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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밤은 안녕하신가
이 홍사
그대의 밤은 안녕하신가?
시대가 변해서 밤마다 광견狂犬의 무리들이 첨벙첨벙 얼어붙는 강을 건너와 컹컹, 짖으며 골목을 휘젓고 다니니, 이 밤 그대의 안부를 묻는 것이로다. 아직도 창밖은 칠흑인데 먼저 깨어나니 그대 안부가 지극히 궁금하도다. 동지가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밤은 유난히 길고 밖은 영하의 날씨로 칼날같이 싸늘하도다. 모든 것이 얼어붙었고 우리의 새벽조차도 얼어붙었노라. 이 글을 쓰는 시린 손가락을 입김으로 녹이며 그대의 안부를 주문처럼 외우노니 그대! 이 밤, 부디 강녕하시라.
D에게 보낸 메일의 첫머리다.
자다가 일어나서 뜬금없이 보낸 메일이었다. D는 어제저녁에 만나 저녁을 같이 먹었는데 몇 시간 후에 메일을 보낸 것이었다. 비록 어제저녁에 만나 술추렴을 했지만 메일을 쓰는 순간에는 본 지가 한두 달은 넘은 것 같이 아득했다. 메일 내용은 특별한 게 없었다.
첫머리에 그렇게 적고 그 아래에 달아서 뭔가를 적었는데 무엇을 적었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마도 소동파의 능청스러운 시를 덧붙였지 싶다.
화주의 소가 여물을 먹었는데 익주의 말이 배가 터졌다.
천하명의를 찾아서 돼지의 왼쪽어깨에 뜸을 뜨게 하라.
뭐 이런 시를 덧붙였지 싶은데 기억이 정확하다고 장담하지 못하겠다. 메일에 광견이라고 한 것은 지금 정권을 잡고 흔들고 있는 주사파의 무리라는 걸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D는 알 것이다. 메일을 쓸 적에는 그의 안부가 지극히 궁금했으나 지금 생각하니 괜한 메일을 보내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든 게 아닌지 염려가 된다. 메일을 쓰던 지난밤에는 찬란하고 맑은 아침은 영영 올 것 같지가 않은 아득한 기분이었고 세상이 요절날 것만 같았다.
D는 조각가다.
그의 말마따나 가난한 길의 선택이었다.
조각가로서 전업 작가의 길을 묵묵히 가고 있다는 것은.
작금의 한국사회에선 그렇다. 잘 나가는 작가 몇몇을 제외하고는 전업 작가란 허울만 좋지, 경제적으로 험난한 가시밭길이다. 그러나 D는 쓰다달다 내색 없이 천직인양 그 길을 묵묵히 가고 있다. 어떨 때 보면 참으로 안쓰럽고 무엇이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는 나랑 같은 동네에 살고 있어 누구보다 잘 안다. D의 작업실은 우리 사무실에서 걸어서 십 분 남짓한 거리에 있고 집은 반대방향으로 십 분 남짓한 거리에 있는 서민아파트단지이니 어디를 보나 이웃이다. 그렇다고 자주 만나는 것이 아니다. 하릴없이 커피를 마시러 찾아가면, 나야 시간을 때우기에 그만이지만 그의 작업에 방해가 되고 아까운 시간을 빼앗기에 가능한 한 눈치를 보고 전화를 하고, 불쑥 가고 싶지만 자제를 하고 있다.
그의 작업실에 가면 언제 들러도 새로운 볼거리가 있다. 늘 새로 굽고, 다듬고, 깎으니 뭐가 있어도 새로운 게 있다. 어쩌다 가면 커피를 마시며 새로운 작품에 대해서 얘기를 잠깐하고 아쉬움을 뒤로 한다. 그의 시간을 빼앗는 게 죄스럽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D에게 사사로운 감정으로 메일을 보내기는 처음이다.
어제저녁에 만나서 술을 한잔 했는데 메일을 보낸 건 쓸데없는 짓이 아닌지 모르겠다. 괜스레 그의 정서만 잔뜩 흔들어 놓는 게 아닐는지, 다소 염려스러웠다.
