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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내 이름은>: 기억의 방식으로
속죄를 위해 각인된 그 이름
김 문 홍
건드리기 어려운 화인 같은 기억
1948년 제주 섬에서 일어난 4.3사태는 한국현대사의 '뜨거운 감자' 같은 기억으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입에 오르내리기도 어려웠다. 일종의 화인(火印) 같은, 아물지 않은 역사의 환부이다. 그것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은 현기영의 소설 <순이삼촌>부터였다.
이 사태는 해방공간에서 1948년 5윌 10일 남한 단독선거가 분단의 고착이라는 좌익 세력의 시비와 저항으로, 순박하고 평화로운 땅 제주에서 우익과 좌익의 투쟁에 국가 권력의 개입으로 피바람을 일으켜 당시 제주 인구의 10%에 해당 되는 제주 양민 3만여 명이 희생된 민족의 끔찍한 고통의 기억이었다. 국가 권력이 공식적으로 개입을 인정하고 사과했음에도 최근까지 입에 오르내리지 못한 하나의 금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정지영 감독의 <내 이름은>(정지영 감독, 112분)은 투자자를 만나지 못해 텀블벅 펀딩으로 4억여 원의 기금을 모았는데, 영화의 엔딩크레딧에 소규모의 제작비를 투자한 사람들의 명단이 빼곡하게 이름을 채웠다. 그 하나하나의 이름들은 곧 역사의 상흔에 대한 애도의 뜻으로 읽혀, 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시큰하게 한다. 제주 4.3사건은 이처럼 국가가 권력의 개입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사과했음에도 이처럼 투자자를 모집하기 어려웠나 보았다. 그것은 이 사건이 좌우익의 갈등과 대립, 서북청년단의 홍위병 같은 칼춤의 난동, 제주도민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갈등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아직까지도 우리의 무의식의 저변에는 ‘고통의 문장(紋章) ’같은 금기가 도사리고 있다는 증거 때문일 것이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히는 서사 구조
이 영화의 서사구조는 당시의 현장을 직접 묘사하고 서술하는 방식을 지양하고, 1998년의 현재적 시간과 1948년의 과거적 화인의 기억을 50년이라는 시차적 거리를 두고, 주관성을 배제하고 되도록 엄정한 객관적 시각으로 접근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현재의 배경은 어머니 최정순(염혜란 분)의 현장을 통한 기억의 재현을 위한 안간힘의 여정과, 그녀의 아들인 고등학생 이영옥(신우빈 분), 같은 학급의 부반장인 고민수(최준우 분), 그리고 서울에서 전학 온 김경태(박지빈 분) 등이 벌여나가는 사건이 서사 진행의 추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어머니 최정순의 기억을 되살리려 안간힘을 쓰는 정신과 여의사인 여희라(김규리 분)는 김경태의 어머니라는 묘한 은유적 관계를 설정하고 있다. 김경태는 주먹패거리의 으뜸으로 이영옥을 비롯한 학우들을 좌지우지하고 있는데, 이는 4.3 사건 당시의 경찰과 서북청년단을 은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기억 속에서 어린 최정순은 친구인 '이영옥'과의 사이에 아픈 기억 하나를 갖고 있다. 당시 어린 이영옥은 부모를 찾으러 가면서 혹시 경찰이 와서 추궁하면 아버지가 경찰관이라고 말하라 묘수를 가르쳐 준다. 어린 영옥은 그래서 위기를 넘기지만, 정작 당사자인 이영옥은 자신이 경찰관의 딸이라고 얘기하지만 그들은 곧이듣지 않는다.
그래서 최정순은 이영옥에게 속죄하는 의미에서 자신의 아들 이름을 여자 이름인 ‘이영옥’이라 이름 짓는다. 친구 이름을 아들 이름으로 대체한 것은 어린 친구에 대한 일종의 속죄의식이다. 자기 대신 희생당한 친구 이영옥에 대한 속죄이기도 하고, 50년의 아득한 시간을 건너뛰어 이름을 아들에게 대물림하는 것은, 과거의 아픈 상흔으로서의 고통의 기억을 현재까지도 지속시켜, 역사의 아픈 기억을 대물림하겠다는 어머니 최정순의 과거에 대한 참회로서의 부채의식 같은 은유적 속성일 것이다.
1998년 현재에서의 최정순의 아들인 반장 '이영옥'과 부반장인 고민수(최준의 분), 그리고 그들을 조종하는 김경태 사이의 대립과 갈등, 투쟁은 과거 4.3사건이 대물림되어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다는 일종의 역사의 아이러니를 은유하기도 한다. 여의사인 김경태의 어머니가 최정순의 기억을 되살리는데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아들 김경태의 폭력 사주에 대한 일종의 참회를 은유한다.
폭력의 역사 순환에 대한 은유적 상징
이 영화는 엔딩 시퀀스 하나만으로도 4.3 사태에 대한 기억의 대물림이라는 주제의식을 압축하고 있다. 당시 국가 권력으로서의 경찰과 서북청년단의 선량한 양민 학살이라는 폭력의 난무, 그리고 1998년 현재의 이영옥과 고민수의 처절한 싸움을 교차 편집으로 보여주는 것은, 역사적 상흔의 기억이 대물림되어 현재까지도 폭력과 갈등으로 지속되고 있다는 감독의 현실 인식이 예리하게 표현되고 있다.
