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을 맞아 경주에 나들이를 갔다.
먼저 경주예술의전당에서 개최하는 미술전시회를 구경하고 난 뒤 점심을 먹고 기림사로 향했다.
감포방향으로 가는 길에 토함산터널을 지나갔다. 무척 긴 터널이었다.
吐含山(토함산)은 해를 토했다가 머금기도 하는 산이라는 뜻이다.
예로부터 토함산 일출은 대한팔경의 하나이며 일출로 조선팔도에서 가장 유명하고 장관을 연출하는 곳이다.
含月山(함월산)은 골굴사와 기림사를 품은 산으로 달을 머금은 산이라는 뜻이 있다.
골굴사는 여러 번 갔으나 기림사는 처음 가 보았다.
기림사는 선덕여왕 때 인도의 광유스님이 와서 창건하였다고 하니 통일신라 때 창건한 불국사보다 100년 이상 앞선 유서 깊은 절이다.
조계종은 처음에 조선팔도 31본산의 本寺(본사)와 말사를 지정하였는데 경주 포항 영덕 일대의 본사를 기림사로 정하고 불국사를 末寺(말사)에 두었으나 시간이 지나 경주에서 접근성도 좋고 석가탑과 다보탑 및 청운교 백운교가 있는 불국사를 본사로 바꾸고 기림사를 말사로 정하였다.
이와 같은 사례는 강원도에도 있었다.
강원도 남쪽은 오대산 월정사를 본사로 정하여 그대로 변함이 없으나 북쪽은 원래 양양의 낙산사가 본사였고, 신흥사는 그 말사였는데 설악산에 자가용을 이용한 손님이 더 많아지니 이제는 신흥사가 본사가 되었고, 낙산사는 말사가 되었다.
기림사의 대적광전은 보물이고 아주 웅장했으며 공포에 단청이 전혀 없는 것이 고색창연함을 더해 주었다.
안에는 비로자나불과 좌우로 약사여래불 및 아미타불을 모셔 놓았다.
삼천불전은 말 그대로 전각 안에 3000개의 도자기 불상을 3면으로 배치해 놓았는데 이런 사례는 처음 보았다.
절의 위쪽에 매월당 김시습을 모신 전각이 있다.
이 절과 김시습이 무슨 관련이 있는가 하고 의아해 하였으나 매월당이 용장사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를 썼다고 기념하기 위하여 여기에 모신 것이라고 했다.
김시습의 시습은 “學而時習之 不亦悅乎”에서 그 이름을 지었으며 또한 字(자)인 悅卿(열경)도 이 대목에서 취한 것이다.
김시습은 율곡 이이와 더불어 조선의 양대 천재에 드는 인물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인정한다.
집으로 오는 길 7번 국도 경주 구간에 꽃비가 하염없이 흩날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