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꽃대궐에 가다
창덕궁, 경복궁, 덕수궁의 숨은
봄꽃
봄날의 궁궐은 꽃대궐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꽃들의 잔치다. 그중에서도 몰래 시선을 끄는 몇몇 숨은 꽃들이 있다. 매화, 앵두꽃, 능수벚꽃
등은 진귀한 사연도 더한다. 창덕궁이 손꼽히지만 경복궁과 덕수궁, 창경궁도 아름답다. 봄날에 누리는 왕의 풍류다.
창덕궁 승화루 담장 넘어 능수벚나무가 낙선재 방면으로 꽃자루를 늘어뜨리고 있다.
빼앗겼던 들의 봄날
서울은 이른 봄꽃이 아우성이다. 개화기시가 예년보다 열흘 남짓 빠르다. 덕분에 개나리와 목련, 진달래, 벚나무의 꽃망울이 같은 시기에
열렸다. 당황스럽기는 하다만 형형색색의 꽃들을 한꺼번에 감상하는 즐거움을 어찌 외면할까. 궁궐에서 맞이하는 봄꽃은 한층 특별하다. 공간이 갖는
상징성 외에도 다채로운 꽃들이 주는 즐거움이 함께한다. 이미 3월 말 창덕궁 관람지와 창경궁 경춘전에 생강나무 꽃이 피었다. 4월로 접어들어서는
매화와 살구꽃도 꽃망울을 열었다. 슬며시 왕의 걸음을 흉내 내며 궁궐의 봄을 누려볼 일이다.
궁궐의 꽃은 몇몇 사실을 알고 보면 좋다.
궐내에서 꽃을 피우는 나무는 대체로 과실수다. 꽃이 목적이 아니라 열매 맺는 나무를 심었고, 그 나무들이 열매를 맺기 위해 꽃을 피웠다. 또는
군자의 도를 가리키는 매화 등이 있었다. 그냥 피었다 지는 꽃은 충절이라는 의미와도 맞지 않은 까닭이다. 하지만 불과 30년 전까지만 해도
벚꽃이 만개했다. 알려진 대로 일제강점기에 심어진 꽃들이다. 그 시작은 1909년이다. 창경궁이 대표적이다. 일제는 창경궁의 전각을 허물고 그
자리에 왕벚나무 1300여 그루를 심었다. 1924년에는 궁을 야간 개방해 밤 벚꽃놀이까지 열었다. 창경원이라는 잘못된 이름도 그때 생겨났다.
창경궁이 제 모습을 갖춘 건 1983년이다. 창경궁 복원 사업이 이뤄지며 궐내에 있던 왕벚나무를 제거했다. 일부는 베어버리고 어린 나무
일부는 여의도와 어린이대공원으로 옮겨 심었다. 그 와중에 왕벚나무가 우리 자생종이라는 사실도 알려졌다. 1908년 우리나라에 와 있던 프랑스의
다케 신부가 한라산에서 표본을 채집했고, 베를린대학의 쾨네 박사가 한라산이 왕벚나무 자생지임을 밝혔다. 2001년에는 산림청 임업연구원
분자유전연구실이 DNA 분석으로 일본 왕벚나무와 한라산 자생 왕벚나무가 같은 종임을 증명했다. 그 사실이 어떤 위로가 되고 당위가 될까만,
일말의 안도감이 드는 건 봄날의 꽃을 꽃 그 자체로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왼쪽/오른쪽]인정문 쪽에서 바라본 성정각 일원과 낙선재 갈림길 / 겹겹의 꽃잎으로 이뤄진
만첩홍매
[왼쪽/오른쪽]대조전 화계의 굴뚝 / 대조전 앵두꽃을 즐기는 연인들
앵두꽃, 만첩홍매 또는 살구꽃
1980년대까지 서울 시민들이 가장 즐겨 찾은 봄나들이 장소는 창경궁이었다. 지금은 단연 창덕궁이다. 서울의 궁 가운데 훼손이 적어 옛
정취를 느끼며 봄날의 전경을 볼 수 있는 까닭이다. 창덕궁의 봄맞이는 두 가지다. 후원 쪽은 신록이다. 한적하고 아름다운 궁궐의 원림이다.
봄꽃은 외려 성정각과 낙선재 주변을 손꼽는다. 그에 앞서 왕비의 침전인 대조전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대조전 동편 화계(花階)에는 4월 초
앵두꽃이 만발했다. 뒤뜰에 다다라서는 4단의 화계에 소나무와 굴뚝이 우뚝 섰다. 홍매화와 진달래도 꽃을 피웠다. 화려하진 않아도 은은한 향이
감돈다. 꽃 핀 자리의 이면에는 아픈 역사도 남았다. 일제는 1917년 대조전이 불타 없어지자, 이를 다시 짓는다는 구실로 경복궁 교태전의
목재를 가져다 썼다 한다.
