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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년 만력 36, 광해 원년(1608년)
1월 전 참판 정인홍(鄭仁弘)의 상소는 다음과 같다.
신이 멀리 남쪽 지방에 있으면서 성상께서 편찮으시다는 말을 들었는데, 봄이 되면서 정사를 예전과 같이 보시고 결재함에 지체하심이 없다 하니, 이는 근심으로 생긴 병이라 약을 쓰지 않아도 절로 나을 것으로 여겨 약을 쓰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후 날짜가 많이 지나서 10월에 들어서면서부터 더욱 환후가 계시다 하여 중외가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르고 원근(遠近)이 근심 걱정을 했는데 또 10일이 못 되어 갑자기 병이 나으시니 이는 실로 천지가 돌보고 신명이 부지한 바입니다. 이 얼마나 종묘사직을 위해 다행한 일이며, 신하와 백성들에게 다복한 일입니까? 그러나, 듣건대, 일상 때에 원래의 병 증세가 항상 있다 하니 먼 곳에서 전해 들을 때 근심과 걱정을 이길 수 없습니다. 신은 몸이 영(嶺) 밖에 있어 도성과의 거리는 천리나 떨어졌고, 나이는 70이 넘어 안으로는 지극히 노쇠하고 밖으로는 질병이 틈을 타고 들어 초려에 쭈그리고 있으니 근력은 쇠진하였습니다. 그래서 약을 달여 바치는 일에 참여하지 못했으니 그 죄과는 깊고 중하여 모면할 길이 없으며, 북으로 대궐을 바라볼 때 마음 둘 곳이 없습니다. 신이 국가의 두터운 은혜를 입었으나 갚을 길은 없고, 아침이나 저녁에 죽게 되면 황천에서 길이 무궁한 한을 품게 될 것이니, 지금 비록 임금 곁에서 힘을 다하지 못하나 성명(聖明)의 세상을 몸소 만났는데 어찌 선뜻 둔괘(遯卦)를 만나서 소장(疏章)을 불사를 수 있겠습니까? 오직 성상의 병환이 아직 다 낫지 않았는데, 갑자기 미치광이나 장님과 같은 말로 하늘의 해와 같은 임금의 밝음을 흐리게 하는 것은, 신이 비록 지극히 어리석으나, 어찌 마음에 불안함을 알지 못하겠습니까만 종묘사직의 위태로운 조짐이 분명히 눈앞에 있고, 국가 존망의 기운이 조석에 임박하고 있으니, 어찌 입을 다물고만 있을 수 있겠습니까? 만번 죽음을 무릅쓰고 입을 열어 죽어가는 마지막 날에 나라를 위해 보답하려는 것이고, 고식적인 부녀자나 내시 따위의 충성으로 슬그머니 스스로 임금을 덕성과 신의로써 사랑함을 보이는 척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삼가 바라컨대, 전하께서 굽어 살피시옵소서. 신이 떠도는 말을 들으니, 지난 10월 13일에 성상께서 섭정을 시키라는 전교를 내리셨다 하는데, 영의정 유영경(柳永慶)은 속으로 원임대신들을 꺼려 모두 물리치고 그들로 하여금 참여하지 못하게 하며, 여러번 장계를 올리는 것을 방해하고 다만 시임대신들과 함께 처리하였으며, 심지어 중전이 내린 언문 교서의 내용에 대하여 회계하기를, “오늘의 전교는 실로 여러 사람의 생각 밖에서 나온 것이므로 명을 받을 수 없소.” 하고, 대간과 융사(戎使)에게 알리지 않고 승정원과 사관(史館)에 성지를 비밀로 하였기 때문에 오래도록 밖으로 전달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영경(永慶)이 무슨 음모와 흉계가 있어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음이 이 지경에 이르렀단 말입니까? 생각건대, 중전의 깊은 뜻은 전하의 의중을 깊이 체득하고 국가의 원대한 계획을 위한 것이니, 옛날의 고 황후(高皇后)ㆍ조 황후(曹皇后)ㆍ마 황후(馬皇后)ㆍ등 황후(鄧皇后)같은 어진 사람들도 이보다 더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영경이 극력 가로막고 기탄이 없으며, 비밀로 해서는 안 될 성지를 비밀로 하고, 축출해서 안 될 원임들을 축출하니, 중외에서 이것을 전하여 듣고 일반 사회의 인심은 놀라 격분하고 있습니다. 국사가 한 가정의 일이 아닌데, 원임대신들이 참여하는 것이 상례임에도 불구하고 감히 영경이 참여시키지 않음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으며, 임금이 무슨 일이 있을 때에는 세자가 나라를 다스려 나가는 것이 고금의 공통된 법인데, 영경이 여러 사람들의 생각 밖이라고 한 말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신은 알 수 없습니다. 대간이 참여하지 못한 것은 나라 정사라 할 수 없으며, 그 일을 정원과 사관에서는 다 같이 비밀로 한 것은 사사로운 도당만 알고 나랏일은 모르는 처사입니다. 청컨대, 신은 한번 진술해 보겠습니다. 전하께서는 종묘사직의 중함을 깊이 생각하시고 옥체의 안후를 깊이 헤아리시어 세자에게 맡기시고 한가로이 조리하시겠다는 처사이시니, 밝으신 하교는 공명 정대하기가 청천 백일과 같아서 신민이 마땅히 같이 들어야 하며, 만물이 마땅히 같이 바라보아야 할 것인데, 하물며 원임대신도 모르게 하였으니, 그 음흉하고 간교한 정상과 마음대로 방자하게 구는 짓이 불을 보듯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일이므로 다시 더 숨길 수 없는 것입니다. 아! 영경은 본래 간교하거니와 원임대신 여러 사람도 실책이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정사에 관해서는 함께 참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어찌 영경의 전횡을 고분고분 받아주며 묵묵히 쫓기는 양떼와 같이 할 수 있겠습니까? 무릇 일이 있으면 반드시 빈청에서 널리 의논하도록 하는 이유는 바로 권력을 쥔 간교한 자가 전횡하는 화를 방지하기 위한 것인데, 필경 이와 같이 되었으니 장차 그 정승들을 어디에 쓴단 말입니까? 또 여러 사람의 생각 밖에서 나왔다고 하니, 이른바 그 여러 사람의 생각이란 무엇을 가리키는 말입니까?
만약 자기 도당들이 바라지 않는 것이면 약간의 무리들의 음모와 흉계를 가리켜 여러 사람의 생각이라 핑계하고, 임금의 이목을 속이는 것이 아닙니까? 만약 국민이 원하지 않는 일이라 한다면 혹 전하거나 섭정하게 해서 인심을 단결시키고, 국본(國本)을 안정시키고, 옥체를 정양하시도록 하여 빨리 쾌유하시는 경사를 보는 것이 조정 사대부들의 정이고, 서울 안 남녀의 정이요, 바다 끝까지 온 나라 백성의 정입니다. 무릇 혈기(血氣) 있는 자들의 꼭 같은 정을 군정(群情)이 아니라 함은 분명히 임금이 안중에 없다 생각하는 심리로서 감히 합조(盍朝)의 울음을 운 것입니다. 신은 감히 안다고는 못하겠습니다만 전하께서 먼저 마음을 결단하시고 여러 아들 중에서 택하여 동궁을 정하신 것은 전하께서 임금이 될 만한 아들을 알아보셨기 때문이 아닙니까? 성철(聖哲)하신 의인왕후(懿仁王后)께서 자기의 소생처럼 어루만지신 일이 옥책(玉冊)에 실려 있으니 전하의 본뜻이 아닙니까? 대가가 서쪽으로 행차하실 때 조정을 분리하게 하시고, 세자를 크고 작은 조정으로 부르게 하여 정사를 감독하고 백성을 어루만지도록 하시고, 백관에게 칭신(稱臣)토록 하신 것은 전하의 밝으신 하교가 아니었습니까? 들어와 시병(侍病)하도록 명하시고, ‘이를 생각하여도 이에 있으며, 이를 버려도 이에 있으며, 이를 이름하여 말함도 이에 있으며, 진실로 마음에서 나옴도 이에 있다.’고 생각하신 것은 전하의 생각이 아닙니까? 세자가 입시한 뒤에 밤중에 눈물을 흘리시며 밖에 나가 서서 하늘에 빌면서 전하를 대신하여 목숨을 바치게 해달라고 치성을 드린 일은 전하께서 알고 계시는 바가 아닙니까? 이 몇 가지 사실을 전하께서 충심으로 돌보지 않으심이 없다는 것은 하늘이 내려보는 바이며, 나라에서 알고 있는 터인데 영경의 두 마음을 품은 것이 이와 같으니, 이는 세자를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도리어 전하께서는 환후가 아직 완전히 나으신 것은 아니지만 점차 평안해지심은 또한 세자의 성심과 효성이 하늘을 움직인 소치이므로, 나라 백성들이 전하여 듣고 감격하여 울지 않는 사람이 없고, 모두 말하기를, “성상의 교훈이 그 도를 얻으심이 이와 같고, 세자의 어질고 효성스러움이 상하에 미치기가 또 이와 같으시니, 훌륭한 아비에 이러한 어진 아들이 있을진대 국가의 복은 무궁하리라.” 합니다.