어제저녁은 D를 만나 저녁을 먹으며 반주로 술을 한잔했다. 조금 취한 그는 차를 가져가지 않고 우리 사무실 앞 골목에 세워두고 걸어갔는데 아직까지 골목에 차가 서 있다. 어제는 내가 술을 한잔 사야할 명분이 분명히 있었다.
D가 개인전을 한 건 내가 미얀마에 출장을 가고 난 다음이었다. 두 달을 넘게 머물다 일주일 전에 돌아왔는데 그 사이에 개인전을 한 것이다. 장소는 다른 갤러리가 아니라 자신의 작업실에서 한 것이었다. 그로서는 개인전이 다섯 번째인가 여섯 번째였는데 참석하지 못한 것이 죄스럽게 여겨져 귀국하자마자 찾아갔었다. 가면서 무슨 선물을 할까 고민하다가 미얀마에서 사온 약사여래보살상을 안고 갔었다. 브론즈로 된 조각품이었는데 묵직한 게 한 아름되는 것을 안고 갔었다
실수는 거기에서 비롯되었다.
생각이 짧았던 것이었다.
축하한다며 약사여래보살상을 작업대에 올려놓고 커피를 마셨다. 커피를 마시면서 들어보니 개인전은 성황리에 마쳤다고 했다. 작업실에서 전시를 했는데 반응은 서울 인사동 갤러리에서 한 것보다 실속이 있었다고 했다. 그 다음 주제는 약사여래보살상이었다. 너무 헐하게 샀다는 것이었다. 균형미와 색깔이 작품성으로 따지면 잘 나왔는데 재료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격으로 샀다고 했다. 나는 재료비는 생각도 못했고 재료비가 얼마나 들어가는지 모르지만 D가 만져보고 두드려보고 내린 결론이었다. 관점에 차이가 있다면 나는 약사여래보살상을 종교적 의미를 두고 보았고 D는 작품으로 보고 있었다. 그걸 얘기하다가 짬뽕을 시켜 점심으로 때웠다. 짬뽕을 먹다가 내가 소주가 있느냐고 물었고 D가 냉장고를 뒤져 소주를 꺼냈다. 짬뽕국물을 안주삼아 소주를 종이컵으로 두 잔씩 나눠마셨다. D의 작업실에 가면 좋은 점이 담배를 마음대로 피울 수가 있다는 점이다.
짬뽕으로 간단히 점심을 때우고 한참을 정치판을 두고 노닥거리다가 왔다. 노닥거린 게 아니었다. 피를 토하도록 험담을 하다가 온 것이다. 공통점은 이대로 가면 한국은 경제로 보나, 안보로 따지나 대공황을 넘어 패망할 수밖에 없는 형국이 되겠다는데 입을 모았다. D도 이 정권을 싫어하는 극단적인 보수성향의 이념을 지니고 있었다. 말을 해보니 상당히 부정적이었다. 국민들이 배가 불러서 그렇다며 배를 곯아보아야 한다는 말까지 울분과 함께 토해냈다. 광견의 이야기는 거기서 나왔다. D가 먼저 주사파의 무리들을 보고 미친개라고 했다.
내가 그 말이 적확한 비유라고 맞장구를 쳤다.
한참을 정치판에 대해서 떠들다가 시간을 너무 빼앗았다며 자리를 틀자 D가 약사여래보살상을 가져가지 않느냐고 물었고 나는 선물이라고 하지 않고 두고 싫증이 날 때까지 보라고 하고는 나왔다. 뒤늦게 봉투를 내밀기는 면구스러워 전시회 기념선물로 간주했다. 그때 D의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았던가? 두고 오는데 뭔지 모르게 마음이 찜찜했다.
사무실에 와서 가만히 되짚어보니 조각가의 개인전에 약사여래보살상을 선물했으니 꽃꽂이 전시회에 화환을 보낸 거나 다름 아니었다. 아차! 실수했구나. 더군다나 D는 성당에 다닌다. 성당에 다니는 조각가에게 약사여래보살상을 조각품으로 선물을 했으니 그런 실수가 없는 것이었다.
오후 내내 마음이 찜찜했다.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무덤덤하게 생각하려고 했지만 성격상 그게 되질 않는다.
