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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三國志) (154) 양양 풍년 감사연
다음날, 유비는 수행 군사 몇 명을 데리고 신야성 성문 앞으로 유기를 영접나왔다.
얼마후, 유기가 수행 군사와 함께 달려와 환한 얼굴로 예를 표하며 인사한다.
"황숙,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유비도 마주 화답한다.
"천만의 말씀이오. 지난 봄에 객관에서 구해주신 일은 정말 고마웠소. 그때 인사도 못드리고 왔는데 그후에 경승형께선 달리 말씀이 없으셨소?"
유비는 한동안 소식이 없던 유표가 아들 유기를 보내 온 것이 못내 궁금하였다.
그러자 유기는,
"공교롭게도 아버님께선 그 다음날 부터 고질병이 도지셔서 자리에 누워계십니다. 그래서 그때의 일은 더이상 거론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럼 공자께서 오늘 이렇게 직접 온 것은 무슨 일 때문 입니까?"
"모레 양양(襄陽)에서 풍년감사연(豊年感謝宴)을 베풀기로 했습니다. 이때는 형주 9군의 현령 이상의 문무 관원들은 반드시 참석합니다. 원래대로라면 아버님께서 직접 참석해야 하지만, 병중에 계셔서 가지 못하실 듯 하니 제가 대신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해 가을 형주 일대에는 유래없는 풍년이 들었다.?
유비가 대답한다.
"잘됐습니다. 그럼 경승형이 공자를 신임한다는 뜻이군요."
"아버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참석하는 분들이 대부분 아버님 연배인데, 저는 아직 어리고 덕도 없어 누가 될까 걱정스럽다 하시면서, 황숙께 같이 가시도록 부탁하라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황숙께선 천자의 숙부이시니 관원들도 존경할거라고 하시면서요. 허니, 같이 다녀오시지요."
유비는 그제서야 오랜만에 유기가 찾아온 이유를 알고 적이 안심되었다.
그리하여,
"고맙습니다. 경승형 말씀에다 공자까지 직접 오셨으니 함께 가는게 도리지요."
하고, 대답하였다.
"고맙습니다."
"자, 공자, 어서 안으로 들어갑시다."
유비는 유기 일행을 안내하여 성 안으로 들어왔다.
유비는 신야에 돌아와서도 그동안 채모의 암살 시도사건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유표의 부탁으로 함께 양양 풍년감사연에 참석하자는 유기의 방문을 받자, 그제서야 지난 일을 수하 장수들에게 말하였다.
장비는 그 소리를 듣더니,
"그런 일이 있었다면 무엇하러 양양에 가신단 말씀이오?"
하고, 대뜸 반대하였고, 손건 역시,
"채모의 음모가 분명하니 가시지 마십시오."
하고, 간한다.
그러자 유비는,
"들어 보니, 양양 모임은 형주부의 아주 중요한 행사일세. 9군의 관원들이 모두 모여 정사를 의논하는 자리가 될 걸세. 더구나 유경승이 병이 중하여 직접 가지 못하게 되어, 날더러 대신 가달라고 부탁을 해 왔으니, 어찌 거절할 수가 있겠나? 내일 출발해서 며칠 뒤에 돌아옴세. 모두들 자리를 잘 지키고 소홀함이 없도록 부탁하네. 그리고 내가 없을 때에는 운장이 성 안의 대소사를 주관해 주고..."
하고, 자신의 결심과 부탁까지 일사천리로 말하였다.
"형님이 죽을 뻔 한 지 얼마나 됐수? 겨우 형주에서 도망쳤는데 그깟 연회는 가서 뭣하우? 가지마시오!"
장비는 재차 조른다.
"가지 않으면 유경승에게 실례일세. 내게 잘 대해 주는데 어찌 거절할 수 있나? 위험이 좀 따르더라도
가는게 도리지, 경승형을 실망시킬 수 없네."
유비의 결심은 확고하였다.
그러자 장비는,
"정 가시겠다면 내가 형님을 호위하고 가겠소."
하고, 말한다.
그러자 유비는 고개를 흔든다.
"셋째, 자네는 성정이 불같으니, 자룡이 나와 함께 가세!"
"네!"
(자룡은 얼른 대답하였고 장비는 툇짜 맞았다.)
그로부터 이틀 후, 유비는 유기와 함께 풍년감사 연회가 벌어지는 양양에 도착하였다.
그리하여 관내에서는 말에서 내려 행사가 준비중인 연회석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때, 마주오던 한 사내가 유비의 말(馬)을 가르키며 말(言)을 건넨다.
"신마(神馬)로군, 아주 귀한 말이오."
유비가 걸음을 멈추고 사내에게 인사를 해보이며 대답한다.
