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Joy in God
어제 아침 일찍 학교 특별 은인 장례미사에 다녀왔습니다. 추석 다음날이라 어머니 댁에서 일찍 일어나 장례미사가 있는 분당 이매동 성당으로 향했습니다. 지난 29일 대천사(미카엘, 라파엘, 가브리엘) 축일에 임종하신 박대호 이냐시오 형제님의 얼굴과 가족들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병마와 싸우는 여정에서 가족보다 더 가족처럼 함께 했던 얼굴들이 스쳐지나갔습니다. 그리고 임종 다음날 저녁에서 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 드렸던 임종미사가 기억났습니다.
오랫동안 외교관 생활을 하셨던 이냐시오 형제님, 세상적으로는 참으로 잘 나가던 사람. 인텔리 계층에 계셨던 분이십니다. 그 지식과 경험은 누구보다 높고 크고 대단했지만, 누구에게나 겸손하셨던 분이셨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친구가 되지 않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한번 친구된 사람은, 이냐시오 형제님을 잊지 못했습니다. 이는 잘 나갈만한 실력이나 돈, 착함, 겸손만으로 맺어질 수 없는 우정일 것입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제가 존경하는 신부님도 이미 이냐시오 형제님과 그 가족들과 아주 가깝게 지내는 사이라고, 그래서 이미 빈소에 다녀가셨다고.
그리고 이냐시오 형제님이 힘들어 할 때에 함께 했던 처제들 – 이냐시오 형제님의 아내인 로사 자매님의 친구이자 동생들이 죽음을 맞는 순간까지도, 장례 일정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조문객을 맞이하고 장례미사를 준비하고, 장지까지 가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의 빈틈을 허락하지 않으려고 애썼던 일곱 빛깔 ‘무지개 바보 똥개 천사’(자신들이 부르는 명칭) -에게 얼마나 잘 해주었는지, 이냐시오 형제님을 친 오빠나 가족보다 더 가깝게 지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는 이냐시오 형제님이 말기 암으로 고통 중에 있으면서도, 찾아오고 만나는 사람에게 어떻게든 기쁨과 평화, 하느님의 선물을 전해주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보통 성한 사람이 아픈 사람에게 위로와 평화와 하느님의 선물을 나눠주는 것이 보통인데, 오히려 힘든 병의 고통 중에 있는 이냐시오 형제님에게 그러한 선물을 받으니, 그러면서도 어떠한 부담을 받지 않으니, 쉽게 친구가 될 수밖에....
더우기 이냐시오 형제님은 그 무지막지한 고통 속에서도 몰핀 주사를 맞지 않고, 아주 편안하게 지내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알기로는 고통이 없어서 편안하게 지내신 것이 아니라, 가족들을 생생한 맨 정신으로 만나 사랑을 나누기 위해, 어떠한 고통 완화 주사를 맞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가족들과 더 오랫동안 함께 하기 위하여 병원에 입원하거나 요양원에 입소하는 것을 극구 반대하셨다고 합니다. 가족에 대한 사랑이 컸기에, 그것들을 감수하셨더너 것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기꺼이 죽음을 받아들이셨던 것처럼, 집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도 아직 더 살아도 될 52세의 나이에, 하느님 나라에 가셨습니다.
추석 전날 임종 미사에는 무지개 천사들만이 아니라, 영적은인회 회장님과 총무님, 아프기 전에 함께 했던 레지오 단원들, 점잖은 유가족들이 참여하였습니다. 한결같이 검은색 정장에, 엄숙하고도 거룩하게 미사에 참례하는 모습은 정말 잘 훈련된 고급 장교들 같았습니다.
그리고 이냐시오 형제님을 떠나보내는 슬픔 속에서도 신앙인다운 여유와 를 간직하며 빈소를 지키고 장례미사에 함께 하시는 가족들과 친지들의 모습은 남달아 보였습니다. 코로나 19의 핑계를 대며 대충 함께 하는 척을 할 수 있을텐데, 코로나 방역수칙을 지켜가며, 유가족의 본분을 다하는 모습은 정말 격이 다른 상가집 분위기였습니다.
이렇게 이냐시오 형제님의 병마와의 싸움, 임종, 장례의 여정에 함께 한 모든 이는, 자신들의 선함과 거룩함보다는 이냐시오 형제님에게 감동 받은 그 무엇이 있었기, 죽어가고 죽고 묻히는 여정 속에서도 무언가를 전해주고 나눠줄 넉넉한 무언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그의 죽음에 독수리가 죽은 시체를 찾아 모여든 것이 아니라, 착한 사람들이 사람의 향기(인향)를 찾아 모여든 것이라 여겨집니다.
