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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17th PioletS D’or
▒ 아시아팀, 최초 황금피켈상 수상
▒ 일본 2팀, 스위스 1팀 공동 수상… 미래 알피니즘의 전형 제시
아시아 최초 황금피켈상 수상팀이 탄생했다. 4월 22~ 25일 알프스의 꾸르마이어와 샤모니에서 개최된 제17회 황금피켈상 심사위
원회(위원장 더그 스코트)는 인도 카멧(7756m) 남서벽을 초등한 일본의 히라이데팀, 카란카(6931m) 북벽에 신루트를 개척한 이
치무라팀 그리고 텡캄포체(6500m) 북벽을 알파인스타일로 초등한 스위스의 율리 스텍팀을 공동 수상팀으로 결정했다. 미지의
벽을 바른 방식 즉, 상업주의를 배제하고 자연을 보호하며 오른 순수성에 손을 들어준 것이었다. 미래 알피니즘의 방향을 제시한
이번 행사를 후보자와 심사위원 소개, 심사기, 수상식 리포트로 나누어 독점 게재한다. <편집자 주>
글 | 임덕용 편집주간 사진 | 자료사진
Part 1
최종후보자와 심사위원 소개
최종 후보자 6개 팀
1. Kamet(7756m) 남동벽 - 일본팀
카주야 히라이데, 케이 타니구치(女)로 이루어진 혼성팀이 카멧 남동벽에 신루트를 개척했다. 카멧은 인도와 티베트의 국경에 있
는 가르왈히말라야 제2위 고봉이다. 이들은 2008년 9월 28일 등반을 시작해 7박 8일간 남동벽 중앙을 알파인스타일로 등반, 10월
5일 정상에 섰고 1박 2일간 하산했다. 이들이 사용한 장비는 1.5킬로그램 텐트 1동, 50미터 로프 2동, 에일리언 1조, 주마 1조, 스
크류 5개, 하켄 5개 등이었다. 신루트명은 사무라이 다이렉트다.
2. Kalanka(6931m) 북벽 - 일본팀
후미다카 이치무라, 유스케 사토, 카주아키 아마노가 인도 가르왈히말라야의 험봉 카란카 북벽을 초등했다. 2008년 9월 14일 베이
스캠프를 출발한 이들은 하단부 믹스등반지대를 올라 6000미터 지점에서 첫 비박을 했다. 9월 16일 북벽 중앙 혼합등반지대에 진
입한 이 팀은 하루에 500미터씩 3일간 등반, 6600미터 지점에 도착했다. 하지만 다음날부터 불어닥친 악천후 때문에 2인용 텐트
에서 3일간 머물렀다. 악천후가 물러간 9월 22일 새벽 등반을 재개한 이들은 70도의 혼합등반지대 300미터를 교대로 올라 정상에
섰다. 이들은 신루트를 무사도(Bushido)라고 명명했다.
3. Denali(6194m) 연장등반 - 일본팀
일본 후미타카 이치무라, 유스케 사또, 카추타카 요코야마가 알래스카의 데날리 남쪽 버트레스인 이시스 페이스(Isis Face)와 슬
로베니아 루트 연장등반에 성공했다. 2008년 5월 11일 벽 길이 2350미터, 5.8 M4의 이시스 페이스 등반에 나선 이들은 3일간 어
려운 혼합등반지대를 올라 정상에 섰다. 곧바로 하강한 이 팀은 벽 길이 2900미터, WI4의 슬로베니아 루트 등반에 나섰다. 람페 구
간이 여럿 포함된 루트를 4일간 등반, 5월 18일 두번째 정상에 섰다. 이 팀은 연장등반을 위해 10일치의 식량을 준비했고 장비는
로프 3동, 에일리언 1조, 하켄 8개, 텐트 1동, 가스버너, 가스 8개 등을 준비했다. 등반 중 평균기온은 영하 25도였다.
4. Nuptse(7861m) 남벽 - 네팔
프랑스의 빠뜨리스 그라리옹 리빠와 스테판 베누아가 눕체 남벽에 신루트를 개척했다. 2008년 10월 27일부터 3박 4일간 남벽 중
앙을 직등한 이 루트는 등반길이 2000미터, M5+의 난이도다. 하지만 이들은 신루트 개척 후 등정을 하지 않고 하산했다. 등반 장
비는 로프 2동, 하켄 3, 너트 1조, 프렌드 1조만을 사용했다.
