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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산[鈴岩山] 782m 경북 성주/김천/칠곡
산줄기 : 금오영암지맥
들머리 : 김천시 남면 월명리와 초전면 용봉리를 잇는 신거리고개
위치 경북 성주군 / 김천시 / 칠곡군
높이 782m
영암산은 바위봉우리 셋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도에는 남북으로 놓여진 영암산의 머리 부분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봉우리에 영암산이라 표기되어 있다. 그러나 성주 사람들은 가장 남쪽 봉우리를 영암산으로 알고 있고, 거기에 표석
까지 세워 놓았다. 사실 지도에 영암산이라 표기되어 있는 북봉은 나무가 많은 흙으로 된 봉우리로 별다른 특색이 없다.
반면 남쪽 봉우리는 사방이 바위절벽으로 된 바위봉우리로 경관도 좋고 조망도 좋다. 또 성주쪽에서 보면 이 남봉이
방울처럼 보여 산이름은 예서 얻은 것이다. 성주 초전면쪽에서 북봉(지도에 영암산이라 표기된 봉우리)은 보이지도
않는다. 그래서 편의상 지도에 영암산이라 표기된 봉우리를 상봉이라 하고, 방울처럼 보이고 표석도 세워져 있는 남봉
을 주봉이라 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이 상봉(북봉)에서 주봉까지는 바위로 이루어져 있으며, 양편으로 바위벼랑을 이
루고 있다.
[영암산과 선석산의 이름, 그리고 선석사]
반면 선석산은 바위가 없으며 등성이가 넓고 번번하여 밭을 일구어도 될 정도다. 따라서 선석산은 숲이 좋고 비탈이
가파르지 않아 산길이 산책길처럼 순하다. 고스락은 둘레에 큰 나무들이 많아 조망이 좋지 않다.
이 선석산 아래에 옛절 선석사가 있고, 육관도사가 우리나라 30대 명당이라 했다는 세종대왕 왕자들의 태실이 있다.
영암산의 한자는 방울이라는 뜻의 령(鈴) 자로 되어 있다. 그래서 '방울바위 산'이 된다. 처음에는 방울이나 종과 관
계 있는 전설, 또는 방울이나 종 모양의 바위가 있지 않나 생각했다. 그러나 송춘상 대장은 성주쪽에서 보면 방울
모양으로 보여 옛날부터 '방울바위산' 이라 했다는 것이다. 영암산의 이름은 이처럼 그 유래가 분명했다.
선석산의 이름은 선석사에서 유래한다. 의상대사가 신라 효소왕 1년(692년) 절을 창건하고 이름을 신광사라 했는데,
신라 화엄10찰의 하나로 이름난 절이었다. 그때의 절은 지금의 절 서쪽에 있었다 한다.
공민왕 10년(1361년) 나옹대사가 주지로 오면서 지금의 자리로 절을 옮겼다. 이때 절터를 판판하게 닦는데 큰 바위
가 나왔다 해서 절이름을 터를 닦는다는 뜻의 선(禪) 자와 돌 석(石) 자를 써서 선석사라 했다 한다. 그때 발견된 바위
는 지금도 대웅전 앞뜰에 묻힌 채 그 일부가 땅 위에 내밀어져 있다.
영암산과 선석산의 산행은 따로따로 할 수도 있지만 두 산을 묶어서 하는 것이 좋다. 산 자체로 볼 때에는 영암산이
좋으나 영암산만 산행하면 산행시간이 짧고 선석산이 안고 있는 세종대왕 왕자 태실이나 선석사를 볼 수 없다.
또 선석산 하나만 오른다면 선석사와 왕자태실은 둘러볼 수 있으나 흙산으로 너무 단조롭고 산행의 맛이 적다.
따라서 영암산과 선석산을 함께 산행하고 선석사와 왕자 태실을 둘러보는 것이 산행의 맛도 좋고 뜻도 있다.
그러나 두 산이 성주군과 칠곡군 경계에 있어 산길은 양편이 모두 있지만, 아무래도 칠곡쪽에서는 두 산을 모두
오르기는 어렵다.
산행들머리는 신거리고개, 선석사, 보손동(칠곡군 북삼읍) 등 크게 세 갈래라 할 수 있다.