대조전을 나와서는 성정각 일원을 끼고 후원과 낙선재의 갈림길로 들어선다. 성정각과 칠분서 사이의 너른 땅은 옛
중희당 터다. 낙선재 매화밭과 더불어 창덕궁의 가장 화사한 봄 풍경을 보여준다. 먼저 만첩홍매다. 성정각 동쪽, 중희당 서쪽에 해당하던 경계가
자시문이다. 그 옆모서리에 겹겹이 핀 고운 꽃이 매화다. 400년 전 선조 임금 때 명나라에서 조선에 보낸 선물이다. 가녀린 가지가 성정각 담
너머로 높게 뻗어 나와 붉은 꽃을 피운다. 본래 나무는 죽고 그 뿌리에서 가지가 뻗어 생명을 이었다. 건너편 삼삼와 앞에도 수령 400년의
만첩홍매가 자란다. 역시 명나라에서 온 나무로 꽤나 무성하다. 칠분서, 삼삼와, 승화루의 전각과 돌담이 배경을 이뤄 고풍스런 멋을 연출한다.
삼삼와에서 뒤를 돌아보면 담 너머 성정각 희우루 앞에 높게 자란 살구나무다. 담보다 높이 자라 고혹적인 꽃이다. 희우루(喜雨樓)라는 이름처럼
봄날의 기쁜 비소식이 하얀 살구꽃으로 난분분하는 듯하다.
성정각 희우루 앞 살구꽃이 높게 자라 담장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뿌리에서 가지가 뻗어 나와 새로이 꽃을 피우고 있는 만첩홍매
사랑으로 꽃핀 낙선재의 봄
성정각의 꽃무리를 뒤로하고 낙선재 가는 길목에는 승화루 담 바깥의 능수벚나무 두 그루가 반긴다. 고목이지만 일제강점기를 지나 심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능수벚나무는 버드나무처럼 가지를 내려 벚꽃을 피우는 수종이다. 수양벚나무 또는 처진개벚나무라고도 부른다. 나무에서 꽃자루가 내려오는
모양새라 시적(詩的)이다. 낙선재 쪽으로 내려가 담 아래에서 바라보면 머리 위에서 꽃이 손을 뻗는 듯하다. 꽃들이 무리 지어 핀 풍경은 낙선재
매화밭을 손꼽는다. 창덕궁 관람이 자유로워지기 전부터 특별한 봄소식이었다. 서울은 매화가 밭을 이뤄 피는 곳이 거의 없어 더욱 각별했다. 그
틈새마다 살구꽃과 앵두꽃, 복사꽃, 산수유 등 궁궐에 심는 꽃들도 망라한다. 꽃밭 안으로 걸음을 낼 수는 없지만, 갖은 꽃들의 전경을 품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기껍다.
낙선재는 얼마 전 봄날의 새 소식을 전했다. 지난 4월 1일 뒤뜰을 일반에 처음 개방했다. 낙선재 동쪽으로는
석복헌과 수강재가 차례로 이어지는데, 모두 뒤뜰에 화계가 있다. 화계는 건물의 창과 시선을 이어 보면 좋다. 안에서 문을 열어 밖을 볼 때
액자처럼 꽉 짜인 풍경이 숨어 있다. 지금은 한 차례 꽃 잔치가 지나간 뒤라 듬성한 흔적과 괴석분뿐이다. 이제 5월의 모란을 기다린다. 낙선재
뒤뜰은 오히려 5월의 모란과 작약이 제철이다. 짧은 걸음을 내며 머릿속으로 가만히 뒤뜰의 옛 풍경을 그려 안는다. 낙선재나 석복헌에서 꽃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왕의 모습이다.
낙선재는 문예에 능한 헌종이 지었다. 사랑하는 여인 경빈 김 씨를 위함이다. 그는 왕비 간택에서 경빈
김 씨에게 반했지만 사랑을 이루지 못했다. 훗날 그녀를 후궁으로 들여 낙선재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낙선재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과
고종의 딸 덕혜옹주의 쓸쓸한 마지막도 깃들었다. 궁궐의 꽃 나들이가 꽃의 화사함만으로 끝나지 않은 건, 곳곳에 깃든 우리의 슬픈 역사 때문이다.
다시 피워야 할 꽃은 땅에만 있지 않다.
