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궁이의 힘
김병규
어느덧 65세 이상 고령자의 대열에 끼었다. 나이 들수록 병원 시설이 좋은 도시에서 살아야 한다지만, 나는 4년째 충북 괴산의 한 산골 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고즈넉한 농촌 풍경에 평온하고, 소박한 농부들의 인정에 정감이 깃든다.
지난 해 농막 한 편에 세 평 남짓한 온돌방을 마련했다. 그동안 이동식 농막인 컨테이너에서 홀로 지냈으나 아내의 발길이 잦아지자 농막을 증축한 것이다. 서울에서 전철과 버스를 번갈아 타고 4시간이나 걸려 이곳까지 찾아오는 아내를 춥고 초라하게 맞이할 수는 없었다.
가스나 전기보일러를 설치해야 편하고 따뜻하다는 지인들의 조언을 마다하고 굳이 온돌방으로 했다. 산간벽촌에 터를 잡은 바에야 근처 야산에 흔전만전 널려있는 땔감으로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것이 제격 같아서다.
불을 지피는데도 요령이 있다. 나름대로 3단계 접근법을 쓴다. 밑불로 소나무 잎 등 낙엽 두서너 줌을 아궁이에 집어넣고 라이터를 켜 불을 붙인다. 불이 타오르면 그 위에 중간불로 손가락 굵기만 한 나뭇가지 한 줌을 살짝 올려놓는다. 불씨가 세질 때를 기다려 팔뚝만 한 통나무나 장작을 웃불로 다섯 개 정도 올려놓고 차분히 기다린다.
마침내 새빨간 불꽃이 피어오른다. 그 세찬 불길을 아궁이가 굶주린 호랑이처럼 혀를 날름거리며 연신 빨아먹고 시커먼 연기를 굴뚝으로 잔뜩 토해 낸다. 그 열기에 온돌방이 시나브로 데워진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한 시간가량 좁다랗고 어둑한 부엌에 웅크리고 안자아서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자신이 어쩐 땐 무모하고 어리석어 보이기도 하다. 그러나 겨울철 농한기에 이만한 소일거리가 또 어디 있겠는가. 도시에서보다 많은 것을 체험하고 느끼며 초라한 자신과 친해질 수 있는 고독의 참맛이 감돈다.
나무 타는 냄새가 갓 끓인 된장국처럼 구수하고, 새빨갛게 피어오른 불꽃을 보면 고리삭은 육심임에도 불쑥 생기가 돈다. 어렸을 적 고향 산골마을에서 어머니가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밥도 하고 온 식구들이 함께 자는 큰 방이 따듯했던 추억이 떠올라 그립고 정겹기도 하다.
나는 불을 지피면서 나무들도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것을 실감한다. 하지만 한 편으로만 힘이 쏠리면 땔감의 위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 공기가 잘 통하도록 적절한 간격으로 정렬해 주어야한다. 나무들도 숨 고르기를 하며 선의의 경쟁 속에 더불어 활짝 피어오른다.
타오른 불길이 시뻐하여 성급히 손을 대면 건드려 부스럼 만드는 꼴을 보기도 한다. 아쉽고 못마땅하지만 다 탈 때까지 지켜보는 관용이 필요하다. 나무들에게도 관용을 베풀면 그나마 덕을 보는 것 같다.
어쩌다 잘 타가던 불도 꺼져갈 때가 있다. 훨훨 타오른 열기에 나무들의 정렬이 흐트러져서다. 불씨가 남아 있을 때 일매지게 모아 살살 부채질을 해주면 금방 되살아난다. 나무들도 부드러운 정서를 좋아하나 보다.
아궁이는 하루 한 아름씩 땔감을 잘도 먹어치운다. 그 땔감을 장만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수고가 들고 여러 도구를 사용한다. 밑불로 쓰이는 소나무 등 낙엽은 갈퀴가, 중간불로 쓰이는 조그마한 나뭇가지는 낫이나 짜구가, 웃불로 쓰이는 통나무나 장작은 톱이나 도끼가 제 몫을 한다.
도끼로 잘작을 팰 때는 빗나가고 변죽만 울려 힘이 들었지만 차츰 살손을 붙여 나갔다. 마침내 힘껏 내리치는 단 한 번의 도끼질에 큰 통나무가 팍하고 두 동강이가 나면 통쾌하기까지 했다. 도끼질이 어깨며 허리며 무릎 등의 근육을 키우는 운동이 되어서 그런지 근력과 몸매도 한결 좋아졌다.
야산에서 장만한 땔감을 집으로 운반하는 데는 지게가 안성맞춤이다. 어렸을 적 마을 뒷산에서 나무를 했고 지게를 져 본 적이 있다. 땔감이 어찌나 귀한지 산이나 언덕의 시든 잡초까지도 갈퀴로 빡빡 긁어 날랐다.
그때 땔감으로 최고로 친 소나무 낙엽은 시루떡처럼 두툼하게 쌓여있고, 참나무는 비바람에 망가져 널브러져 있다. 반세기 지나 옛 추억을 아스라이 더듬으며 한 지게 가득 땔감을 지고 산비탈을 오르내린다. 덧없는 세월의 무게에 짓눌려 어깨가 묵직하지만 대자연의 품안에서 포근함을 느낀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 이점도 많다. 전기나 가스 비용이 들지 않아 경제적이고, 전자파 등의 공해 없는 자연 그대로의 잠자리여서 건강에 좋다. 불을 지핀 후에도 따스한 화롯불로 쓰기도 하고 군고구마 등의 맛있는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다.
나무들의 분신인 재는 소중히 모아 농사철에 밭에 뿌리고 흙으로 덮는다. 나무들이 자연으로 되돌아가 농사 거름이 된다. 자연은 모든 것을 포용한다. 언젠가는 다 낡아 쓸모없는 나의 육신도 나무들처럼 한줌의 재로 변하여 땅에 묻힌다고 생각하니 숙연해진다.
나이 들수록 소일거리를 많이 만들고 즐기며 살아가련다. 철 따라 채소며 곡식을 가꾸고 거두어들이는 일로 바쁘다. 방문만 열고 몇 발짝 나서기만 하면 일거리가 있다. 하다못해 풀 한 포기를 뽑고 돌멩이 하나를 주워내도 농사에 도움이 된다. 하물며 겨울철 농한기에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일이야말로 이 얼마나 소일거리가 많고 이로운가.
얼마 전, 나의 농촌행을 극구 말렸던 아내가 나의 농막으로 이삿짐을 옮겼다. 나는 오늘도 아궁이에 또바기 불을 지폈다. 따스한 잠자리에 든 아내가 환한 미소를 짓는다. 기껍다. 이게 바로 노년의 보람이요 행복이 아닐까. 아궁이의 힘이 이처럼 센 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