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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도 권투처럼' 여자 복싱세계챔피언 '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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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싱과 바둑의 경계선에 놓여 있던 김단비의 존재를 안 지는 생각보다 꽤 됐다. 그는 세계복싱챔피언이면서 한때는 프로기사를 지향했다. 그를 취재하는 것은 어쩌면 좋은 소재 정도를 넘어서는 것일지 몰랐다. 이렇게 좋은 소재는 취재하지 않으면 안 되는 당위를 갖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선뜻 인터뷰를 하지 못했다. 나는 권투에 대한 지식이 아주 얕다. 잘 모르는데 사기 칠 수도 없잖나. 기껏해야 하는 아는 복서라고는 어린 시절 영화로 봤던 록키 마르시아노와 오스카 델라 호야 정도? 그나마 알고 있는 복서가 유명 복서라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겠다. 복싱경기를 잘 안 보는 편인데, 정말 우연하게 TV로 인상 깊게 본 경기가 있었다. 호야와 멕시코 출신 훌리오 세자르 차베스의 대결. 잘 몰랐다가 나중에 알았는데, 이게 역사상 기념비적인 대회였다. 차베스를 나는 처음 봤다. 그가 역사상 전설적인 복서라는 멘트가 TV수상기에서 나왔다. 이어선 차베스가 수많은 상대를 멋지게 날려보내는 하이라이트 영상들이 흘러지나 갔다. 내가 잘 몰라서 그렇지 어마어마한 복서임이 틀림없었다. 그래서 그가 호야에게 힘 한번 못쓰고 지는 건 충격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처음 본 전설의 복서의 경기였는데, 그가 흠씬 두들겨 맞는 것만 본 셈이었다. 호야는 키가 컸다. 남들은 외모에도 주목해 외모가 빼어난 것에도 관심을 두는 듯했는데, 그건 잘 모르겠고 키가 인상적이었다. 그 큰 키와 어울리게 긴 다리로 성큼성큼 링 위를 움직였다. 호야는 마치 프로그램된 로봇 같았다. 그 기계가 펀치를 쏟아 놨다. 화면 자막에는 가끔 호야의 전적이 나왔는데, 뭐, 진 기록은 없고 이긴 건 죄다 KO승이라든가…. 등등 기를 확 죽이는 것이어서 어쩌면 차베스가 당하는 건 당연하게 생각될 정도로 느껴졌다. 상대적으로 ‘전설의’ 차베스는 키가 작았다. 호야한테 접근도 못 했다. 다가서면 호야의 스트레이트를 맞았다. 큰 키는 복싱에서 중요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막연하게 이어졌다. 내 관심은 거기까지였다. 그 후로 복싱 경기는 다시는 보지 않았다. 관심을 갖지 않으니 복싱에 대해서도 계속 잘 몰랐다. 김단비? 강요된 취재는 아니었으니까 언젠가 다른 누가 잘 하겠지…. 복싱과 바둑을 두루 아는 사람이 훌륭한 인터뷰를 써 놓겠지. 제때 취재하지 않은 게 약간씩 켕기기는 했지만 이렇게 위안을 삼았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났다. 근데 자꾸 생각이 들면서 궁금해지는 한 가지가 있었다. 바둑에서 제대로 상대돌에 급소를 찌르고 가격할 때 펀치라고 묘사하지 않나. 바둑도 잘하고 복싱도 잘하는 사람은 그 펀치를 비슷한 것으로 느낄까?…. 그래 프로기사 별명 중엔 원펀치도 있잖아…. 이런 의문이었는데, 가장 잘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정해져 있었다. 그런 사람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한 명뿐일지도 몰랐다. 기사를 쓰도록 나의 내부에서 강력한 힘이 이끌었다. 나는 이끌렸다. 그리고 그 대답을 들을 기회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 20살의 김단비 양은 키가 크지 않았다. 147cm. 복서로서는 작은 편에 가깝다. 호야와는 정반대다. 상대는 누구라도 자신보다 큰 경우가 많다. 단신이라는 불리한 점을 극복하려면 바짝 파고드는 수밖에 없다. 김단비 양은 자신감 넘치는 자신만의 스타일로 2009년 10월 미국 조린블랙셔 선수를 꺾고 IFBA미니멈급 47kg 세계 여자챔피언에 올랐다. 9전 7승 2패 2KO를 기록 중. 