[왼쪽/오른쪽]성정각 일원에서 바라본 창덕궁 능수벚나무 / 괴석분이 화계를 수놓은 낙선재
뒤뜰
[왼쪽/오른쪽]낙선재 매화밭 / 낙선재 쪽 언덕 아래에서 바라본 능수벚나무와 승화루 담장
구중궁궐 여인들의 화계
창덕궁은 유네스코가 인정한 '비정형의 미'가 봄꽃 찾기에도 재미를 더한다. 반면 경복궁은 조선의 정궁이 갖는 형식미를 자랑한다. 북악산을
주산으로 광화문에서 근정전까지 직선으로 곧게 뻗은 배치다. 다만 주변으로 복원되지 않은 빈터가 넓다. 그 터에 매화나 살구꽃, 개나리 등 봄꽃이
자리 잡아 한층 눈에 띈다. 창덕궁보다 좀더 자유분방하게 걸음을 내며 꽃들을 마주하는 것도 방법이다. 물론 창덕궁 성정각과 낙선재처럼 봄날에 꼭
찾아야 할 명소는 있다. 먼저 경회루. 경복궁 내에서 가장 화려한 장소다. 왕이 연회를 베풀던 자리이니 물어 무엇 하랴. 경회루 연못 주변에는
버드나무 몇 그루가 그윽하게 물가로 가지를 떨어뜨린다. 봄날에 이르기 전에는 그저 버드나무로 여기지만, 꽃이 피면 그 가운데 몇몇은
능수벚나무라는 걸 알게 된다. 창덕궁 승화루의 능수벚나무가 꽃담과 어우러져 제 멋을 드러낸다면, 경회루의 능수벚나무는 꽃자루를 물가에 드리워 두
번 피어난다.
교태전과 자경전도 봄날에 꼭 찾아야 할 곳이다. 교태전은 왕비의 침전이다. 경회루를 만들 때 나온 흙을 쌓아 후원에 아미산을
꾸몄다. 화계에는 보물 제811호인 주황색 굴뚝이 봄꽃만큼이나 화려하다. 경복궁 교태전도 앵두꽃이 잘 알려졌다. 특히 세종대왕이 좋아한 나무다.
세종의 아들인 문종은 후원에 직접 앵두나무를 길렀고, 열매가 열리자 아버지인 세종에게 드렸다고 전한다. 옥매화도 교태전 후원에 피는 꽃이다.
창덕궁 자시문의 홍매와 자웅을 겨룰 만한 만첩옥매다. 교태전의 앵두꽃과 옥매화는 4월 첫 주까지 꽃을 피우지 않았다. 비교적 늦게 피는 편이라
궁궐 봄꽃의 마지막 보루로 남겨두어도 좋겠다. 대왕대비가 머물던 자경전은 보물 제810호 십장생 굴뚝이 봄꽃보다 앞서 눈길을 끈다. 한 폭의
벽화나 진배없다. 꽃담도 아름답다. 곁에는 4월과 함께 만개한 연분홍 살구꽃이 궁궐을 실감케 한다. 창덕궁 희우루의 살구꽃과 견줄 만큼 넓고 큰
꽃이다.
[왼쪽/오른쪽]경복궁 경회루와 능수벚나무가 어우러진 풍경 / 경복궁 교태전은 굴뚝도 한 폭의 꽃처럼
존재한다.
창덕궁이나 경복궁만큼 다채롭지는 않다만 덕수궁이나 창경궁도 봄의 정취가 짙다. 덕수궁은 무엇보다 늦은 개방시간이 장점이라 봄밤의 정취를
누릴 수 있다. 대한문에서 중화문까지 산벚나무가 길 따라 꽃을 피웠다. 창덕궁 승화루, 경복궁 경회루와 마찬가지로 덕수궁 석조전 앞에는
능수벚나무가 꽃을 드린다. 서양식 분수와 근대 건축이 어울려 다른 감흥을 안긴다. 4월 첫 주말에 꽃이 만개했다. 만일 한발 늦었다면 5월
모란의 시절에 함녕전 뒤편을 찾을 일이다.
창경궁은 숨은 꽃이 따로 없다. 궁 전체에 봄꽃의 행렬이 펼쳐진다. 이제 벚꽃만 가득하던
창경원의 색채는 거의 사라졌다. 궁궐이 오래도록 간직한 꽃들이 반긴다. 특히 옥천교 일원이나 경춘전 뒤뜰을 추천한다. 앵두꽃, 살구꽃 등이
일찌감치 만발했다. 행여 꽃이 졌다면 춘당지 물가를 어슬렁거리며 봄을 만끽하길 권한다. 물론 창경궁에도 모란은 핀다. 4월의 봄꽃이 은은한 색과
모양으로 말을 건다면, 5월의 모란은 여름을 앞둔 봄날의 마지막 포효다. 크고 붉은 꽃들은 봄날에 건네는 작별이다. 하지만 망설이는 사이 꽃은
지고 봄은 떠난다. 늦었다 생각할 때 서두는 것이 마지막 봄꽃을 놓치지 않는 비결이다.
[왼쪽/오른쪽]덕수궁 석조전 앞에도 능수벚나무 한 그루가 똬리를 틀었다. / 덕수궁은 궁궐 가운데
유일하게 밤 벚꽃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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