지난 부활대축일이 지난 어느 날 이냐시오 형제님 댁에서 가족들과 몇 분과 미사를 이냐시오 형제님을 위하여 미사를 드리면서 만났던 자녀들은 아직 학생이고 철부지 나임에도 아버지를 끔찍이 사랑하고 함께 하는 모습에 감동받았습니다. 고등학생인 큰 딸, 작은 딸 베로니카와 미카엘라, 초등학생인 스테파노는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아빠와 함께 하는데, 그 모습이 남 달랐습니다. 학교 친구들을 데리고 집에 와서, 작은 공연도 마련하며 아빠에게 기쁨의 자리를 마련해주고, 아빠를 휠체어에 태워 모시고 바깥나들이도 나가 꽃들과 세상 구경도 시켜드리고, 매일같이 가족들이 모여 기도하고, 하느님의 사랑을 나눠 먹고 마시며, 감동을 주고받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이런 감동을 주고받는 생활은 자녀들이 특별히 마련하였던 것이 아니라, 이냐시오 형제님이 아내인 로사 자매님과 오래전부터 나누었던 자연스런 삶이었습니다. 해외에서 외교관으로 오래 살았던 이냐시오 형제님 가족은 자연스럽게 가족애가 하느님 중심으로 형성 발전해 나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이냐시오 형제님의 부고를 들은 것은 데레사 자매님을 통해서였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전해주었습니다. “어제 오후 5시 20분 박대로 이내시오 형제님이 집에서 가족들의 따스함과 기도 속에서 너무나 편하게 임종하셨어요. 이렇게 아름다운 임종을 지켜보고 함께 할 수 있음이 감사이고 은총이라는 마음이 드네요.”
누군가의 죽음을 경황이 없는 상황에서 전하는 부고문 안에 ‘따스함’, ‘너무나 편하게’, ‘아름다운 임종’, ‘감사이고 은총’이라는 단어를 담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전하고 나누는 모습을 통해, 이냐시오 형제님의 죽음은 예사롭지 않은 죽음임이 드러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임종 사망 미사를 드리고 “입관은 잘 하셨습니까?”하고 물으니, “정말 편안하고, 깨끗한 얼굴 모습이었습니다. 입관할 때 모습이 어쩜 그렇게 편안하신지...”하고 말을 잊지 못하셨습니다.
제가 임종 미사를 드리면서, “이냐시오 형제님의 죽음은 선종입니다.”라고 이야기하며 그 이유를 자세히 이야기 했습니다. 선종(善終)의 요건은 “i) 일상생활에서 교리의 가르침에 따르는 삶, ii) 착하고 올바르게 사는 삶, iii) 복되고 거룩하게 사는 삶, iv) 영생을 준비하는 삶으로서, 이러한 요건이 뒷받침된 사람에게 주어진 죽음이 선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냐시오 형제님은 선종의 요건을 다 갖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선종이라는 단어는 죽음에 대한 평판이기도 합니다. '선종'이라는 평판을 들어야만, 훗날에 성인품에 오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냐시오 형제님에게 시복과 시성의 절차들이 이루어질지는 후에 결정되겠지만, 현재로서는 ‘선종의 요건을 다할 수 있음이 드러납니다. 정말 교리에 충실한 삶을 가족들과 사시기 위하여 어떠한 처지에서든지 기도와 봉사, 사제들을 돕고 자녀와 이웃에게 신앙의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착하고 올바르게 살기위해 그 모진 고통을 참아 내셨으며, 또한 복되고 거룩한 삶을 살기위해 고해성사와 병자성사, 성체성사를 얼마나 열심히 하려고 했는지, 그리고 이웃과의 사랑 실천에 최선을 다하기 위하여 가난한 이들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후원과 사랑을 나눠주시고, 안법학교를 위해서도 특별은인의 역할을 다하며, 하늘과 세상에 사랑으로 점철된 사람을 살아온 인생이셨습니다. 더구나 마지막 순간까지 하느님께 의지하며 영원한 생명, 하느님 나라에 희망을 갖고 최선을 다해 사신 삶은, 하늘에서와 땅에서도 큰 상을 받아 마땅하다고 증언하고 싶습니다.
