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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수원교구 오늘의 말씀, 왕곡성당 카페, 마리아사랑넷,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살레시오회
우리에게는 양들에게 사랑과 기쁨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희망의 목자가 필요합니다!
때 이른 폭염과 장마로 얼마나 고생이 많으십니까? 특히 농사짓는 분들의 고생이 손에 잡힐 듯이 느껴집니다. 불볕더위와 과도한 비바람에 농작물들도 힘겨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합니다.
예초를 한다고 잠깐 나갔었는데 사우나가 따로 없습니다. 잡초들을 바라볼 때 마다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참으로 대단하다!’ 어찌 그리도 생명력이 왕성한지요. 뽑아도 뽑아도 또 자라납니다.
한바퀴 예초를 쭉 하고 돌아서면 벌써 저쪽 끝에서는 또 다른 잡초가 자라나기 시작합니다. 뿌리는 얼마나 튼튼하고 깊이 내려가는지 모릅니다. 방심했다간 피정 센터 전체가 순식간에 잡초로 뒤덮이게 됩니다.
잡초제거에 신경을 쓰지 않다가는 정작 원하는 농작물은 조금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왕성한 식욕을 지닌 잡초들이 모든 영양분들을 다 흡수하다보니 농작물들은 시들시들, 삐쩍 말라 휘청거리다가 결국엔 죽어버립니다.
좋은 결실을 기대한다면 방법이 따로 없습니다. 꾸준히, 일상적으로 잡초를 뽑아줘야 합니다. 그것이 농작물을 살리는 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밭에서 열심히 일할 일꾼이 필요합니다.
오늘 복음 말미에 예수님께서도 일꾼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주십사고 청하여라.”(마태 9,37-38)
오늘 우리에게는 착한 목자가 필요합니다. 품위있고 예의바른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가난하고 고통 받는 백성들이 자신의 유일한 존재 이유인 착한 목자가 필요합니다.
양들에게 극진한 사랑을 베풀기도 하지만 반대로 그들로부터 애틋한 사랑을 받는 착한 목자가 필요합니다. 잠시라도 떨어져 있으면 보고 싶고, 혹시라도 장거리 출장이라도 가면 세상 다 끝난 것처럼 마음이 허전해지는 그런 착한 목자가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정말이지 착한 목자가 꼭 필요합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양들의 성장과 안녕과 구원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착한 목자가 필요합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양들에게 쾌적한 성장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는 착한 목자가 필요합니다.
돈이나 명예, 인기나 허황된 꿈이 아니라 영혼 구원이 유일한 삶의 목표인 착한 목자가 필요합니다. 양들이 오늘 겪고 있는 고통과 괴로움, 그들이 안고 있는 상처와 십자가를 대신 짊어지고 갈 착한 목자가 필요합니다. 힘겹게 걸어가고 있는 이 시대 양들을 위해 틈만 나면 위로와 격려, 사랑과 기쁨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희망의 목자가 필요합니다.
당시 여러 부류의 사람들 가운데 가장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던 사람들, 가장 천대받고 멸시 당하던 사람들만을 우선적 사목 대상으로 선택하셨던 예수님을 바라보며, 만일 지금 다시 한번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다면 과연 어떤 사람들을 찾아가실 것인가 생각해봅니다.
교회는 교회 본연의 사명인 교세 확장에 관심을 기울이는 일도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 새로운 성당을 짓기 위한 신축부지 마련이나 신축도 중요합니다. 성지의 개발도 중요합니다. 신자 재교육도 중요합니다. 각종 단체의 활성화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일이 한가지 있습니다. 이 시대 살아있는 교회이자 성지인 가장 가난한 사람들,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 어디에 있는지를 살펴보는 일입니다. 그들의 인간성 회복을 위해, 그들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켜주기 위해 어떤 일을 할 것인가 머리 싸매고 고민하는 일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조원동주교좌 주임신부님
믿고 싶으면 어린이와 같은 관찰자로 살아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이적에 대한 두 상반된 반응이 나옵니다. 마귀를 쫓아낸 것을 본 군중들은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라며 놀라워하고, 바리사이들은 “저 사람은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늘 나라에 들어가려거든 어린이처럼 되라고 하십니다. 어린이들은 관찰합니다. 그러나 어른들은 어린이의 행동을 심판합니다. 따라서 이런 때는 어른의 모습보다는 어린이의 겸손한 모습이 필요합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모습을 관찰하며 결국엔 부모를 찾아내고 믿게 됩니다. 우리가 부모를 아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관찰을 통해 찾아내고 믿은 것입니다. 저는 어머니를 의심해봐서 이 과정을 잘 압니다. 자연과 사람, 법칙과 존재의 놀라움을 관찰하면 창조자를 만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창조자를 만나지 못하는 이유는 교만 때문입니다.
