호 씨가 완전히 할 수 없는 일이라면 도왔을 겁니다.
7월 4일. 오늘, 김희호 씨가 저를 보자마자 옷을 준비해 두었다고 말씀하십니다. 다행입니다. 충분히 혼자 하실 수 있는 영역입니다.
김희호 씨가 “같이 짐 싸야 해!”하십니다.
'설명해 드려야겠다.'
“희호 씨, 제가 희호 씨 짐 싸는 일을 돕는 이유, 같이 하는 이유는 희호 씨가 지금도 충분히 혼자서 짐을 잘 쌀 수 있는데, 나중에 희호 씨가 또 여행하게 되면 어려움 없이, 혼자서도 잘 준비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예요. 희호 씨 이렇게 짐 혼자 싸보는 것 처음이잖아요?”
“응.”
“그래서 헤매거나 모를 수 있어요. 당연한 거예요. 저도 처음 혼자 짐 쌀 때는 뭐가 뭔지 몰라서 헤맸어요. 그런데 희호 씨 지금 옷 혼자 준비해 두셨잖아요?”
“응.”
“네, 희호 씨 충분히 혼자 잘할 수 있는데, 여행 장소도 처음이고, 뭐가 더 필요한지 헷갈릴 수 있잖아요. 그래서 알려드리려고 함께하는 겁니다.”
“....”
이미 자기 옷을 준비하셨습니다. 주인 노릇 할 수 있고, 주인 노릇 하셨습니다. “같이 하자.”의 의미가 바뀌었는데. 여전히 같은 의미로 말씀하신다는 생각에 김희호 씨의 마음을 잘 살피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함부로 판단했습니다. 김희호 씨의 역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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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옷 사러 가?”
“네, 맞아요. 내일 잠옷 사러 갑니다.”
“이** 선생님이 말했어?”
“이** 선생님이 말하지 않아도, 희호 씨가 말해주셔서 알아요. 희호 씨가 저를 본 첫날부터(저번주 목요일부터) 짐 싸야 한다고,
양어머니 잠옷 사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잖아요?”
웃으며 “응” 하십니다.
“희호 씨가 말해줘서 안 겁니다.”
미소 지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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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같이 싸야 해.”
“희호 씨, 희호 씨 집이기도 하고, 다른 분들의 집이기도 해서 제가 함부로 들어갈 수 없어요. 그러면 희호 씨가 같이 사는 OO씨, OO씨에게 이다정 학생이 집에 들어가도 되는지 물어봐 주실 수 있어요? 허락받아 주실 수 있어요?”
“응, 물어볼게, 허락받아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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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이후, 찾아오셨습니다.
“언니들이 허락했어.”
“그래요? 감사하다. 제가 한 번 더 말씀드릴게요.”
김희호 씨네 초대받았습니다. 김희호 씨와 방을 함께 쓰는* 분들은 김희호 씨가 다온빌에 온 첫날 소개해 주셨습니다. 매번 인사 나누어 저를 알고 계십니다. 선뜻 허락해 주셨습니다.
문 앞에서 ‘똑똑’ 노크하며 “저 들어가도 되나요?”라고 여쭤봅니다.
활짝 웃으며 제 손을 잡고 방 안으로 데려가는 김희호 씨. 어서 오라는 듯 반기는 ㅇㅇ씨, ㅁㅁ 씨, ㅎㅎ 씨에게 감사했습니다.
김희호 씨와 짐을 쌉니다. 준비한 옷 보여주실 수 있냐 여쭈니, 꺼내어 보여주십니다. 여벌 옷과 수건 챙겨두셨습니다.
“희호 씨, 옷 어떤 거 준비한 거예요?”
한 벌, 두 벌 보여주십니다. 이를 시작으로 여행 준비물 리스트를 작성해 봅니다.
“희호 씨, 여행 갈 때 뭐 가져갈 거예요? 뭐 가져가고 싶으세요?”
“색칠 공부 책.”
