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5월 7일. 7만8천여 관중이 운집한 프랑스 국립경기장에서는 자국리그 최강의 전력을 자랑하는 낭트(Nantes)와 다소 생소한 이름의 칼레(Calais Racing)의 프랑스 축구 FA컵 결승전이 벌어졌다.
스코어 상의 결과는 2-1 낭트의 승리. 그러나 이날 경기에서 패한 칼레 역시 세계를 발칵 뒤집을 만한 역사를 남기며 또 다른 승자로 기록될 수 있었다. 비록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FA컵에서 보여준 칼레의 저력은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로 전 세계를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프랑스 FA컵 81년 역사상 유래 없는 '기적'이었다. 4부리그 소속으로 아마추어 팀 사상 최초로 FA컵 결승을 이뤄낸 칼레의 돌풍은 좀처럼 식을 줄 모르고 몰아쳤다.
결승에 오르는 동안 칼레는 당시 서정원(수원)이 몸담았던 스트라스부르를 포함해 강호들과의 잇따른 10여 차례 대결에서 전승을 거두며 준결승에 선착, 1부리그 우승팀 보르도마저 3-1로 격추시키고 결승으로 가는 티켓을 차지했다.
비록 2년 연속 FA컵을 차지한 샹피오네 최강 클럽인 낭트에 1-2로 패하며 분투를 삼켰지만 이들이 보여준 경기 내용은 스타군단 낭트에 전혀 뒤지지 않았다.
전반 35분. 팽팽한 긴장감은 의외로 칼레에 의해 먼저 깨졌다. 칼레의 최전방 스트라이커를 맡고 있는 제롬 두티트헤(Jerome Dutitre)가 페널티에어리어 왼쪽에서 낭트의 골문을 향해 날린 땅 볼 슈팅이 골키퍼의 가랑이 사이를 통과한 것.
1-0으로 전반을 기분 좋게 리드한 채 마친 칼레의 돌풍은 샹피오나의 강호를 맞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후반 시작과 동시에 낭트의 스트라이커 앙트완 시비에르스키는 수비수 두 명을 가볍게 따돌리고 대각선 슈팅을 성공시켰다. 시비에르스키의 골을 시작으로 낭트는 일방적으로 쏘아 붙였고, 칼레는 수세에 몰린 경기를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지칠대로 지쳐있던 칼레였지만 '투혼(鬪魂)'을 발휘하며 끝까지 추가 실점을 허용하지 않고 고투하던 후반 46분, 결국 페널티 킥으로 한 점을 더 내주며 주저앉고 말았다. 이 페널티 킥 상황은 이후에 있은 비디오 판독 결과 주심의 오심으로 밝혀져 더 큰 아쉬움을 남겼다.
당시 주심을 맡았던 심판은 칼레의 수비수 파브리스 바롱이 낭트 공격수 알랭 카베글리아를 가격했다고 판단해 페널티 킥을 선언했지만 확인 결과, 카베글리아의 '할리우드 액션'이었음을 주심이 놓쳤던 것.
경기 종료 휘슬은 곧바로 이어졌고 분노의 물결로 가득 찬 관중석에서는 야유와 함성을 마구 퍼부었다. 칼레의 선수들은 허탈한 표정과 함께 그라운드에 쓰러져 눈물을 떨구는 등 침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지만 정작 주심의 판정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스포츠맨십'을 보여 기립 박수 갈채를 받았다.
이어 벌어진 시상식에서 승리를 건진 낭트의 주장을 맡고 있던 랑드로는 칼레의 주장 베크에게 다가와 손을 이끌고 본부석으로 달려가 함께 우승컵에 포옹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당시 프랑스 대통령을 맡고 있던 시라크 대통령은 "결과에서는 낭트가 우승했지만, 칼레는 정신력에서 우승했다. 때문에 오늘 경기의 승리는 두 팀 모두 나눠 가진 셈"이라며 최고의 경기를 펼친 양 팀 모두를 격려했다.
칼레는 도버해협을 끼고 영국과 최단거리(34km)에 위치한 인구 7만의 프랑스 북부 항구공업도시다.
한때 산업혁명의 붐을 타고 전 세계적으로 장식용 레이스를 공급하며 번영기를 누렸던 칼레는 근래에 와서는 매달 지나친 실업난으로 100여명이 투신하는 등 많이 쇠락한 면모를 갖추고 있다.
현재는, 도버해협을 건너는 영국인들이 비교적 저렴한 프랑스산 와인을 구입하기 위해 가까운 칼레에 들르고 있어 대부분의 시민들이 유통업을 통해 입에 풀칠이나 하는 정도로 간신히 지역경제를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돌풍의 주역인 칼레 팀의 홈구장은 시내에 위치한 '칼레 스타디움(Calais Stadium)'. 말이 홈구장이지 비가 오면 아무도 들어갈 수 없어 출입이 통제되고, 평균 관중이 300여명에 불과한 좌석 또한 모두 헤아려봐야 972석이 전부다. 덕분에 FA컵을 치르는 동안 홈 경기라고는 거의 가져보지 못했다(칼레의 홈 경기시 랑스 등 중립지에서 개최됐다).
더 놀라운 것은 칼레 팀을 이루고 있는 선수 구성원 모두가 각자 다른 일로 생업에 종사하고 있는 아마추어 신분의 선수들이라는 것이다. 낮에는 직장에서 돈을 벌고 밤에는 모여서 훈련하며 축구를 즐기는 생활이다.