5. Tengkampoche(6500m) 북벽 - 네팔
스위스의 율리 스텍, 시몬 안따마튼이 2008년 4월 21~24일 네팔에 있는 텡캄포체 북벽에 신루트를 개척했다. ‘Checkmate’로 명
명한 이 루트는 등반길이 2000미터, M5+ A0의 난도다. 이 팀이 사용한 장비는 9.1밀리미터 로프 1동, 하강용 4밀리미터 로프 1동,
캠 1조, 하켄 4, 스크류 5개 등이었다. 36마디 하강하는 동안 인공보조물은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6. Cerro Escudo(2450m) 동벽 - 칠레
미국의 데이브 터너가 2007년 12월부터 34일간 단독등반으로 칠레의 쎄로 에스쿠도 동벽에 신루트를 개척했다. 등반 길이는
1200미터, 난이도는 A4+다. 터너는 이 루트를 ‘Taste the Pain’으로 명명했다. 그는 등반기간 동안 4개의 볼트만 사용했다.
Part 2
제17회 황금피켈상 심사위원회
알피니즘의 새로운 역사 만든 제17회 황금피켈상
제17회 황금피켈상 심사위원회는 회의를 거쳐 새로운 심사규정을 마련했다. 이는 새로운 알피니즘의 정의(定義)와 미래를 제시한
것이었다. 2002년 9월 6~8일, 인스부르크에서 열린 ‘마운틴 스포츠의 미래에 관한 회의’에서 채택한 티롤 선언 이후 바람직한 원
정등반의 방향을 제시한 의미 있는 규정이었다.
제17회 황금피켈상 심사규정
1. 엘레강스한 등반 스타일인가?
2. 창의력과 혁신성이 있는가?
3. 탐험정신이 있는가?
4. 독창적인가? 남의 도움을 받았는가?
5. 원정대의 자율성이 있는가?
6. 고도의 등반기술이 있는가?
7. 참여와 자율성.
8. 위험한 등반행위는 아니었는가?
9. 파트너와 지역 원주민을 보호했는가?
10. 자연보호를 실천했는가?
이상의 심사 기조는 ‘미래 등반의 발전에 공헌한 모범적인 등반가’를 수상자로 결정한다는 것은 전과 같지만 더욱 세부적인 사항
이 추가된 것이다. 상업적 성취를 위해 희생을 감수하면서 정상을 오르는 행위는 이제 자제되어야 한다. 또 스폰서의 자금 지원,
대규모 인원, 셀파와 고소 포터, 산소, 고정 로프, 위성 통신, 심지어 약물과 마약류 등을 사용하거나 이용하는 등반은 지양되어야
한다는 기준이기도 하다.
심사 방식도 개선되었다. 각 심사위원의 복수 투표권을 인정, 공정성을 높였다. 공동 수상이 가능하도록 규정도 바꾸었다.
심사결과
4월 25일 오전, 수상자 선정을 위한 최종 심사위원회가 열렸다. 일본의 카멧팀은 미지의 벽을 등반했다는 점, 베이스에서부터 전
진캠프까지 이틀 동안 새 길을 개척했다는 것, 혼성팀 등반의 어려움 등의 이유로 많은 득표수를 기록해 수상자로 결정되었다.
카란카팀 역시 소수·경량 원정대라는 점, 자연적인 확보물을 최대한 이용한 도전 정신 등이 긍정적 평가를 받아 수상자로 선정되
었다.
스위스를 대표하는 신세대 클라이머인 율리 스텍팀의 경우 네팔의 험봉 텡캄포체 북벽을 속공으로 오른 점, 등정 후 자연적인 확
보물을 이용, 32피치를 하강한 자연보호 정신 등이 높게 평가됐고, 그래서 수상자로 결정되었다.
세로 에스쿠도를 등반한 미국팀의 경우는 34일간 단독등반으로 신루트 개척했지만 많은 장비를 사용한 인공등반이었고 터너가
심사에 참가하지 않아 수상권에서 멀어졌다.
수상자 선정에서 가장 논란이 많았던 팀은 프랑스 눕체 남벽팀. 이들은 훌륭한 등반을 했음에도 정보가 많다는 점, 신루트가 끝나
는 지점에 오후 7시에 도착했는데도 등정 시도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논쟁의 중심이 되었다. 대부분의 심사위원들은, 만약 프랑
스팀이 수상한다면 알피니즘의 미래가 어두워진다는 의견이었다. 벽이 끝나는 지점까지만 오르고 하산해도 괜찮다는 전례를 남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리고 23일간 2개의 8000미터 봉우리에 신루트를 개척한 러시아의 발레리 바바노프가 최종 후보에 오르지 못한 것도 논쟁이 되
었다.
심사위원들의 평가를 정리해 보았다.