『나니아 연대기』로 유명한 C.S. 루이스(1898-1963)는 30대 초반에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무신론자였습니다. 그는 법이 존재하면 그 법을 만든 곳이 있어야 하고 화폐가 있다면 그 돈을 찍어낸 곳이 한 곳만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법도 화폐도 상대화되기에 가치가 사라집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법칙이 존재합니다. 그는 자신의 책 『순전한 기독교』에서 자신의 추론을 명확히 설명했습니다.
유신론의 대가인 C.S. 루이스와 대척점에 서서 무신론을 주장하며 1950년 토론 대결 이후 30권 이상의 책을 쓴 교수가 앤서니 플루(1923-2010)입니다. 그는 무신론 대표주자입니다. 1976년 발행한 그의 유명한 논문 ‘신학과 위증성’은 그동안 무신론의 교과서처럼 인용되었습니다. 그가 신을 믿지 않거나 신이 있지 않다고 믿는 근거는 이것입니다.
a. 우주가 영원하며, 항상 있어 왔고 항상 존재할 것이다. b. 생명은 무작위적 화학 작용의 결과물이다. c. 하느님의 존재는 자기 모순적이다; 악과 하느님은 공존할 수 없다.
그는 이 세상을 어떤 지적인 인격체가 설계하였다는 데 대해 과학이 그 복잡성을 설명해 줄 것이라 믿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우주와 함께 시작하고 끝납니다. 매일 느낄 수 있는 상식과 경험에 의해 이 세상의 숨겨진 매커니즘은 과학의 발전과 함께 밝혀질 것입니다.”
약 50년의 세월 동안 무신론에 관한 30권의 책을 낸 플루 교수는 2004년 뉴욕 대학에서 진행된 대담에서 온 우주를 창조한 신이 있음을 인정합니다.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지적인 존재의 작업이라고 여겨지는 거대한 복잡성 때문입니다.”
과학의 발전이 오히려 플루 교수의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동물계 전체에 걸쳐 나타난 시각은 물론 기본적인 번식의 필요까지 완전한 형태로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화석 증거가 있으며, 이 생명의 발생은 DNA에 기록되어 있고 DNA에서 RNA로의 전사, 그리고 RNA에서 단백질로의 전환, 이어지는 단백질의 접힘은 플루 교수가 창조주를 믿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습니다.
“DNA가 하는 일들은 믿을 수 없는 복잡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배열과 존재를 구성하는 데 있어서요. 극도로 다양한 물질들의 조합에는 지적인 존재의 개입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우연히’라는 말이 적용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번개가 쳐서 무생물에서 아미노산이 만들어지고 그것들이 단백질의 형태를 띠며 자기를 복제하는 능력을 갖추고 단세포 동물이 되는 데까지 우연적으로 일어날 확률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모래가 우연히 모여서 시계가 되거나 반도체가 되거나 아니면 원숭이가 무작위로 타자기를 두들겨 햄릿이라는 책이 만들어질 가능성보다 비교도 안 되도록 어렵습니다. 진화론자들은 다 우연히, 우연히라고 하며 넘기지만, 앤서니 플루는 50년간 무신론의 책을 내다가 결국 두 손을 들고 만 것입니다. 그는 이제 진화론자들에게 이 세 가지를 묻습니다.
a. 자연은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을까? b. 목적론적 구조를 가진 생명이 어떻게 무생물에서 비롯되었을까? c. 생명의 복잡성과 법칙들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우연히’라는 말을 빼고는 답을 할 수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은 열역학 법칙들에 위반되는 것이고 모든 에너지는 저절로 생기거나 증가할 수 없기에 그 에너지를 준 창조자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앤서니 플루는 ‘전화기의 비유’를 합니다. 무인도에서 어찌어찌 전화기가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언가를 누르니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현자는 이 전화기가 보이지 않는 세계와 연결하는 기계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은 조금만 고장 나도 소리가 들리지 않자 이것은 기계가 만들어내는 소리라고 결론짓습니다. 그리고 무인도에서 계속 외롭게 사는 것을 택합니다.
하지만 이 기계를 가만히 살펴보다가 언어는 알아들을 수 없지만, 자신들의 말에 반응하는 것을 보고는 기계가 내는 소리가 아니라 전화기는 보이지 않는 세계와 연결해주는 기계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때 “이제 내 목소리가 들리느냐?”란 음성이 들리고 믿게 된 사람들은 ‘우리가 혼자가 아니구나!’라는 마음의 평화에 머물게 됩니다.