성경에서 ‘마음이 착한 사람은 하느님을 보게 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말 선한 삶과 선한 죽음을 맞이한 이냐시오 형제님은 하느님의 얼굴을 뵙게 될 것은 물론, 살아있는 우리 모두에게 하느님의 사랑과 위로와 평화를 보여주셨으며, 하느님 나라를 맛보게 해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저와 다른 사람에게 알려준 데레사 자매님의 부고문과 본당 신부님의 강론 안에 들어 있습니다.
장례미사를 위하여 아침 일찍 출발하여 성당에 도착하니, 이미 이냐시오 형제님의 시신 운구가 성당 앞에 안치되어 있었고, 그 옆에는 아직 어리지만, 의젖하게 서 있는 상주인 맏아들 스테파노와, 베로니카아 부인 로사 자매님이 있었습니다. 오로지 하느님께로만 안내하고자 하는 의연함이 내어 나왔습니다. 많이 슬프고 힘들텐데, 의연히 잘 해주는 유가족들에게 고마움이 밀려왔습니다. 그 앞에 간단한 목례를 하고, 성당에 들어가 장례 미사를 준비했습니다. 미사 주례는 물론 본당 신부님께서 하시는 것이고, 저는 공동집전으로 진행되는 것이었습니다. 옆에 처음 뵙는 신부님이 계셨습니다. 인사를 나누면서 놀랐습니다. 신부님은 광주대교구 소속이신데, 새벽3시에 출발해서 올라오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물으니, “해외에서 교포사목을 하실 때, 이냐시오 형제님을 알게 되었는데, 그때 서로 주고 받은 우정이 있어서요.” 더 이상 묻지 않았습니다. 해외에서 얼마나 신부님과 좋은 관계였고, 신부님에게 얼마나 많은 도움을 드렸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그 새벽에 정말 목숨걸고 달려오실 정도’이면, 이냐시오 형제님의 선함이 충분히 증명되고도 남을 듯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평소에 잘 아는 거룩한 본당 신부님(전시몬)과 함께 제대 앞에 나아가 인사를 드리고, 이냐시오 형제님을 모시러 성당 입구에 가서 ‘성당에 들어오는 예식’를 하고, 십자가를 앞세워, 신부님들이 앞장서고, 그 뒤에 이냐시오 형제님의 시신이, 그리고 유가족들이 따라 들어와 성당 제대 앞에 자리하도록 하였습니다. 이는 지상에서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하느님 대전에 이르는 여정이고, 이냐시오 형제를 위한 예수님의 십자가상 희생제사가 드려지는 순간이 기다려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대리하여 사제가 하느님 아버지께 예수님을 제물로 이냐시오 형제에게 자비를 베풀어달라는 희생제사이기에, 굉장히 중요한 시간입니다. 이러한 모든 것을 아시고, 아니, 그러한 직무를 수행하시는 본당 신부님의 모습은 제의실에 들어오셔서 제의 하나하나를 입으시면서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신부님은 제의를 입으시는 몸동작을 따라 예수님은 신부님을 입고, 그에 따라 신부님은 예수님을 입으며, 신부님은 예수님이 되시고, 예수님은 신부님이 되시어, 한명의 영혼이라고 하느님 아버지께 데려가시려는 듯 동작 하나하나에 정성을 다하셨습니다.
그 정성은 신부님의 강론 말씀을 통해 더욱 고조되었습니다. 평소에 이냐시오 형제님과 신부님의 만남, 대화, 돌봄 등에 관한 신부님의 말씀. 이냐시오 형제님이 하느님의 집인 성당을 얼마나 사랑하고, 사제를 얼마나 존중하며 희망과 사랑과 믿음을 갖고 하느님 나라를 그리며 착하게 살았는지 일목요연하게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냐시오 형제님이 죽음에 임박해서는 한손에는 묵주를 들고, 다른 한손에는 사랑하는 부인의 손을 곡 쥐고 하늘을 바라보며 서서히 눈을 감았다고 하셨습니다.