만약 물정의 다소(多少)로써 말한다면, 왕위를 전하여 섭정하게 하시고 조리 간호하시는 일은 국민들의 똑같은 소원인데, 국민 이외에 다른 군정(群情)이 있습니까? 영경의 말을 들어 그 마음의 본뜻을 보면, 뒷날에 자기는 스스로 사미원(史彌遠)이 되고, 우리 동궁은 제왕(濟王)의 처지로 만들려는 것입니다. 영경이 동궁에 대하여 불안스러워하는 마음이 이미 드러났으므로, 날로 더 미워하고 원망하여 자신을 위하여 꾀하는 일이라면 못하는 일이 없을 것이니, 영경이 다시금 우리 임금의 아들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세자를 보리라고 생각하십니까? 그 형세상 장차 이에 그치지 아니하고 반드시 그 간사한 꾀를 팔아서 마음대로 처리하게 되어야만 그칠 것입니다. 삼가 생각건대, 조정에서 마땅히 칼을 내려달라고 요청하는 사람이 있으리라 하였는데, 10월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소식이 있기를 기다려도 그런 사람이 아무도 없으며, 지금 요직에 있는 자는 영경의 사인(私人)이 아닌 자가 없고, 영경만을 알고 전하가 계심을 모르는 자들이며, 전하를 저버릴 망정 영경에게 배반하지 않으려는 자들입니다. 대간이 말을 아니하는 것은 그들이 모두 영경의 조아(爪牙)이기 때문이요, 대신들이 아무 말 없이 따라가는 것은 영경의 우익이기 때문이며, 정원과 사관에서 성지(聖旨)를 사사로이 비밀로 하는 것은 그들이 영경의 심복이기 때문입니다. 전하의 고굉(股肱)은 대신인데 대신들이 이러하며, 전하의 이목(耳目)은 대간인데 대간이 이러하고, 전하의 후설(喉舌)은 정원과 춘추사관인데 정원과 사관이 또 이러하니, 전하는 위에서 고립되어 의지할 만한 개미 새끼조차도 없고, 어진 후사가 있으나 장차 서로 보전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신이 보건대, 전하의 부자를 해치는 자는 영경이요, 전하의 종묘사직을 망치는 자도 영경이며, 전하의 국가와 신하들에게 화가 되는 자 또한 영경입니다. 아! 진실로 세자가 처음에 간택을 입어 후사로 되지 않았다면 역시 하나의 왕자에 불과하니 어찌 동요하고 의심의 불안한 근심이 여기에 이르게 되었겠습니까? 이것은 전하께서 처음에는 후사로 뽑으셨다가 나중에는 불측한 지경에 두셨기 때문입니다. 전하께서 어찌하여 하나의 흉신(凶臣) 때문에 도리어 어진 후사에게 화가 미치게 하신단 말입니까? 송(宋) 나라 고종(高宗)은 후기에 송 나라를 중흥시킨 임금이요, 또 질병이 있는 것도 아닌데 종실의 아들 진안왕(晉安王)을 택하여 후사로 삼고, 제위를 물려주며 말하기를, “좋은 사람을 얻어서 후사를 부탁하게 되니 유감이 없다.” 하니, 사관(史官)이 대서특필하여 아름다운 일이라 하고, 군자들은 요순(堯舜)의 선위라 일렀습니다. 이제 세자가 임시로 섭정하는 일은 친한 관계로는 전하의 아드님이시고, 인품으로 말하면 어질고 효도하는 덕이 있고, 시기로 말하면 전하가 안녕하시지 못한 때이니, 전하께서 혈육이며 어질고 효심 있는 아들로서 내 몸이 불편한 관계로 섭정을 시키고 간호시키겠다는 명령을 내리셨다면 대신된 자들이 당연히 순종할 일일 뿐더러 오히려 미처 못 미칠까 두려워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유영은 도리어 화심(禍心)을 품고 사(私)를 들어 공(公)이라 하고, 대중의 뜻이 아니라고 하니, 이것을 참는다면 또 무엇을 참지 못하겠습니까? 하물며 지난번 난리 때에 소조(小朝)가 남하하여 군(軍)을 무마하고 나라를 다스려 오래도록 이 나라의 희망이 되어왔으며, 임금께서 반국(反國)하신 뒤에는 환위(還位)하고 잠궁(潛宮)한 전례가 이미 있어서 사리가 밝고 바르니 지금 임시로 섭정함은 실로 밝고 밝은 처사로 털끝만한 의심도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영경이 없는 사실을 꾸며 방해하고, 몰래 사주하여 억누르고 전횡방자하여 잠깐 사이에 전고에 없던 일을 하였으니, 흉악하기가 김안로(金安老)보다 더하여 길가는 사람도 눈짓을 하게 되어 앞으로 차마 말할 수 없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이야말로 덩굴이 불어나는 것을 놔두면 나중에는 덩굴을 제거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또한 영경의 이번 행동은 전하에게 아첨하여 총애를 굳히고 나라를 제멋대로 하려는 계책이 아닙니까? 그러나 이것은 용렬하고 혼매한 군주의 때라면 통할 수 있을는지 모르거니와, 전하의 강건함은 사(私)를 못 이길 리 없고, 전하의 밝으심은 깊숙한 데도 비추지 않음이 없는데 감히 이같이 하니, 진실로 어리석고 망령된 자가 아니라면 마음속에 딴 뜻을 품은 자가 아닌가 신은 의심하는 바입니다. 신은 들으니, 역경(易經)에, “미리 방어하지 않고 마침내 죽이게 되면 흉하다 / [不過防之 終或戕之凶].” 하였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종묘사직의 계획을 깊이 생각하시고 전대의 전철을 거울삼아 간흉의 마음을 깊이 살펴서 더욱 엄중히 막으시되 혹 지나칠까 염려하지 마시고, 영경의 동궁을 동요시키고 종묘사직을 위태롭게 한 죄를 급히 드러내어 형법을 바르게 하시며, 계은(繼恩)ㆍ창렬(昌齡)의 간계한 무리로 하여금 뒷날에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하여 국가의 근본을 튼튼히 하시고, 종묘사직이 억만년토록 무궁한 아름다움을 누리도록 하소서. 만약 신의 말씀이 지나친 우려라 여겨 먼저 신에게 망언을 한 죄를 내려 간사한 무리의 마음을 기쁘게 하신다 해도 신은 전하께 죄를 얻고, 영경의 흉화(凶禍)에 죽지 않는 것이 실로 다행이니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예로부터 권간(權奸)의 죄를 직언한 사람을 예로 들면 장강(張綱)이 양기(梁冀)를 탄핵하고, 호전(胡銓)이 진회(秦檜)의 목을 베자고 청한 일들이 있지만, 장강과 호전이 모두 음해를 입어 참혹한 화를 당했다는 것을 신은 잘 알고 있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고인(古人)은 이웃 나라의 임금을 시해한 신하를 보고서 자신이 이미 늙어 물러난 처지지만 오히려 그를 치기를 청하였는데 하물며 본조(本朝)에 있어 임금을 배반하고 나라를 그르친 원흉에 있어서이겠습니까? 어찌 몸이 외지에 있다 하여 입을 다물고 임금에게 죄를 지어 불충한 신하라는 말을 달게 받음으로써 스스로 천지 귀신에게 죽임을 당해야 한단 말입니까? 당시 북방의 경계가 위급하여 무과(武科)를 크게 열고자 금월 22일로 날을 정하고 과장을 열 예정이었는데, 영우(嶺右)의 선비들이 이 상소를 가지고 상경하여 연일 문에 이르러 분란을 피우므로 과기(科期)를 뒤로 물렸다.
○ 유영경(柳永慶)의 상소는 다음과 같았다.
신은 삼가 아룁니다. 전 참판 정인홍의 상소는 그 낭자하게 늘어놓은 말이 오로지 신더러 동궁을 뒤흔들고 종묘사직을 위태롭게 꾀하였다고 지목하여 이를 데 없는 악명을 뒤집어 씌우고 있으니, 신하된 몸으로 이 천지에 지극한 원통을 당하고서 만약 밝은 하늘 아래 명백히 가려놓지 않는다면, 살아서 이 세상에 설 수 없으며, 죽어서도 지하에서 눈을 감지 못할 일입니다. 어찌 감히 번거롭고 욕됨을 꺼려서 통렬히 반박하는 언사를 다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 굽어 살피시옵소서. 지난해 10월, 전하의 병이 심하여 오래 조섭한 끝에 갑자기 일어나시니 여러 신하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때 신은 약방 제조로서 마침 차비문(差備門) 안에 있었습니다. 정원에서는 삼공을 부르라는 명령이 있고, 뒤미쳐 곧 밀부(密符)가 내렸다고 전하므로 신과 좌의정 허욱(許頊)ㆍ우의정 한응인(韓應寅)은 밀부를 맞추어본 뒤 차비문 밖에서 어명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조금 있으니 정원에서 전언하기를, “빈청에 물러가 기다리라.” 하여, 신이 자상과 함께 빈청에 나가니 원임대신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신들이 왕위 전섭(傳攝)의 하교를 받들고서 생각해 보니, 창황한 즈음에 특별히 이 명을 내리신 것은 종묘사직을 위한 대계로써 근본을 공고하게 하시려는 지극한 성려라, 신들이 성지(聖旨)에 순응할 것을 모르는 바 아닙니다. 다만 성상께서 공무를 친히 다스리시지 못함이 겨우 하루 이틀뿐이요, 우연히 병세가 심한 것은 약을 쓰지 않고도 될 수 있으니 하루 이틀이면 완쾌하시리라 생각하였습니다. 여러 신하의 소망이 오직 여기에 있었는데 내지(內旨)가 갑자기 이때에 내렸기 때문에 회계 중에 이른바, “오늘의 하교는 군정(群情) 밖에서 나왔다.” 한 것은 사실 이것을 말한 것이었습니다. 하물며 왕세자는 이러한 왕명이 내리셨단 말을 듣고 황급한 중에 더욱 민망하고 절박하여 식음을 폐하고 눈물을 흘리며 어찌할 바를 모르시니, 여러 신하들이 뉘라서 감동되지 않았겠습니까? 신들이 받들어 행할 수 없다 함은 그 곡절이 이러한데, 지금 정인홍의 말에 원임대신들을 모두 배척하여 참견하지 못하게 하고 여러번 글을 올리는 것을 방해하고 홀로 시임대신들과 함께 하였다고 하는데, 신들이 빈청에 이르기 전에 원임대신들이 이미 나갔으니 이른바 원임대신들을 배척했다는 것은 신으로서는 알지 못하는 일입니다. 성상께서 이미 삼공을 부르라는 명령을 내리셨고 신들은 또 삼공을 부르라는 부절을 맞추어보고 있었으니 그때 회계하는 일은 마땅히 시임대신에게 있으므로 신등이 상의하여 회계한 것이고, 그 비망기와 계초(啓草)는 주서가 전례대로 가져갔으니, 그후 대간이 듣고 안 듣고는 대신이 알 바가 아닙니다.