신거리고개(김천시 남면 월명리, 월명 성모의집)는 성주군과 김천시 경계가 되는 고개다. 월명 성모의집은 신거리
고개에서 조금 북쪽 월명리쪽(김천시 남면)에 있다.
월명 성모의집에서 산등성이~턱~상봉~주봉~잘록이(영암산과 선석산 사이)~선석산~선석사를 거쳐 왕자태실로
내려서는 데 약 4시간이 소요된다. 이 코스를 역으로 산행해도 된다.
4번 국도변의 보손동(칠곡군 북삼읍) 들머리에서 보손동~보손동 골짜기를 통해 잘록이(영암산과 선석산 사이)로
올라서는 데 약 2시간이 걸린다. 또는 보손동에서 등선이길을 이용해 곧장 선석산으로 올라서는 데에도 약 2시간이
걸린다. 보손동 길은 잘록이나 선석산까지 멀고, 영암산이나 선석산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흠이 있다.
칠곡이나 약목 북삼 주민들이 여가를 이용해 어느 하나를 산행할 때 이용하는 길이라 할 수 있다. [월간 산]
○ 영암산-비룡산 종주산행의 들머리는 신거리고개. 김천시 남면과 성주군 초전면 경계인 고갯마루엔 장승부부
한 쌍이 산꾼들을 맞는다. 동쪽 지능선으로 산길이 뚜렷이 이어진다. 소나무숲길을 이어가면 금오산(976.6m)이
다가드는 전망바위 지나 이정표가 자리한 능선 삼거리에 올라선다(1시간20분). 이곳에서 3분이면 영암산과 구미
시가를 조망할 수 있는 소나무 전망바위다. 다시 조심스레 안부를 내렸다 다시 오르면 정상석과 작은 돌탑이 자리
한 영암산 정수리(20분).
여기서 남동쪽 급경사 바윗길을 조심스레 내려가면 정동녘으로 능선길이 꺾어진다. 넓고도 느긋한 참나무숲길을
1시간10분 가면 누진산 정수리다. 다시 남녘 능선을 내려 동쪽으로 이어지는 산길을 따르면 오늘 산행지의 막내인
비룡산 뾰족 정상에 닿는다(50분). 하산은 남동 능선을 조금 내려가 첫번째 안부에서 북동쪽으로 내려가는 계곡길
을 이어야 한다. 다소 희미한 곳도 있으나 50분이면 두만지 지나 신유장군 유적지가 자리한 약목면 복지회관 주차
장에 이른다. 신거리고개~영암산~누진산~비룡산~신유장군 유적지를 잇는 종주코스는 약 5시간 걸린다.
유적지 뒷산은 시묘산(367m). 이곳에서 길을 조금 내려간 곳에 세워진 등산안내도 지점에서 한시간이면 다녀올
수 있다.
영암산영암산(782m)은 김천시 남면과 성주시 초전면, 칠곡군 북삼면의 경계에 자리한 산이다. 구미의 진산이며
도립공원인 금오산(977m) 정남녘에 자리한다. 영암산 남동쪽으로 누진산(742m)과 비룡산(576m)이 당차게 능선
을 이어 달려간다.
산행의 들머리는 김천시와 성주군의 경계를 이룬 신거리고개. 905번 지방도가 지나가는 고갯마루에는 한 쌍의
장승부부가 봄바람 같은 미소로 산꾼들을 맞는다. 절개지 위로 이어지는 산길 조금 오르면 소나무숲이 우거진
솔향 가득한 산길이다.
잔설이 더러 남은 산길을 휘적휘적 따라 오르면 벼랑 곁에 세운 전망바위에 올라선다. 다가드는 금오산의 묘한
산세며 남북저수지, 지경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다시 산길을 이어가면 '영암산 정상'과 '무릉농원'을 알리는
이정표가 자리한 능선삼거리다. 여기서 길은 오른쪽으로 꺾이며, 곧 소나무와 어우러진 바위봉에 올라선다.
쌍봉으로 보이는 정수리의 모습이 아름답게 펼쳐지고, 누진산, 비룡산으로 이어가는 산줄기가 햇살을 가득
받아 눈부시다.
바위를 돌아 내리면 구미시가를 조망할 수 있는 명당이 있다. 북풍을 피하고 따뜻한 햇살이 포근한 이곳은 간식
을 나누며 쉬어가기에 안성맞춤인 쉼터다. 비탈길을 조심스레 내려 다시 20분 오르면 아담한 돌탑이 자리하고,
1998년 '약목 설령산악회'가 세운 정상석이 자리한다.
