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생각
정동식
몇 년 전 아침마당 ‘도전 꿈의 무대’에서 평범하게 생긴 청년 한 명이 나와 장구를 신나게 두드렸다.
그냥 치는 게 아니라 율동을 하며 타악기를 다룬다. 장구와 드럼 솜씨가 마치 학생 시절 손등 위의 볼펜 묘기를 하는 것보다 더 능수능란했다. 장단에 맞춰 노래를 불렀고 그 실력이 범상치 않았다. 그의 노래는 장구 소리와 함께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그날 이후 나는 박서진의 팬이 되었다. 아내와 M 처남은 나보다 훨씬 늦게 팬에 합류했다. 둘은 박서진이 모 방송 오디션에 출연하여 중도탈락 이후 그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팬심이 두터워진 결정적 계기는 창녕 유채꽃 축제에 갔을 때 우연히 품바 공연을 보면서였다. 쉬어 가려고 잠시 앉았는데 의외로 장모님께서 장구 소리에 반응하여 손뼉을 치면서 좋아하셨다. 그 모습을 본 이후 M 처남은 장구의 신에게 깊은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6월 셋째 토요일 대구에서 박서진 콘서트가 있었다. 아내와 처남은 장모님께 이 콘서트 관람을 시켜 드리고 싶어 했다. 일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도 있어 가장 좋은 자리를 예매하려고 했지만 이미 표는 동이 났다. 매진이었다. 요행스럽게도 R 석 몇 개가 남아 있었다.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티켓 4장을 확보했다.
공연 당일 우리 일행은 나의 성화에 못 이겨 2시간 전에 출발했다.
네비로 확인해 보니 40분이면 간단다. 하지만 엑스코 방향은 내가 평소에 늘 부담을 느끼는 곳이었다. 무엇보다 지리에 익숙하지 않고, 우리 집에서 완전히 반대편에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목적지가 다중이 모이는 공연장인 데다 구순 어른을 동반하지 않는가? 그러니 여유 있게 도착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은연중 내 마음에 자리 잡고 있었다. 장모님은 그저께 찾아온 개량 한복으로 단장했다. 공연장에서 만난 사람마다 “아이고,어르신 예쁘게 차려입으셨네!” 하시며 인사를 건넸다. 장모님의 아담한 체구에 분홍색 저고리와 남색 치마가 잘 어울렸다. 아내는 이런 날을 위해 인근 재래시장에서 친정어머니께 옷을 맞춰 드린 것이다. 처음 만나는 분들한테 칭찬을 들으니 아마 아내도 기분이 좋았을 것 같다.
공연장에 도착하니 온통 노란 조끼에 노란 모자를 쓰고 다녔다. 깜짝 놀랐다. 어림잡아 90% 이상은 되어 보였다. 우리처럼 평상복을 입고 나온 사람은 눈을 씻고 봐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모두 박서진의 팬클럽이었다. 나에게 혼자 오셨냐고 물어보는 공주 팬클럽과 대화 중 들은 얘기다. 닻별이란다. 전국 지부에서 관광버스로 다닌다고 했다. 모녀지간에 온 사람도 있고, 친구와 함께 온 사람도 있었다. 우리처럼 그냥 좋아 온 사람은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요즘 트로트 가수에도 대단한 팬클럽이 많다. 임영웅을 좋아하는 팬클럽, 영웅시대는 정말 유명하다. 트롯차트 1위~10위까지 순위를 거의 독점할 만큼 영향력이 크다.
드디어 공연이 시작되었다.
중앙무대가 있고 좌우에 화면으로 공연실황을 볼 수 있는 대형 스크린이 있어 꽤 멀리서도 공연 현장 분위기를 느끼는 데 큰 지장은 없을 것 같았다. 공연장 안은 노란색 닻별로 넘쳐났다.