왕세자의 총명과 인효(仁孝)는 본래 천성이시고, 또 동궁에서 덕을 닦으신 것이 17년이므로 신민들이 다같이 추대하는 바이며, 종사의 부탁을 받으실 분으로 저임(儲任)이 본래 정해지고 국가의 근본은 이미 단단한데, 인홍이 감히 선위하는 일에 가탁하여 몰래 화를 남에게 전가시킬 꾀를 꾸며 지극히 흉악한 말을 지어내면서 극단을 쓰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그 내용을 들면, 이와 같이 두 가지 마음을 품고 있다는 것, 남을 시기하는 것이 날로 심하다는 것, 비밀리에 흉계를 꾸몄다는 것, 모의한 위험스러운 계획이 이미 드러났다는 것등이오며, 심지어 전하의 부자를 해치려 한다고까지 하니 그 말의 흉참하고 기만함은 차마 말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차마 들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인홍의 하는 말은 그 지목하는 뜻이 무엇이며 지칭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방금 성상께서 위에 계시고 세자가 아래에 계셔서 성상은 자애로우시고 세자는 효도하여 양궁(兩宮)이 즐겁고 흡족하심은 옛날 왕계(王季)와 문왕(文王)의 부자로도 이에 더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인홍이 감히 망극하기 짝이 없는 말로 신을 모함하고도 스스로 흉악한 궁지에 빠질 것을 모르니, 그 계책은 참혹하고 그 마음은 망령됩니다. 사미원(史彌遠)은 송(宋) 나라의 역적 재상인데 인홍이 신을 그에게 비유하니 그 모함은 극도에 달하고 있으며, 또 제왕(濟王)의 일을 들어 감히 의심할 수 없는 일을 의심하고 있으니 그 마음가짐을 더욱 헤아릴 수 없습니다. 신과 인홍은 본래 조그마한 혐의도 없었는데, 다만 임진 연간에 잠시 사소한 감정이 있었을 뿐이온데, 인홍이 비록 노망이 되었다 하더라도 어찌 이것을 가지고 신을 모함함이 이토록 극에 이를 수 있습니까? 이는 반드시 그러한 이유가 있을 터인데 신은 그 까닭을 알 수 없습니다. 신이 외람되게 오랫동안 어진이의 진출하는 길을 막고 있음으로써 죄와 허물이 산과 같이 쌓여 전후로 비방을 받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돌이켜 자기 허물을 생각해 볼 때, 스스로 잘잘못이 판별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당한 무고는 비단 그 화가 일신에만 미칠 뿐 아니라 실로 종묘사직에 관계되는 일이므로 이번 상소가 있은 뒤로는 심골(心骨)이 함께 떨리고 간담이 찢어지는 듯하여 궐문 앞에서 짚자리를 깔고 죄 내리기를 기다린 지 이미 며칠이 되었으나 형벌은 아직 내리지 않았습니다. 신하가 되어 이와 같은 악명을 뒤집어쓰고 하루라도 설욕을 못하면 하루 동안이라도 패역의 신하가 될 것이므로 하는 수 없이 어질고 밝으신 성상께 호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 신의 정성을 살피시고 실상을 캐서 신의 죄상을 처단하시고, 신을 죄주어야 한다는 사람들의 말에 보답하신다면 국가로서 다행한 일입니다. 신은 몹시 통탄스럽고 떨림을 누를 길이 없어 삼가 죽음을 무릅쓰고 이 글을 올립니다.
○ 옥당의 차자는 다음과 같았다.
신들이 전 참판 정인홍의 상소를 보니, 영의정 유영경이 동궁을 동요시키고 종묘사직을 위태롭게 한 모의를 하였다는 것이 죄안이온데, 사대부를 모함하였을 뿐만 아니라 말이 임금에까지 미쳐 허다한 사설이 매우 흉악하고 참담하니 신하된 자로서 차마 들을 수 없는 바가 있습니다. 신들이 이 상소문을 보고 나서는 간담이 찢어지는 듯한데 인홍이 과연 떠도는 말을 듣고 하는 소리인지, 아니면 누구의 사주를 받고 이 음모를 꾸미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인홍의 마음을 신들이 비록 알 수는 없으나 상소문 속의 말을 줄거리로 삼고 신등의 목도한 바를 참작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작년 10월 9일 성상께서 감기 증세가 오래 조섭하신 나머지 갑자기 일어나니 대소 신하들이 허둥지둥 정신을 잃고 모두 나아가 대궐 뜰에 있었고, 다시 조의(朝議)는 없었습니다. 그 이듬해 2월 12일에 삼공을 부르라는 어명이 계셨고, 계속하여 밀부를 내리셨는데, 그 때 영의정 유영경은 약방제조로서 차비문 밖에 있었고, 좌의정 허욱(許頊)과 우의정 한응인(韓應寅)은 여러 대신들과 같이 빈청에 모였습니다. 조서를 받들어 밀부를 합쳐 본 뒤 삼공이 차비문 밖에 모이게 되었는데, 정원에서는 다시 삼공은 빈청에 가서 모이라는 전교를 내렸습니다. 삼공이 자리를 떠나기에 앞서 녹사(錄事)를 불러 먼저 삼공이 온다는 것을 알렸는데, 원임대신들은 혹 어떤 사람은 서쪽 벽 뒤로 피하고자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비변사로 피하여 나가기도 하였습니다. 그뒤 삼공이 빈청에 이르렀을 때에는 원임대신들은 모두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전섭(傳攝)하신다는 어명은 틀림없이 그뒤에 내렸으니, 정인홍의 상소 중에 이른바, “배척하여 다 물러가게 하고, 그 자리에 참견하지 못하게 하였다.”는 것은 과연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습니다. 당시 부름을 받은 사람은 오직 시임대신들이옵고, 전섭하신다는 하명도 시임들에게 내리셨으니 회계를 올림에 있어서도 시임대신들과만 상의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인데, 정인홍의 상소 중에 오직 시임들과만 상의한 것이 잘못이라 한 것은 또 무슨 말입니까? 이것은 신들이 당시 대궐 안에 있어서 귀로 듣고 눈으로 본 일인데 상소문 중에 여러번 방계(防啓)하였다 하니, 신들은 더욱 통분함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성후(聖候)가 안녕하시지 못하여 오랫동안 조섭중에 계시므로 공무에 혹 빈틈이 생길 것을 염려하시고, 더욱 종묘사직의 대계를 힘쓰시어 마침내 전섭한다는 하명이 계신 것이니, 이는 비록 성상께서 근본을 공고히 하시고 위태함을 안정시키려는 거룩하신 뜻에서 나온 것이나 신하의 지극한 정에서 볼 때 어찌 마음에 편안하여 선뜻 받들어 행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어명이 내린 당일 대소의 신하들이 근심하고 당황하며 민망하고 답답할 뿐 아니라, 왕세자께서도 강원(講院)에 영을 내려 이르시기를, “망극하고 온당하지 못한 하교를 오늘 또 내리시니 민망하고 절박한 이 마음이 어찌 극도에 달하지 않으리오. 바라건대, 사부(師傅)와 빈객들이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백관과 더불어 합동으로 축원하여 반드시 회천(回天)하실 때까지 하게 하라. 이 뜻을 사부께 전하여 기필코 회천하신 뒤에 그만두도록 하라.” 하시니, 이는 비록 신들만이 들은 것이 아니고, 광립(光立)이 궁관(宮官)으로 있으면서 이것을 가지고 사부와의 사이를 왕복하였으며, 세자께서 영을 내리신 사실이 시강원의 일기에도 기록되어 있으니 세자가 전섭을 굳이 사양함은 지극한 심정에서 나온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으로 미루어볼 때, 대신이 방계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은 심정에서 나온 것이며, 회계 중에 이른바 군정(群情) 밖에서 나왔다는 것은 세자의 심정도 역시 그 군정의 하나입니다. 정인홍이 이것을 가지고 말을 삼으니 통탈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의 상소문 중에는 또 정원과 사관에서 성지를 비밀로 하고 밖에 알리지 않았다는 것으로 말을 삼았는데, 그 사이의 곡절은 이미 정원에서 올린 장계에 상세히 나왔고, 사관의 상소야 어찌 영경이 알 바이겠습니까? 지금 바야흐로 성상이 위에 계시고 세자가 아래에 계셔서 자애가 지극하시고 효성이 지극하여 양궁(兩宮) 사이에 화기(和氣)가 넘치며, 더구나 우리 세자께서는 동궁의 자리에 나아가신 지 17년 동안에 인심이 이미 쏠리고 천의(天意)가 이미 정해졌으며, 책명이 내리기 전에 황제의 칙명이 여러번 내려서 중국 조정에서도 다같이 알고 있는 바이며, 종묘사직이 세자에게 맡겨져 있는 바인데 누가 감히 그 사이에 딴 뜻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지금 정인홍의 상소는 영경을 모함하는 것만을 생각하고, 그 자신이 임금을 동요하게 하여 양궁의 사이를 이간한 죄에 빠지는 것을 알지 못하니, 그 꾀는 간교하고 그 마음은 망령된 것입니다. 성상의 자애가 이러하시고 세자의 효성이 이러하시니 비록 인홍같은 자가 백이 들어서 교란을 한다 하여도 어찌 이것으로 인하여 천리에 틈이 갈 이치가 있겠습니까? 인홍은 멀리 천리 밖에 있으면서 어찌 떠도는 말만을 듣고 이처럼 근거 없는 불측한 말을 할 수 있습니까? 그 사이에는 반드시 그렇게 된 원인이 있을 것입니다.
유영경은 7년간 정승으로 있었으므로 뜻을 잃고 분함을 참아온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는 대상이 되어 언제든지 기회만 있으면 그를 한번 모함에 빠뜨리려고 하였으니, 이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재령(載寧)의 옥사가 있었고, 중간에는 대궐벽에 방이 붙었고, 끝으로는 약방의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끝내 그 간사한 꾀가 성공되지 못하자, 이번에는 계사(啓辭) 중의 일단을 끌어내어 사실에 없는 소리를 만들어내어 중외에 퍼뜨리고 인홍의 손을 빌어 귀역(鬼蜮)의 음모를 시험한 것이며, 또 정원(挺元)의 무리들을 사주하여 약자(若子)의 논란이 나오게 하여 자웅이 서로 화답하고 표리가 서로 호응하여 위로는 임금을 의혹되게 하고, 아래로는 백성의 마음을 요란하게 하니, 반드시 불측한 지경에 화를 전가하고야 말 것입니다. 앞으로 이 무리들의 계책이 이루어진다면 그 화가 어찌 국가에만 미치고 말겠습니까? 다행히 성상께서 간사한 자들의 죄상을 통촉하셔서 첫째는 뭇 소인들 중에 영의정을 모함하려는 자가 있어 유언비어를 만들어 남중(南中)에 퍼뜨렸다는 것, 둘째로는 영상을 모함했을 뿐 아니라 일시에 대간과 시종들까지도 모두 죄망에 빠뜨리려고 한 것, 셋째로 간교한 자가 모래를 입에 머금어 가지고 사람의 그림자에 뿜는 식의 계책을 써서 못 이르는 곳 없이 그 말이 군부에까지 미치게 하였으니, 이는 참으로 임금을 없애려는 반역죄에 해당한다는 것을 밝히셨고, 또 정원(挺元)의 상소에 회답하심에 있어서는 남의 사영(射影)의 사주를 받은 것으로 성교를 내리셨으니 이는 실로 일국 신민들의 복일 뿐 아니라 종묘사직의 만세 무궁한 기쁨이라 하겠습니다. 간흉의 간담은 남 모르는 속에 이미 떨어졌을 것입니다만 성교(聖敎)에, “밤에 잠도 잘 수 없고 낮에 음식도 먹을 수 없는 일이다.” 하시니, 이는 비록 깊이 미워하시고 몹시 아파하시는 지극한 뜻에서 나오신 것이나 성상께서 바야흐로 정섭(靜攝)하시는 중에 갑자기 이같은 하교가 내리시니 신들은 더욱 지극히 근심스럽고 민망함을 이길 길 없습니다.