정수리의 조망은 눈부시다. 북쪽으로 금오산이 성큼 다가오고, 동쪽은 굽이굽이 낙동강의 흐름이 아련하다.
영암산은 행정구역상 김천시, 칠곡군, 성주군에 걸친 산이건만 속하지 않은 구미 시가만이 한눈에 환하게 내려
다보인다. 비록 법적으로는 나의 소유가 아닐지라도 방방곡곡의 명산을 두루 밟고 다니는 산꾼들의 무소유 정신
을 이곳 산정에서 만난다.
묵묵히 사방을 둘러보노라면 어디선가 일깨움의 요령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요령산 이야말로 진정 깨달음
의 청산이었으니, 누진산은 동남녘 능선을 이어야 한다. 밧줄이 걸려 있는 급한 절벽을 두 번이나 거푸 내려가
솔숲길을 이어가면 돌목재다. 영암산(한자를 풀이하면 요령바위산) 이름의 뜻을 살피려 몇 번이나 되돌아 본
내림길 적당한 지점에서 요령과 흡사한 정수리 모습을 발견하고 옛사람의 안목에 다시 한 번 감탄한다.
돌목재 부근에서부터 산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뀐다. 아름드리 참나무가 더러 보이는 넓고 느긋한 능선은 콧
노래가 절로 나오는 산책길이다. 급하지 않은 오름길도 이리저리 돌아가는 누진산 산길은 또 다른 여유로움의
인생길을 생각하게 한다. 준족이라면 영암산을 출발해 한 시간 조금 못되어 누진산 정수리에 올라설 수 있다.
베어 낸 나무들이 어지러이 누워 있는 정수리는 길고 넓은 여유를 보인다. 글씨를 알아볼 수 없는 낡은 삼각점과
묵무덤이 자리하는 이곳에도 1997년 '약목 청솔산악회'에서 세운 정상석이 있다.
누진산은 성주군과 칠곡군의 경계를 이루었으나, 정수리 조망은 역시 구미시가만이 한눈에 들어오고, 금년 4월
개통되는 경부고속철도가 발밑을 지난다. 국토지리정보원에서 발행한 1:50,000 옛 지형도에는 정상석에 적힌 것
같이 누진산이 분명하나, 최근 발행한 지도에는 이름이 선석산으로 바뀌었다. 이어서 비룡산으로 향한다.
멀리서 바라보면 비룡산은 이름 그대로 하늘로 솟구치려는 뾰족한 산세를 자랑한다. 정상 조금 못 미친 바위지대
에선 남녘조망도 시원하다. 누진산 출발한 지 한 시간이면 비룡산 좁은 정수리에 올라선다. 오늘 오른 3개의 산
가운데서 가장 낮은 막내며, 칠곡군에만 속한 산이건만 이름에 걸맞는 참으로 훌륭한 조망을 펼쳐 놓았다.
북쪽으로 도립공원 금오산과 구미시가 샅샅이 보이고, 낙동강대교를 지난 낙동강의 유유한 흐름이며, 경부고속
국도, 4번 국도, 경부고속철도 등이 부처님 손바닥 보듯 한눈에 보인다.
하산은 동남녘 능선길을 따른다. 조금 내려가면 안부에 이르고, 이곳에서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계곡길을 따라야
한다. 간혹 희미한 부분이 있긴 해도 어려움 없이 '칠곡교육청 실습지' 팻말을 지나 초록못물 그득 고인 두만지에
이른다. 두만지 둑에 서서 내려온 산을 다시 우러르면 하늘로 날아오를 듯한 비룡산 산세는 참으로 황홀하거니와,
백오십 여 미터 더 높은 누진산보다도 더 높아 보인다.
못 속에 비친 산그림자를 하염없이 바라보다 미련을 떨치고 다시 산길을 내려간다.
두만지 북녘 가에는 신유(1619~1680) 장군 유적지가 있다. 이 고장 약목 출신인 장군은 인조 23년에 27세의 나이
로 무과에 급제해 여러 무직을 거쳤다. 효종 9년(1658년), 청나라의 요청으로 원군을 이끌고 러시아군을 전멸시키
는데 큰 공을 세웠다. 이를 나선정벌이라 하며, 장군은 이 원정의 전말을 북정일기라는 기록으로 후세에 남겼다.