신부님께서는 강론 중에 이냐시오 형제님이 의식이 있었을 때 신부님에게, “신부님, 성가 218 ‘주여 당신 종이 여기 왔나이다.’ 성가를 부르며 하느님께 가고 싶습니다.”라고 부탁했다며, “우리가 제대 앞에 누워계신 이냐시오 형제님과 218번 성가를 함께 부르면 좋겠습니다.”라며 제안하여, 오르겐 반주에 맞춰 찬찬히 신자들과 함께 불렀습니다. 성가를 부르면서 울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냐시오 형제님도 관 안에서 눈물로 기도드리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나자로의 죽음 앞에서 우셨던 것처럼, 함께 눈물 흘리며 하느님 아버지를 바라보며, 우시는 듯했습니다. 성모님도, 이냐시오 성인도 따라 우는 듯했습니다.
더욱 숙연해진 미사는 성찬례를 거행하면서 절정에 이르렀고, 영성체 후 ‘고별식’에는 천사들과 대천사들, 하느님의 모든 성인들이 이냐시오 형제를 하늘로 데려가시는 듯했습니다. 사제를 입으신 예수님이, 예수님을 입으신 본당 신부님이 정성을 다하는 분향 예절과 기도문 하나하나는 하늘과 성당을 가득 메운 사람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렇게 정성스러운 미사와 고별식이 끝나고, 장지로 향하는 여정은 소리없이 분주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이때도 무지개 천사들의 발걸음이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어떤 분은 신발에 위 아래로 끈을 단단히 묻고 차에 올랐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함께 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한 두시간 뒤에, ‘미사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장례미사 참으로 아름다웠어요! 예절도, 강론도, 주례사제의 정성도, 주일 미사 만큼 많이 오신 교우분들도... 단지 장례 미사를 마치고 장지로 향하는 유가족을 바라보는 무거운 마음만 빼고... 감사합니다. 기도할께요.”라고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렇게 장례미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장지에서의 소식이 궁금할 즈음, 영적은인회 총무님에게서 문자가 하나 왔습니다. “잘 다녀왔습니다. 이냐시오 형제님은 천사가 되실 것 같아요. 대천사 축일에 선종하시고, 수호천사 기념일에 묻히셨네요. 아쉬움을 뒤로하고 오가는 긴 시간을 기도로 보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문자를 받고, 위로와 평화가 다시금 밀려왔습니다.
제가 이냐시오 형제님의 병고를 극복하려 했던 사연과 기도, 임종 과정, 빈소에서의 조문 상황, 장지에서의 여러 사연, 특별히 가족들이 겪고 느꼈던 느낌이나 마음들을 다 담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여정에서 얼마나 은혜롭게 진행되고, 주님과 성모님의 도우심과 사랑, 이웃들의 사랑이 얼마나 컸었는지 다 알지 못합니다. 상상컨대, 제 상상보다 더 은혜로왔을 것라는 것만 확실히 믿습니다. 그래서 한편으로 기쁘고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이러헌 여정에서 조금이나마 함께 한 이들, 앞으로 기억할 분들을 위하여 주님의 은총과 사랑이 가득하기를 바라며 강복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 또한 사제의 영과 함께
+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는 저희 모두에게 강복하소서.
* 아멘.
+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다음검색
|
첫댓글 아멘!!
아멘
슬프지만 정말 행복한,
안타깝지만 정말 가슴 벅차는 장례 여정이었습니다.
신부님께서 함께 해주셔서 더욱 빛날 수 있었던 시간... 앞으로도 이냐시오 형제님이 생전에 보여주셨던 사랑 그대로 남은 가족들에게 실천하며 살겠습니다.
정말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함께 아파하고, 함께 나눠준 분들께 드리고픈 마음입니다^^
2년간의 힘든 이 시간이 누구에게는 고통의 시간일 수 있지만 이냐시오형제님 가정은
오로지 주님만을 바라보며 사랑하고 배려하면서 감사하고 기쁘게 매일 기도안에서 사는 모습이 매일매일 은총의 시간이었음을...
마지막 이별을 사랑하는 가족들의 따뜻함안에서 너무나도 아름답게 성모님품안에 안기시는 모습과 장례일정 모든 과정 또한 성령께서 함께 하심 느끼며 앞으로 더 사랑하고 나누며 이쁘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네요~이냐시오형제님이 웃으며 쳐다보시는거 같아 슬픔보다는 기쁘고 감사한 마음이 먼저이네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제 자신의 신앙 생활을 돌아 보게 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
주님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선종은
아름다운 천상을 선물로 받는
새로운 시작임을 믿으며...
주님께 영광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아멘~감사합니다~♡
아멘~~
뵙지는 못했지만
이냐시오형제님의 삶이
그리스도의 향기로 느껴지네요~~
편안한 영면을 위해서 기도중에 기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