아! 동궁을 동요시킴은 천하의 극악한 일이요, 종묘사직을 위태롭게 함은 천하의 대죄인데 인홍이 이로써 무고하였으니 실로 정해진 형벌을 면할 길이 없을 것이나, 이는 특히 남의 비밀스러운 사주를 받아서 일으킨 것일 것입니다. 관숙(管叔)ㆍ채숙(蔡叔)의 유언비어를 주공(周公)ㆍ소공(召公)도 미리 분별하지 못하고 주공이 동쪽에 가서야 죄인의 형적이 탄로되었으니, 지금 이 죄인의 형적이 소상하게 드러날 날도 또한 멀지 않을 것입니다. 더구나 신들이 염려하는 것은 인홍과 정원의 계략이 백일하에 판명되지 못하면 앞으로 또 어떠한 간모와 흉계가 다시금 천만리 밖에서 나타날지 알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북쪽 오랑캐는 날뛰고 봄의 과거 시험은 바로 급하니 성상께서 밤낮으로 근념하시는 바요, 묘당에서도 고심하는 바로써 과거(科擧)를 보이는 것도 또한 이때문입니다. 사방의 응시자들이 서울로 운집하는데, 흉악한 자들의 상소문이 한번 들어오자 위로 재상으로부터 아래로 대관과 시종(侍從)에 이르기까지 그 자리에 마음놓고 있지 못하며, 기상 이변이 많으며 과거 날짜를 재차 연기함에 이르러서는 많은 사람들의 노여움이 폭발되어 원망하는 소리를 차마 들을 수 없으니, 신들은 아마도 위망한 조짐이 조석간에 있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삼가 바라건대, 종묘사직의 중함을 깊이 생각하시고 옳고 그른 것을 더욱 분명히 하여 간사한 사람을 통렬히 물리치시고 조정을 편안하게 하시며, 급히 과거를 시행하여 인심을 진정시키면 국가의 다행이요 조정의 다행이겠습니다.
○ 《비망기》에 다음과 같이 이르다.
정인홍은 세자로 하여금 빨리 전위(傳位)를 받도록 하기 위한 것이니, 저의 생각으로는 세자에게 충성을 다한 것이라 할는지 모르지만 사실은 심히 불충한 일이다. 제후의 세자는 반드시 천자의 명을 받은 뒤라야 비로소 세자라고 이를 수 있는 것인데, 지금 세자는 책명을 아직 받지 아니했으니 이는 천자가 허락하지 않은 것이다. 천자가 모르는데 하루아침에 갑자기 전위를 받았다면 만일 중국 조정에서 힐난하기를, “그대 나라의 소위 세자는 천조에서 봉하지 않았는데 그대 나라의 왕이 마음대로 전위한단 말인가? 그대 왕의 직위도 또한 천자의 직위와 같은가? 그대 왕이 멋대로 할 수도 없는 일이며, 세자 또한 어찌 감히 마음대로 전위를 받는다는 말인가? 그 사이에는 무슨 원인이라도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불측한 구실을 세자에게 뒤집어 씌우고, 대신들을 힐문한다면 장차 어떤 결말이 나겠는가? 내 일신이 고달파서 물러서고자 하였지만 대신들이 나랏일을 생각하는 데는 어찌 두루 살피지 않을 수 있으랴. 이것이 어찌 조급하고 망령된 사람의 생각이라 하겠는가? 대신들이 어찌 다만 옛 임금이 물러나는 것을 보고서 차마 승인할 수 없는 그것만이겠는가? 이번에 인홍의 상소로 인하여 내 마음이 불안해서 밤에 잠을 이룰 수 없고, 낮이면 음식이 목구멍에 내려가지를 않으며, 대신들과 대간들은 모두 그 자리를 불안하게 생각하니 전에 없던 큰 변이다. 정원에서 잘 알아 처리하라.
○ 왕명에 의해서 영남의 상소문을 올렸던 선비들을 하옥하고 정인홍을 귀양보내서 강계(江界)에 안치하였으며, 또 이이첨ㆍ이경전(李慶全) 등은 정인홍을 은밀히 사주한 죄로 먼 곳에 귀양을 보냈다.
○ 배신 유간(柳澗)을 보내어 노추(奴酋)의 형편을 중국에 보고하였다. 성지가 요동무진관(遼東撫鎭官)에 내렸는데 적당한 관원을 선정하여 보내서 노추에게 유시하기를 각기 변방을 지켜서 서로 침략하여 소요하지 말라고 하였다. 《고사》
2월 1일 선종대왕(宣宗大王)께서 승하하였다. 재위 42년 연수 52세금상(今上)이 즉위하자 배신 이호민(李好閔)을 중국에 보내어 부음을 알리고 표문을 받들어 시호를 내려주기를 청하였으며, 또 왕대비의 상주문을 갖추어 왕의 습위를 요청하였다. 《고사》
○ 이원익(李元翼)으로 영의정을 삼고, 이항복(李恒福)ㆍ심희수(沈喜壽)를 각각 좌우상에 임명하였다. 정인홍ㆍ이이첨ㆍ이경전을 불러들여 인홍에게는 자헌(資憲)을 가자하여 한성 판윤(漢城判尹)을 제수하고, 이이첨 등에게도 모두 관직을 주었다. 유영경 등의 관직을 삭탈하여 유영경을 경흥(慶興)에, 김대래(金大來)를 경원(慶源)에, 이홍로(李弘老)를 대정(大靜)에, 이효원(李孝元)을 거제에, 성준구(成俊耉)를 남해(南海)에 각각 안치시켰다. 연좌된 사람이 매우 많으나 그 이름은 자세하지 않다.
14일 장령 윤양(尹讓), 지평 민덕남(閔德男), 헌납 윤효선, 정언 이사경(李士慶)과 임장(任章)이 아뢰기를, “임해균 진(珒)이 오랫동안 다른 뜻을 품고 사사로이 군기를 저장하고 암암리에 결사대를 길러, 작년 10월 대행대왕(大行大王)께서 환후가 계실 적부터 무리를 많이 모을 뿐 아니라 이름 있는 장수들과 연락하고 무사들을 불러모아 밤낮으로 남몰래 불측한 일을 꾸며 왔음은 국민이 다 환히 알고 있는 바이며, 대행대왕께서 승하하시자 발상도 하기 전에 공공연히 자기 집을 뛰쳐나왔다가 한참 뒤에야 다시 들어갔으니, 그 정상이 분명히 군사를 지휘하고 있는 것같습니다. 지금 매우 가까운 곳에 있어 철추와 환도를 만들어 빈 가마니에 싸서 많은 수를 들여오고 있으니 불측한 화가 조석에 있습니다. 청컨대, 종묘사직을 지킬 원대한 계획을 생각하시고 급히 대신과 병조에 명하시어 속히 처치하여 절도(絶島)에 유배시켜 성상의 우애로운 지극한 정성을 온전하게 하시고, 중외 군중의 두려워함을 진정하도록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나의 형이 어찌 그렇게 할 리가 있겠는가? 내 계사(啓辭)를 보며 민망하여 눈물을 억누를 수가 없다. 대신들에게 물어서 처리하라.” 하였다. 《비망기》에는, “국가가 불행하여 이와 같은 공론이 있으니 동기간에 어찌할 바를 몰라 다만 스스로 통곡할 뿐이로다. 선왕의 유교(遺敎)가 분명히 귀에 들리는데 내 차마 어길 수가 없다. 여러 대신들이 상의하여 선처하되 되도록 보전하는 길로 힘써주면 다행이겠다.” 하였다. 아성부원군(鵝城府院君) 이산해(李山海), 영상 이원익, 영부사(領府事) 이덕형ㆍ심희수(沈喜壽)ㆍ이항복ㆍ허욱(許頊)ㆍ한응인(韓應寅)이 아뢰기를, “절도(絶島)에 유배함이 보전하는 데 가장 좋은 길입니다. 속히 이렇게 처치하심이 마땅합니다.” 하니, 답하기를, “절도에 유배함은 차마 할 수 없는 일이나 이미 나갔으면 당상무장(堂上武將)을 보내서 군사를 인솔하여 그 집을 지키게 하고, 뜻밖의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여라.” 하였다.
○ 양사(兩司)에서 다시 아뢰어 진(珒)을 절도에 유배하기를 청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또 아뢰기를, “고언백(高彦伯)ㆍ박명현(朴名賢) 등이 은밀히 다른 뜻을 품고 있으니, 속히 잡아 가두기를 청합니다.” 하니, 잡아 국문하기를 명하였다.
○ 부제학 송응순(宋應詢) 등이 연이어 세 번이나 글을 올려 진(珒)을 절도에 유배하기를 청하였으나, 답하기를, “대신에게 물어서 조처하라.” 하였다.
○ 병조에서 아뢰기를, “진(珒)이 그때 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부인(婦人)같이 꾸며 사람의 등에 업혀 나가는 것을 본조의 낭청이 바라보고 발견하여 급히 추적하여 들여보내고 비변사에서 장병을 정해서 지키고 있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알고 있다. 이미 삼사에 말하였노라.” 하였다.