이 일기는 우리나라와 러시아간 최초의 접촉에 대한 현지 사령관의 기록이란 점에서 세계적인 사료로 인정되고
있다. 그후 장군은 경상좌병사, 황해병사, 삼도통제사, 포도대장 등을 역임한 후 숙종 6년(1680) 향년 62세로 생을
마감했다. 경상북도 기념물 38호로 지정된 이곳 숭무사에는 신유장군의 영정과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이로써 두만강에서 비롯된 두만지 못 이름에 대한 화두가 저절로 풀리게 되었다. 지도에 이름이 없는 유적지 뒷산
은 시묘산(367m)이다. 길을 따라 조금 내려가면 '시묘산 등산로 안내도'가 자리한다.
시간이 허락하는 준족들은 이곳에서 한시간이면 정상까지 다녀올 수 있다.
#산행코스
*신거리고개- (1시간20분)- 능선 삼거리- (3분)- 소나무 전망바위- (20분)- 영암산- (1시간10분)- 누진산-
(50분)- 비룡산- (50분)- 약목면 복지회관 주차장.
#주변볼거리
세종대왕 왕자 태실
조선조는 왕과 왕자의 수가 많은 만큼 그들의 태를 묻었던 태실도 많다. 그러나 19기를 한데 모은 태실은 여기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밖에 없다. 이 태실은 그 자리와 방식이 특이하고 전해지는 이야기도 재미있다. 태실은 왕실에서 태를
묻은 석물 시설로, 조정의 관상감에서 장소를 물색하고 안태사로 하여금 태를 묻게 했다 한다.
조선조에서는 풍수지리설의 위력이 컸던 때문에 왕실의 태는 국운과 직접 관련이 있는 것으로 믿고 매우 소중하게
다루었다. 여기 태실은 1438년(세종 20년)에서 1442년 사이에 만든 것으로, 수양대군(세조)을 비롯해 적서 18왕자와
왕손 단종의 태까지 19기의 태실을 안장한 곳이다.
뒤에 수양대군의 폭거에 불복한 동생들인 금성대군, 한남군, 영풍군, 화의군, 안평대군의 태와 장태비를 산 아래 버렸
으나, 1975년 기단석을 찾아 복원해서 현재 기단석만 남아있다(사적 제444호).
이 태실은 태실의 의궤에 따라 지하에 석실을 만들고, 그 속에 분청사기로 된 태호를 넣고, 그 위에 기단석 중동석 개
첨석을 덮었다. 대군과 단종의 태실, 그리고 단순한 군의 태실이 구분되어 있다.
원래 이 태실 자리는 고려 말 문신이며 성주 이씨의 중시조로 유명한 이장경의 묘지였다. 이장경은 그의 아들 5형제
가 모두 과거에 급제했고, 손자 이승경은 원나라에서 큰 벼슬을 하고 큰 공을 세운 인물이다. 조선조 태조 때 영의정
을 지낸 이직도 그의 후손이며, 이직의 손자 이정녕은 당시 세종의 누이동생의 남편(부마)이었다. 세종은 안태사의
말을 듣고 자기의 매제 이정녕을 파면까지 하며 이장경의 묘자리를 빼앗아 태실로 만들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안태사가 태실을 앉힐 명당을 찾아 여기 인촌리에 들어서자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 비를
피하려고 근처의 재실에 들어갔다. 그 재실이 이장경의 재실이었고, 안태사는 이장경의 묘가 명당임을 알아보고 세종
에게 보고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이정녕은 묘지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그 보고를 무시한 죄로 파면을 당한 것이다.
그러나 이장경의 후손들에게도 과실은 있었다 한다. 이장경의 묘터를 잡아준 스님은 이장경의 후손들에게
'아무리 후손들이 잘 되더라도 여기에 묘각을 세우거나 재실을 만드는 등 묘의 치장을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한다.
그러나 많은 후손들이 영달하자 교만해져서 그 스님의 당부를 잊고 재실을 짓고 묘를 치장했던 것이다. 재실을 짓지
않았다면 안태사가 그 재실에서 비를 피하지 않았을 것이고, 따라서 이장경의 묘터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월간산)
#들머리안내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02-535-4151)에서 하루 27회 다니는 고속버스, 경부선열차(1일 49회)로 구미로.
