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사목전(擧事目前)의 분란(分亂)
이러한 위기일발의 아슬아슬한 사실이 비원 한 모퉁이에서 연출된 같은 시
각에, 동대문 밖 능양군 외가집 사랑에서는 능양군과 이귀 두 사람만이 조
그만 약봉지 하나를 앞에 놓고 수군대고 있었다.
능양군은 어제 오늘 양 이틀간 비상한 감동에 도리어 마음이 설레어 노상
가슴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는 느낌에 잠겼다. 이, 삼일 동안 죽었다가 깨
어났으면 하는 어린애 같은 생각까지 일어났다.
용용한 희망과 불안, 초조 그리고 시각으로 쳐서 이십사시간 후에는 이 나
라의 지존이요, 통치자인 지위에 오르느냐, 역적의 이름 아래 능지처참을
당하느냐의 판단이 나게 되는 지금 그는 자기의 부들거리는 가슴을 억제할
길이 없었다.
그러나 능양군은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기에 노력하였다. 이귀는
"동지의 한 사람이라고 할는지 평교의 심의로서 대하는 것도 지금 이 시각
뿐입니다. 천지신명의 가호가 있다고 믿으니 아무 불안을 가지지 마시되
세상 일이란 필경 알 수 없는 것이온즉 이 약을 달여서 놓으시고 만일 일
이 그릇되어 내일 새벽까지 아무 기별이 없을 때에는 자처하셔서 깨끗한
최후를 맞아들이셔야 합니다."
긴장한 안색으로 이귀는 이렇게 말하기 어려운 것을 했다. 이것은 물론
이귀 개인의 뜻이 아니고 여러 동지의 뜻이었다.
지리한 봄날 하루도 어느덧 저물었다.
대자연의 하루는 사회의 모든 움직임을 한 아름 껴안고 어둠의 장막 속으
로 기어들어 가는 것이었다.
연서역의 밤은 시각이 늦어갈수록 달빛이 밝아서 거기에 모인 사람들의 행
동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귀와 이서가 진중에 영을 내려서 사세 여하를 막론하고 일체 불빛을 엄
금하였다. 화톳불 한 자리 피울 수 없었고 횃불은 더욱 안 되었다. 이귀,
구굉, 장신, 심기원, 원두표 등은 장단부사 이서가 가져온 장막을 치고 그
속에 모여서 시각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러고 있는 중에도 문제는 김유가 아직 나타나지 않는 점이다. 경위로
말하면 이날의 총지휘는 김유가 맡아 하기로 되어 있은즉 적어도 이귀와
동행하여 군사를 지휘 단속하여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유에
게서는 아무 기별도 없다.
이귀의 가슴은 답답했다. 단순히 김유가 불참하고 있다는 그 문제 뿐이 아
니라, 누가 고변을 하여 붙잡히지나 아니했나 그렇게 상상하며 별별 잡념
까지 머리에 다 떠 오른다.
"영감, 무슨 심려가 계셔서 안색이 좋지 못하슈? "
이괄이 옆에서 묻는다.
"대장된 사람이 지각을 하니 그것두 불안하거니와 무슨 사고가 생긴 것 같
아서 더욱 아니 날 생각이 다 나누구료."
"그런 염려는 마시우. 나두 소문을 들은바도 있고, 필유곡절(必有曲折)이
라고 생각은 하고 있소마는 뭐 근심하실 게 있으리까. 이제는 성중 군병
이 모조리 쏟아져 나온다 해도 걱정될게 없습니다. 당당히 싸워보는 것도
재미있지요. 김찬판은 영영 불참인가 싶소."
"그럴 리는 없지마는..."
하면서도 이귀 역시 굳세게 이 말을 부인하지 못했다.
"염려 마시우. 허장성세가 아니라 이놈의 팔뚝이 있소."
두 사람의 등 뒤에서 장사 원두표가 이렇게 호언을 했다.
이서는 아까부터 수백명 군졸을 단속하기에 넓은 벌판을 왔다 갔다하고 있
었다. 이귀는 유심히 그 편을 바라보고 있다가 문뜩 무엇을 생각하고
"여보, 이병사 영감!"
하고 이괄을 불렀다.
"왜 그러시오?"
"지금 시간이 어찌 되었소?"
"자정이 멀지 않은 것 같소."
"큰일났군."
하고 이귀는 초조한 낯으로 웅기중기 모여든 동지들의 낯을 한동안 둘러보
더니
"북병사 이괄 영감에게 대장 소임을 맡아보시도록 합시다."
는 발언을 하였다.
여럿은 이구동성으로
"동병은 신속을 요하는 것이니 빨리 그렇게 합시다."
하고 찬동했다.
이괄은
"그럼 불초가 여러분의 합의를 보았은즉 외람되나마 대장의 소임을 맡겠
소."
하는 쾌락을 했다.
이 말이 떨어지자 여럿은 각기 맡은바 부서로 헤어지고 이귀와 이괄, 그리
고 몇 동지들은 미리 만들어 놓은 단 앞으로 걸어갔다.
잠간 흐리었던 하늘이 말끔히 벗어지고 보름이 가까운 맑은 달빛이 넓은
벌판의 구석구석을 비추어 거기에 정연히 편대를 짜고 늘어선 군졸들 머리
에 용용한 기분을 일으켜 주었다.
이괄은 단에 올랐다. 단에 올라서 막 군령을 내리려 할 즈음 저편 군사의
일부분이 별안간 와글거리는가 하더니 말에서 내려 이리로 달려오는 사람
이 있었다.
김유였다. 오늘 대장의 소임을 맡았던 김유가 이제 도착한 것이다. 이귀
이하 여러 동지는 그의 내참을 반가와하기보다 차라리 난처한 지경에서 당
황하였다.
이괄은 김유를 노려보며
"대장이 이제서야 오니 일이 어찌 되겠소. 지금은 내가 대장이니 당신을
참해야 하겠소."
하고 장검을 빼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