단연 여자 복싱계의 정상급 멤버다. 동시에 상당한 바둑실력을 지녔다. 아마추어 5단. 평범한 5단이 아니고 센 5단이다. 그러니까 대회에 나가면 입상하는 수준을 말하는 것이다. 고등학생 시절 롯데햄배 학생부 우승을 차지했고 초등학생 때도 여류국수전 꿈나무 우승도 차지했었다. 그럴 만하다. 그는 여자연구생 출신이다. 현재 한경대학교 스포츠과학과 1학년에 재학 중인 그녀는 주위의 부러움을 산다. “여자복싱챔피언인 건 곧잘들 알고 있지만 제가 바둑 유단자라는 걸 알게 되면 다들 보는 눈이 달라져요. 머리가 굉장히 좋은가보다 하는 반응들이 나오죠.” 수많은 운동선수가 정규 학교교육과정을 상당히 생략하기 때문에 지적인 면은 결여되어 있다는 인식이 있다. 그런 사고를 거쳐 나온 반응이었긴 하지만 어쨌든 바둑을 배운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 바둑은 언제 배웠어요? “다섯살 때였던 것 같아요. 두살 터울인 언니 따라서 다녔죠(언니는 김이슬 씨로 역시 여자연구생 출신의 강자다). 제가 워낙 까불까불 하니까 아빠가 좀 얌전해지라고 바둑교실에 보내셨어요. 언니 김이슬도 바둑을 배우고 있었다. 사실 김이슬의 바둑 내공은 동생 단비보다 뛰어나다. 일찍 시작했기도 하고 김이슬은 연구생을 나올 때까지 여자 1조에 있으면서 프로기사가 되려고 했다. “(김단비 씨의 언니 김이슬) 바둑교실이 워낙 가깝기도 했어요. 저는 6살 때 바둑을 시작했죠. 119구조대원인 아빠는 기력이 8급 정도 되셨어요. 저희가 바둑을 배우는 걸 좋아하셨어요. 게다가 일터도 가깝기도 하고. 정작 저희 둘은 바둑을 배우러 간다기보다는 놀러 다녔죠(웃음)” - 프로기사가 되려고 했던 거에요? “초등학생 때 연구생에 들어가서 6학년 때까지 연구생 생활을 했어요. 그땐 프로기사가 되려고 했었죠. 그때까진 제가 권투를 하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어요.” - 그럼 어떻게 하다 복싱을 시작하게 된 거죠? “초등학교 6학년 때 다이어트를 하겠다고 동네 가까운 체육관을 찾았어요. 이른바 복싱다이어트죠. 그런데 다니다 보니 관장님이 진지하게 제안을 하시더라고요. 복싱을 배우라고. 부모님한테도 얘기를 하시고…. 그때부터 바둑을 그만두고 복싱을 시작하게 됐어요.” “(언니 김이슬) 단비가 당시, 살이 좀 쪘었어요. 살 빼러 체육관 간다니까 아무도 안 말렸는데, 그걸 직업으로 선택하게 될 줄은 몰랐죠. 아빠의 반대가 심했어요. 바둑 잘 배우고 있는 애인데, 진로를 바꿀 수 없다고. 하지만 워낙 단비가 권투를 좋아했어요. 복싱 잡지 같은 걸 사서 보기도 하더라고요.” - 관장님이 단비 씨의 재능을 알아본 모양이로군요. 원래 복싱을 할 것 같은 조짐이 있었던 걸까요? “운동을 좋아하긴 했어요. 시 규모 학교대항 체육대회가 열리면 대표를 도맡곤 했었어요. 단거리로. 100미터에 16초. 초등학교 여학생이면 빠른 편인 거였죠.” “(김이슬) 단비는 거의 모든 운동을 두루 잘했던 것 같아요. 달리고 뛰는 거라면 못하는 게 없었죠. 마라톤도 좋아했어요. 대회 있나 정보를 뒤져보다가 나오면 혼자 등록해서 참가하곤 했죠. 저에게도 같이 출전하자고 조르곤 했는데, 전 그냥 따라가서 구경만 했어요(웃음). 가족들은 단비가 참가했는지도 몰랐다가 입상했다고 쌀 한포대씩 타오면 놀라곤 했죠” - 동생이 복싱챔피언이 됐을 땐 분위기가 어땠나요? “집에선 난리도 아니었죠. 부모님도 기뻐하시고 저도. 특히 저는 그저 단비가 권투를 잘 배우고 있나보다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가 챔피언을 먹은 걸 보고 그동안 정말 열심히 했던 거구나 하고 생각했죠(웃음).” - 훗날 복싱을 하게 됐지만 어린 시절엔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열혈 소녀였겠다. “아녜요. 후후. 불의를 보면 꾹 참는 성미였죠(웃음)” “(김이슬) 끼가 있었던 것 같아요. 약한 아이들 괴롭히는 거 보면 참지 못했죠. 본인은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네…. 보통 남자아이 키우는 집들은 왜 학교에서 가끔 전화오곤 하잖아요. 사고 쳤는데 부모님 좀 잠깐 오시라고. 저희 집은 딸만 둘인데 학교에서 전화가 오곤 했어요. 