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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여행자료 스크랩 부석사와 콩 일화
이장희 추천 0 조회 202 18.02.14 15:1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당나라로 건너간 '의상'이 병을 얻어 수위장의 집에 머무를 때, 수의장의 딸 선묘낭자의 지극정성으로 병을 낳는다....  선묘낭자는 의상이 귀국할 때 그의 소매 속에 검은 콩 3개와 흰콩 3개를 숨겨준다.... 이때부터 우리나라 콩 제배의 역사는 시작되고 부석태도 탄생되는데.....

 

 

 

 

 

부석사와 콩 일화(逸話)

 

송 영 숙

 

영주에 살면서 규모도 웅장하고 목조건물 구성의 아름다움을 지닌 무량수전을 너무너무 사랑한다. 천년고찰 부석사 무량수전(無量壽殿)을 보면서 그 아름다움에 푹 젖어 있는 셈이다.

무량수전 앞 건물인 안양루는 공포불의 뛰어난 양식으로 목조건축양식의 진수를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의상대사에 대한 선묘낭자의 지고지순한 사랑으로 삶의 부분 부분과 사람의 삶을 우선으로 하는 선묘낭자의 활동이 그리웠다.

그래서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고 그런 깨끗한 마음을 이어받았으면 하는 생각에 이 글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으로서 막중한 책임을 가지고 있다.

 

의상은 진골 출신으로 625년(진평왕 47년) 김한신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유복한 가정에서 살았을 것이다. 열아홉 살에 불가에 귀의하게 된다. 나는 의상대사와 원효대사와의 관계를 알고 나서 의상에 대한 이야기를 전개하고 싶다. 그 둘은 같은 신라인이면서 스님이지만 신분부터가 다르고 깨달음이 다르고, 생각 그 자체가 달라서 그들은 서로 불교에 귀의하여 구도의 길을 다르게 걸었던 것이다.

설화에 따르면 배를 타기 위해 가던 두 사람은 오늘 날의 충남 서해안 부근을 지나다가 심한 폭우와 허기를 만났으며 밤이 깊어져서 찾은 토굴에서 하룻밤을 지내기로 했다. 그런데 자다가 목이 타서 일어난 원효가 물을 찾았다. 마침내 물이 담겨 있는 바가지가 잡혀서 시원스럽게 마시고 나서는 또 곤한 잠에 빠져 들었다.

그 다음 날 아침 눈을 떠보니 곁에는 먼지가 가득 쌓여 있고 빗물이 괴어있는 해골을 보았다. 두 사람이 하룻밤을 보낸 곳은 토굴이 아니라 허술한 무덤이었으며 원효가 물을 마신 바가지는 해골 바가지였다. 그것을 보고 나서는 그들은 구역질이 났고 원효는 거기서 깨달음을 얻어 당나라 유학길을 포기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이것을 깨달은 원효는 발길을 신라로 돌렸고, 의상은 예정대로 당(唐)나라 유학길에 올랐다. 이들의 선택은 서로 다른 불교의 길로 이끌게 된다.

 

당나라로 건너간 의상은 병을 얻어서 양주성 수위장인 유지인(劉至仁)의 집에 머물러야 했다. 그때 그의 딸 선묘(善妙)낭자가 의상에게 연정을 갖게 되었다. 선묘낭자의 정성으로 몸이 완쾌된 의상은 다시 길을 떠나 종남산 지상사 화엄종(華嚴宗)의 대종사인 지엄 스님을 찾아갔다.

지엄은 절간을 깨끗이 청소하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간밤에 큰 나무 한그루가 해동에서 자라 그 가지들이 중국을 온통 덮어버리는 꿈을 꾸고 의상이 올 줄 알았다고 생각했다.

의상은 지엄 스님 밑에서 10년 동안 화엄경의 진수를 공부했다. 화엄경은 부처가 수도와 공덕을 쌓아 법계평등(法界平等)의 진리를 설법한 경전이다. 의상은 화엄경의 요지를 일곱 자를 1구로 하여 모두 30구에 담은 법성게(法性偈)를 지어 스승에게 바쳤다.

이것을 본 스승은 제자의 학문이 깊은 경지에 이르렀음을 기뻐해 마지않았다. 의상의 본격적 저술로 유일한 이 법성게는 오늘날 에도 화엄종 절간에서 의식을 할 때마다 암송되고 있다.