15일 금부에서 아뢰기를, “정배하는 일에 대하여 대신 이산해는 진도가 좋은데, 다만 단단히 지켜 백성의 피해가 없도록 하고 나루터를 엄격히 하여 나라에 의심을 진정시킴이 좋다 하였습니다. 이덕형ㆍ이항복은 교동(喬桐)도 절도(絶島)이므로 원근(遠近)에 상관이 없으며, 다만 진(珒)이 패란하고 방종하다는 것은 이미 익히 듣고 있었으나, 소위 역모에 대하여는 그 상세한 사정을 아직 모르니 방치해 두고 불문에 붙이며, 공론이 이미 엄중한 바에야 안전한 데 두고 사은(私恩)을 펴나감이 좋을 것이며, 만약 수토(水土)와 무로(霧露)로 인하여 마음이 놀라서 병이 생겼는데 수호하는 신하가 잘 돌보지 않고 약물도 제때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되면 성상의 깊은 우애의 정에 끝 없는 고통을 안겨드릴 터이니, 이 어찌 유사의 죄가 아니겠습니까? 지금 생각으로는 관가의 근처에 두고 먹을 것과 물자를 풍부히 대주어 곤핍을 면케함이 좋은 것이라 하였습니다.” 하였다. 어진 재상의 이 제의가 실로 임금을 아끼는 진심에서 나왔는데, 관가에 가까이 둔 것이 마침내 군수 정연(鄭沇)에게 살해될 줄을 어찌 알았으랴. 판부사 기자헌(奇自獻)의 제의에 의복과 처첩을 보내주고 서로 의지하고 살도록 해줄 것을 말하니, “그 제의대로 시행하라.” 전교하였다.
20일 임해군이 진도로 가는 행차가 이미 호서(湖西)를 지났는데, 전교내리기를, “남방에 정배함이 온당치 않으니 급히 선전관을 파견하여 교동으로 옮겨 안치하라.” 하였다.
3월 대사헌 정구(鄭逑)가 상소한 것은 다음과 같았다.
신은 초야에 살고 있는 미미한 존재로서 성품은 본래 우둔하고 고루하며, 학문 또한 허루한 데다가 그뒤에 질병이 깊이 들어 어둡고 용렬하며 늙고 병들어 일반 사람과 비견하기조차 어렵습니다. 다행히 대행대왕(代行大王)에게 뽑혀 임무를 맡게 되었으니 융성한 은혜와 거룩한 사랑이 하늘에 닿는 것같습니다. 그러나 신의 근력이 미치지 못하여 물러나와 지내는 일이 많으니 전에 안동에 머무른 것도 병으로 물러났던 것입니다. 항상 성은을 생각할 때 높은 은혜는 하늘과 같고 신의 죄는 산과 같으니 근심과 두려움에 떨리며 먹고 쉬는 일이 모두 편안하지 못하였습니다. 뜻밖에 일국의 신민이 복이 없어서 선왕께서 갑자기 승하하시니 슬픔이 국내에 뒤덮였고, 미미한 소신에 있어서도 슬픔은 더욱 깊어 엎어지고 넘어지는 것도 생각하지 않고 붙들고 끌려서 한 발 한 발 겨우 올라와 대궐을 바라보며 곡을 마치고 사왕(嗣王) 전하께 사은하고 나니 늙고 병들어 빈사상태에 있는 신이 마음의 소원을 다하였는지라 물러가 죽은들 무슨 유감이 있겠습니까? 다만 총부(總府)의 은명(恩命)에 있어서는 병으로 감당하기 어려워 정원에 보고를 하였는데, 미처 아뢰기도 전에 천만 뜻밖에 꿈결에도 생각하지 못한 사헌부에 제수한다는 명이 내리니 놀랍고 황송하며 떨리고 두려워 수족이 놀려지지 않았습니다. 이는 유독 신의 마음만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사방 원근에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없으며, 이름과 실제가 너무도 맞지 않으므로 정상을 떠난 조처라고들 하니, 이 어찌 새로운 정사에 있어 깊은 수치가 아니겠습니까? 신이 용렬하고 우둔하기 짝이 없다는 것은 신이 스스로 잘 알고 있는 바이니, 신이 감히 헛된 말로 꾸며서 하늘을 속일 수 없을 뿐더러 온 조정의 사람들이 모두 분명히 알고 있는 바이므로 감히 숨길 수 없는 일입니다. 지난번 성교(聖敎)가 내리심에 있어 사람마다 기뻐 옮겨 전하지 않는 이가 없으며, 한 말씀이 나라를 흥하게 할 경사라고 생각하는데, 미천한 신의 성명이 외람되게 그 사이에 끼어 있고, 또 이어서 이처럼 비상한 명령이 있으시니 신에게 있어서는 그 영광과 행운이 실로 세상에 다시 없는 것이지만, 성상의 밝게 등용함을 욕되게 하며 요(堯)임금도 인재 등용을 어렵게 여긴다는 경계를 범하심이 실로 신으로 인하여 그리된 것을 어찌하겠습니까. 신이 감히 제 몸을 아끼려는 것이 아니라 조정에 누를 끼칠까 두려워 조심되고 황공하며, 민망하고 걱정되어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더구나 모든 관리의 임명에는 반드시 해유(解由)를 상고함은 성문(成文)에 분명히 있는 것으로 역대에 지켜 내려와서 금석처럼 굳어졌으니, 다른 일반 관리에 있어서도 이것을 범할 수 없는데, 하물며 대사헌이란 법의 주인이 되어 백관을 규탄하고 사방을 관찰하니 책임이 어떻다 하겠습니까? 먼저 자신을 낮추고 있다가 장차 남의 비웃음을 억누르고자 얼굴을 추켜들고 눈을 빛내며 시비를 논하는 것은, 결코 이런 이치가 없다는 것을 신은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방금 성상께서 처음 즉위하셨고, 재궁(梓宮)이 빈소에 있는데 역변이 지친(至親) 중에서 일어났으니 사실을 조사하여 처리함에 있어서 반드시 은혜와 의리가 다같이 곡진해야 할 것이오며, 원흉이 선왕의 신하 중에서 나왔으니 왕법의 시행에 있어 마땅히 완급을 적중해야 할 것입니다. 모름지기 강직하고 평정하여 은미한 것을 잘 살피고 사리에 밝은 선비를 얻어서 일시의 공론을 주장하게 하여, 우리 성상의 성대한 덕과 지극한 효심을 유감 없이 밝힘으로써 사책(史冊)에 빛을 내고 백대에 추앙을 받도록 하여야 할 것인데, 하물며 신과 같이 어둡고 용렬한 편견을 가진 자가 법을 어기고 그대로 주저앉아서 일시의 기회를 그르쳐서야 되겠습니까? 그러나 신이 말씀드린 것은 오직 신의 분의(分義)상 불안한 바가 있음을 논한 것뿐이니, 신의 근심되고 난감한 개인 사정에 대하여서도 하는 수 없이 군부의 앞에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설사 신이 큰 은혜에 감격되어 다른 일은 계교하지 않고 오직 앞으로 달려나가 있는 힘을 다하는 것만이 공손으로 생각한다 해도 오랜 병에 몸이 극도로 쇠약하여 진작할 능력이 없습니다. 신의 병이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니, 하루 아침에 어떻게 될지도 모릅니다. 신의 나이 금년 66세인데, 어려서부터 기품이 허약하여 백가지 병이 몰려 있는 몸이 되어서 신음과 고초에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습니다. 50이 못 되어 이미 쇠하고 흰머리가 심하였는데, 이제 70에 가까우니 극도로 초췌하여 답답한 가래가 가슴을 메워 호흡이 끊기는 것같으며, 해수가 급히 발작하면 오장이 뒤집히고 비위가 크게 상해서 배가 몹시 아프고 허리와 척추, 사지와 관절이 모두 몹시 아픕니다. 이 밖에는 너무 번거로워서 감히 더 이상 아뢰지 못하는 것도 실로 많습니다. 잠시만 일에 접해도 온 몸이 다 아프고 정신이 깊이 깔아지고 혼미하며, 어지럽고 답답하여 하루도 지낼 수 없을 것같으니, 비록 힘써 노력하고 싶어도 도리가 없습니다. 다만 쉬기를 애걸하여 전원으로 돌아가서 은혜를 입은 채 죽을 날을 기다릴 따름입니다. 신이 감히 만번 죽음을 무릅쓰고 상중에 있는 전하를 범하면서 간절히 호소하며 진심과 정성으로 아룁니다. 삼가 바라건대, 자애로우신 성상께서 특별히 불쌍하게 여기시고 급히 체직을 명하여 주소서.
답하기를, “경의 말을 들은 지 오래되었다. 지금 상소를 보니, 경의 지당한 이론은 길이 가상할 만하다. 그러나 부덕하고 어리석은 이 사람이 이처럼 망극한 일을 당하고 또 전에 없는 변을 당하여 여러 현량들과 함께 국사를 극복해 나가야 할 이때, 어찌 경이 심상한 법규와 사소한 예절에 구애되어 사퇴한단 말인가? 비록 질병이 있다 하더라도 조섭하면서 공무를 행하여 얼굴빛을 단정히 하고 조정에 서서 무너진 기강을 진작시키도록 하라.” 하였다. 7일 올림.
○ 영상 이원익은 다섯 번 사표를 냈으나 사관(史官)을 보내어 회유하여 출사하도록 하였다. 그 상소는 다음과 같았다.
