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이다. 산에 가지 못하고 어디가서 꽃무릇이나 보자고 나선다.
불갑사 용천사는 멀고, 쌍봉사 대원사는 많지 않을거다.
그래도 대원사나 갈까 하는데 바보가 선암사로 가자고 해 차를 돌린다.
오공치를 넘어 묵촌마을 앞을 지나는데 젊은 남녀 공무원들이 도로위의 토사를 쓸어내고 있다.
휴일인데도 젊은 여성 공무원들이 삽질을 하는 걸 보니 세상이 변한 것을 알겠다.
어제 폭우로 집안이나 영화관에 갇힌 이들이 오늘은 밖으로 나온 것 같다.
옛매표소 아래 주차장에 차를 두니 11시 반을 지난다.
점심부터 먹자고 다릴 건너 와 첫집 수정식당으로 들어가니 건너 탁자에 손님들이 많다.
나이먹은 남자가 싹싹한 말씨로 산채비빔밥도 맛있다고 해 그걸 주문한다.
밥양이 많다. 다 먹고 나서 선암사로 오르는 숲길이 상큼하다. 가을이다.
승선교 아래는 하얀 물이 소리내어 흐른다.
아래 홍교를 건너 계곡으로 내려가 사진을 찍어본다.
강선루의 양쪽 현판을 찍는다. 성당과 석촌의 글씨는 맛이 다르다.
삼인당을 지나 구빗길을 오르는데 파란 트럭 위아래로 스님들이 삽질을 하고 있다.
빗물에 씻긴 길에 자갈을 깔고 있다.
일주문을 지나 게단을 오르는데 여성이 공양미 올리라고 한다.
절에 올때마다 마음만 빌고 이기적으로 부처님께 드리는 건 인색하여 창피하다.
대웅전을 지나 무우전으로 들어간다.
각황전의 부처님은 금칠을 새로 해 노랗다.
선암매를 지나 사적비쪽으로 걷는다. 둘이 나란히 형제처럼 서 있다.
김돈희가 전을 썼다는 것만 겨우 읽겠다.
삐죽한 편백나무 사이 벤치에 앉아 있는 바보의 손을 끌고 운수암으로 올라간다.
선암사에 ㅔ자주 왔어도 운수암엔 가 보지 못했다.
청운교를 건너 돌박히고 물이 흘러내리는 시멘트 길을 올라간다.
노스님이 나무 지팡이를 내려오시며 우릴 보고 어디서 왔느냐고 하신다.
요즘엔 불편한 것을 싫어하여 운수암에 스님들이 안 살고 한 사람만 아파 잘 나오지 않는다 하신다.
돌탁자 뒤의 커다란 느티나무 위로 창문이 다 사그라진 전각이 보인다.
우리의 원대한 공사는 얼마나 세월을 이길까?
내 한몸 누이면 될 공간에 우리가 들이는 돈과 노력은 어마일까?
관음전은 단아하다. 큰 요사채는 신발이 보이는데 조용하다.
다른 길로 내려오며 물 위에 흐르는 노란 은행을 발로 누른다.
금방 은행이 튀어나와 저절로 씻어진다.
바보는 은행을 발로 차 물길로 보내며 나더러 주우라 한다.
난 말을 잘 듣는다.
열개만 스무개만 하다가 재미가 붙어 수건 가득 모아 바보의 작은 가방에 넣는다.
다시 내려와 선암매 앞의 선원 앞에서 꽃무릇 뿌리를 보고 있는데
노스님 한분이 관람객들한테 안내설명을 하고 있다.
난 진영각으로 들어가 불을 켜고 몇분을 사진 찍고 나온다.
그 노스님이 다가오더니 고향이 어디냐고 한다. 고흥이라 하니
고흥 동강 출신의 스님이 선암사를 지켜내 중흥시켰노라며 용곡스님의 사진이 있다 하신다.
속명이 정호 스님이라하니 나도 얼핏 들은 듯도 하여 마륜지 생각하면서 다시 들어가 사진을 찍는다.
최근 비석도 새로 세웠노라 하신다.
바보가 피곤해 한 듯하여 대각암은 포기하고 내려온다.
비림의 오른쪽 끝에 서 있는 용곡대종사의 비석을 돌며 찍어본다.
저녁으로 뭘 먹을까 고민하는 차에 윗집 병우아재네에서 신우아재 혼사 이바지가 왔다고 부르신다.
홍어와 떡을 안주삼아 술을 마시고 취해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