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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 123-125
as simple as a feedback loop is, it can be stitched together in endless combinations and forever stacked up until it forms a tower of the most unimaginable complexity and intricacy of subgoals. These towers of loops never cease to amuse us because inevitably the messages circulating along them cross their own paths. A triggers B, and B triggers C, and C triggers A. in outright paradox, A is both cause and effect. Cybernetician heinz von Foerster called this elusive cycle “circular causality.” warren McCulloch, an early artificial intelligence guru called it “intransitive preference,” meaning that the rank of preferences would cross itself in the same self-referential way the children’s game of Paper-scissors-stone endlessly intersects itself: Paper covers stone; stone breaks scissors; scissors cuts paper; and round again. hackers know it as a recursive circuit. whatever the riddle is called, it flies in the face of 3,000 years of logical philosophy. It undermines classical everything. if something can be both its own cause and effect, then rationality is up for grabs.
피드백 순환처럼 단순해서, 그것은 끝없는 조합으로 함께 묶일 수 있고, 가장 상상할 수 없는 복잡성과 하위 목표의 복잡함의 탑을 이룰 때까지 영원히 쌓일 수 있다. 이 순환의 탑들은 결코 우리의 즐거움을 멈추지 않는다. 왜냐면 불가피하게 그것들과 함께 순환하는 메시지가 자신들의 경로를 가로지르기 때문이다. A는 B를 촉발하고, B는 C를 촉발하고, C는 A를 촉발한다. 완전한 역설로 A는 원인이자 결과이다. 인공두뇌학자 하인즈 폰 포에스터는 이 난해한 순환을 “순환적 인과관계”라고 불렀다. 워렌 맥쿨로크, 초기 인공지능 전문가는 그것을 “자동사적 선호??”라고 불렀다. 그 의미는 선호의 순위가 자신을 똑 같은 자기참조적 방식으로 통과하는 것이다. 아이들의 가위바위보 게임은 끝없이 스스로를 교차한다. 보자기는 바위를 싸고, 바위는 가위를 부수고, 가위는 보자기를 자른다. 그리고 다시 돈다. 해커들은 그것을 재귀적 회로로 알고 있다. 그 수수께끼가 뭐라고 불리든, 그것은 3천년의 논리 철학을 직면하여 날아다닌다. 그것은 고전적인 모든 것을 잠식한다. 만약 무언가가 그것만의 원인과 결과 둘 다 된다면, 합리성은 수월하게 차지할 수 있다.
Self-causing agencies
the coMpounded logic of stacked loops which doubles back on itself is the source of the strange counterintuitive behaviors of complex circuits. Made with care, circuits perform dependably and reasonably, and then suddenly, by their own drumbeat, they veer off without notice. electrical engineers get paid well to outfox the lateral causality inherent in all circuits. But pumped up to the density required for a robot, circuit strangeness becomes indelible. reduced back to its simplest—a feedback cycle—circular causality is a fertile paradox.
스스로를 배가시키는 쌓인 순환의 혼합된 논리는 복잡한 회로의 이상한 반직관적인 동작의 원천이다. 주의깊게 만들면 회로는 믿을만하고 합리적으로 동작한다. 그 다음엔 갑자기 그들만의 드럼비트에 의해 예고없이 이탈한다. 전기기술자들은 모든 회로에 내재된 측면 인과관계보다 앞지르기 위해 돈을 많이 받는다. 하지만 로봇에 필요한 밀도에 까지 끌어올려지면 회로 이상은 없앨 수 없다. 가장 단순함– 피드백 주기 - 으로 다시 축소되는 순환적 인과관계는 유익한 역설이다.
where does self come from? The perplexing answer suggested by cybernetics is: it emerges from itself. it cannot appear any other way. Brian Goodwin, an evolutionary biologist, told reporter roger Lewin, “The organism is the cause and effect of itself, its own intrinsic order and organization. natural selection isn’t the cause of organisms. Genes don’t cause organisms. There are no causes of organisms. organisms are self-causing agencies.” self, therefore, is an auto-conspired form. it emerges to transcend itself, just as a long snake swallowing its own tail becomes uroborus, the mythical loop.