가보면 단비가 못된 남자애를 흠씬 두들겨 패놨고 단비는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곤 했다고 해요(웃음)” - 복싱과 바둑 중에 어느 게 더 재미있어요. “(잠깐 망설이다가) 복싱이요. 바둑도 재미있지만 복싱이 더 좋아요. 시합에서 이기면 그 짜릿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 바둑과 복싱의 공통점이 있을까? “집중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거겠죠. 바둑에서 훈련된 집중력이 복싱에서도 적용됐는지도 모르겠어요. 또 있다면 승자와 패자가 있고, 이기는 기쁨이 있다는 거?” - 바둑의 펀치와 복싱의 펀치는 맛이 비슷한가? “네, 비슷한 느낌이에요. 대마를 잡을 때의 그런 느낌하고도 닮은 것 같고. 하나는 실제로 주먹이 나가는 거고, 하나는 바둑돌이 가상의 공격을 하는 것이지만 저한테 다가오는 느낌은 같게 느껴져요.” - 언니도 아마 강자다. 치수는 어떻게 되죠? “바둑을 그만둔 뒤로는 언니랑은 거의 두질 않았어요. 한참 둘 때는 2점이거나 3점을 놓았는데, 제가 ‘쫀심’이 강해서 3점으로는 안 두려고 해요.” “(김이슬) 3점이면 제가 못 이기죠” - 2점이면 승률은 어땠었죠? “10판을 둔다고 하면 3판 정도는 제가 확실히 이겼죠(웃음)” - 좋아하는 프로기사는? “유창혁 사범님요. 싸움 바둑이잖아요. 속기도 잘하시고. (싸움 바둑을 좋아하나?) 네 전투바둑을 좋아해요. 언니도 전투바둑이고” “(김이슬) 전 이세돌 9단이요. 신기하게 바둑을 둬요. 수읽기가 강하고…. 기보를 놔보면 이 9단의 전투스타일에 빠져들게 돼요. 제가 동생이랑 바둑을 둘 때도 무척 격렬해요. 저도 전투바둑을 좋아하나 봐요.” - 바둑이 왜 좋았죠? “승부이기 때문이죠. 두뇌스포츠잖아요. 이기는 기쁨이 환상적이에요. 그런데 질 때면 그 아픔이 심해요. 사실 복싱도 이기면 자기가 맞은 펀치가 잘 안 느껴지거든요. 근데 경기를 지면 맞은 데가 하나하나 욱신거려요(웃음). 바둑도 똑같더라고요.” - 이슬 씨한테 물어볼게요. 단비 씨와 재밌었던 기억은 어떤 게 있었나요? “주로 먹으러 갔던 기억인데요(웃음). 단비가 참 잘 먹거든요. 고기 뷔페 같은 데 가면, 저한테 고기 많이 먹는 법을 알려 줘요. 물도, 음료수도 못 먹게 하고. 그런 건 많이 먹는 데 방해가 된데요. 또 고기 종류도 순서를 지켜서 먹죠. 후후” - 동생이 복싱하는 걸 관전하고 있으면 맞는 장면도 있지 않나요? “그런데 시합의 일부로 느껴지기 때문에 동생이 상대한테 맞는 게 그렇게 안타깝게 여겨지진 않았어요. 시합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올 땐 제가 짐을 들어주곤 했거든요. 그때 동생 얼굴을 보면 퉁퉁 부어 있었죠. 그게 안쓰러웠어요.” - 동생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단비가 딴에는 건강을 챙겨요. 집에 홍삼 같은 게 선물로 들어오면 단비 차지죠. 근데, 정작 이런 게 큰 도움이 안 되는 것이, 시합이 잡히면 급하게 살을 빼야 할 때가 많아요. 체급 때문이에요. 기본 7~8kg은 빼야 하고 많게는 10kg까지도 빼야 하는데, 시합 끝나고 2주 정도면 원래 몸으로 돌아오거든요. 이것 때문에 건강이 나빠질까 걱정이 돼요. 그래서 평소에 살을 좀 빼놓으면 좋을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해줘요. 몸에도 좋고 갑자기 살 뺄 필요도 없으니까요(웃음).” 김단비는 앞으로도 복싱을 할 것이다. 대전료는 한번에 2000만원 정도. 하지만 비인기종목이어서 시합이 많이 없는 게 그의 아쉬움이다. 언니 김이슬은 진주국제대학교 관광일어과에 다니고 있다. 김이슬은 전공을 살리면서도 바둑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고 한다. 김단비와 언니는 지금도 바둑대회에 같이 출전한다. 이들은 바둑을 계속할 것이다. 바둑은 승부니까. 그리고 바둑은 짜릿하니까. |
첫댓글 오우 멋지네요. 아마5단..ㄷㄷㄷ 아무리 어렸을때 배웠다지만 복싱때문에 그이후론 제대로 공부도 안했을텐데 대단하네요. 한분야의 챔피언이 됐고 바둑이 이정도로 잘두고...부럽습니다. 물론 복싱이 지금 환경이 챔피언이 됐다고 돈많이 벌고 그런게 아니라 여전히 고생이 많겠지만 자신의 목표를 이뤄가는 일이 멋지네요.
진짜 멋지네요~~ 아하~ 아연아 넌 뭘 배울래?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