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5주간 금요일 강론>(2024. 2. 9. 금)(마르 7,31-37)
복음
<예수님께서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셨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7,31-37
그때에 31 예수님께서 티로 지역을 떠나 시돈을 거쳐,
데카폴리스 지역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갈릴래아 호수로 돌아오셨다.
32 그러자 사람들이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에게 손을 얹어 주십사고 청하였다.
33 예수님께서는 그를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34 그러고 나서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
그에게 “에파타!” 곧 “열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35 그러자 곧바로 그의 귀가 열리고 묶인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
36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들에게 분부하셨다.
그러나 그렇게 분부하실수록 그들은 더욱더 널리 알렸다.
37 사람들은 더할 나위 없이 놀라서 말하였다.
“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구나.”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에파타!』
“사람들이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에게 손을 얹어 주십사고 청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그러고 나서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 그에게
‘에파타!’ 곧 ‘열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곧바로 그의
귀가 열리고 묶인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들에게
분부하셨다. 그러나 그렇게 분부하실수록 그들은 더욱더 널리
알렸다. 사람들은 더할 나위 없이 놀라서 말하였다.
‘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 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구나.’(마르 7,32-37)”
예수님께서 장애자를 군중과 분리시켜서 따로 데리고
나가신 것은, 군중이 예수님의 치유 기적만 보고
열광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당신 손가락을 장애자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시고,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것은,
그 사람의 장애를 고쳐 주기 위한 동작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믿음을 주기 위한 동작입니다.
그는 들을 수는 없지만 볼 수는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아마도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당시 의사들이 하는
것과 같은 ‘시각적인 동작’으로 우선 먼저 그가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인도하신 것입니다.
그의 치유는 ‘에파타!’ 라는 한마디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 라는 말을
원문대로 번역하면 “저분이 모든 것을 좋게 하셨다.”이고,
이 말은 창세기 1장에 반복해서 나오는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라는 말과 비슷한 말입니다.
그래서 이 말은, “예수님은 새로운 창조자” 라는
사상이 들어 있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죄로 인해 망가진 세상을
원상복구하려고 오신 분입니다.>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 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구나.” 라는 말은, 이사야서 35장 5절에 연결되고,
이 말은, “예수님은 인간들을 구원하시는 메시아” 라는
믿음이 들어 있는 말입니다.
<이 이야기는 겉으로만 보면 예수님께서 어떤 장애자를
고쳐 주신 이야기, 즉 단순한 치유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야기 전체를 상징으로 생각하면,
신앙인들이 말씀을 듣는 일과 말씀을 전하는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한 특별한 가르침입니다.
장애 때문에 듣지 못하고 말을 못하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말씀을 들을 수 있는데도 안 듣고,
말씀을 전할 수 있는데도 전하지 않는 것은 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귀와 혀를 열어 주시는 것까지만 해 주십니다.
듣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능동적으로 해야 하는 일입니다.
복음 말씀에는 관심도 없고, 그래서 들으려고 하지도 않고,
세속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에만 귀를 기울인다면,
그것은 스스로 자기 귀를 막는 것과 같고, 죄를 짓는 일입니다.
또 말씀을 전하는 일은 하지 않고 정말로 쓸데없는 말만
하는 것은 신앙인의 본분을 실행하지 않는 죄를 짓는 일이고,
십계명 제8계명을 어기는 죄를 짓는 일이기도 합니다.
신앙인은 항상 말씀 안에서 말씀과 함께 사는 사람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박해자 사울이 예수님을 만난 뒤의 일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울은 땅에서 일어나 눈을 떴으나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손을 잡고 다마스쿠스로
데려갔다. 사울은 사흘 동안 앞을 보지 못하였는데,
그동안 그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다(사도 9,8-9).”
“하나니아스는 길을 나섰다.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사울에게 안수하고 나서 말하였다. ‘사울 형제, 당신이 다시
보고 성령으로 충만해지도록 주님께서,
곧 당신이 이리 오는 길에 나타나신 예수님께서 나를
보내셨습니다.’ 그러자 곧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지면서 다시 보게 되었다. 그는 일어나 세례를 받은 다음,
음식을 먹고 기운을 차렸다(사도 9,17-19).”
박해자 사울이 앞을 못 보게 된 일도, 그리고 다시 볼 수
있게 된 일도, 모두 예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그가 앞을 못 보게 된 일을 예수님 쪽에서 생각하면,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그리스도교를 박해한다는
것을 깨우쳐 주신 일로 생각할 수 있고,
바오로 사도 쪽에서 생각하면, 자신이 그동안 ‘눈 뜬 장님’으로
살아왔음을 깨달은 것을 상징하는 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시 볼 수 있게 된 일은, 그가 보아야 할 것을 볼 수 있는
시력을 얻은 일인데, 예수님 쪽에서 생각하면 예수님께서
그 시력을 주신 것이고, 바오로 사도 쪽에서 생각하면
예수님을 믿게 되면서 비로소 ‘눈 뜬 장님’의 상태에서
벗어나게 된 것을 상징하는 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신앙이란, 보아야 할 것을 제대로 보는 일이고,
들어야 할 말씀을 제대로 듣는 일이고, 전해야 할 말씀을
제대로 전하는 일입니다.
믿는다고 생각만 하는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는 인터넷과 스마트폰 등을 사용해서
너무 많은 것을 보고 있고, 듣고 있습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은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서
천사의 도구가 되기도 하고, 사탄의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보아야 할 것은 안 보고 다른 것만 보다가는,
또 들어야 할 말씀은 안 듣고 사탄의 소리에만
귀를 기울이다가는 구원의 길에서 벗어나서
멸망의 길로 가게 될 것입니다.>
[출처] 연중 제5주간 금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첫댓글 아멘 신부님 stellakang 님 고맙습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