 

이 무렵 신라가 당나라 세력을 나라 안에서 몰아내려 하자 당이 신라를 정벌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신라에서는 사신으로 왔다가 감옥에 갇혀 있는 김인문, 김양도 로부터 이 사실을 들은 의상은 곧 귀국길에 올랐던 것이다.

의상의 무사 귀국을 도운 선묘낭자는 부석사 터를 닦기 위해 이번에는 하늘을 뒤덮을 정도의 주위에 있는 거대한 너럭바위로 의상이 그 화엄의 뜻을 펼 장소를 수호 한다. 일명 부석(浮石, 하늘에 뜬 돌)으로 소승 잡학의 거처 위를 하늘로 올렸다가 또 내리고 내렸다가 또 올리고 하니, 이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물러가고 그 자리에 화엄을 융성시킬 사찰을 세울 수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사찰 이름은‘부석사’라 명명하고, 의상법사를‘부석대사’로 일컫기로 한다. 거대한 바윗돌로 변하는 장면과 용으로 변신하는 장면, 이 두 장면은 화엄연기 의상도의 두 절정인데, 안타깝게도 바위로 변한 장면은 유실되고 없다.

선묘가 의상을 도와 귀국하려고 떠나올 때 그의 집에서 가지고온 흰콩 3개와 검은콩(黑豆) 3개를 의상의 옷을 지어온 장삼 소매 속에 고이 숨겨왔다고 한다. 그 당시만 해도 씨앗들을 숨겨가지고 온다는 것은 자신의 목숨을 내 놓는 일이라고 한다. 그리고 부석이 하늘에 떠서 오르락내리락할 때 흩어지는 잡학의 무리 중 의상의 뜻에 남겠다고 들어오는 무리들이 있어 그들 중 한 명이 지극히 선묘낭자를 잘 따랐는데 선묘가 그를 어여삐 여겨 그 씨앗들을 은밀히 그 사람에게 주어 잘 키우도록 하였다.

그는 사람들 모르게 그것을 받아서 간직하고 있었는데 그 사람의 이름은 후선(后善)이었다. 그는 선묘의 말에 항상 잘 따라주었고 선묘의 생각대로 잘 움직여 주었으며 농사일도 잘하는 사람이었다.

후선(后善)은 부석사 절터 아래 조그마한 움집을 짓고 혼자서 농사일을 하게 되는데 선묘가 맡겨 준 흰콩과 검은콩(黑豆)을 땅에 심어서 싹을 틔게 하였고 한여름동안 무성하게 잘 키우면서 열심히 북을 주고 거름도 주었다. 콩《흰콩과 검은콩》은 그 원산지가 원래 중국이어서 검은콩은 당나라에서도 조금씩 작물로가 아니라 가약(家藥)으로 가꾸는 집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 당시 검은콩은 약콩으로 쓰였으며 콩알이 잘고 윤기가나며 다른 이름으로 서목태, 쥐눈이콩 이라고도 한다. 요즘은 서리태, 흑대두(黑大豆) 등도 있지만 그때의 검은콩은 공통된 약콩을 일컫는 말이었다.

후선(后善)은 한 해 동안 잘 길러서 큰 수확은 아니지만 열심히 노력한 대가로 거둔 것들을 선묘낭자의 지시대로 그 이듬해에는 더욱 많이 수확하여 주위의 사람들에게 두루 나누어 주어서 조선시대에는 부석지역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흰콩과 검은콩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많이 재배하기 시작하게 되었고 부석의 농가에서 좋은 수확을 얻는 특수작물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다.

 

무엇이든 거저 얻어지는 것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 의상대사가 아니면 소백산 이 산골짜기에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사찰 부석사(浮石寺)가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고 선묘낭자가 없었더라면 의상대사가 무사히 이곳 부석까지 올 수 없었지 않겠는가?

그리고 중국의 원산지인 콩(豆)이 선묘낭자가 아니면 우리 영주시 부석에서 콩을 재배하여 부석태(浮石太)라는 콩이 태어나지 않았을 것 아닌가.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나는 부석사와 무량수전, 선묘낭자와 의상대사 그리고 부석 지방에서 부석태(浮石太) 또는 부석흑태(浮石黑太)라는 지명을 붙여서 태어난 곡식이 우연이 아니며 어렵게 콩을 가지고 온 것을 너무나 소중하게 생각한다.