과거의 참상은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다는 역사의 순환적 아이러니를 상징적으로 은유해,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는 그 기능을 다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최정순과 그녀의 친구인 이영옥 사이의 우정과 반전으로서의 운명적 갈림, 또한 과거의 상흔에 대한 속죄의식으로서의 참회 등이 대비되고 있다. 4월의 보리밭이 총성과 피로 얼룩지고, 과거의 아픔이 재현되기라도 하듯, 현재 시점에서의 고등학생들의 피비린내 나는 폭력의 잔인한 환영을 교차적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기억의 재현과 현재적 소환은 잔인하리만큼 닮아있음에 우리는 다시 한번 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작가는 최정순 일가의 어이없는 죽음을 통해 한국 현대사의 상흔적 기억을 압축하고 있다. 최정순의 남편은 월남전에 파병되어 반신불수가 되어 살다가 교통사고로 죽고, 그녀의 딸은 광주에서 대학을 다니다 5.18 민주항쟁에서 살륙의 희생자가 된다. 정지영 감독의 <남부군>(1990), <하얀 전쟁>(1992 ) , <남영동 1985>(2012)의 계보를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
정지영 감독의 현실에 대한 진단은 놀랍도록 예리하다. 제주 4.3 사건은 이미 수면 위로 떠올랐지만, 아직까지는 금기의 영역에 묶여 있다. 그래서 감독은 현실 재현으로서의 정공법보다는,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대물림이라는 우회적인 상징과 은유의 현실 인식을 그 은유의 잣대로 들이밀고 있다. 과거의 재현이라는 정공법은 오히려 아물어 가는 상처를 더 들썩여서 상처가 덧나게 할 수 있다는 과민반응에 한발 물러서는 은유법을 택하고 있다.
엔딩 크레딧에 클라우드 펀딩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이 몇 분간 떠올리는 그 자체 하나만으로도, 제주 4.3 사건은 이제 금기의 음습한 그늘을 떨치고, 다시는 오욕의 역사를 되풀이해서도 안 되고, 이제는 서로 쉬쉬하면서 무의식 속의 화인을 애써 감추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엔딩 크레딧은 침묵으로 답변하고 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
역사학자 E.H 카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다' 라고 말했다. 정지영 감독의 <내 이름은> 에서 최정순은 아픈 기억은 기억하지 않고 무의식의 저 밑바닥에 아예 묻어 버리려고 한다. 일종의 단발성 치매를 앓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신과 의사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과거 속에 봉인되어 있던 상흔의 기억을 소환함으로써, 미답(未踏)의 두려운 미래로 성큼 발을 들여놓게 된다.
그녀가 보리밭에서 죽은자를 애도하기 위해 추는 춤은, 과거에 대한 속죄이기도 하지만, 과거를 정화하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일종의 카타르시로서의 레퀴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엔딩 시퀀스에서 과거의 보리밭 장면에서의 핏빛 기억과, 현재에서의 이영옥과 고민수의 패거리 싸움은, 우리의 과거 기억의 상흔이 대물림된다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하는 역사의 엉거주춤함에 대한 냉소적인 비유이기도 하다.
엔딩 시퀀스의 과거와 현재의 교차는 그것 자체로 하나의 독립된 구조로 4.3 사태를 단적으로 압축 재현하는 명장면이기도 하다. 과거의 보리밭에서의 살륙의 기억은 오히려 시적인 포맷이고, 대물림으로서의 현재의 싸움은 거기에 비해 어쩌면 누추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어이없는 피비린내의 과거가 그처럼 시적인 환상으로 비치는 것은, 주인공 최정순이 비로소 애도의 춤을 통해 진정한 속죄로 인한 애도 때문일 수도 있겠다.