*구미역이나 구미버스터미널 앞에서 대구행 버스(111번, 11번, 11-1번)를 타고 약목면에 내린다.
*산행들머리인 신거리고개(12,000원)나 두만지(3,000원)까지는 택시로. 약목택시 054-977-7777. [한국의 산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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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신문
이번 주 소개하는 산은 참외의 고장 경북 성주 선석산~영암산. 성주땅 북동쪽에 치우쳐 있는 두 산은 성주와 칠곡의 경계에 오똑 솟아 있다. 좀 더 피부에 와닿게 설명하자면 국내 최초의 도립공원인 칠곡 금오산이 바로 코앞에 위치해 손에 잡힐 듯하다.
스케일이 큰 지도를 펴놓고 좀 더 넓게 살펴보면 두 산을 기점으로 동일 위도상으로 동쪽에는 팔공산이, 서쪽에는 민주지산이 포진해 있고 남서쪽에는 성주와 합천의 경계에 위치한 '석화성' 가야산이 우뚝 솟아 있다.
선석산~영암산은 어떤 산일까. 이 물음에 답을 하려면 마늘의 고장 경북 의성 금성산~비봉산과 비교하면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듯싶다.
영암산 쪽 전망대에서 본 선석산. 방금 지나온 능선이 선명하게 확인된다. 사진상으로 보이진 않지만 좌측으로 금오산과 북삼읍 보손지도 보인다. |
우선 덩치가 작아 '나홀로 산행지'로 존재하기에는 2% 부족하다. 두 산을 한데 묶어 산행을 해야 제 맛이다.
산세가 각각 딴판인 점도 공통점이다. 의성의 간판인 금성산이 부드러운 육산인 반면 봉황이 날아가는 듯한 형상인 비봉산은 절벽을 이룬 암릉길로 멋도 있고 타는 재미도 있다.
선석산과 영암산도 마찬가지. 선석산이 무엇이든 품에 안을 것 같은 넉넉함을 갖춘 반면 영암산은 날카로운 바위와 벼랑으로 이뤄진 골산이다. 한 번의 산행에 두 종류의 산을 경험할 수 있는 셈이다.
다시 말해 선석산이 숲이 좋고 산길이 산책로처럼 비교적 순해 여유있게 걸을 수 있는 반면 영암산은 한 발만 헛디디면 낭떠러지로 추락할 것 같은 긴장감을 유지해야 된다.
이번 산행에서 놓쳐선 안 될 볼거리는 선석산 아래 위치한 세종대왕 자태실과 선석사.
선석산 산행 들머리에 위치한 세종대왕 자태실. |
세종대왕 자태실에는 세종대왕의 17왕자와 원손인 단종의 태가 안장돼 있다. 왕실의 태는 국운과 직접 관련돼 소중하게 다뤄진 만큼 전통적으로 명당 중 명당에만 안장한다. 이런 사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이는 선석산 태봉바위에서 보면 한눈에 알 수 있다. 인근의 천년 고찰 선석사는 세종대왕 자태실의 수호사찰로 현재 태실법당을 짓고 있다.
산행은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 세종대왕 자태실 관광안내소~불광교~선석사 갈림길~삼거리봉(선석산·비룡산 갈림길)~태봉바위~용바위~정상 직전 삼거리~선석산(742m)~잇단 선석사 갈림길~돌문이고개~(칠곡)보손지 갈림길~정상 직전 갈림길~영암산(782m) 정상석~북봉(784m)~김천시 남면 '월명성모의 집' 순.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4시간 안팎. 산행 초입 길찾기에 유의하면 이후 능선길에선 이정표가 있어 큰 무리는 없을 듯하다.
세종대왕 자태실을 둘러본 후 관광안내소 옆 이정표 상의 '중암, 선나원'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마을 고샅길을 따라가면 어느새 임도급의 숲길로 이어진다. 숲길의 종착역은 사실상 들머리인 나무다리인 불광교. 가만히 보니 계곡합수점이다. 다리 옆 나무엔 '등산로'라 적힌 안내판이 걸려 있다.
불광교를 건너 물 마른 건천과 나란히 걷는 너른 직진형 돌길 대신 우측 급경사길로 오른다. 직진형 돌길로 올라가도 선석산으로 이어진다. 참고하길.
