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에다 일본은행은 일본을 「디플레이션」에 되돌리려는 마음인가 증권회사 간부에게 금리 인상을 주가에 포함시키는 조직적 캠페인 / 3/4(월) / 석간 후지
[돈은 알고 있다]
「더 이상 「버블 후」가 아니다」란, 닛케이 평균주가가 1989년 12월 29일의 3만 8915엔을 넘은 2월 22일자의 닛케이 신문 전자판 기사의 표제다. 주가 강세에 끌려가는 것은 미디어뿐만이 아니다. 일본은행도 그렇다.
일본은행 직원들은 증권사 간부들에게 금리가 오를 것이라고 설파하고 있다. 금리 인상을 주가에 포함시키기 위한 조직적 캠페인이다.
22일의 중의원 예산 위원회에서는 일본은행의 우에다 카즈오 총재가 「디플레이션이 아니라 인플레이션의 상태에 있다」라고 거
절했다. 인플레, 디플레는 엄밀한 검증이 필요하지만, 우에다 씨는 굳이 「상태」라는 흐린 표현으로, 일본 경제는 이제 디플레로부터 벗어나, 인플레 국면에 있는 것 같은 인상을 국회의 장을 사용해 세상에 뿌렸다. 일본은행은 어쨌든, 제로 금리 정책 해제에 앞섰다. 금리가 있어야 금융이 정상화된다는 게 일본은행의 믿음일 것이다. 그 전제가 되는 것은, 탈디플레이션일 것이지만, 그것이 확정되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일본은행은 이전에도 중대한 판단 미스를 범했다. 2006년 3월 후쿠이 도시히코 당시 일본은행 총재는 완만한 양적완화를 해제하고 7월에는 제로금리 정책을 중단해 금리인상을 단행했다. 당시 소비자물가 하락이 멈추고 상승 국면으로 돌아섰다고 봤기 때문이다. 지난 7월 정책결정회의 회의록에 따르면 후쿠이 총재는 제로금리를 유지할 경우 "경제·물가가 크게 변동하는 리스크로 이어진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도 금융정책 정상화가 화두였다.
결과는 디플레이션 압력의 지속이었고 물가상승률은 마이너스 기조가 이어졌다. 그리고 08년 9월에는 「리먼·쇼크」가 발발했다. 후쿠이 씨 후계인 시라카와 마사아키 총재는 대대적인 금융완화에 나선 미구의 중앙은행을 곁눈질로, 양, 금리 모두 순조로운 완화 정책을 취하지 않았다. 결과는, 초엔고이며, 실물경제는 디플레이션에 빠졌다. 이 때문에 리먼 사태로 가장 심한 경제 타격을 입은 것은 진원지인 미국, 유럽이 아니라 일본이었다.
이번에는 어떤가. 그래프는 헤이세이 버블 피크 때인 1989년 12월부터 금년 2월까지의 닛케이 평균주가를 실질 임금과 대조시키고 있다.
본문 첫머리에서, 우에다 총재가 디플레의 정의를 그냥 지나치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실질 임금의 저하야말로 1990년대 후반부터 계속되는 일본형 만성 디플레의 원흉이다.
J·M·케인스는 디플레이션에 대해 "물가가 앞으로 내려갈 것이라는 예상이 계속되는 상태"라고 정의했다. 그 예상을 가져오는 것은 수요 부족이고, 수요 축소의 원흉은 실질임금 하락이라는 것은 중학생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물가가 이번처럼 비용 상승으로 밀려나도 임금 상승이 따라가지 못하면 가계는 곤궁해진다. 물가가 내려가더라도 임금 하락폭이 크면 역시 실질임금은 떨어진다. 그래프는 이 기조가 1997년 이래 계속되어, 최근에는 더욱 하락이 가속하고 있지 않은가. 주가는 그것과 무관하다. 우에다 일본은행은 일본을 디플레이션 국면으로 되돌릴 수 있다. (산케이신문 특별기자 다무라 히데오)
https://news.yahoo.co.jp/articles/26a1dbc1ccbec30904b71d4802550fd7a96bd0b4
植田日銀は日本を「デフレ」に引き戻す気か 証券会社幹部に金利の引き上げを株価に織り込ませる組織的キャンペーン
3/4(月) 17:00配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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夕刊フジ
【お金は知っている】
「もはや『バブル後』ではない」とは、日経平均株価が1989年12月29日の3万8915円を超えた2月22日付の日経新聞電子版記事の見出しである。株高に引きずられるのはメディアだけではない。日銀もそうだ。
【写真】史上最高値を更新し、4日の終値でも史上初の4万円台を突破した
日銀のスタッフたちは証券会社幹部に、金利は上がりますと説きまわっている。金利の引き上げを株価に織り込ませるための組織的キャンペーンである。
22日の衆院予算委員会では日銀の植田和男総裁が「デフレではなくインフレの状態にある」と断じた。インフレ、デフレは厳密な検証が必要だが、植田氏はあえて「状態」というぼかした表現で、日本経済はもはやデフレから脱し、インフレ局面にあるかのような印象を国会の場を使って世間に振りまいた。日銀はとにもかくにも、ゼロ金利政策解除に前のめりである。金利あってこそ、金融が正常化するというのが日銀の信念なのだろう。その前提となるのは、脱デフレのはずだが、それが確定したとは言いがたい。
日銀は以前にも重大な判断ミスを犯した。2006年3月、当時の福井俊彦日銀総裁は緩やかな量的緩和を解除し、7月にはゼロ金利政策を打ち止め、利上げに踏み切った。当時、消費者物価の下落が止まり、上昇局面に転じたとみなしたからである。7月の政策決定会合の議事録によれば、福井総裁はゼロ金利を維持した場合、「経済・物価が大きく変動するリスクにつながる」と述べたという。このときも、「金融政策の正常化」が謳(うた)い文句だった。
結果はデフレ圧力の継続で、物価上昇率はマイナス基調が続いた。そして08年9月には「リーマン・ショック」が勃発した。福井氏後継の白川方明総裁は大々的な金融緩和に乗り出した米欧の中央銀行を横目に、量、金利ともはかばかしい緩和政策をとらなかった。結果は、超円高であり、実体経済はデフレに陥った。そのせいで、リーマン・ショックで最も激しい経済打撃を受けたのは、震源地の米欧ではなく日本だった。
今回はどうか。グラフは平成バブルピーク時の1989年12月から今年2月までの日経平均株価を実質賃金と対照させている。本文冒頭で、植田総裁がデフレの定義を素通りしていると指摘したが、実質賃金の低下こそが1990年代後半から続く日本型慢性デフレの元凶である。J・M・ケインズはデフレについて「物価がこの先下がるという予想が続く状態」と定義した。その予想をもたらすのは需要不足であり、需要縮小の元凶は実質賃金の下落であることは、中学生だって理解できるだろう。物価が今回のようにコスト上昇で押し上がっても、賃金上昇が追いつかないと家計は困窮する。物価が下がっていても、賃金の下落幅が大きいと、やはり実質賃金は下がる。グラフはこの基調が1997年以来続き、最近ではさらに下落が加速しているではないか。株価はそれと無関係である。植田日銀は日本をデフレ局面に引き戻しかねない。 (産経新聞特別記者 田村秀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