그래서 다음날 저녁 답에 조심스레 전화를 넣어서 D에게 시간이 어떠냐고 묻고 시간이 괜찮다는 답을 받고 한잔하자고 먼저 제의를 했었다. D가 약속시간에 맞추어 우리 사무실로 왔었다. 사무실에서 간단하게 차를 한잔 마시고 바로 옆에 있는 돼지찌게를 칼칼하게 하는 집으로 갔다.
식당에 마주 앉자 말자 소주병을 따며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꽃꽂이 전시회에 화한을 보내 미안하다고 서두를 꺼냈다. D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 하는 눈치였다. 그렇게 어리둥절 하는 사이에 약사여래보살상은 다시 내가 가져오겠노라고 선언했다.
-왜요? 그 브론즈 선물로 주신 거 아닙니까? 잘 모시라고?
D의 액션이 과장스럽게 커 보이고 놀라는 투로 말했다. 이미 감을 잡고 있었다는 얘기다.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어요. 꽃꽂이 전시회에 화환을 보냈으니.......
-하하하. 좀 의아스럽게 생각했던 건 사실입니다.
그 말에 내가 대답은 않고 소주잔을 들어보였다. 돼지찌게가 익기 전이었다. D는 호탕하게 내가 들고 있는 잔에 잔을 살짝 들이밀었다. 둘은 단번에 소주를 털어 넣고 밑반찬으로 나온 콩나물을 안주로 삼았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이런 실수는 하지 말아야하는데.......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잊어버리세요. 그럴 수도 있는 거지.
-조각가에게 타인의 조각품을 선물하는 건 괜찮다고 치더라도 성당에 다니시잖아요? 종교적인 측면을 보았을 때 대단한 실수를 한 거지요.
-성당에는 나일론 신자인데요. 뭐! 잊어버리세요.
D가 김이 나는 돼지찌게를 뒤적이며 대수롭잖게 잊어버리라고 했다.
-예! 내일 그 약사여래보살은 제가 찾아오는 걸로 하고 잊어버립시다. 잊어버리는 게 편하지요. 그런데 분명 본의는 아니었습니다.
-예. 알고 있습니다. 그 마음만 정중하게 받겠습니다.
얘기는 거기까지였다. 이틀 동안 낑낑거리던 마음의 숙제는 풀었다.
그 다음 이야기는 망각이었다. D가 먼저 망각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잊어버리는 게 편하다는 것이었다. 나와는 조금 상반된 견해였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다 기억하고 있으면 사람이 엄청 불편할 거라고 했다. 나는 무엇이든 잊어버리는 게 안타깝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D의 말을 들어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모양이다.
혀에 감기는 시가 있으면 나는 잊지 않으려고 서너 번 읽고 적어가며 외운다. 그러나 언젠가는 잊어지고 만다. 그게 나는 안타깝다고 하니 D는 자연적인 현상이라고 대수롭잖게 말했다. 그걸 다 외우고 있으면 머리가 복잡해서 살지 못한다고 D가 일축했다.
시 뿐만 아니라 내가 알고 있는 무엇이든 잊어진다는 생각을 하면 초조해진다. 누가 먼저 죽을지는 모르지만 나 또한 D로 하여금 잊어지는 대상이 된다. 이건 초조함을 지나 실로 무서운 일이다. 내가 잊어지다니.
망각은 무서운 거다. 망각의 뒤안길은 어두침침하고 소름이 끼치는 깊은 협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희대의 거대한 사건도 시간이 지나면 망각의 뒤안길로 사라져 협곡에 묻히게 된다. 희대의 거대한 사건이라고 하니 대뜸 난징 대학살사건이 떠올랐다. 난징 대학살사건은 인류가 치를 떨 만행이었다. 한 세기도 지나지 않았는데 인류의 기억에서 잊어져가고 있다. 학살당한 인원을 파악할 수조차 없는 사건이었다. 삼십만 명이라고 했다가 그 이상이 되기도 한단다. 삼십만 명이면 당시에 한국의 어지간한 중소도시의 시민과 맞먹는 인원이었으리라.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마구잡이 학살이었고 학살방법 또한 잔인하기 그지없었다. 그걸 다 열거하는 행위, 그것조차도 잔인한 짓이다.
1937년 중일전쟁 시절이었다. 제국주의 일본. 그들은 왜 그런 만행을 저질렀을까? 무엇을 얻기 위해서?