또한 그것을 우리나라의 명물로 자리 잡게 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관광의 명소 부석사 무량수전(無量壽殿)과 목조건축양식의 진수를 보이는 안양루의 공포불, 선묘낭자와 의상대사의 극진한 사랑, 부석태(浮石太) 또는 부석흑태(浮石黑太)의 원조인 선묘낭자가 당(唐)나라에서 몰래가지고 들어 온 콩을 위해 많은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약콩인 흑두(黑豆)는 조선후기에 들어오면서 콩 농사를 짓는 가정들이 늘어나 거기에 따른 일화(逸話)가 생겨나게 되었다.

집집마다 벼농사도 짓지만 부석(浮石)은 산골짜기가 많은 산간지방이므로 서숙, 기장, 보리, 밀, 감자 등 밭농사를 많이 하며 밭농사 중 콩 농사를 더욱 많이 하게 된다. 보리나 감자도 수월찮게 많이 짓지만 유독 콩 농사를 많이 하게 된 동기는 선묘낭자가 당나라에서 가자고 와서 우리나라 콩 농사의 시작이기 때문에 콩을 재배하는 농가가 많아서 가을이 되면 황토 흙으로 집집마다 마당을 바르고 깨끗한 마당을 만들어 놓고 도리깨로 콩 타작을 하게 되는데 콩 타작을 할 때면 아이들이 쫓아다니다가 엎어지거나 넘어지기 일쑤여서 콩마당에 넘어지면 마마에 걸린다고 했다. 그러나 그 반면 검은콩 마당에 넘어지면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소문이 나서 일부로 검은콩 타작 할 때에는 아이들이 서로 넘어지기를 자처하면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래서 천연두나 어린이들이 많이 앓는다는 홍역도 옛날부터 내려오는 그런 소문을 힘입어 아이들의 병을 퇴치하기도 하였다.

나는 자라면서 홍역도 하고 마마(천연두)도 앓았으며 그것을 이겨내는 데에는 우리 부모님께서 많은 공을 쌓고 노력을 많이 하였으며 그 당시의 모든 부모님께서는 집 아이들에게 많은 공을 들이지 아니한 부모가 없었다.

실제로 그 당시에는 윤감, 장질부사, 홍역, 천연두, 이질, 하루거리(학질)가 우리나라를 휩쓸고 지나가면 아이들에게 손도 못쓰고 별다른 약도 못쓰면서도 살아남기를 바라는 때가 있었다.

우리들의 할머니 어머니들이 정한수를 상에 받쳐 놓고 새벽마다 하늘에 빌고 빌 뿐이었으며 무슨 병인지도 모르기 때문에 약도 쓰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그 때 천연두에 걸린 아이들이 검은콩 마당에 넘어진 아이들은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설을 기억해내고는 마마 병이나 다른 여러 가지 병을 이겨내는 힘을 길러내어 살아나는 아이들을 부모님들이 보아 왔다고 한다.

어떻게 되어서 그런지는 잘 모르나 사람들에게는 그럴 때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말이지만 그 말에 신념을 갖게 되면서 할머니 어머니들이 하늘에 빌고 기도한 보람을 믿고 의지하였으며, 또 한 편으로는 부석사(浮石寺)를 창건한 의상대사를 무사히 이곳으로 오도록 도와주신 선묘낭자가 당나라에서 가지고온 검은콩의 영험 덕분에 어린 아이나 어른들의 전염병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준다고 믿었으며 정신적으로 의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검은콩 즉 약콩을 다려서 먹고 그 다린 물로 얼굴을 씻고 머리를 감으면 무슨 병이라도 막을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세월이 많이 흐른 오늘에 와서도 흑두(黑豆)를 약콩으로 많이 쓰는 것은 여러 가지로 효험이 많이 있어서라고 사람들은 말하고 있다.

그 때 나는 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머니 약콩을 볶아 주세요. 옆집 순칠이가 콩을 볶아서 주머니에 넣어가지고 놀이터에 와서 먹고 있어요.”

“안 된다. 이 콩은 부석사 선묘낭자님께서 함부로 먹지 말라고 했어”라고 하면서 우리 어머니는 그 검은콩(약콩)을 아주 귀하게 여겨왔다.