바리사이들처럼 이 현상을 자기 판단으로 확정하고 본래 존재하는 것이라고 여기면 그 뒤에 있는 창조자의 존재를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린이처럼 관찰하는 이는 결국 전화기와 같은 이 현상들을 통해 보이지 않는 창조자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창조자가 우리를 사랑하여 그 소통의 도구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며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안 믿어서 좋은 게 뭐가 있을까요? 자기가 하느님으로 살며 온갖 걱정과 두려움에서 사는 일밖에는 없습니다.
어린이는 부모 말을 들어야 하지만, 그래도 가출해서 혼자 사는 것보다는 부모의 존재 안에서 머무는 게 더 행복임을 알고 관찰자로 머뭅니다.
심판자가 아닌 관찰자로 살아갑시다. 반드시 이 존재하는 모든 것의 창조자를 만나게 됩니다. 아이작 뉴턴(1643-1727)은 우주의 질서와 복잡성을 신성한 창조자의 증거로 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른 증거가 없다면 엄지손가락만으로도 신의 존재를 확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왕곡 주임신부님
복음: 마태 9,32-38: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사람들은 마귀 들려 말 못 하는 사람을 예수님께 데려왔다. 그는 말을 못 했으므로 다른 사람이 그를 위해 예수님께 데려왔다. 예수님은 그에게 믿음을 요구하지도 않으시고 곧바로 그의 장애를 해결해 주셨다. “마귀가 쫓겨나자 말 못 하는 이가 말을 하였다.”(33절)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33절) 군중이 이렇게 놀라워하니까, 바리사이들이 “저 사람은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33절) 비방한다. 군중이 예수님을 이스라엘에서 가장 위대하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말 못 하는 사람이 말을 하고, 한때 그가 거부했던 분께 영광을 드릴 수 있도록 혀가 풀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스스로 모순되는 말을 하며 예수님을 헐뜯는다. 이 말은 그들의 사악함에서 나온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당신을 헐뜯는 자들을 꾸짖지도 않으시고, 오직 선을 행하기 위해 오셨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시려고 두루 다니셨다. 하늘나라의 복음과 병 치유라는 두 가지 축복을 하고 그들을 직접 찾아다니셨다. 그것을 주시기 위해 작은 마을도 지나치지 않으시고 두루 다니셨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가엾이 여기셨다. 왜? 주님께서는 이 사람들이 더러운 영의 손아귀에 든 데다 율법의 짐까지 지고 있어서 가엾이 여기셨다. 그들이 다시 성령의 보호 아래로 돌아가도록 도와줄 목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선물의 열매는 풍성히 준비되어 있는데 그것을 거둘 일꾼들이 필요하였다. 영의 선물은 아무리 많이 거두어도 줄지 않는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37-38절) 주님은 하느님께서 수확하는 일꾼들을 넉넉히 보내시어 성령의 선물이 준비하고 있는 것을 거두게 해 주십사고 기도하신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선물을 쏟아부어 주신다. 풍성한 수확은 모든 믿는 이를 의미하고, 적은 일꾼은 수확을 위해 파견된 사도들과 그들을 본받는 사람들이다. 주님의 이 말씀은 그 선물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려준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그들이 청원도, 기도도 하기 전에 제자들을 사도로 지명하시며, 타작마당을 키질하여 알곡은 모아들이고 쭉정이는 버리는 분에 관한 요한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바로 그분 자신이 농부이며, 수확할 밭의 주인님임이 드러난다. 그분이 그들을 수확할 일꾼으로 파견하셨다면 수확하는 것은 바로 그분의 것이라는 것이다. 그분의 일꾼으로 사는 삶을 살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인천가톨릭대학교 성김대건 주임신부님
신학대학을 다니는 신학생을 대상으로 한 ‘착한 사마리아 사람’ 실험이 있었습니다. 신학교 다니고 있는 이 학생들은 남들을 도와주려는 이타적인 마음을 일반 학생들보다 더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길에 쓰러져 있다면 그 사람을 돕기 위해 행동했습니다. 물론 100%는 아니라 63%였지만, 일반 사람보다는 훨씬 높은 수치였습니다.
이번에는 똑같이 누군가가 길에 쓰러져 있는 상황이었는데, 수업 시간에 늦으면 감점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는 얼마나 도움을 줄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얼마나 도움을 주었을까요? 63%에서 10%로 도움을 주는 수치가 떨어졌습니다.
아무리 근본적으로 착한 성향을 보여도 상황에 따라 어려움 속에 있는 사람을 외면할 수 있다는 것을 이 실험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 착한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 착함을 드러내기 힘든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종종 방송에서 난처한 상황에서 무관심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듯한 뉴스를 보게 됩니다. 무관심하다고 악한 사람일까요? 어쩌면 그 상황에서 외면할 수밖에 없는 여건에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상황을 이겨내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도 사랑하라는 예수님 말씀을 실천하기가 쉽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 속에서 무관심으로 대처한다고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 역시 잘못이 아닐까요?