그 답은 아직까지 역사가 찾지 못하고 있다.
-중국 난징(南京)에 가서 일제 야마하나 쏘니 대리점을 차리면 어떨까요?
뜬금없는 생각을 D에게 물었다.
뜬금없는 말이지만 만약 그렇게 한다면 성공할 수가 있을까? 역사를 모르면 그런 무모한 짓을 도모할 수도 있는 일이다. 아니, 역사를 알아도 일본인은 그런 일을 도모할 수 있는 민족이 분명하다. 어쩌면 이미 그런 업체가 생겨 성업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말까지 했다.
D의 대답은 심드렁했다.
-설령 지금 차린다고 하더라도 성공은 장담할 수 없어도 한두 대쯤이야 팔리지 않겠어요?
-한두 대가 팔린다? 이게 얼마나 무서운 일이냐는 말입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망각은 무서운 거죠.
-그렇게 생각하니 망각은 참으로 편한 거죠. 그걸 잊지 않고 보복하려고 하면 세계평화는 결코 존재하지 않아요.
D는 세계평화를 들먹였다. 그 때가 소주 두 병을 비우고난 뒤였다.
언제나 그렇지만 술을 마시다가 주제를 꺼내면 그 주제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법이다. 어제저녁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약사여래보살상이 소주 두 병을 비우는 사이에 어째 난징학살사건으로 이어졌을까? 그렇게 얘기가 흘러간 걸 역으로 추적해도 설명할 길이 없다. 그 망각에 대해서 서로의 견해를 장황하게 피력하다가 결국은 정치판 얘기가 안주로 등장했다.
요즘 어디를 가나 술을 마시면 마지막엔 경제 이야기가 나오게 되어 있다. 정치와 경제는 항상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 이 정권이 들어오고부터 한국경제에 적신호가 내렸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 정권이 들어서서 한국경제를 말아먹는데 임기기간인 오 년이 걸릴 줄 알았는데 속도가 예상보다 훨씬 빠르다고 했고, 멀리 볼 것도 없이 바로 구미역 앞의 흥청대던 불야성의 상가에 빈 점포가 속출하고 있다는 말을 했다. 망각을 얘기할 적에는 서로 다른 견해를 보였는데 정치판을 얘기하니 이념이나 뜻이 자연스럽게 한 곳에 모아졌다.
D는 거침없이 미친개들의 무리라고 지칭했다. 맹목적인 친북좌파성향에 대해 토로했다. D가 먼저 미친개라고 부르니 입이 근질근질하던 내 속이 다 시원했다. D는 추락하는 경제를 얘기하다가 안보에 대해서 얘기했다. 어떤 루트를 통했는지 안보에 대해서는 나보다 훨씬 많이 알고 이야기를 끌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의 말을 자르지 않고 술잔을 채워주며 묵묵히 듣고 있었다.
이 정부가 왜 탈脫원전을 외치느냐?
그는 그 답을 나름대로 정리하고 있었다.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서 멀쩡한 원전을 없애려고 하느냐? 그건 다 속셈이 있다는 것이다. 북은 핵보유국으로 미국으로부터 인정받을 수밖에 없다. 더 이상 기술개발을 하지 않고 실험이 필요 없는, I.C.B.M 즉, 미국 본토까지 날아가지 않는 중거리 핵까지는 보유한다는 조건으로 핵보유국으로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는다.
나는 I.C.B.M.이 무슨 뜻의 이니셜인지 궁금했지만 묻지 못했다. D는 틈틈이 잔을 들이키며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주한미군을 철수한다. 저렇게 주한미군 철수를 외치고 방위비 분담금에 대해 말이 많으니 철수할 수밖에 없다. 미국도 자국의 이익을 생각하는 나라다.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면 남북의 군사력에 있어서 무기의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안에 고려연방제라는 이름으로 통일이 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위협을 느낀, 작전권을 이양 받은 다음 정권에서 미국의 간섭이 없이 우리도 핵을 개발하겠다는 의지를 보일 것이다. 그때 가장 필요한 것이 원전에서 나오는 플루토늄이다. 플루토늄을 없애고 핵개발의지의 싹을 싹둑 자르기 위해 방사능 누출과 오염을 빙자해서 원전을 미리 없애겠다는 친북좌파가 아니고 종북좌빨인 이 정권 수장의 치밀한 계략이라고 D는 설명했다.
