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론 서론-5
3. 하나님의 왕국
하나님의 왕국은 종말론적 논쟁 가운데서 극히 중요한 개념입니다.
리출(Ritschl), 하르낙(Harnack), 그리고 도드(C. H. Dodd)는 예수님의 가르침 속에서 하나님의 왕국을 전적으로 현재적인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반면에 봐이스, 슈바이처(Schweitzer) 그리고 몰트만(Mo1tmann)과 같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왕국을 전적으로 미래적인 것으로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게르할더스 보스(Geerhardus Vos)와 오스카 쿨만(Oscar Cullmann) 같은 성경학자들은 하나님의 왕국을 현재적이며 동시에 미래적인 것으로 보았습니다. 즉 어떤 의미에서는 현재적으로, 또 다른 의미에서는 미래적인 것으로 본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왕국을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분리될 수 없도록 연관된 것으로 보아야만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과 기적들과 비유들과 가르치심과 전파하심 속에서 하나님의 왕국이 역동적으로 활동하며 사람들 가운데 나타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왕국의 중심적 의미를 찾는 데 있어서 해결되어야 할 첫 번째 문제는 왕국이 하나님의 통치하시는 영역(realm)이나 영토(territory)를 상정(想定)하는 것인지, 혹은 하나님의 통치(reign)나 지배(rule)를 의미하는 것인지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왕국에 대해서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의견은 왕국의 근본적 의미는 하나님이 지배하시는 영토를 가리킨다기보다는 하나님의 지배나 통치 자체를 가리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왕국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인류 역사 속에서 동적으로 활동하는 하나님의 통치 사역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왕국은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함께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왕국을 받아들이고 믿음으로 그곳에 들어가는 자들에게는 구원이요, 그것을 거절하는 자들에게는 심판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가르치심 특히 비유를 통하여,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는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자와 같고 반면에 그의 말씀을 듣고 행치 않는 자는 그의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자와 같아서 그것의 무너짐이 심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마 7:24~27).
혼인 잔치 초대를 받아들인 자들은 즐기며 행복하게 되지만 초대를 거절한 자들은 죽임을 당하며, 예복을 입지 않은 자들은 바깥 어두운 곳에 내던져집니다(마 22:3~14).
사실상 이스라엘 민족이 대부분 왕국을 거절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왕국을 그들로부터 빼앗아 그 왕국의 열매를 맺는 백성들에게 주어질 것이라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마 21:43). 하나님의 왕국의 근본적 목적은 그 단어 자체의 충만한 의미로 볼 때, 그곳에 들어가는 자들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왕국이 임했다는 징조들인가? 이런 징조들이 예수께서 귀신들을 쫓아내신 것과, 사단의 떨어진 것과,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에 의해 기적들이 일어난 것입니다.
천국 임재의 또 다른 표정은 복음의 전파와 죄사함의 부여입니다. 구약 예언자들에게 있어서 죄사함은 다가올 메시아 시대의 축복 중의 하나였습니다.
[사 33:24] “그 거주민은 내가 병들었노라 하지 아니할 것이라, 거기에 사는 백성이 사죄함을 받으리라.”
[렘 31:34]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미 7:8] “나의 대적이여,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말지어다.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이요, 어두운 데에 앉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
[슥 13:1] “그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주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하나님의 왕국은 아직도 미래적인 것으로 나타납니다.
사도 바울 역시 하나님의 왕국은 현재적인 동시에 미래적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왕국의 미래적 측면을 말하고 있는 바울의 구절들 중에서 하나를 봅니다.
[딤후 4:18]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이 말씀에서 ‘건져내시고, 구원하시리니’를 모두 미래형으로 쓴 것은 왕국의 미래적 측면을 말씀한 것이라고 봅니다.
헤르만 리델보스는 예수님의 사역 초기에는 예수님은 구약 예언의 성취로서의 하나님의 왕국이 임했다는 사실을 많이 강조했으나, 사역 말기에 예수님은 왕국의 미래적 도래에 관해 더 많은 강조점을 두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리델보스는 또한 왕국의 미래적인 면과 현재적인 면들이 결코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신앙과 생활의 측면에 왕국의 현재성과 미래성은 어떤 의미를 가져다주는 것일까?
우리는 무엇보다도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를 왕국으로 인도하실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의 왕국은 우리에게 회개와 믿음을 요청하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왕국은 우주적 구속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왔듯이 하나님의 왕국은 단지 어떤 개인의 구원만을 의미하거나 심지어 어떤 선택된 무리의 구원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절정을 이루게 될 전 우주의 완전한 갱신입니다.
4. “이미”와 “아직” 사이의 긴장
교회는 “이미”와 “아직”의 긴장 속에 들어 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된 사람들의 공동체이기 때문에 새사람들이면서도 불완전한 인격체인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교회 안에서 행해지는 모든 복음 전파도, 교육도, 목회적 돌봄도, 모든 훈련도 항상 이러한 긴장 관계 속에서 고려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긴장은 책임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자극제가 됩니다. “이미”와 “아직” 사이의 계속되는 긴장은 그리스도인들의 죄에 대한 투쟁은 현재 생활의 전 영역에서 계속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우리의 모습은 이러한 긴장을 반영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소유했으며 동시에 아직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 사이의 긴장 관계 속에서 그 자신을 발견한다는 사실은, 그리스도인 스스로 자신을 완성되지 못한 새로운 사람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비록 긴장이 남아 있긴 하지만 그리스도인의 삶은 영적 성장으로 특색을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입은 새로운 자아(새사람)는 계속해서 새롭게 되어가고 있는 자아입니다.
이런 긴장은 신자들이 당하는 고난의 역할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줍니다. 신약성경은 많은 환난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게 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바울은 우리의 현재적 고난과 우리의 미래적 영광을 연결해서 말합니다. 베드로는 고난에 대해서 놀라지 말고 오히려 “그리스도의 고난에 함께 참여하게 된 것으로 기뻐하라”라고 말합니다.
문화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이 긴장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현 세상과 장차 올 새 땅 사이에는 불연속적 관계가 있다고 많은 그리스도인은 종종 생각해 왔습니다. 장차 올 새 땅에서는 현 세상의 모든 것이 전적으로 달라진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식의 이해는 성경의 가르침을 바로 평가하는 것이 못 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구속적 행위를 통하여 당신이 만드신 것들을 파괴하시지 않고 오히려 죄로부터 깨끗게 하사 완전케 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기대하고 있는 새 땅은 현재의 땅과 전혀 다르지 않고 오히려 현재의 땅이 영광스럽게 새로워진 땅이 될 것입니다. 그곳에는 현재와 연속된 상급과 기쁨의 연속성이 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마 25:21,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그러므로 “이미”와 “아직” 사이의 긴장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우리가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 세상에 대한 소망을 갖고 현재의 부족함을 이기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매우 간절한 소망 중에 그리스도께서 그의 영광스런 왕국으로 들어가시며 그가 우리 안에 시작하셨던 선한 일들을 완성하시게 될 시기인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