삼가 아룁니다. 노쇠하고 쓸모없는 신이 세상에 다시 없는 대접을 받아 특별한 은혜와 특이한 예의가 전후로 겹쳤습니다. 내의는 약을 싸가지고 와서 밤낮으로 간호하고 대복(大僕)은 죽을 달여 날로 계속 보내주며, 또 중사(中使)가 찾아와 고기를 내려주었습니다. 또 성지(聖旨)를 선유하되 그 뜻이 반복 정녕하여 곡진하고 간절하심이 다정한 부모가 사랑하는 자식을 돌보는 것에 비할 뿐만이 아닙니다. 신이 비록 지극히 완고하다 하나 역시 마음이 있는 바에 어찌 격앙하고 분발하여 보답할 바를 생각하지 않겠습니까만, 신의 사정이 너무도 절박한 것은 6ㆍ7년내에 오랫동안 난치의 병에 걸려 한가히 요양함으로써 근근히 목숨을 이어오던 차에 몇 십일 동안 힘을 써서 일을 하자 옛 병이 갑자기 일어나 쇠약해진 말년에 다시 소생할 희망이 없습니다. 성지(聖旨)에 이르시기를, “이후에 다시 사표를 내지 말라.” 하셨는데, 신이 오히려 연달아 소장을 올려 사면을 애걸하며 번거롭게 말하면 신하의 도리상 불안한 일이며, 그렇다고 다시 소장을 올려 사면을 애원하지 않고 몸소 중임을 띠고서 편안히 집에서 오래 누워 있다는 것도 신하된 도리상 감당할 수 없는 일이오며, 비록 죽을 힘을 다하여 사람에게 부축받고 수레에 실려서 조정에 나아가 사은숙배한다 하여도, 사은숙배한 뒤부터는 계속 병을 칭탁하고 공청의 모임에 나가지 않는다면 이 또한 신하의 도리상 감히 생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어차피 모두가 다 온당하지 않은 일이니, 신의 사정은 이토록 낭패가 되어 황공하고 망극하여 몸둘 바를 모르며,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더구나 지금 바야흐로 역적을 다스리는 옥사가 일어나 사건이 지극히 중대한데, 신이 수상으로 있으면서 오래 국문(鞫問)에 참여하지 못하면 신하의 도리가 또 어떻겠습니까? 삼가 듣건대, 요사이 국문을 받은 사람 중에는 혹 불측한 사실을 말한 자가 있다고 하는데 그 자세한 곡절을 비록 알지는 못하나 말을 들을 때 절로 머리칼이 치솟고 몸이 떨립니다. 옥사가 지친(至親) 사이에서 났으니 전하의 지극한 우애로 볼 때 그 걱정과 상심이 이를 데 없이 통박할 줄 압니다. 은혜와 덕의가 함께 극진하신 전하이시니 반드시 이미 정한 계획이 계실 줄 아니, 신이 감히 말씀드릴 수 없는 일이나 그 역당(逆黨) 중에 죄상이 뚜렷한 자에 대하여는 마땅히 형률대로 처리해야 할 것이니 또 무슨 이의가 있겠습니까? 다만 곤강(崑岡)의 불이 옥석(玉石)을 함께 태우듯 큰 옥사에는 원통하게 죽는 자가 반드시 많다는 것을 염려하는 바입니다. 죄명이 매우 많고 사실을 캐는 것은 대단히 엄격하여 연루자들을 하나 하나 국문하게 되면 혹 사실이 명백하지 않은 자가 있는데, 법관은 마음속으로 의심이 가더라도 반드시 그렇지 않다는 분명한 사실을 알지 못하면 쉽게 무죄로 처리할 수는 없습니다. 혹시 성상으로부터 친히 죄상에 따라 벌을 내리시고 실정에 따라 죄를 정하시어 떳떳한 법의 밖에서 신축성을 가지시면 죄없는 사람이 형옥에 빠지는 것을 모면할 수도 있을 것이어니와, 그렇지 않고서 형장이 한번 가해지면 끝내 살아나는 도리가 없을 것이니, 이 어찌 가엾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전하가 잠저(潛邸)에 계실 때부터 어진 마음과 어진 소문이 원근 백성들에게 전파되어 모두 전하의 백성을 사랑하고 살리기를 좋아하는 덕을 우러러온 지 여러 해가 되었습니다. 지금 왕위를 이어받은 초기에 행여 한 사람이라도 횡액을 입을까 두려워 감히 이 말씀을 올리는 것입니다. 옛 사람의 말에, “은혜로 대우해 줬기 때문에 충성을 다하는 것은 중인(中人) 이하 사람의 하는 짓이다.” 하였는데, 신은 용렬한 사람으로 본래 충절이 결핍된 자로서 지금 어리석은 말로 전하께 충성을 다하려 하는 것은 이 또한 전하의 은혜로운 대우에 감격했기 때문입니다.
답하기를, “경의 글을 보니 그 정성이 매우 아름답기는 하나, 내가 애통하는 몸으로 전에 없는 변을 당하여 은혜와 의리의 가볍고 중함을 따져야 할 때에 처리할 바를 모르다가, 지금은 단서가 이미 잡혔으니 연좌된 사람들을 묻지 않을 수 없으나 마땅히 대신들과 상의하여 처리할 것이니 경은 안심하고 잘 조섭하며 차비를 기다려서 나오도록 하라.” 하였다. 20일 올림.
○ 《비망기》에, “대신은 기쁨과 슬픔을 나라와 한가지로 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표를 계속 내고 있으니 모양새가 좋지 않다. 내 무슨 잘못이 있어 대신들에게 죄를 지었는지 모르겠다. 정원은 나의 뜻을 이해하고 그 잘못을 바로잡아 돕도록 하라.” 하였다. 22일 내림.
○ 정구(鄭逑)의 상소는 다음과 같았다.
삼가 아룁니다. 신은 우활하고 우둔한데다가 병까지 심하여 더할 나위없이 지쳐서 오직 시골 구렁에서 죽기만 기다릴 뿐 조정에 나가 일을 감당할 수 없는데, 뜻밖에 우대하여 알아주심을 입어 문득 발탁하여 대열(臺列)에 승진시켜 주시기에 여러번 사면함을 아뢰었으나 특별한 은총이 더욱 높으니, 몸을 돌이켜볼 때 부끄럽고 두려워서 심장과 담이 떨어지듯 하였습니다. 이제 이미 여러 날이 되면서 근심하고 절박함이 더욱 깊어 밤이면 잠을 이루지 못하고 먹는 것도 넘어갈 수가 없게 됐습니다. 신은 학문도 얻음이 없어서 위로 성덕에 보좌할 만한 것이 없고, 성질 또한 망령되고 틀려서 일을 했다 하면 이치에 어긋나고, 묵은 병이 날로 더하여 항상 고통중에 있으며, 정신과 형체도 날마다 녹아 없어질 정도여서 앞으로 견뎌내지 못할 지경이므로 단연 저의 힘대로 나아가 충성껏 하고자 하는 소원을 이룩하지 못하겠으니 신의 낭패됨과 위축됨은 너무나 심합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특히 신의 마음을 살피시어 저로 하여금 죽어서 나오게 되는 것이나 면하게 하여 주신다면 태평성세에서 한 사람도 소원대로 되지 않은 유감이 없게 될 것입니다. 신이 이렇게 간절하게 간청하는 지극한 마음은 이때문입니다. 오직 신의 임금을 사랑하는 이 보잘것 없는 정성을 끝내 막을 수가 없습니다. 전하께서 여러 가지 선함을 구비하여 한 가지 허물도 남아 있지 않기를 바라는 저의 심정은 진실로 정성에서 우러나 불빛같이 밝아서 감히 속이지 못합니다. 또한 전하께서 신을 총애하시는 것은 신에게 사정(私情)으로 한 것이 아니요, 반드시 초야에 묻힌 우직한 성질로 일에 따라 진술함에 거리낌이 없다는 것이니, 신이 어찌 감히 숨기고 말하지 아니하는 마음을 가지며, 전하의 바람을 등져 버리겠습니까? 전하는 바야흐로 상중에 계시고 아울러 옛날에도 드물게 있는 변고를 만나서 비록 사건이 종묘와 사직에 관계되어 어찌할 수 없는 일이라 하겠으나, 신은 삼가 생각건대, 전하의 사적인 정리에 있어서는 선왕의 간곡한 최후의 명령이 항상 환하게 귀에 남아 있어서 답답하고 어찌할 줄 모르는 심정으로 주야에 편치 못하실 것입니다. 신이 여러 날 동안 공초받는 말석에 참여하게 되어서 약간 옥사의 사정을 살펴볼 수 있었는데, 연루된 것은 지나침이 많고 시일도 지연되었으니 어떻게 심판을 하여서 중도를 취하여 성세의 밝고 타당함을 밝힐 수 있겠습니까?
또한 이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된 사람이 종척(宗戚)이 많은데 취조도 끝나기 전에 곤장 밑에서 죽는 자가 이어지니, 만일 과연 역모에 참여한 사실이 있어서 그 죄가 마땅히 뚜렷이 죽일 만한 것이 있더라도 그에 관한 자백도 받지 못한 것은 이미 그것만으로도 형법에 대한 실책이라고 하겠습니다. 아울러 실정을 조사해서 잘 알지도 못하고 때로는 원한만 품고 사형을 당하게 된 자가 있다면 그는 비록 친소(親疏)의 차이는 있다 하여도 실은 국가 핏줄의 일맥(一脈)이 아닙니까? 간혹 풍문만 듣고 역적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며, 사건의 깊은 비밀이 전부 발로되지 않은 것이 있으니, 이도 뼈아프게 슬픈 일이 아닙니까? 전하께서 춘궁(春宮)에 계실 때에 지극히 인자하시다는 소문이 사방에 알려지게 되어서 등극하신 당초부터 원근을 막론하고 즐겁게 기대하기를 굶주렸다가 배부름을, 춥다가 따뜻한 것을 기다리듯 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던 바, 오늘날 저러한 모양을 가진 여러 죄수도 또한 모두 그들의 동류인데 지극한 덕택은 받지도 못하고 원통한 일만 맺히게 되면 새로 펴는 덕화 아래에 있어서 또한 불행이라 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성상의 도량으로 유의해 주소서. 신이 여항간의 의논을 들어보니, 임해군이 역모를 하였다는 것은 이미 다 탄로되었고, 귀양보낸 뒤에도 궐내에서 때때로 안부도 묻고 의복과 음식도 내렸다 하니, 우애를 베푸시는 바의 지극한 어지심은 얼마나 탁월하신 것입니까? 임해가 이미 자진하여 천륜을 끊은 것인데, 성상께서 대접하시기를 이와 같이 하시니, 전해 들은 것이 여기에 미치자 마음이 감격되고 흥기되어서 떳떳한 인륜에 있어서 큰 도움이 된 것을 이루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지난 중묘조(中廟朝) 때에 왕자의 변으로 인하여 옥사가 뜻밖에 일어나게 되자, 인종대왕(仁宗大王)은 그때에 세자로 계실 때인데, 답답하고 절박하여서 상소로 좋게 처리하여 달라 하시면서 이르기를, “천륜의 친함이란 한 기운으로 나누어진 것으로 숨 한번 쉬는 것도 서로 유통이 되어서 우애하는 인정이 저절로 나오게 되는 것이니, 비록 비상한 변괴가 생각 밖에 일어났다 할지라도 옛날 사람은 오히려 인자한 마음으로 은폐하였다.” 하였습니다.