듣고 보니 D는 이 정권에 대해서 앞뒤 분석을 상당히 많이 했고 나름대로 설득력을 지닌 말이었다. 그의 말을 들으며 어수선한 난국을 생각하고 다음 총선에는 여소야대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첫째 목표라고 생각했다. 내가 여소야대로 본때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을 하니 D는 다음 총선이 일 년이나 남았는데 그때까지 대한민국의 체제가 유지되고 있을지 걱정이라고 했다. 그 정도인가? 생각하니 지금 추락하는 속도로 보면 과장된 말은 결코 아니었다.
그 다음 안주는 언론의 편파보도라는 것이었다.
그것도 안주로 씹을 만했다.
이 정권에서는 가짜뉴스를 잡으라고 외치고 있지만 진정 가짜뉴스를 양산하는 곳은 공중파 삼사라고 했다. 정작 진짜뉴스를 하는 곳이 유튜브라고 하면서 유튜브를 보느냐고 나에게 물었다.
-유튜브? 보지 않는데?
-내가 오늘부터 날려줄게요. 좀 보세요. 국민이 깨어나야 합니다.
D의 말은 강단이 있었다. 국내정세 돌아가는 것을 파악하기엔 미얀마에 너무 오래 머물렀었던 모양이다. D에 비해 아는 게 없었다.
-어제 광화문 광장에서 해병대 전우회에서 대규모 집회를 했어요. 알고 있나요?
D가 물었다. 금시초문이라고 하자 그렇게 많은 군중이 집회를 했는데 신문이나 텔레비전에 한 꼭지도 나오지 않는 게 요즘 뉴스매체라고 하면서 유튜브를 꼭 보아야 한다고 D는 거품을 물었다. 그의 말을 들으며 나는 좌파인가 우파인가를 생각하니 아리송했다. 되지도 않은 잡문을 쓴다고 껍죽거리며 민족문학 작가회의에 가입을 해서 이름을 얹어놓고 있으니 좌파다. 무엇을 알고 그랬나? 그 물음에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다. 진보라는 이름이 지식인의 집단처럼 보여 그쪽에 가입을 했다. 지역의 예총이나 문협에 나가보면 고리타분한 노인들만 있어서 가입하라는 권유를 뿌리치고 민족문학 작가회의에 가입을 한 것이다. 순전히 이름이 그럴 듯해서 맹목적으로 가입을 했지만 어떤 행사에도 나가지 않고 있다. 맹목적진 좌파성향이라고 D가 지칭할 적에는 꼭 나를 두고 하는 말 같아서 가슴이 섬뜩했다.
D는 술잔을 밀쳐두고 휴대폰을 꺼내 한참을 주물럭거렸다.
-술 마시다가 뭐하는 거요?
내가 핀잔을 주자 D는 휴대폰에서 눈길을 떼지 않고 말했다.
-잠깐만요. 됐어요.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내 외투주머니의 휴대폰에서 카톡! 하면서 알림소리가 울렸다. 내가 휴대폰을 꺼내니 D는 자신이 보낸 카톡의 유튜브라면서 집에 가서 보라고 하며 한번 보기 시작하면 눈길을 못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술판이 어지간히 끝나가고 있었다. 슬슬 지겹고 담배가 피우고 싶어졌다. 허나 소주가 반병이나 남아있었다. 식었지만 찌개안주도 남아있었고.
-술 더 하시겠어요?
내가 먼저 물었다.
-이것만 하고 그만하죠. 나는 어지간한데.
빨리 가자는 말로 들렸는지 D가 소주병을 들어 보이며 대답했다. 헤어보니 탁자위에는 남아있는 병까지 합치면 소주병이 다섯이었다. 나도 술이 어지간했다.
-이 선생! 진보와 좌파를 엄격하게 구분할 수 있어요?
대답을 기다리고 던지는 질문인 것 같지 않아서 식은 찌개에 물을 조금 붓고 렌지를 돌려 안주를 데우며 심드렁하게 뱉었다.