자아는 어디에서 오는가? 인공두뇌학이 당황스러운 답을 제시했다. 그것은 스스로에서 창발한다. 그것은 다른 방법으로 나타날 수 없다. 브라이언 굿윈, 진화 생물학자는 기자 로저 르윈에게 말했다. “유기체는 자체가 원인과 결과이고 고유의 본질적 질서이자 조직이다. 자연 선택은 유기체의 원인이 아니다. 유전자는 유기체의 원인이 아니다. 유기체의 원인은 없다. 유기체는 자기 원인적 행동자이다.” 그러므로 자아는 스스로 공모한 형태이다. 그것은 스스로를 넘어서기 위해 창발한다. 긴 뱀이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는 것이 우로보로스, 신화적 고리가 되는 것처럼.
The uroborus, according to C. G. Jung, is one of those resonant projections of the human soul that cluster around timeless forms. The ring of snake consuming its own tail first appeared as art adorning Egyptian statuary. Jung developed the idea that the nearly chaotic variety of dream images visited on humans tend to gravitate around certain stable nodes which form key and universal images, much as interlinked complex systems tend settle down upon “attractors,” to use modern terminology. a constellation of these attracting, strange nodes form the visual vocabulary of art, literature, and some types of therapy. one of the most enduring attractors, and an early pattern to be named, was the Thing Eating Its Own Tail, often graphically simplified to a snakelike dragon swallowing its own tail in a perfect circle.
c.g. 정에 따르면 우로보로스는 시간을 초월한 형태로 모여있는 인간 영혼의 공명하는 투사이다. 자신의 꼬리를 먹어치우는 뱀의 고리는 이집트 조각상 장식 예술로 나타났다. 정은 이 생각을 발전시켰다. 인간을 방문한 거의 혼란스러운 다양한 꿈의 이미지들은 중요하고 보편적인 이미지를 형성하는 특정한 안정된 노드에 끌려가는 경향이 있다. 상호연결된 복잡계가 현대적 용어를 사용하자면 “어트랙터”에게 정착하는 경향이 있는 것과 같다. 이러한 매력적이고 이상한 노드의 집합체는 예술, 문학과 몇 가지 치유법의 시각적 어휘를 형성한다. 가장 내구성있는 어트랙터 중 하나이고 이름붙여진 초기 형태는 자기꼬리를 먹는 것이었다. 자주 완벽한 원 안에 자신의 꼬리를 삼키는 뱀 같은 용으로 그래픽적으로 단순화되었다.
// 슬라가 낮잠을 일찍 깨서 여기서 끝낼게요. 즐거운 시간 보내고 오세요~
The loop of uroborus is so obviously an emblem for feedback that i have trouble ascertaining who first used it in a cybernetic context. In the true manner of archetypes it was probably realized as a feedback symbol independently more than once. i wouldn’t doubt that the faint image of snake eating its tail spontaneously hatches whenever, and wherever, the GoTo sTarT loop dawns on a programmer.
우로보로스의 고리는 명백히 피드백에 대한 상징이어서 인공두뇌학적 맥락에서 그것을 누가 처음 사용했는지 규명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원형의 실제 방식으로는 그것은 아마도 한 번 이상의 독립적인 피드백 상징으로서 실현되었다. 고투 스타트 순환이 프로그래머에게 보이게 되는 언제 어디서나 꼬리를 먹는 뱀의 흐릿한 이미지가 스스로 부화한다는 것을 의심할 수 없다.
snake is linear, but when it feeds back into itself it becomes the archetype of nonlinear being. in the classical Jungian framework, the tail-biting uroborus is the symbolic depiction of the self. The completeness of the circle is the self-containment of self, a containment that is at the same time made of one thing and made of competing parts. The flush toilet then, as the plainest manifestation of a feedback loop, is a mythical beast—the beast of self.
뱀은 선형적이지만 자신을 다시 먹을 때 비선형적 존재의 원형이 된다. 고전적 융 심리학의 틀에서 꼬리를 무는 우로보로스는 자아의 상징적 묘사이다. 그 원의 완전함은 자아의 자족, 하나로 만들어지고 동시에 경쟁자로 만들어지는 속박이다. 물내리는 변기는 피드백 순환의 가장 평범한 증명으로서 신화적 짐승, 자아의 짐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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