또 맹자의 말씀에 형제의 사이는 성낸 마음을 속에 품지 않고, 원망된 일은 즉시 해결하여야 하는데 형은 천자가 되었으면서 아우는 필부가 되는 것이 옳은가 하신 말씀을 이끌어 말씀하였습니다. 이는 민간에서 지금까지 전해오면서 칭송합니다. 오늘날 성상의 처리하시는 것이 부지불식중에 부합하게 되었으니 어찌 앞 성인이나 뒷 성인의 법도가 같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한(韓) 나라 문제(文帝) 때에 회남왕(淮南王) 장(長)의 역모 사건이 발각되자 감형시켜서 촉(蜀)으로 이송시켰건만, 원앙(袁盎)은 아뢰기를, “불행하게도 풍토병이 나 죽게 되면 폐하는 아우를 죽였다는 누명만 입게 될 것입니다.” 하니, 문제는 말하기를, “내가 다만 그를 고생시키는구나.” 하였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 장(長)은 과연 죽었고, 문제는 대단히 슬프게 울었다 하였습니다. 신은 항상 문제가 원앙의 말을 일찍 듣지 아니한 것을 한탄하였습니다. 성상의 동기로서 다만 임해만 남을 뿐인데, 선빈(先嬪)은 일찍이 세상을 뜨시고, 형제 두 사람이 쓸쓸하게도 같이 자라나게 되어 잠자고 밥 먹는 것도 서로 떠나지 않으셨으니 신은 전하의 지극하신 회포가 더욱 참기 어려우실 것을 잘 압니다. 그런데 자신이 큰 죄를 저질러서 죄는 하늘과 땅에 찰 만하여 위로 전하의 애달프신 서러움만 끼치게 되었으니, 이때문에 신의 마음이 더욱 썩고 창자가 찢어질 듯하는 것입니다. 삼가 생각건대, 은정과 의리를 참작하여 변통하고 선처할 도리가 어찌 없겠습니까? 오직 전하께서 공(公)이라 하여 법대로 다하지 않는다는 뜻을 깊이 생각하시어 공평 통달하신 총명을 널리 써서 더욱 중정하신 덕을 밝히시고, 취조하는 대신으로 하여금 밝음과 조심함을 더하게 하여서 옥사라 하여 철저하게 규명할 것도 없고, 죄인이라 하여 철저히 물을 것도 없으며, 죄라 하여 모두 끝까지 털어놓게 하지 말고, 법이라 하여 반드시 다 시행할 것이 아니라 차라리 법대로 않는 실수를 하여야 된다는 마음으로 그 일을 처리하게 하며, 임해도 또한 죽지 않는 덕을 입게 되어 커다란 은택에 흐뭇하게 그의 여생을 제대로 마치게 된다면 광무(光武) 때에 모반하던 자가 저절로 안정된 것과 같이 될 것이요,문제(文帝) 때에 아우 장(長)을 보전하지 못했다 하는 ‘한 자의 베와 한 말의 곡식’이라는 민요를 오늘날에는 부르지 않을 것입니다.
전국의 신민들은 모두 대성인의 변란에 대처함이 유감이 없음을 우러러보고, 성상의 우애란 이와 같으며, 성상이 난처한 일에 처결하는 것도 이와 같으며, 성상의 살리기를 좋아하는 덕은 보통보다 뛰어남이 이와 같다 하여, 인심이 흡족하고 사방도 모두 즐거워하여 사관의 붓은 그 일을 쓰게 되고, 뒷 세상은 모범을 삼게 될 것이니, 어찌 첫 정치에서 인심을 수습하는 지극한 요체라고만 하겠습니까? 또한 위로 하늘에 계시는 선왕님의 혼령을 위로할 수 있으며, 또한 근일 하늘의 인애해야 된다는 경고에도 보답하게 될 것이니 이 어찌 매우 다행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옛날 한(漢) 명제(明帝)가 초왕(楚王) 영(英)의 옥사를 다스릴 때에 시어사(侍御史) 한랑(寒朗)의 상소로 인하여 불쌍히 여겨져서 마음이 풀어졌기 때문에 가뭄에 단비가 내리게 되었다 합니다. 우둔한 신은 두 번 다시 만나기 어려운 은총에 감격되어 아무 말도 없이 가는 것을 송구스럽게 여겨 감히 물러가기를 청하는 상소에서 간담을 피력하여 망령스럽게도 숨김없이 아뢰니, 짚자리에 엎드려 처벌해 주시기를 우러러 바랍니다.
답하기를, “불행하게도 이러한 천륜의 변괴를 만나서 밤낮으로 마음이 아파서 어찌할 줄을 모르겠노라. 이 일은 의논을 따라 처리할 것이니 너무 굳이 사양하지 말라.” 하였다.
○ 《비망기》에, “내가 덕이 박한 사람으로 이러한 천륜의 변괴를 만났으니, 법을 굽혀 은혜를 펴는 것은 마땅히 저절로 나갈 길이 있을 것인데, 지금의 의논은 어지럽게 뒤집힌 것같다. 모두 뒷날에 폐단이 있을 것이니, 정원에서는 그리 알라.” 하였다.
○ 하 대겸(河大謙) 등이 죄를 자복하여 사형이 집행된 뒤에 계축일에 익사공신(翼社功臣)으로 허성(許筬) 등 48인을 녹훈하였다.
○ 새로 제수된 자헌대부 한성 판윤 정인홍은 황공하옵게도 머리를 조아려 삼가 재계 목욕하고 여러번 절하면서 주상전하께 아룁니다. 하늘이 재앙을 내려 대행대왕(大行大王)께서 덧없이 신민을 버리시게 되니 전하께서 바야흐로 애통망극하신 중에 계시고, 형제 사이에 말할 수 없는 변고까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전하께서는 많은 난관을 아직 끝내지 못하여 가슴 아픔이 더욱 심하실 것이요, 임해의 모반한 일에 대한 민망함은 신들도 동일한 바입니다. 신은 이 일을 말씀드리다가 죄를 얻게 되어 서쪽 변방으로 귀양가게 되었습니다. 신은 명령을 받고 길을 떠나 기한 내에 어김이 없게 하려고 하였으나 그래도 노쇠함이 심하여 신병마저 극도로 되어 붙잡고 끌려서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 보았으나 날짜가 지체됨을 면치 못하였습니다. 길을 떠난 지 얼마 되지 못해서 임금의 명령을 어기었으니 죄는 만번 죽어도 마땅합니다. 걸음이 서울 땅에 들어서자마자 우레와 비가 퍼부어서 신은 놀랍고 황공하여 흐느껴 울며 어찌할 줄 몰랐습니다. 신이 비록 노쇠하고 병이 들었다 하여도 대궐 앞에 달려가서 곡하는 예나 끝내고 돌아가려고 하였으므로, 한 발 두 발 걸어오던 중 서울 안에 도착되기 전에 특명이 또 내리면서 신에게 본직을 내려주시니 신은 감격하고 두려움이 극하여 어찌할 줄 모르겠습니다. 신이 외람되게도 선조(先朝)께서 거두어 등용시킴을 입었으나 조그마한 도움도 없었고, 전하께서 계승하신 뒤에도 밤과 낮을 가리지 않는 수고마저 없었는데, 영전시킨 명령이 이처럼 내리게 되니 신은 어리둥절하고 머뭇거리며 마음을 안정시키지 못하였습니다. 들으니, 옛날 사람들은 군신 사이에는 아는 것은 말하지 않은 것이 없고, 말하게 되면 극진하게 하지 않음이 없으니, 반드시 이와 같게 한 뒤에 인정과 의리가 서로 통하게 되고, 위와 아래가 서로 믿게 된다 합니다. 신은 변변치 못한 정으로 임금께 아뢰고자 하니 전하께서는 들으셔서 살펴주시기를 바랍니다. 신으로서는 이번에 내리신 새 명령에 있어서 감히 직책을 수행하지 못할 일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신은 삼가 보건대, 삼사들이 신의 죄를 용서해주기를 청한 것은 공론을 펴는 것을 급하게 여겨서이고, 전하께서 시원스럽게 허락하심은 국시를 좇는 것을 중하게 여겨서 입니다. 인하여 높은 벼슬로 승진시키시니 변변치 못한 몸이나마 어찌 자신의 의리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신이 귀양 명령을 받은 지 한 달도 지나지 못했고, 길도 귀양지에 반도 못 가서 도리어 용서하심을 입으니, 이는 실로 전하께서 신의 노쇠함과 병든 것으로 혹시 길가는 도중에 죽을까 염려하신 것이니, 하늘과 땅같은 망극한 은덕이야말로 신이 어찌 감히 입으로 형용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죄진 몸으로 죽어서 돌아오는 것만 면하여도 만족할 것인데, 귀양가던 걸음이 얼마 안 되어 돌아오게 되니 또한 다행한 일입니다. 다만 저의 생각으로는 귀양가라는 명령이 가깝게도 지난달에 있었고, 재궁(梓宮)은 아직 빈전에 계신데, 신이 벼슬의 반열에 뻔뻔스럽게 얼굴을 내놓아 당초에 죄가 없는 사람처럼 하면 성상께서 통찰하시어 원통함을 씻어주신 은덕은 있겠지마는 신의 석연치 못한 분의에 있어서 어떻게 마음이 편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것이 신이 이 명령에 따를 수 없는 첫째 이유입니다. 삼가 듣건대, 신이 전날에 한번 봉사를 올렸으나 정성이 임금을 감동시키지 못했고, 말이 뜻대로 되지 못하여 임금이 노여워하시고, 교지의 말씀이 준엄하여 전하까지 마음이 편치 못하게 되어 몸둘 데가 없게 되었다는 여항의 소문이 자자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신은 놀랍고 두려우며 목이 막혀서 눈물이 저절로 쏟아졌습니다. 신은 국가의 근본을 편안하게 하려던 것이 도리어 위태롭게만 하였으니 실로 공은 없고 죄만 있게 되었는데 하물며 승진시키는 절차가 있게 되겠습니까? 신과 함께 귀양 명령을 받은 사람으로 이이첨(李爾瞻)ㆍ이경전(李慶全) 등은 평생에 겨우 한번 보아 아는 이도 있고, 혹 전연 안면이 없는 사람도 있는데, 터무니 없이 죄로 얽어 함께 불측한 재앙에 빠지게 되었으니 전하께서 용서하여 주시고 벼슬시킴이 진실로 당연한 일이려니와 신에 있어서는 어떻게 두 사람들과 동일하게 무죄로 되겠습니까? 노중련(魯仲連)은 한 번 발언에 공로가 있음에도 오히려 봉작을 받으려 하지 않았는데, 이제 신은 한번 말한 것이 죄를 얻게 되었는데도 죄로 벼슬길을 매개한다는 것은 신이 비록 보잘것 없는 사람이긴 하지만 어찌 자신의 마음에 부끄럽지 않겠습니까?