-그 말이 그 말 아닌가요?
-아닙니다. 진보와 좌파를 엄격히 구분하자면.......
말을 거기까지 하고는 반 남은 소주를 털어 넣고는 안주를 집을 생각도 없이 말을 이었다.
진보와 좌파가 같은 의미로 들리지만 큰 차이가 있다고 했다. 진보는 지금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바탕으로 조금 방향을 틀어 다른 방향으로 발전하자는 것이고, 좌파는 이 체제를 부정하고 이념자체를 바꾸어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가 아닌 공산주의 이념을 바탕으로 하자는 것이라고 정의를 내려주었다. 듣고 보니 옳은 말이었다. 보수 우파는 그 반대의 의미라고 생각하면 된단다.
-좌빨이라는 흔히 쓰는 말이 있지요. 그건 좌파의 빨갱이를 줄인 말입니다.
D가 자신의 말에 못을 박았다.
-이 정권이 완전히 좌빨이지요.
-그 정도로 심각한가요?
-이 선생은 미얀마에 너무 오래 있었어요. 일 년에 반 이상은 미얀마에서 살지요?
그런 셈이다. 일 년에 미얀마에서 머무는 시간이 반 이상이다. 국내 정치에는 관심도 없을뿐더러 알고 싶지도 않은 게 사실이다. D는 미국이 원하는 방위비 타협이 깨지고 미군이 철수를 하거나 감축을 시작하면 바로 미얀마로 이민을 가라고 D는 농담처럼 말했다. 미군이 철수하고 나면 일 년 이내에 전쟁이 난다는 것이다. 역사를 뒤지면 모두가 그랬다는 것이다. 월남도 미군이 철수하고 일 년 이내에 월남전이 일어났고 또 기억에 나지 않지만 다른 나라들도 그랬다고 했다. 전쟁이 나면 무장을 해제한 우리가 북을 이길 수가 없다는 점을 조목조목 비교하며 강조했다.
드디어 술병이 다 비었다.
-나가서 담배를 피우며 얘기하죠.
흡연욕구가 강한 내가 후딱 계산을 하고 가게 밖으로 나왔다.
가게 밖 마당에는 담배를 피울 수 있도록 플라스틱의자가 놓여 있었고 큼직한 식용유깡통을 재떨이로 놓아두었다. 바깥날씨는 포근했고 술을 취하지 않았다.
그곳에서 담배를 피우며 D는 수꼴에 대해서 얘기했다. 보수의 수구꼴통을 줄임말인데 좌파에서 무식한 부류라고 비아냥거리는 투로 수꼴이라고 한다고 했다. 외국을 들락거리며 정치에는 관심이 없지만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D의 말을 자르지 않고 묵묵히 듣고 있었다. 이제는 수꼴들이 일어나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자고 일어나면 서울이 점령되어 통제 불능의 상태가 될 날이 멀지 않다고 했다. 어느 쪽으로 미루어 짐작을 해도 자유대한민국으로 통일이 되기는 어렵다고 했다.
-밤새 안녕하십니까? 이렇게 물을 날도 멀지 않았습니다.