 

그 약콩의 효험은 놀랄 만큼 아주 많았다. 나는 그 약콩(黑豆)의 효험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 첫 번 째로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약콩 즉 검은콩에는 해독작용이 뛰어나고 남자들의 스태미나 증강에도 큰 효과가 있다고 한다. 검은 콩은 그 맛이 달짝지근하고 성질은 순하며 옛날부터 부녀자들의 피부를 곱게 하는 영양소가 있으며 목소리도 곱게 만드는 약효가 있어서 많이 사용하던 식품이라고 한다.

또 한 편으로는 피를 맑게 하면서 우리 온 몸에 돌아다니는 그 나쁜 피를 맑게 순환시켜주는 효과와 체내 수분대사를 잘 조절시켜주어서 이뇨작용을 잘하도록 해 준다고 한다. 해독작용이 좋아서 간과 신장기능이 약한 사람들에게는 더욱 좋은 식품이라고들 한다.

“어머니! 나도 아버지만큼 큰 목소리 나게 약콩을 볶아주세요. 먹고 빨리 어른이 되게요.”라고 철없이 어머니에게 졸라본 적이 있다.

“너는 아직 안 돼, 송아지가 하루아침에 어미 소가 되는 것 봤니?”하시면서 약콩을 아끼시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어머니, 콩으로 만든 두부나 볶은 콩을 먹으면 소화가 잘 안되는데 이유가 무엇일까요?”

“너는 그것도 잘 모르는 구나. 콩에는 단백질이 풍부하게 들어 있어서 단백질의 소화가 대부분 3~4시간 걸쳐서 소화되기 때문이란다. 그러므로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더 없이 좋은 식품이지 알겠냐? 그리고 볶은 콩 많이 먹고 물을 많이 먹으면 설사를 할 수도 있어. ”

“그런데 왜 콩을 사람들은 좋다고 하나요?”

“그것은 너가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다. 콩 100그람에 단백질이 40그람을 함유하고 있단다. 또 필수 아미노산이 풍부하여 신장이나 혈관에 노패물이 쌓여있는 사람들에게는 더 없이 좋은 식품이지.”

“신장이나 혈관에 노패물이 어떻게 해서 쌓이는지요?”

“너는 아직 젊어서 잘 모르는 것 같은데, 나이가 들어서 고기를 많이 먹게 되면 신장과 혈관에 노패물이 쌓인다고 한다. 그래서 콩을 하루에 25그람을 먹으면 혈관병을 예방할 수 있단다.”

어머니를 통해 콩에 대하여 많은 지식을 알게 되었다.

두 번째로는 혈압이 높은 사람들이 혈압조절 하는 데에도 좋고 여성의 불감증을 개선하며 남성의 스태미나를 증강시켜주는 데에도 좋은 식품이다. 아기를 가진 어머니에게 모유를 많이 나게 하면서 갑상선항진증에 의한 취침 중 땀을 많이 흘리는 사람에게도 좋다는 평을 받고 있다.

 

친구 중에 김충식 이라는 중학교 동기가 있는데 그는 식은 밥을 먹는대도 땀을 비 오듯 흘리고, 밤에 잘 때에는 별로 덥지 아니한 데에도 땀을 뻘뻘 흘리면서 생활을 하는 친구이다. 그런데 검은콩과 다른 약초와 더불어 다려서 복용 후에는 완전하지는 않지만 많이 좋아졌다는 말을 들었다.

“새벽에 산을 오르는 힘이 없는 사람에게는 돈을 빌려 주지 말라.”는 옛말을 기억한다. 왜 그런고 하니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의 힘은 바로 그런 것으로 표현한다고 한다. 늙으면 힘이 없기 때문에 그런 말로 비유한 것 같다.

“어머니! 우리 아버지가 요즘 기운이 없는 것 같아서 오계닭에 다가 서목태와 함께 인삼을 넣어서 삼계탕이라도 끓여드려야지요?”

“너무 아는 체 하지마라. 너의 아버지는 자신이 더 잘 안단다.”

어머니는 한 마디로 내 말을 칼로 무 자르듯 하면서 웃음보를 터뜨린다.

세 번째로는 갱년기 장애를 극복하는데 효과적이라고 한다. 검은콩(黑豆)에는 에스트로겐(여성호르몬) 역할을 하는 이소플라본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서 갱년기 장애를 극복 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한다.

