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역사소설 태종 이방원 152
누워있는 하륜
동북면을 향하여 화급히 가라는 명을 받은 전의판관 이헌은, 앞만 보고 달리느라 뒤따라오는 말을 살펴볼
겨를이 없었다
이헌이 보제원을 지나고 돌곶이 마을을 지나 녹양역에 멈췄다. 이헌이 말을 바꾸어 타는 동안 먼발치에서
지켜보던 검은 말은 이헌이 출발하자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또다시 따라붙었다.
이헌이 수락산과 도봉산이 갈리는 삼거리에서 평로를 택한 것을 확인한 검은 말은 산속으로 사라졌다.
험로를 택한 것이다.
산자락 오솔길에 연결되어 있는 험로는 송우점으로 나가는 지름길이었다.
이헌이 탄 말이 축석령을 숨가쁘게 오르자, 마루턱에 검은 말이 떡 버티고 서 있었다.
뒤따르던 바로 그 말이었다.
"전의는 잠시 멈추시오."
검은 말에서 내린 사나이가 명령하듯 말했다.
이헌은 당황했다. 산적들이 득실거리는 깊은 산에서 사람을 만나는 것도 괴쩍은 일이었지만, 자신의 신분을
알고 있다는 것이 더욱 두려웠다.
이헌은 말에서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품속에서 뭔가를 꺼내어 보여주던 사나이는 이헌에게 귀엣말을 속삭이고 오던 길을 되짚어 쏜살같이 사라졌다.
철령을 넘어 정평부에 도착한 이헌은 곧바로 하륜이 누워있는 숙소를 찾아갔다.
"전하의 육체와 다름없이 치료하라는 명을 받들어 예까지 왔습니다. ".
"성은이 망극하오이다. 여기까지 오시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
"지금까지 어떠한 치료를 하셨습니까?"
하륜의 환부를 살펴보던 이헌이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질침을 처방했는데 차도가 없어 인침을 쓸까 합니다."
*인침(人針): 환부에 침을 꽂아 사혈하는 침술
하륜이 인침 시술을 제시했다. 하륜은 비록 의원은 아니지만 의학에 일가견이 있었다.
"당치않은 말씀입니다. 종기에 인침을 쓴다는 얘기는 일찍이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수백 개의 질침으로 피를 빼도 해가 없으니, 인침으로 피를 빼는 것이 무슨 해가 있겠습니까?
의서에서 말하기를 인후(咽喉)의 종기가 기도를 막아 기절하게 되면 반드시 인침을 쓰라고 되어 있는데,
하물며 인후 밖의 종기겠습니까?"
"그래도 아니 됩니다. 저의 처방을 따르소서."
이헌은 하륜의 처방을 일축하고 자신의 처방을 고집했다. 전문가로서의 기 싸움 이었다.
민간요법 수준의 처방은 신뢰할 수 없고, 자신의 의술이 정통성이 있고 믿을 수 있다는 얘기였다.
"요여를 타고 천천히 서행하여 돌아가고자 합니다. "
"움직여서도 안 되고 반드시 풍한을 피하여야 합니다. "
하륜은 이헌의 처방과 지시를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꼼짝없이 붙잡혀 이헌이 달여주는 약을 마시며 치료를 받았다.
이헌이 성심성의를 다하여 치료는 하는 것 같은데 차도는 없었다. 하륜은 왠지 이상했다.
무엇인가 있는 것만 같았다. 남다른 후각을 가지고 있는 하륜의 직감이었다.
하륜은 태종 이방원에게 비밀 서찰을 보냈다.
"운수가 쇠하고 복이 지나쳐서 사명을 받드는 중에 병에 걸렸습니다.
상은을 입어 내의 이헌을 통해 치료를 받고 있는데, 돌아가고자 하나 이헌이 움직여서는 안 된다 하고,
질침을 쓴 나머지 피를 인침을 써서 빼고자 하나 이헌은 그런 말을 일찍이 듣지 못하였다고 저지하였습니다.
의원들에게 영을 내려 질침으로 다하지 못한 것을 인침으로 뺀 경험을 집의(集議)하여 이헌에게 제시하게 하여
여생을 보전하게 하여주소서"
서찰을 받은 태종 이방원은 깜짝 놀랐다.
이헌을 당장 소환하라 이르고 어의 중에서 가장 경험 많고 노련한 양홍달에게 급히 함흥으로 떠나라 명했다.
"조석 반찬을 내가 먹는 것과 똑같이 하라."
어의 양홍달에 뒤이어 반감(飯監- 주방장)으로 하여금 내선(內饍- 임금님의 음식)을 가지고 정평으로 떠나라고
명령했다.
한양과 함흥을 오가는 경흥대로에 역마의 말발굽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반감이 정평부에 도착하기도 전에 하륜에게서 상서가 올라왔다.
"노의(老醫) 양홍달을 보내와서 병을 치료하니 조금은 차도가 있는 듯합니다. 내의 두사람을 계속하여
보내주시니 송구하여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이헌이 온 지 이미 7일이 지났고, 치료하는 방법을 신이 데리고 온 방민과 함길도 교유 한보지가 대강 전수하여
배웠으니 아들 하구와 함께 돌려보냅니다."
하륜은 문안 차 한양에서 달려온 아들과 이헌을 돌려보냈다.
하륜의 죽음
이헌이 곁에 있는 것이 하륜은 왠지 찜찜했다.
떠나는 아들에게 장동대감에게 전하라는 비밀 서찰을 쥐어주었다.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시름시름 앓던 하륜이 숨을 거두었다. 건강하게 함흥 땅을 밟은 하륜이 죽은 것이다.
하륜이 객사했다. 그의 나이 70세였다.
하륜이 세상을 떠나던 그 순간, 한양에는 짙은 안개가 끼며 천둥 번개가 쳤다.
태종 이방원이 정사를 전폐하려 하자 영의정 유정현이 아뢰었다.
"마땅히 정전에 좌기(坐起)하여 더욱 정사에 힘쓰소서."
"오늘 내가 일을 보고자 하여 일찍 일어났는데, 하늘에 안개가 끼고 천둥 번개가 치는 것은 시후가 정상인
상태를 잃었으니 오로지 짐의 부덕의 소치로다. 천변이 염려되어 일을 보지 못하겠다. "
"날씨가 정상을 잃은 것은 비록 상덕(上德)의소치는 아니나, 공구수성(恐懼修省)하여 정신을 가다듬어
다스림을 도모하는 것은 인군의 직책입니다. 왜 일을 보지 않으려 하십니가?"
*공구수성(恐懼修省): 몹시 두려워하여 수양하고 반성함.
"한나라 때에 승상 병길이 힘써 섭조(燮調)하는 공역을 맡았으니, 경 등은 각각 섭리의 책임을 다하여 천도로
하여금 어그러짐이 없게 하라."
하교와 함께 정사를 폐했다.
불세출의 장자방 하륜이 세상을 떠났다. 죽는 순간까지 공무에 복무하다 죽었다.
턱 위의 종기가 원인이었지만 어떤 음모에 의하여 죽었는지, 수명을 다하여 노환으로 죽었는지 아직은 모른다.
오늘날처럼 과학이 발달한 시대에는 부검하면 사망원인이 밝혀지겠지만 그 옛날에는 그러한 제도나 의술이
없었기 때문이다 .
다음. 153에 계속
첫댓글 일등공신의 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