진실로 선왕(先王)께서 신의 말을 옳다고 하시어 오늘날 이러한 작명이 내렸다 할지라도 오히려 노중련과 같이 부끄럽게 여김이 있겠는데, 더구나 죄가 있으면서 벼슬을 받게 되는 것은 어찌 부끄럼이 심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신으로서 오늘의 명령에 따를 수 없는 둘째 이유입니다. 신은 듣건대, 공자께서 말씀하기를, “심하다. 나의 노쇠함이여!” 하셨고, 후현(後賢)은 이어 말하기를, “도를 행하는 사람이 몸이 늙게 되면 뜻이 쇠하게 된다.” 하였습니다. 성인도 또한 노쇠함을 면치 못하였거늘 더구나 용렬한 대중이야 더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신은 연령이 70이 넘은 지가 이미 오래 되었습니다. 지난 임인 연간에도 어느날 부르신 명령을 받들고 억지로 일어나 직장에 나갔었으나 이미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고 굳게 말씀드려서 물러갔었습니다. 임인년부터 오늘까지 또 7년이나 지나 늙게 된 사람이라 달마다 다르고 시시로 같지 아니하여 1년이 10년보다도 심해졌습니다. 이제 7년 전에 감내하지 못한 것을 7년 뒤에 책임을 다하려 하면 결코 감내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하물며 선왕의 법제에 70살이면 벼슬을 내어놓게 되어 있으니 벼슬하다가 종지부를 찍는 큰 문턱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이것은 특별히 한계선을 그어서 사람에게 보여준 것이요, 사군자의 벼슬하는 것과 그만두는 것의 의리는 여기에 구애되지 않습니다. 하물며 연령이 70이 넘었고, 더군다나 병으로 폐인까지 된 사람이야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이와 같으면서도 오히려 염치불구한다면, 이것은 진실로 《역경》의 이괘(頤卦)의 말과 같이 ‘양심은 제쳐놓고 침부터 흘린다.’는 격이어서 성현의 문하에 죄를 얻게 되는 것이니 신이 비록 보잘것 없는 사람일지라도 어찌 자신을 돌보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신이 새로 내린 명령에 감히 따를 수 없는 셋째 이유입니다. 신이 이러한 세 가지 일을 청산하지 못하고 오히려 흐리멍텅하게 직장에 나가서 정직한 체하며 벼슬이나 취하는 것은 형적이 은택만을 구한 것처럼 되었으니, 아마 전하께서도 또한 저의 마음을 의심할 것입니다. 신의 근력이 진실로 직책을 수행할 수 없으려니와 분의(分義)마저 조금이라도 지체할 수 없는 일이나, 신이 어찌 끝내 말 한 마디 없이 가버려서 성상의 은덕을 등짐으로써 무궁한 한을 품게 하겠습니까?
일찍이 들으니, 《역경》에 이르기를, “아비의 일을 계승하는 것이니, 자식이 있으면 아비가 허물이 없다.” 하였는데 공자가 해석하기를, “아비의 일을 계승하여 명예가 되는 것은 덕으로 밑받침하기 때문이다.” 하였고, 《서경》에 이르기를, “지금부터 내가 처음으로 정치를 하는 것이라고 자각해야 한다.” 하였으니, 이는 임금은 효도로 나가는 길이 전연 애통하여 곡읍하는 절차에만 있는 것이 아니요, 실로 아비의 일을 잘 계승함에 있어 그 도리를 극진하게 하고, 하늘에 빌어 나라의 운명을 영구하게 하여 국가의 세력을 튼튼하게 하여 종묘와 사직을 억만 년이나 수(壽)하게 한 뒤에야 바야흐로 큰 효도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비 일을 담당하는 효도의 요점은 이어받는 처음에 있지 않겠습니까? 이제 전하께서는 왕의 자리에 오르시게 되어 대통을 이어받는 시초이므로, 하늘과 신명이 사랑하고 도와줌이 바야흐로 새롭고 백성들의 갈망도 따라서 간절한 중이니, 이는 꼭 날마다 성스러운 덕을 진보시키고 정치와 교화도 새롭게 하여 위로 하늘의 마음에 합당하게 하고 아래로 사람들의 바라는 것에 부응할 때이니, 바로 맹자가 말한 바, “비록 농기구가 있다 하여도 시기를 맞추는 것만 같지 못하다.”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신은 삼가 보건대, 근일 성상의 교지에는 먼저 할 것이 사람을 등용하는 방법이요, 긴급한 것은 백성을 안보하는 정치이며 외적들을 물리치는 사무라 하시니, 중외에서는 즐겁고 기뻐하며 요나 순이 개벽한 천지를 다시 보게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전하께서는 시세도 그럴 만하려니와 할 만도 하여 일을 절반쯤 하여도 공은 갑절 되는 경우이니 이 이상 더 좋은 때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신이 들으니, 학문이란 불어나가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날로 학문에 진보하시어 근본을 배양시키고 덕은 장구하게 하며 업적을 크게 하소서. 그런 연후에야 그 미치는 바가 더욱 멀어서 다함이 없을 것입니다. 신은 삼가 보건대, 육경(六經)의 글은 제왕들의 다스림을 도모하는 방법이 아닌 것이 없으며 그중에도 근본과 말단이 다 갖추어 있고 강령과 조목이 함께 들어 있어서 여러 경서를 관통해 보는 것으로는 《대학》만한 것이 없습니다. 덕을 밝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요점은 이 책을 펴보면 환히 알 수 있으니, 특히 전하께서 착실하게 몸소 행하실 일이요, 외형에 나타난 모습만 가지고 하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이와 같이 하여 조정에서 권위와 강령을 도맡게 되어서 대신을 임명할 때에 두 가지 마음을 갖거나 의심을 품고 하지 말아야 하며, 정직한 사람을 들어 쓰고 바르지 못한 사람은 쓰지 않으면 조정이 밝아질 것이요, 조정이 밝아지면 부랑하고 경박하여 벼슬에만 허덕대는 무리가 그 사이에 끼어들지 못하고 자취를 감추어 저절로 멀어지게 되며, 사분 오열하여 그 마음을 여러 갈래로 가지는 버릇이 거의 조금씩 고쳐질 것이요, 탕평하고 정직한 기풍을 거의 얻어 볼 수 있게 되고 밝은 덕을 일국에 밝게 하여 큰 방책이 진행되기가 수레를 밀면 바퀴가 저절로 나가고 배가 떠나면 뱃줄은 저절로 따라가듯이 될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바야흐로 상중에 계시고 신도 또한 병이 들어서 능히 나머지 일을 낱낱이 들어 말할 수 없어서 대강 개론만 아뢰니, 전하께서 유의하시고 다행히 우리 나라에 만대를 두고 큰 이름을 나게 하시면 이것은 신이 한 가지 말을 남겨서 거룩한 정치의 기구가 되게 하는 것이니, 오히려 늙고 더러운 몸으로 쓸모없이 서울에서 거리낌만 되어 일은 하지 않고 몸만 바친다는 기롱을 면치 못하는 것보다는 나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신이 말한 것과 같게 한다면 한갓 신에게 다행일 뿐 아니라 실로 조정의 다행이며 종묘사직과 신민들의 다행이겠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살펴주소서.
답하기를, “경의 상소를 보니, 충성스럽고 간곡함이 지극하다. 내가 마땅히 깊이 생각하겠노라. 경은 산골에서 글만 읽고 있어도 뛰어나게 높은 절조가 세상을 덮게 되어 선왕이 사랑하며 대우하여 주신 뜻은 이미 조수와 초목도 이름을 알 정도라는 것이 교지에서 나타났다. 지난 일이 어찌 선왕의 본의이겠는가? 돌아보건대, 어둡고 용렬한 사람으로 외람되게도 큰 자리를 이어받게 되어서 선왕의 뜻을 따라 구덕(舊德)들에게 일임하기로 도모했으니, 경은 이때에 있어서 어찌 차마 괄시하여 옳은 길로 나가는 계획에 협조하지 않겠는가? 비록 병이 있다 하여도 잘 조섭해서 공사를 행하고 조정 윗자리에 머물러 덕이 적은 우매한 나를 도우라.” 하였다.
○ 정인홍은 그 길로 영남으로 내려가는데 예관(禮官)을 보내어 만류하는 교서에 이르기를, “당초에 경이 대궐 앞에 나왔다는 말을 듣고 비록 상중에 있어도 마음에는 즐겁게 위로되어서 경과 함께 어렵고 위태한 일을 해나갈 생각이었는데, 하루도 지나지 못하여 한강을 건너 남쪽으로 가게 되니, 고단한 이 사람으로 섭섭한 마음 이길 수 없어서 어찌할 줄을 모르겠노라. 경은 산림의 영수여서 학문의 공적도 깊고 청백한 이름과 강직한 기풍이 온 세상의 숭배하는 바 되어 우리 선왕으로부터 사랑하고 대우함이 특별히 후하여 내리신 말씀이 어제같은 것을 경도 오히려 기억하지 않는가? 생각건대, 경이 과거에는 몸이 비록 물러가 있어도 마음은 왕실에 있었는데, 오늘날에 와서는 과감히 세상을 잊어버리고 훌쩍 내려가 버리니, 아마도 국가의 일은 어찌할 수 없고 과인은 우매하여 함께 일을 할 수 없다 하여 영구히 가버리고 돌아올 줄을 모르는 것인가? 내 심히 부끄럽도다. 내가 비록 천하일을 담당할 선비를 오래 머무르게 하기에는 부족하더라도, 옛 사람 가운데 선왕의 특별한 대접을 생각하고 그 자손에게 보답하려고 한 사람도 있었는데, 경은 이러한 데에는 생각이 없는가? 지금이 과연 어떤 때인데 날 버리기를 거리낌없이 하는가? 예관을 보내어 나의 뜻을 일깨우노니, 마음을 돌이켜 돌아와서 나의 갈망함에 부응토록 하라.” 하였다.
○ 정구(鄭逑)가 아뢰기를, “어제 신이 치료받고 있는 병이 매우 위중해져서 감히 정원에 고하였으나 그때에 마침 이이첨(李爾瞻)의 사직서가 먼저 들어와 입계되었기 때문에 도로 본부(本府)로 보냈습니다. 명패(命牌)가 내렸으나 기동하지 못하여 성교(聖敎)대로 받들지 못하여 저버린 마음 간절합니다. 또한 신이 본래 우활하고 우둔하여 일의 체통을 알지 못하고 오직 임금을 사랑하는 한결같은 마음이 본성에서 나올 뿐인데 특별한 대우를 받게 되니, 감격으로 일신을 돌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임금을 허물없는 데에 이르게 하기를 깊이 생각할 뿐이며 감히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남김없이 아뢰고 숨기는 것은 없습니다. 삼가 《비망기》에 있는 전교의 말씀을 볼 때, 신은 감히 법을 행하는 관원에 염치없이 있을 수가 없으니 파직시키라 명령하심을 바랍니다.” 하였다. 답하기를, “우연히 한 말이니 안심하고 사양 말라.” 하였다.
ⓒ 한국고전번역원 | 김종오 권덕주 (공역) |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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