미국과의 방위비 분담금 타협은 이 정권이 미군 철수하라고 일부러 미루는 것이 아닐까? D는 의심했다. 방위비 분담금을 내면 미국이 그 돈을 미국 본토로 가져가지 않는다. 미국이 요구하는 방위비 분담금은 한국에 미군이 주둔하는데 드는 비용의 고작 60% 밖에 되질 않는다. 그 돈은 미군부대의 한국인 군무원 월급을 주고 시설관리 하고 유지보수 하는데 들어가는 경비이니 한국사회에 다시 풀리는 것이다. 일자리 창출한다고 수십조를 쏟아 붓는 이 정권이 일자리를 유지시키기 위해서 드는 비용이라고 생각하면 밀고 당기는 그 차액정도야 푼돈에 불과한 것이다. 헌데 그 푼돈을 가지고 질질 끌고 있는 이 정권은 미군철수를 원하거나 일부러 미국의 염장을 질러 스스로 철수를 종용하는 행위에 불과한 것이다.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는 이상 우리는 자주국방 능력이 없는 것이다. 더구나 한국군은 완전히 무장해제를 해서 당나라군대가 되었다. 발가벗고 누워 날 잡아 잡수시오. 하는 꼴이 다름 아니라고 D는 핏대를 세웠다. 철조망 다 잘라주고 지뢰를 제거하고 한강하구 수심을 조사해서 수륙 양쪽으로 북한군이 쉽게 넘어올 수 있도록 길을 터주었고 이젠 북한군이 넘어와도 선조치 후보고가 어렵다는 것이다. 총을 쏠까요? 물어보고 총알을 장전하는 체계가 형성된 것이다. 국방백서에도 북한군이 주적이라는 항목을 뺐으니 우리 군의 적은 무엇인지 왜 군복을 입고 생활을 해야 하는지 군인들이 아리송하고 몽롱한 상태로 만들어 훈련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미얀마에 지은 집을 팔아서 돈을 가지고 들어올 생각을 일단 보류하고 미군이 철수하는 시점을 보고 챙길 것이 있으면 더 챙겨서 미얀마로 건너가는 게 나을 거라고 했다. 미군이 철수하면 자유는 더 이상 없고 노조는 고사하고 배급제가 될 것이 분명하노라고 했다.
나는 담배를 물고 핏대를 세우는 D의 말을 들으며 엉뚱하게도 장녹수를 떠올렸다. 연산군에게 각별한 모정과 함께 사랑을 부여한 장녹수, 연산군을 그렇게 포악한 인물이 되도록 뒤에서 조정하며 권력을 쥐고 흔든 장녹수, 이 정권은 정말 솜사탕과 철퇴를 양손에 쥔 장녹수가 아닌가? 순수한 성격의 소유자 D를 이렇게 핏대를 세우도록 만드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장녹수를 생각하다가 또 떠올린 인물이 있다. 안일양! 이육사를 짝사랑한 안일양, 아니 안일양은 이육사의 아내이고, 거 누구지? 신식교육을 받은 소설가 노윤희, 그렇지 노윤희가 맞다. 육사를 짝사랑하다가 뜻대로 되지 않자 이념을 바꾸어 친일문학가로 전락한 노윤희! 사랑에 배신을 당했다는 이유로 나라를 버린 노윤희를 생각했다.
서릿발 칼날진 그 우에 서다. 어데다 무릎을 굻어야 하나? 한발 재껴 디딜 곳조차 없다.
노윤희를 생각하니 육사의 절정 한 구절이 혀 밑을 돌아서 나갔고 우리는 더 이상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이 아니라 서릿발 위에 서있다는 생각이 압도했다.
헌법에서 자유를 삭제했다. 자유를 빼앗긴 것이다. 국민은 주사파가 잡은 정부로부터 자유를 박탈당했음과 다름이 아니다.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정말 일찌감치 미얀마로 떠날까?
D의 말을 들으며 그런 생각을 잠깐 했다.
둘이서 입이 쓰도록 줄담배를 피우고 좌빨에 대해서 불만을 토로하다가 헤어졌다. D는 차를 내일 가져가겠다고 하고는 집이 있는 골목으로 걸어갔다. 가로등 밑으로 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니 걸음걸이가 조금 흔들렸던가. 나는 취하지 않고 오히려 정신이 말짱했다.
집에 와서 D가 보낸 준 카톡을 열어 유튜브를 보았다.
유튜브의 언론 매체도 여러 가지다. 이름만대면 다 알 수 있는 사람들이 마이크를 잡고 있었다. 이것저것 맛 뵈기로 조금씩 보았다.
태극기 부대가 연일 광화문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대규모의 집회인데 정규방송 뉴스나 신문에는 한 꼭지도 나오질 않는다. 나는 새삼스레 놀랐다. 유튜브에는 전혀 다른 뉴스들이 가득했다. 밤새 보아도 다 보지 못할 양의 방송이 계속 달아서 올라왔다. 대충 훑어보니 전부가 우파의 방송들이다. 현제의 주사파 정부를 비난하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내가 몰랐던 것을 한꺼번에 너무 많이 알아버렸다.
그걸 좀 보고 있으니 술을 마셨지만 정신은 초롱같았다.