더그 스코트 어떠한 이유가 있더라도 정상에 가지 못한 팀은 황금피켈상에서 거론할 여지가 없다. 전위봉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새로운 알피니즘을 구현하고자 이 자리에 모였다. 알피니즘의 기본인 동시에 원천은 정상이다.
폐터 하벨러 경량·속공등반으로 텡캄포체를 등정한 율리 스텍팀은 미래 등반의 전형을 제시했다.
짐 도니니 34일간 세로 에스쿠도를 단독으로 오른 것은 등반역사에 남을 만하다. 하지만 알파인스타일이 아니었다.
도도 코폴드 프랑스팀은 2000미터의 눕체 남벽에 아름다운 선을 그었다. 3박 4일의 단시간에 등·하강을 마친 것은 대단한 성과다.
다리오 로드리게즈 일본팀이 데날리 남벽의 두 개 루트를 연장등반한 것은 새로운 등반 방식을 탄생시킨 것이다.
임덕용 일본팀들은 고산거벽 경험이 적음에도 불구하고 경이적인 등반을 했다.
Part 3
진화한 제17회 황금피켈상 수여식
글 사진 | 이진기 샤모니 주재기자
자정이 가까운 4월 25일 11시 48분이었다. 몽블랑을 넘어 상현달이 전나무를 비췄다. 사회자도 잠시 숨을 멈췄다. 흥분이 가득한
시상식장에는 긴장감이 팽팽해졌다. 바짝 조인 바이올린 줄처럼 샹들리에 불빛도 찬란해졌다. 행사장 안의 모든 흔들림이 멈췄
다.
“시몽 안따마튼과 율리 스텍.” 드디어 첫번째 수상자가 발표되었다.
“이번 황금피켈상은 세 팀 공동수상입니다. 다음 수상자는… 일본의 유수케 사토, 카주아키 아마노, 그리고 카멧을 오른 카주야 히
라이데, 케이 타니구치.”
제17회 황금피켈상 수상자가 모두 발표되는 순간이었다. 공동수상은 이번이 처음이고 최초의 여성 수상자도 탄생했다. 수상자를
축하하는 관중들의 함성이 끊이질 않고 이어졌다.
세계산악인들의 축제의 장이었던 이번 시상식 일정을 소개한다.
첫날(4월 22일) 오후 9시부터 ‘마제스틱’ 회의장에서는 학술회의가 열렸다. 파트릭 베건 (Patric Wagon)이 발표한 주제는 8000미
터에서의 노말루트 등반, 고정로프 사용 등에 관한 것이었다.
심사위원장 더그 스코트는 ‘알파인 클럽의 등반정신’과 ‘고산등반의 구조와 책임’, ‘세계의 지붕 파미르고원에서의 경험’을 발표했
다. 끌로드 가르디앙(Claude Gardien)은 ‘미래의 놀이터’라는 주제를 발표했다.
둘째 날(4월 23일) ‘심사위원회의 날’이었다. 더그 스코트, 폐터 하벨러, 짐 도니니, 도도 코폴드가 각각 30분씩 자신들의 등반에
관해 발표했다.
셋째 날(4월 24일) 꾸르마이어에서 제1회 황금피켈 공로상 시상식이 있었다. 제1회 수상자는 월터 보나티(Walter Bonatti)였다.
이탈리아 태생인 그는 1951년 그랑 카푸셍(Grand Capucin, 3838m)을 초등했으며, 1955년에는 드뤼(Les Drus, 3754m) 남서벽
보나티 필라(Bonatti Piller)를 단독 초등하는 등의 업적을 이룬 전설적인 산악인이다.
넷째 날(4월 25일) 시상식이 열렸다. 시상식장에서는 산악서적 북 페어도 함께 열렸다. 이날을 제외하고 심사위원들과 후보자가
어울려 여러번 함께 등반했다. 믹스등반은 호뇽빙하(Glacier des Rognons), 암벽등반은 이탈리아 아오스따(Aosta), 멀티피치
등반은 에귀루즈(Aiguilles Rouges)의 꼬뉴(Cornu)에서 했다.
이처럼, 알프스의 샤모니와 꾸르마이어에서 열린 제17회 황금피켈상은 다채로운 행사로 더욱 빛났다. 후보자들은 시상식이 끝나
자마자 히말라야, 알래스카, 파타고니아 등지로 등반을 떠났다. 그들은 왕성한 활동을 하는 등반가들이다. 변하지 않는 알피니즘
우리는 모두 '전문등반'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로서의 등반을 하는 것인지 한번쯤 자신에게 물어 보았을 때..
어떤 대답을 얻어 본 적이 있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