선석산에서 내려다본 세종대왕 자태실. |
급경사길은 처음엔 사람 다닌 흔적이 보이지만 어느 순간 그 흔적마저 사라져 사실상 개척산행이다. 25분쯤 뒤 소나무 아래 시야가 트이면서 선석산 산줄기 뒤로 암봉인 영암산이 보여 주변 지형을 가늠해볼 수 있다. 이후 산길 주변으로 바위가 보이기 시작할 무렵 길 흔적이 뚜렷해지면서 경사가 수그러진다. 15분 뒤 갈림길. 우측은 선석사에서 올라오는 길, 좌측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여전히 걷기 좋은 완만한 오름길. 7분여 뒤 또 갈림길. 나무에 '선석산' '비룡산' 방향이라 적힌 팻말이 걸려 있다. 산행팀은 삼거리봉으로 명명하고 직진한다. 잠시 후 길 우측으로 아파트촌이 보인다. 금오산 금오동천의 산행기점으로 유명한 칠곡군 북삼읍이다. 읍이라도 인구가 많은지 상당히 번화하다.
여유로운 이 길은 성주(좌)와 칠곡(우)을 가르는 군경계이다. 5분쯤 뒤 '태봉바위'라 적힌 안내판이 서 있다. 세종대왕 자태실 자리를 살펴보았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바위란다. 조그만 저수지 앞 볼록 솟은 동산이 세종대왕 자태실이다. 혹자는 이 지점이 연꽃의 한가운데라고 하고, 또 다른 이는 골짜기 양편의 산줄기가 여자의 양다리이며 태실이 위치한 자리가 여성의 음부에 해당된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당시의 내로라하는 지관들이 낙점한 만큼 명당 중의 명당이 아니겠는가.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실제로 문외한이 봐도 한눈에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영암산 하산길에서 만난 단풍 터널. |
5분 뒤 '용바위'를 만난다. 안내판에 따르면 선석산에서 가장 웅비해 예부터 용바위라 부르고 있다고 한다. 얼핏 봐선 평범한 바위로 보이나 끄트머리에 서서 발밑을 내려다보면 수긍이 간다. 저 멀리 국내 생산의 60%를 차지하는 참외 비닐하우스가 호수처럼 장관을 이룬다.
용바위에서 2분이면 정상 직전 삼거리. 좌측은 앞서 사실상 들머리였던 불광교 하산길, 산행팀은 직진한다. 선석산 정상은 여기서 300m 남았다고 적혀 있지만 생각보다 힘들이지 않고 빨리 올라선다. 잡목에 둘러싸여 동쪽인 칠곡 약목면 이외에는 조망이 하나도 없다. 선석산이란 이름은 보이지 않고 선석산의 또 다른 이름인 서진산(棲鎭山) 대신 한자를 착각해 누진산(樓鎭山)이라 적혀 있다. '서(棲)' 자와 '누(樓)' 자의 착각인 듯 싶다. 난센스다.
하산은 이정표 뒤 '영암산 2.8㎞' 방향으로 내려선다. 호젓한 낙엽길이다. 안 보이던 붉은 단풍이 보이기 시작하고, 발밑에는 형형색색의 단풍이 떨어져 천연 카펫을 걷는 기분이다.
GPS 트랙 / 트랙 맵매칭 / 트랙 jpg파일 |
차츰 숲 사이로 암봉인 영암산이 살짝 모습을 드러내고 우측으론 명산으로 손꼽히는 근육질의 금오산 역시 숨었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부담없이 한가롭게 거닐 수 있는 꼬불꼬불한 옛길인 데다 소나무와 울긋불긋 단풍의 색조화도 일품이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는 환상의 숲길 구간이다. 좌측으로 선석사 방향으로 내려서는 옛길도 열려 있다.
일순간 지금과 달리 길이 약간 넓어지고 '보손지 2.2㎞, 영암산 1.1㎞'라 적힌 이정표를 만난다. 선석산과 영암산의 경계이자 칠곡 북삼읍과 성주 월항면을 잇는 일명 돌문이고개이다. 산 아래나 멀리서 보면 푹 꺼진 잘록이다. 성주 쪽은 아예 길이 없고, 오른쪽 북삼읍 보손지 쪽은 많은 산꾼들이 다니는지 길이 반듯하다.