잠은 오지 않고 그걸 보며 조목조목 짚어보니 틀린 말을 하는 방송은 하나도 없었다. 지극히 논리적이고 맞는 말이다. 좌파 정권 이 년 만에 바뀌어도 너무 많이 바뀌었다. 경제는 논리에 맞지 않는 정책으로 추락하고 안보는 내가 어림짐작했던 것 보다 훨씬 많이 무너졌다. 이걸 보고 가짜뉴스라면서 단속하라고 한단다.
방위비분담금이 타협되지 않으면 미군을 철수를 하거나 감축한다. 그걸 묵과하지 못한 예비역 장성들이 조국 수호를 위해 단체를 만들고 모였다. 유래 없는 일이다. 사태가 긴박하게 돌아간다는 얘기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지금 해외여행이 자유로울 때 챙겨서 떠날까?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니 해외여행이 통제되어 있는 경우가 생길지도 모를 일이다. 그거 심각하게 생각해볼 문제다. 그런 생각을 하며 조그만 휴대폰 화면의 유튜브를 보고 있으니 눈이 아렸다.
그런 심각하고 중대한 사안은 시간을 두고 생각하자.
유튜브를 종료시키고 불을 끄고 누웠다.
누웠지만 금세 잠이 들지 못하고 뒤척였다. 꿈을 꾸었던가? 가수면 상태로 두어 시간이 지나 일어나니 정신이 초롱같았다.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일어나 잠옷에 외투를 걸치고 사무실로 내려왔다. 인터넷을 켜고 뒤지니 유튜브에서 보았던 그런 뉴스는 한 꼭지도 나오지 않았다. 무슨 체육회 성추행 사건이 인터넷에 도배되어 있었다. 유튜브와는 전혀 다른 세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D의 말마따나 좌빨은 언론을 어지간히 장악하고 있는 모양이다.
밖은 너무나 조용했다. 너무 조용해서 오히려 불안했다. 어쩌면 서울은 이미 적에게 장악되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적이라고 표현하면 그것도 잘못된 말이다. 국방백서에서 주적이 북한이라는 말을 삭제했단다. D의 말마따나 좌빨정권 이 년 만에 바뀐 게 너무 많다.
갑자기 D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무사히 집에 돌아갔을까?
잘 자고 있을까?
자고나서 세상이 바뀌어 있으면 어떻게 하지?
전화를 해볼까? 아니다. 이 시간에 전화를 하다니? 내일 안부를 물어보지. 그렇게 생각하다가 메일쓰기를 클릭했다. 다행히 D의 메일주소는 주소록에 있었다.
그대의 밤은 안녕하신가?
메일을 쓰던 그 시간에는 D의 안부가 지극히 궁금했다. 아침은 영영 올 것 같지가 않았다. 횡설수설 메일을 쓰고 나니 눈이 따가웠다. 선잠을 두어 시간 잤으니 당연하다. 보내기를 클릭하고 인터넷을 종료시켰다. 세상은 너무 조용했다. 이웃의 개 짖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사무실 불을 끄고 집으로 올라갔다.
-이 시간에 안 자고 왜 왔다 갔다 해요? 다른 사람 잠 못 자게?
방이 갑갑하다며 거실에서 자던 아내가 핀잔을 주었다.
-시대가 어수선해서 잠이 아니 오니라.
방으로 들어가 외투를 벗고 불을 끄고 누웠다. 또 뒤척이다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늦잠을 잤던가? 일어나니 새내기 공무원이 된 딸이 출근준비를 하느라 거울 앞에 서 있었다.
-아침은 먹었냐?
내가 먼저 인사를 했다. 먹었다고 했다.
-네 엄마는 어디 갔냐?
천연염색 전시회 준비를 하느라 새벽에 나갔다고 했다. 내가 먹을 아침은 식탁에 차려져 있었다. 아침을 먹고 나서 딸이 출근을 하고난 다음에 씻었다. 씻고 사무실에 내려오니 영원히 올 것 같지 않았던 아침이 아니라 해가 중천에 떠있었다. D도 밤잠을 설쳤는지 아직까지 차가 마당에 서 있었다. D가 오면 따라서 그의 작업실로 가서 약사여래불부터 가져와야할 일이다. 그 일부터 처리하고 미얀마로 떠날 궁리를 하는 게 순서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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