마귀 들려 말 못 하는 사람 하나를 예수님께 데리고 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를 쫓아냈고 이 사람은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군중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놀라운 일이었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놀라운 일을 봤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연히 하느님을 찬미하고 감사의 기도를 바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바리사이들은 마귀를 쫓아낸 예수님을 향해, “저 사람은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라면서 반대의 뜻을 취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사실 마귀를 쫓아내는 경우는 종종 있었습니다. 그러나 말 못 하는 이가 말하게 되는 경우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까지 그런 일이 없었지만, 사랑의 힘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말을 할 수 있게 했던 것입니다.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면서 반대하는 모습, 어쩌면 앞서 상황 속에서 어쩔 수 없는 무관심의 태도를 취했다고 비판하는 모습과 똑같은 것이 아닐까요?
섣부르게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 사랑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까지 이해하고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오늘의 명언: 현명한 신하를 가까이하고, 소인배를 멀리한다면 '전한'과 같이 나라를 흥하게 할 수 있음이요. 소인배를 가까이하고, 현명한 신하를 멀리한다면 '후한'과 같이 나라가 기울게 될 것이다(제갈공명).
※김혜선 아녜스 - 출처 : 바오로딸콘텐츠, 묵상-말씀이 시가 되어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마태 9,35)
예수님께서
한 손에는
하느님의 뜻이 담긴 복음을
다른 한 손에는
치유의 명약을 들고
병자와 허약한 자들을 찾아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실 때,
그분의 마음속은
언제나
세파에 시달려
기가 꺾인 이들에 대한
측은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네.
※김경진베드로 신부님 - 의정부교구 한마음청소년수련원(출처 : 단톡방)
이리떼에 시달리는 양 떼는
악한 영에 시달리는 우리 자신이고
기가 꺽인 것은
악한 영에 현혹되어
넘어져서 생긴 우울한 자괴감입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는 것은
가엾은 마음을 갖고 자신의 양떼를 돌보고
목숨을 걸고 자신의 양떼를 보호하는
목자가 적다는 의미입니다.
인간이 가엾은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축복입니다.
우리 안에 생겨나는 측은지심과 연민의 마음은
분명 예수님께서
우리 모든 인간에게 주시는 축복의 선물이니
주님께서 주신 숨결을 어떻게 나눌지
묵상 중에 고민하고 숙고하며
주님께 실천의 용기와 지혜를 청해야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저는 교우들을 사랑하며 돌보고
말도 이쁘게 하고 미소 지으며
최고의 서비스로 보답해야겠습니다.
사제야말로 최고 서비스 직종임에 분명합니다.
얼른 제가 수확해야 할 일들을
뒤로 미루지 말아야겠습니다.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이병우 루카 신부님
복음말씀
제1독서
<그들이 바람을 심었으니 회오리바람을 거두리라.>
▥ 호세아 예언서의 말씀입니다.8,4-7.11-13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이 4 임금들을 세웠지만 나와는 상관없고
대신들을 뽑았지만 나는 모르는 일이다.
그들은 은과 금으로 신상들을 만들었지만 그것은 망하려고 한 짓일 뿐이다.
5 사마리아야, 네 송아지를 내던져 버려라.
내 분노가 그들을 향해 타오른다.
그들이 언제면 죄를 벗을 수 있을까?
6 송아지 신상은 이스라엘에서 나온 것
대장장이가 만든 것일 뿐 결코 하느님이 아니다.
정녕 사마리아의 송아지는 산산조각이 나리라.
7 그들이 바람을 심었으니 회오리바람을 거두리라.
줄기에 이삭이 패지 못하니 알곡이 생길 리 없다.
알곡이 생긴다 하여도 낯선 자들이 그것을 집어삼켜 버리리라.
11 에프라임이 제단들을 많이도 만들었지만
그것은 죄를 짓는 일이요 그 제단들은 죄짓는 제단일 뿐이다.
12 내가 그들에게 나의 가르침을 많이 써 주었지만
그들은 그것을 낯선 것으로만 여겼다.
13 그들은 희생 제물을 좋아하여 그것을 바치고 그 고기를 먹지만
주님은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제 주님은 그들의 잘못을 기억하고 그들의 죄를 벌하리니
그들은 이집트로 돌아가야 하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9,32-38
그때에 32 사람들이 마귀 들려 말못하는 사람 하나를 예수님께 데려왔다.
33 마귀가 쫓겨나자 말못하는 이가 말을 하였다.
그러자 군중은 놀라워하며,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하고 말하였다.
34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저 사람은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였다.
35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36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37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38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