"이 말의 진가를 알아보시다니 안목이 있으시군요. 선생의 존함은 어찌 되시오?"
그러자 사내는 예는 갖추었으되 별 것 아니란 듯이,
"길 가다 마주친 사이에 통성명은 해서 뭣합니까. 그저 이 말을 자세히 봤으면 좋겠군요."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유비도 사내가 하는 말이 몹시 궁금하여,
"보시지요."
하고, 말고삐를 넘겨 주었다.
사내는 말 앞에 다가가 말의 이모저모를 살펴보고,
"말은 훌륭해 보이나, 눈 아래 눈물골이 있군요. 흰 말의 네 발이 모두 검은 것을 사흑(四黑)이라고 하며, 옛날부터 이런 말을 흉마(凶馬)로 치며, 이마박에 검은 점이 있는 것을 적로(的盧)라고 해서 더욱 흉마로 부릅니다. 매우 위험한 말이니 이 말을 타지 마시오. 주인을 해치는 상(相)이군요."
유비는 그 말(言)을 듣자, 자신이 타고온 말(馬)을 다시 한번 쳐다보았다.
그리고,
"어떻게 주인을 해친단 말이오?"
하고, 묻자 사내는 잠시 주저하는 듯 하더니,
"며칠 내로 피를 볼 듯 하오."
하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유비는 그러잖아도 풍년감사연에 가는 것이 탐탁치 않았으나 유표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오게된 양양에서 이런 소리를 듣게 되자, 갑자기 기분이 침울해졌다.
그러나 앞에 있는 사내의 말을 전적으로 무시하는 기분을 주기는 싫어서,
"그렇다면 그때의 화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있겠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사내는 유비를 한번 쳐다보고선,
"그야 어렵지 않소, 그냥 이 말을 원수에게 주어, 이 말이 원수를 해친 뒤에 다시 취해서 타면 될 것이오. 그리되면 화(禍)도 떨구고, 일석이조가 되는 셈이오."
하고, 말한다.
그러자 유비의 얼굴이 펴진다.
그러면서 조금은 힐난하듯 사내에게,
"그게 무슨 말씀이오? 남의 불행을 나의 이익으로 삼는다니, 그건 천리에 어긋나는 일이오. 나는 죽어도 그런 짓은 못하오."
하고, 말해버렸다.
그러자 사내는,
"허! ~ 유현덕이 인의가 있는 사람이라 하더니, 과연 그러하외다."
하고, 감탄인 듯 모멸인 듯 한 소리를 하면서 그자리를 떠나간다.
유비는 고개를 돌려 떠나는 사내에게 물었다.
"어찌 내 이름을 아셨소?"
그러나 사내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그대로 자리를 떠나는 것이었다.
유비는 일행과 함께 다시 연회가 벌어질 행사장으로 발길을 옮겨갔다.
이날의 행사에는 9군(郡) 42주(州)의 관원들이 모두 모였다.
낭랑한 주악(奏樂)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유비는 주군 유표를 대신하여 최고의 좌(座)에 참석하였다.
조운은 무장을 갖추고 그의 옆에 읍하고 서서 일시의 경계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잔치가 시작되자 유표를 대신하여 유기가 모여든 관원들을 향하여 말한다.
"아버님의 병세가 낫지 않아 직접 오시지 못하고, 형주 부중의 각 대인들께 멀리서나마 축하를 전한다 하셨습니다."
그러자 42주 관원들은 일제히,
"주공께서 쾌차하시길 바랍니다."
하고, 일제히 복명한다.
유기의 말이 이어진다.
"아버님께서 특별히 좌장군 의성후 황숙 유현덕을 초청하시어, 자리를 빛내게 하셨습니다."
그러자 소개 받은 유현덕이 자리에서 일어나 42주 관원들을 향하여 두루두루 예를 표해 보였다.
그리고 입을 열어 말한다.
"제가 형주 땅을 밟는 날부터 이곳의 빼어난 자연과 풍요로움에 깊이 감동받았소. 조조군 철기병 아래의 난세에 비하면 이곳은 가히 천국이라할 것이오."
"유황숙 말씀이 맞소, 여기는 천상의 무릉도원이 맞소!"
"유황숙은 과연 현명한 군자요!"
"그렇지요!"
좌중의 관원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유현덕을 칭송하기를 마지않았다.
유비가 술잔을 들며 말한다.
"이곳의 평화는 위로는 명공 유경승, 아래로는 여러 문무 관리들 덕입니다. 오늘 이 현덕이 경승형의 부탁으로 풍년감사연을 축하드리러 왔습니다. 드시지요."
식이 끝나자, 주악이 다시 울리며 술과 안주가 한없이 들어온다.