주인공이 나오기 전 나훈아 작사 최근 히트곡 ‘지나야’와 ‘꽃이 핍니다’ 두 곡이 분위기를 흥겹게 달구었다. 잠시 후 북극성이 등장하여 온몸으로 장구를 치며 무대는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이어지는 무대에서는 장구 없이 새벽안개 헤치며 달려가는~, 희자매의 첫차 노래를 불렀다. 박수와 함성을 유도하고 대구 콘서트를 기다리신 많은 팬분을 만나기 위해, 그리고 내 님을 찾으러 대구에 왔습니다,라고 능청을 떨었다. 오늘 오신 모든 분들께 방석 하나씩 선물한다며 인사를 하자 박수와 동시에 박서진을 환호한다. 대구는 사천이 가까워 고향 생각이 난다고 하면서 '김상진의 고향이 좋아, 홍세민의 흙에 살리라'를 연창 했다..
연이어 바다가 육지라면, 소양강처녀, 처녀농군 등 메들리 몇 곡을 부를 땐 가끔 마이크를 청중들에게 넘기자 팬들은 신나게 같이 따라 불렀다. ‘내 나이가 어때서’는 장구 없이 1절을 노래하다가 간주 중에는 장구가 찢어질 만큼 큰 동작으로 연주하고 2절은 빠른 템포로 변화를 준다.
이번에는 경상도 출신 트로트 선배 가수 노래를 불러보고 싶다, 면서 현철의 아미새, 한혜진의 너는 내 남자를 경쾌한 리듬으로 열창했다. 박서진은 노래가 끝나고 땀을 닦으며 스토리를 이어간다. 대구에 김광석길이 있는 것처럼 사천에 박서진 길이 생긴다고 홍보한다. 10월에 선포식을 할 예정이니 많이 놀러 오시면 영광이겠다고 했다. 정말 축하할 일이다.
공연장을 찾으면서 내가 예상하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다. 공연장 실내온도였다. 나는 아무리 빵빵하게 에어컨을 틀더라도 한기를 느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관객을 위해 냉방을 잘하더라도 이 넓은 공간을 감당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조명시설과 청중의 열기도 만만치 않아서 춥지는 않을 거라 호언장담했는데 오산이었다. 토시를 챙기려다 괜찮겠지 하며 짧은 소매로 그냥 나섰는데 나는 서늘함을 이기려고 공연 내내 손뼉 치며 몸을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닻별 들은 모두 긴 팔 조끼를 입고 있었다. 공연장을 많이 다녀본 경험의 지혜였을 게다. 우리는 이런 상황인데도, 열심히 장구 치며 노래 부르는 가수는 이미 땀을 흠뻑 흘리고 있었다. 팬들이 옷을 벗으라고 하자 대구 사람들은 참 벗기는 걸 좋아한다며 우스갯소리를 했다. 대구라 그런지 참 덥다고 했다. 그런데도 정작 본인은 옷을 벗지 않았다.
1부 끝나기 직전에 같은 소속사 후배 한 명이 나와 2곡을 불렀다. 게스트가 한 말 중에 인상 깊은 얘기가 내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박선배가 오늘 리허설을 하면서 본공연처럼 너무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고 많이 놀랐다. 왜 여러분이 박서진을 우리 가수님이라고 부르는지 알았고, 훌륭한 닻별 팬을 둔 선배님도 부럽다. 그리고 무대에서 보니 노랑 조끼 안 입은 분 찾기가 힘들 정도네요.”라고 얘기했다. 문득 나는 오늘 오신 분 중 남자의 비율이 몇 %쯤 되는지 궁금해서 대략 추산해 봤다. 우리 줄과 앞줄을 표본으로 삼았다. 한 줄에 15명, 두 줄이면 30명, 눈대중으로 보니 대여섯 명이 남자였다. 약 20%로 본다면 오늘 관객 2500명 중에 2000명은 여자, 500명은 남자인 셈이다. 좋아하는 가수가 남자라 그런지 여자의 비율이 훨씬 높았다.
2부는 나훈아의 ‘아이라예’로 막을 올렸다.
생일인 사람 이벤트를 위해 노래 끝부분 ‘보고 싶다 OO아가씨’를 생일인 사람의 이름으로 불러 주었다. 팬들이 계속 손을 들 정도로 좋아했다.
이번 차례는 지난번 아쉽게 탈락한 ‘미스타 트롯 2 경연’에서 불렀던 붉은 입술, 님아를 열창했고 떨어진 것이 오히려 보약이 되었다고 술회를 했다. 애들 한번 아프고 나면 쑤욱 자라듯 본인도 경연 이후 히트한 곡도 많아지고 달라진 위상을 확인할 정도로 바쁘게 지낸다고 한다.