갱년기 여성이 호르몬 분비가 부족하면 골다공증 같은 증상이 나타나고 비만, 요통, 탈모 등이 생길 우려가 있다. 그리고 검은콩(黑豆) 껍질에는 글리시테인과 안토시아닌이 들어 있어서 전자는 항암작용을 하고 후자는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어 주고 혈관을 보호해서 동맥경화나 고혈압 등 성인병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검은콩(黑豆)을 알고 나서 나는 수시로 콩 조림을 해서 먹거나 흑임자를 섞어서 반찬을 해먹으며 밥을 할 때도 그냥 쌀만으로 밥을 하지 아니하고 검은 콩밥을 해 먹고 난 뒤 그 이후의 변화를 기대해 보기로 했다.

식당을 찾는 건강한 손님들은 반찬 한 가지 한 가지들이 우리옛날 어머니가 집에서 아무 조미료도 쓰지 아니하고 오직 손맛으로 만든 그런 밥상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이 우리 몸을 건강하게 이끌어 주기 때문에 조금 멀어도 입소문만 나면 항상 손님들은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먹더라도 손님들이 찾아가는 식당을 보았다. 지금도 그런 식당주인이 우리가 살아가는 주위에 많이 있어주기를 바란다.

검은콩(黑豆)의 종류와 그 종류별 효능을 간단하게 적어보기로 한다.

1. 서목태는 검은콩 중에 그 크기가 가장 작으며, 윤기가 반짝반짝 거리면서 쥐의 눈알과 같다하여‘쥐눈이콩’또는‘약콩’이라고 명명한다. 맛이 고소하고 단맛이 들며 특히 신장이 약하거나 혈액순환이 잘 안 되는 사람<신장과 혈관에 노패물 제거>,광물성 약재의 해독작용에 좋다고 한다.

2. 서리태는 콩을 좀 늦게<하지 무렵> 심어서 늦가을 서리를 맞고 나서 추수를 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콩의 속껍질을 까면 파란색 즉 연두색을 띄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일명 속청이라고도 한다. 콩자반과 메주콩으로도 사용하며 청국장을 만드는 원료로도 쓰인다. 검은콩 껍질에 안토시아닌 성분이 많아서 장기적으로 복용하면 노화방지, 검은 머리를 유지할 수가 있다고 한다. 이소플라본이라는 콩 단백질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갱년기예방에 좋다.

3. 흑태(黑太)는 검은콩 중에서 가장 굵은 콩으로 검은 껍질 속의 빛깔은 노란색이다. 콩밥이나 콩자반을 하는데 사용하며 효능은 다른 검은콩과 비슷하고 둥글고 크다.

4. 부석태(浮石太)는 흰콩으로 알이 굵고 콩의 성분은 맛이 달고 고소하며 메주콩으로 사용하기에 적당하다.

영주시가 가장 발 빠르게 부석면 영부로 23번지에《영주콩 세계과학관》을 설립하고 부석태(浮石太), 부석흑태(浮石黑太)라는 이름을 작명으로 내 놓고 본격적으로 콩을 연구하기 시작한 것이 2015년 4월부터이었다. 다른 지역에서는 발걸음을 띠지도 않았는데 영주시에서는 확실한 발걸음을 내 딛고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사찰 부석사(浮石寺)가 우리 고장에 있고 무량수전(無量壽殿)과 공포불 건축양식인 안양루가 이곳에 버티고 앉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 뿌듯한 자부심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그 무량수전(無量壽殿) 동쪽 뒤편에는 선묘각(善妙閣)이 자리 잡고 있으며 그 당시로는 너무나 어려운 일을 한 선묘낭자의 공덕이 우리 부석지역에 끼친 영향을 생각하면 선묘각 앞에서 저절로 고개 숙여 진다.

그 당시 당(唐)나라에서 씨앗을 가지고 온다는 것은 목숨을 내놓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 고장의 사람들은 감사에 감사를 거듭 해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나는 선묘각(善妙閣) 앞에 서서 선묘낭자의 고마운 일과 의상대사의 설법, 배흘림기둥인 무량수전(無量壽殿)을 쳐다보며 선묘낭자가 몰래 가지고 온 콩으로 우리지역 부석에서 지역 이름을 딴 부석태(浮石太), 부석흑태(浮石黑太)가 생겨나게 된 것은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훌륭한 선묘낭자의 고마움과 지고지순한 사랑의 결실이라 생각하고 부석사 무량수전(無量壽殿)과 선묘각을 바라보며 그 옛날 일을 생각해 본다.

 

참고문헌: 신재용의 음식궁합 <주부생활>,헤럴드경제 <남 민>기자, 黃圭源 <원효와 의상 그리고 설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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