모두가 기쁨 속에서 술을 마시기 시작하였다.
이와같이 잔치가 벌어진 가운데 백성들 뒷줄에 슬며시 끼어 연단의 거동을 살피던 채모는 연회장을 빠져 나와 자신의 아우 채화(蔡和)를 시켜, 군사들을 이끌고 동문(東門)을 지키게 하고, 남문 밖에는 채중(蔡中)을 보내고, 북문에는 채훈(蔡勳)으로 하여금 철통같이 지키게 하였다.
다만 서문(西門)은 사람이 도저히 건널 수가 없는 단계(檀溪)가 가로 막고 있어 군사를 그곳에는 보내지 않았을 뿐이었다.
이렇게 군사를 배치해 놓은 채모가 기회를 옅보고 있는 가운데 연회는 시시각각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잠시 후, 유비가 자신의 뒤에서 칼을 차고 시립해 있는 조운을 보고 말한다.
"자룡, 자네도 칼을 벗고 한잔 하게나."
"주공, 저는 호위를 맡았으니 마시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모두 형주의 관리들일세. 우리가 여기 오래 있으려면 그들을 예의로 대해야 하네, 그런데 자네가 칼을 차고 이곳에 있으면 불편해 하지 않겠나? 그러니 외청에 나가 있도록 하게. 술도 한잔 하고 말야."
하고, 말한다.
잠시 대답을 주저하던 조운은 주공의 명을 거역할 수가 없어.
"알겠습니다!"
하고, 대답하고 외청으로 나가버렸다.
조운이 유비의 곁에서 나가 버리자, 채모는 즉각 행동을 개시 하였다.
그리하여 그의 명령에 따라 형주의 군사들이 양양성 동,남,북문을 중심으로 철통같이 에워싸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이런 이들의 수상한 움직임을 발견한 유기의 주부(主簿)가 바삐 달려와 유기에게 귓속말로 알린다.
그러자 유기는 심상치 않은 모략이 진행됨을 감지하고 곧바로 유비에게 달려간다.
"황숙! 채모가 또 황숙을 해치려고 합니다. 동문, 남문,북문 밖에는 군사들이 매복해 있으니 급히 서문으로 피하십시오. 시각이 바쁩니다. 황숙, 어서 피하십시오."
유기는 난감한 듯이 하늘을 올려다 보며, 유비를 재촉한다.
유비가 처참한 얼굴로 대답한다.
"공자, 꼭 도망을 해야만 하오? "
유비는 그렇게 말하면서 도로 자리에 주저 앉았다.
그리고,
"난, 한 평생 여기저기 떠돌아다니고 쫓기기만 하였소. 아무리 도망자 팔자라지만 또 도망쳐야만 하겠소? 하늘의 뜻에 맡기면 그만이오. 채모가 날 어쩌나 보게 여기서 그냥 기다리겠소."
이렇게 말하는 유비의 얼굴은 참담하였다.
그러나 유기는,
"황숙은 현명하신 분이 아닙니까? 조만간 대업을 이루실 분인데, 여기서 속수무책으로 죽는 것이 대장부다운 겁니까? 게다가 황숙이 헛되게 죽게되면 형주에는 피바람이 불게 될 겁니다. 관우, 장비, 조운이 분명 아버님께 복수하려 들 텐데, 그건 황숙께서 바라시는 일은 아니잖습니까? 그땐 채모와 계모도 저를 해칠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님도 결코 그 화(禍)에서 벗어 나실 수는 없을 겁니다. "
유비는 그 말을 듣자,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나 유기에게 예를 표하며 말한다.
"공자 말이 맞소!"
"어서 가세요. 아무에게도 들키지 마시고요.."
유비는 유기에게 가벼운 목례를 해 보이고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리하여 자신이 타고온 적로를 서문 앞으로 끌고 온 뒤에 문을 나서자 마자, 말을 타고 앞으로 앞으로 내달렸다.
"저기 유비가 도망친다!"
유비의 뒷모습을 발견한 채모가 소리쳤다.
"쫓아라, 쫓아!"
채모가 병사를 독려하며 유비의 뒤를 맹렬히 추격하기 시작했다.
외청에 나가 있던 자룡은 군사들의 수상한 움직임을 감지하고 즉시 유비에게로 달려왔다.
그러나 유비는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닌가? 자룡이 유기에게 황급히 묻는다.
"공자, 우리 주공은?"
"장군, 당황하지 마시오. 황숙께선 이미 떠나셨소."
자룡은 그 말을 듣자 마자 양양에 올 때 함께 몰고온 호위 병사들을 서둘러 불러, 채모가 군사를 이끌고 달려간 뒤를 추격하기 시작하였다.
...
첫댓글 ㅉㅉㅉ 유비......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