그러면서 오디션에서 다음 라운드 진출하면 부르려고 했던 노래 ‘광대’를 열창했다. 광대가 자기의 모습 같아서 꼭 불러보고 싶었단다.
다음은 가족과 관련한 ‘별아 별아’ 노래를 했다. 소중한 무엇을 잃어본 사람에게는 아픈 추억이 있다. 이런 일은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 시간이 지나면 잊히기도 하지만 응어리로 남는 것도 많아 먼저 떠나간 두 형과의 소중한 추억을 간직하려고 이 노래를 만들었다고 한다. 부르다가 감정이 북받쳐 노래를 부르지 못하자 펜들이 대신 불러 주었다. ‘저 생에서 만나면 알아보려나, 사무치게 긴 세월에, 참아온 눈물 터져버리면 그제 서야 아시려나~’ 가사에 감수성 많은 동생의 진정성이 느껴졌다. 마침 이 노래 취입했던 날이 할머니 49제 이기도 해서 마음이 더 애잔했다고 한다. '지나야' 가 엔딩곡인 줄 알았는데 이후에도 만남, 때문에 등 여러 곡을 더 부른다. 정말 대단한 열정이다. 거의 2시간이 넘었는데 20여 곡을 혼자 노래하고 춤추며 장구까지, 정말 프로다웠다. 아니 뛰어난 프로라고 해야 옳을 것 같다.
그가 마지막 펜 서비스를 하려고 마이크를 잡고 힘차게 말한다. “몸도 뻐근하니 일어서서 흔드는 시간 한번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자 모두 일어섰다. 나는 일어나지 않은 1%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흥이 없어서 안 일어난 건 아니다. 장모님도 계셔서 앉아서 호응했다. 윤수일의 황홀한 고백, 아파트, 김수희의 남행열차 등 국민가요를 메들리로 열창했다. 마지막 곡으로 닻별가를 부른다. ‘변치 않는 별들을 만나 오늘은 기분 좋은 날~’로 시작되는 팬클럽 주제가는 박서진이 직접 작사한 곡이다. 펜들과 교감하는 노래라 본인이 직접 그 느낌을 살린 것 같았다. 앙코르 곡으로 ‘연하의 남자’를 한 곡 더 불렀다.
언제 철수했는지 알 수 없지만 이 노래 부를 때는 악단이 안 보였다. 아마 추측건대 댄스 타임을 주는 시점에 퇴장한 것 같았다. 펜들이 다시 앙코르곡 하나를 더 신청했다. 자신의 곡 ‘밀어 밀어’가 마지막 곡이었다.
닻별들은 모자에 ‘힘내라 박서진, 흥해라 박서진, 평생 가자 박서진’ 등의 문구를 달고 다녔다. 나에게 말을 걸어온 공주 닻별은 오늘 올라간단다. 어떤 분은 여기서 숙식하며 내일 공연을 또 본다고 하니 대단한 팬심이다.
박서진의 콘서트를 보고 난 후 불현듯 우리 엄마 생각이 쌍무지개처럼 떴다.
어머니는 장구를 치면서 노래를 정말 잘하셨다. 박서진을 좋아하게 된 것도 내 마음을 사정없이 두드린 엄마의 장구 때문인지 모른다. 내가 처음 들은 엄마의 장구 소리는 어느 땐 신명이 나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고, 또 어느 땐 늦가을 은행잎이 노랗게 떨어지는 날, 어느 절 산문을 나서며 엄마와 함께 들었던 저녁 북소리처럼 진중했다.
그 감흥의 두 타악기 소리. 쿵, 따, 덩, 다, 다르르르, 기따~ 그리고 둥~, 둥~, 둥~
엄마의 장구 치는 소리와 산사의 저녁 북소리는 지금도 내 가슴에 별꽃처럼 피어 알알이 박혀 있다.
(2023.6.30.)
첫댓글 저도 몇 년 전 강창교 여름축제 때 박서진 장구공연을 본 적이 있습니다. 흥이 넘쳐 다른 가수를 압도하기에 돋보였습니다. 전체 장면을 상세히 묘사해서 감명을 오래 간직할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