이 영화처럼 제주 4.3 사태는 정공법의 피비린내 나는 풍경보다는 오히려 이 영화와 같은 우회적인 은유적 접근법이 우리에게 더 아프게 다가오는 것 같다. 문학에서 글쓰기의 기본 조건으로 "설명하기보다는 보여줘라"의 표현 방법이 보다 더 선명한 접근법이 될 것 같다. 그 '보여주기'를 최정순 역의 배우 염혜란이 거의 과거의 상흔에 빙의된 것처럼 신들린 연기로 보여주었다. 이번 작품에 역할로 참여한 모든 배우들은 과거의 아픈 기억에 빙의되는 추체험을 통해 역사의 어두운 터널을 관통하는 경험을 한 셈일 것이다. 이 영화는 기억의 방식으로 대를 잇는 속죄와 각인으로서의 진정한 내 이름을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오랜 시간 잔상으로 남은 백비와 무릅 꿇은 조상(彫像)
영화의 마지막은 아주 인상적이다. 영옥이 4.3 평화기념관에 가서 본 쭈그리고 앉은 '백비'와 야외의 쭈그리고 앉아 있는 조상(彫像)의 잔상은 우리의 기억 속에 오래 머물며 우리에게 무엇인가 의미를 묻고 있는 듯하다. 여기서 백비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 비는 기념해야 할 이름이 무엇인지 아직 정해지지 않고 있음을 의미한다. 제주 4.3 사건은 그동안 역사적으로 명확한 명칭을 부여받고 있지 못함을 이 백비가 은유하고 있다. '순국'이든 '민주 항쟁'이든, 그것도 아니면 뭔가 그 이름이 정해져 있어야 할 터인데, 아직도 그 이름이 확정되지 않은 채 미완으로 남아 있음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이 영화는 이름에 관한 영화로, 작품의 제목부터가 '내 이름은'으로 되어 있다. 당시 어린이로 어른들의 이념 갈등을 모르고 있던 최정순은 비로소 마음속에 이름을 정해 간직했겠지만, 그녀의 아들은 아직 '이영옥'이라는 미완의 이름으로 그대로 살아 가고 있다. 어떻게 보면 이 영화는 이름 찾기의 심리적 여정을 그린 영화라고 할 수도 있겠다.
4.3 사태의 기념물 중에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은, 그 쭈그리고 앉은 채 한 여인이 뒤에서 어린아이를 끌어안고 있는 조상(彫像)이다. 이 장면은 다음 장면인 엔딩 크레딧이 시작되기 전까지 오랜 시간 동안 줌인 된 상태로 보여지고 있는데, 이 영화와 관련지어 본다면,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4.3 사태 당시의 친구인 이영옥을 끌어안고 참회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 모습으로도, 세월의 이편에서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에게 다가오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 당시에 어린 최정순이 "내가 아니고 저 친구가 진짜 경찰관의 딸이에요" 라고 당당하게 외치고, 오히려 자신이 죽고 그 친구를 살리지 못한 것에 대한 참회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제 나는 정당하게 이름을 차지하고 있지만, 죽은 친구인 이영옥은 자신의 아들 이름로 살고 있다는 것에 대한 당당함과 부끄러움의 심경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처럼 그 당시의 친구를 뒤에서 끌어 안고 있는 모습이오늘의 우리에게 오래 남아 있는 것은, 억을하게 이념 갈등의 희생물로 쓰러진 3만 여명의 희생자들에게 제대로 된 이름을 찾아주어야 되지 않겠느냐고 우리에게 묻고 있는 듯하다.
최정순의 아들인 이영옥을 비롯한 지금 세대는 이제는 억울하게 희생된 과거의 그들에게 떳떳한 이름을 돌려줘야 하지 않을까 하고, 어정쩡한 자세한 쭈그리고 있는 조상(彫像)은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침묵의 아픈 소리로 항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당시에 피비린내를 풍겼던 제주의 곳곳은 지금은 평화로운 모습으로 꽃을 피우고, 간간이 부는 산들바람으로 나무와 풀을 자라게 하고 있지만, 그 깊은 속은 말하지 못하고 침묵으로 울화의 속앓이를 하고 있다. 쭈그리고 앉아 있는 조상은 우리에게 미완의 숙제를 남겨 놓고 있다. 그것은 곧 작가의 의지와 현실인 인식이기도 하고, 텀블벅 펀딩으로 소액의 투자를 한 엔딩 크레딧의 수많은 이름들의 간절한 바람이기도 할 것이다. 엄마 어릴적 친구 이름으로 대신 살고 있는 이영옥에게서도 속죄의 부끄러움을 걷어내고 제대로 된 이름을 돌려주어야 하고, 4.3 희생자들에게 이름을 돌려주어야 한다고 우리에게 짐묵으로 묻고 있는 것이다.
떳떳한 조상(彫像)의 영상이 오래 남아 있는 것은, 억울하게 이념의 희생물로 쓰러진 3만여 명의 희생자들에게 제대로 된 이름을 찾아줘야 되지 않겠느냐고 우리에게 묻고 있는 듯하다. 이영옥을 비롯한 지금 세대는 억울하게 희생된 과거의 그들에게 떳떳한 이름을 돌려줘야 하지 않을까 하고 백비가 묻고 있고, 어정쩡한 자세로 쭈그려 앉은 조상(彫像)은 침묵의 소리로 항의하고 있다.
미완의 이름으로 남아 있는 백비 속에 역사의 명확한 해석이 바로 자리를 잡고, 쭈그려 앉은 조상이 떳떳하게 역사 앞에 바로 설 수 있게 해서, 과거의 그들에게 제대로 된 떳떳한 이름을 돌려주는 것은 우리 세대가 할 몫이다. 그 미완의 숙제를 우리에게 남겨놓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영화이다. 최정순의 아들도 제대로 된 남자 이름을 되찾는 날, 우리는 역사 앞에 떳떳하게 설 수 있을 것이다. (2026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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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자세한 해설 감사합니다. 역시 영화비평가답네요. 또 좋은 영화 소개해주세요!
감사히 배워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