결승전에서 선제골을 기록한 '영웅' 두티트헤는 슈퍼마켓 창고에서 근무하고 있고, 대회 10골에 빛나는 골게터 미카엘 제라르(Michael Zerael)는 부두 쇼핑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팀의 주장을 맡고 있는 레지나 베크(Reginald Becque) 역시 장식품 가게 점원이며, '살림꾼' 크리스토프 오가르(Christophe Hogard)는 시청 청소년 센터에서 근무하는 등 정원사, 교사, 학생, 페인트공 등 다양한 직종의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2부 리그에서 활약한 경력이 있는 '사령탑' 로사노 감독 역시, 선수생활을 마감한 후 칼레시의 스포츠센터 책임자로 근무 중이다.
당초 예상하지도 않던 2부리그, 3부리그 팀들을 꺾는 동안 칼레 선수들은 알 수 없는 묘한 기운을 느꼈고, 이는 칸느, 릴레, 스트라스부르, 보르도 등 쟁쟁한 1부리그 팀들 마저 잠재우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지역 경제의 침체로 암울하기만 했던 지역 시민들은 칼레의 선전에 축구를 통하여 '하나'가 될 수 있었고, 이내 활기를 되찾으며 축제의 도시로 탈바꿈했다.
주민들은 저마다 해저터널을 뚫었을 당시와 산업혁명으로 '황금기'를 맞이했던 때를 떠올리며 너도나도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팀 재정을 돕기 위해 앞다퉈 기념품을 제작하고 구입했으며 상민이 대부분인 주민 전체가 모두 가게문을 걸어 잠그고 원정길에 오르기도 했다.
어느새 칼레의 선전은 칼레 시민만의 축제가 아니었다. 결승을 하루 앞둔 한 일간지의 여론 조사에서 낭트의 우승을 지지하는 축구 팬들이 겨우 20%대를 웃돈 데 반해 칼레의 우승을 지지하는 비율은 60%를 훌쩍 넘겼다.
전 프랑스 국민들이 앞다퉈 칼레를 응원하고 나섰고, 일군의 영국인들은 칼레의 응원단을 조직해 도버해협을 건너기도 했다.
결승골의 주인공 두티트헤는 경기 전 "우리 선수들이 벌어 들이는 돈을 다 합쳐봐야 상대 선수 한 명의 10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이 가지지 못한 힘을 가지고 있다"며 알 수 없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어 인터뷰 마이크를 넘겨받은 로사로 감독 역시 "칼레는 이미 프랑스 축구 역사에서 한 페이지를 가장 아름답게 장식했다. 승률이 10%도 되지 않는 경기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 축구의 묘미다. 낭트는 우리가 오를 에베레스트 산일 뿐이다. 한계를 뛰어 넘는 힘든 도전이지만 충분히 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 새로운 전설을 만들 것이다"며 아이러니한 자신감을 덧붙였다.
두티트헤와 로사노 감독의 자신감은 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팀워크(Team Work)'의 중요성에 기인한 발언이었던 것이다. 비록 실력은 뒤지지만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라왔고 고장의 명예를 빛내기 위하여 '하나'로 똘똘 뭉친 선수들의 자신감을 믿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경기에는 패했지만 칼레의 경기를 보기 위해 대통령과 총리가 직접 경기장을 찾았고, 인접한 벨기에, 독일 등에서는 연일 칼레의 팬을 자청하는 이들이 쇄도했다.
경기가 끝난 후 칼레시청 광장에는 프랑스 월드컵 우승을 일궜을 당시보다 훨씬 많은 수만 명의 인파가 모여 칼레의 선전을 자축했고, 세계 유수 언론에서는 칼레의 정신력을 높이 사 연일 앞다퉈 칼레의 활약상을 보도했다.
현재, '돌풍'의 성적을 발판으로 삼지 못하고 여전히 4부리그에서 허덕이고 있는 칼레는 '칼레의 기적'을 연출한 이후에도 꾸준히 시민 구단으로서의 면모를 잃지 않고 있다.
당시 선수들이 일하고 있는 세탁소, 빵집 등 동네 점포들의 후원으로 팀을 꾸렸던 칼레는 현재도 꾸준히 동네 점포들의 후원을 늘려가며 전력 향상을 꾀하고 있는 중이다. 거대 기업을 스폰서로 유치해 자본력을 확보해 우수선수를 유치하고, 이를 통해 1부리그로 진출한다는 생각은 당초에도 없었다.
시민을 주축으로, 시민을 위한, 시민에 의한 진정한 시민구단으로서의 자세를 잃지 않으려는 자세는 한국형 시민구단들에 많은 교훈을 던져 주고 있다.
아마추어 축구팀 '칼레'의 선전은 전 세계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고, 진정으로 축구의 참 정신이 어떤 것인가를 되새길 수 있게끔 해준 '역사의 한 장면'으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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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창단한지 5개월밖에 안 된 팀이라고 들었습니다.
위의 칼레팀은 역사가 오래 된 팀이지만, 군산시 여성 축구단과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아요..
항구도시에 시민들이 만든 팀...
가슴 속에 위의 칼레를 새기며, 한발 한발을 귀중하게 디뎌주세요~
첫댓글 대단하네요. 아마추어가 그것도 낙후된 지역의 팀이 결승까지...
영화로 나와도 믿기 힘든 이야기네요 정말 대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