“좋아요, 이건 (스케치북에) 무슨 색으로 그릴까요?”
“보라색”
“희호 씨 또 뭐 가져갈까요? 뭐 필요할까요?”
여행 일정을 담은 스케치북, 샴푸, 치약, 칫솔, 물(로션), 양말, 여보세요? 핸드폰, 이이잉 드라이기....
모두 김희호 씨가 직접 말하고, 김희호 씨와 같이 방 쓰는 언니들이 짚어주셨습니다.
“버스카드 챙겨야 해.”
“헐, 맞다. 잊고 있었어요. 또 어떤 거 챙겨야 하죠?”
“충전기 챙겨야 해.”
제가 까먹고 있던 부분까지 김희호 씨가 말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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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박 3일은 족히 입을 만큼의 옷을 챙기려 하십니다. 이에 설명해 드립니다.
“희호 씨, 옷 너무 많이 챙기면 무거워서 걷기 힘들어요. 첫째 날은 희호 씨가 입고 있을 거고, 다음 날 하루 입을 옷이랑 잠옷만 챙기면 돼요.”
“....” 원치 않으신다.
“희호 씨, 우리 엄청 걸어야 할 텐데요. 양어머니도 희호 씨랑 산책하고 싶어 하는데요. 무거우면 오래 걷기 힘들어요.”
“.... 아니야.”
“희호 씨, 무거워도 참을 수 있어요? 그때 가면 무거워도, 각자 짐이 있어서 들어달라 할 수 없어요. 양어머니한테 들어달라 안 하실 거죠?”
“응.”
자신만만하십니다.
“희호 씨, 벌써 가방이 가득 찼어요. 그런데 우리 앞으로 더 넣어야 할 물건이 이것도 있고, 저것도 있는데 괜찮겠어요?”
스케치북, 색칠공부 책, 필통. 모두 욱여 집어넣으십니다.
“희호 씨, 잠옷도 희호 씨가 양어머니랑 희호 씨 것 사가기로 했잖아요? 여행 가서 입으실 거죠?”
“응.”
“그러면 굳이 이 잠옷도 안 가져가도 괜찮아요.”
그러자 잠옷을 빼냅니다.
같이 방에 있던 언니들도 거든다. “희호야, 덜어내.”
하나둘씩 빼냅니다. 검은색 바지만 남겨두고.
“희호야, 검정 바지 더워. 빼내.” 라고 옆에 있던 ㅁㅁ 씨가 말합니다.
이것만큼은 지켜내고 싶으신가 봅니다.
“이거 희호 씨가 좋아하는 옷이죠? ㅁㅁ씨, 괜찮을 것 같아요, 희호 씨가 더워도 알아서 할 거예요.”
ㅁㅁ씨가 이해해 주십니다. 권하는 것을 멈추십니다.
옷을 많이 빼내어 가방 안이 널널해졌습니다.
“희호 씨, 샴푸 옮길 작은 통 있어요?”
“....”
“희호 씨, 없으면 빌리거나, 살까요?”
“사야 해.”
이내 “ㅇㅇ언니 빌려줘.”라고도 하십니다.
김희호 씨와 필요한 짐을 그림으로 정리하였습니다.
당장 내일 떠날 것이 아니기에, 칫솔, 샴푸 등 출발 직전까지 써야 할 짐들도 한 번 더 확인합니다.
2024년 7월 4일 목요일, 이다정
*가구시설 입주자는 대개 남남이라 각각 다른 가구입니다. 독채를 쓸 형편이 아니어서 방만 따로 쓰거나 그마저 어려우면 방도 다른 사람과 함께 쓰는데 그렇다고 한 가구는 아닙니다. 이러므로 입주자마다 각각 독립가구로서 독립생활하게 돕습니다.
『복지요결』시설사회사업, '2. 가구' 발췌
첫댓글 희호 씨와 다정 학생이 여행을 계획하고 같이 준비 하는 모습을 보는 직원도 설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