5분쯤 뒤 놀랍게도 눈앞에 거의 직벽이 다가와 있어 순간 섬뜩해지지만 밧줄과 철계단 등 안전시설물이 설치돼 있어 그리 힘들지 않다. 보손지 갈림길을 지나 12분 뒤 갈림길을 만난다. 직진하면 로프 구간(270m), 우측은 우회길(350m)이다.
몇 걸음 내려서니 우측으로 집채만한 병풍바위가 떡 버티고 있다. 우회길인 셈이다. 얼핏 봐도 높이 20m, 폭 30m쯤 된다. 돌계단을 따라 한 굽이 오르면 시야가 트이며 근육질 암릉의 위용을 드러낸다. 동시에 주변의 산세와 지형이 한눈에 펼쳐진다. 뒤돌아보면 선석산에서 방금 지나온 마루금이 손금처럼 보이고 좌측 칠곡 쪽에는 금오산을 배경으로 북삼읍 보손지와 약목면이, 진행 방향으론 밧줄이 요리조리 매여 있는 암봉이 우뚝 서 있다.
정상석이 있는 영암산 정상까진 13분이면 닿는다. 밧줄을 잡고 두 개의 철계단을 오르면 된다. 안전시설물이 없다면 만만찮은 구간이지만 이 정도면 힘겹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다. 대신 방심은 금물이다.
멀리서도 식별이 되는 멋진 소나무와 돌탑 그리고 정상석이 서 있는 정상에 서면 정면으로 금오산을 배경으로 하산할 마루금과 김천과 성주를 잇는 905번 지방도가 동시에 보인다.
하산은 직진. 암릉을 에돌아간다. 그 길도 아주 거칠다. 9분이면 암봉 앞에 선다. 좌우로 우회길을 찾아봐도 보이질 않는다. 직접 타고 오르는 수밖에. 바위가 발을 내딛기 쉽게 깨어져 있어 크게 문제는 없다.
여기서 다시 한 굽이 올라서면 북봉인 784봉. 정상석이 있는 봉우리보다 2m 높다. 5만분의 1 지형도에는 이곳에 영암산이라고 표기돼 있다.
본격 하산길. 꽤 험로지만 뜻밖에도 단풍나무가 즐비하다. 이 길은 옛길이라기보다 905번 지방도로 하산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간벌하며 조성한 등산로인 듯하다. 특이하게도 형형색색의 단풍은 등산로를 벗어나 우측 칠곡 쪽 사면에 치우쳐 있다. 단풍 명산이 부럽지 않다. 이따금 좌측 뒤로 북봉과 가운데 암봉 그리고 소나무가 식별되는 정상석이 있는 782봉이 한눈에 보이기도 한다. 좀 더 내려오면 중부내륙고속도로도 시원하게 펼쳐진다.
35분 뒤 갈림길. 산행팀은 좌측으로 내려왔지만 어느 쪽으로 와도 10분 뒤에 '월명 성모의 집'에서 만난다. 784봉에서 47분 걸린다.
# 떠나기 전에
- 성주 명물 참외씨 먹인 돼지 '참외포크' 일품
선홍빛이 감도는 참외포크. |
영암산은 생긴 모양에서 그 이름이 생겨났다 한다. 산 아래 성주땅에서 올려다보면 3개(782봉과 784봉 그리고 그 사이)의 암봉으로 이뤄져 정상부가 마치 방울을 닮았다는 것. 해서 '방울 영(鈴)', '바위 암(岩)' 자를 조합해 영암산으로 불린다.
선석산은 세종대왕 자태실의 수호사찰인 선석사와 연관이 있다. 신라 효소왕 때(692년) 의상 대사가 현 사찰의 서편에 창건, 신광사로 명명했지만 고려 공민왕 때 나옹 선사가 주지로 오면서 절터를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이를 위해 터를 닦던 중 큰 바위가 나와 절이름을 터를 닦는다는 의미의 선(禪) 자와 돌 석(石) 자를 써서 선석사로 명명했다 전해 온다. 그 때 발견된 바위는 지금도 대웅전 뜰 앞에 묻힌 채 그 일부가 땅 위에 고개를 내밀고 있다. '빙산의 일각'만 나와 있는 셈이다.
산행 들머리의 세종대왕 자태실(子胎室)은 우리나라에서 왕자태실이 군집을 이룬 유일한 곳으로 전세계적으로 이런 형태의 유적은 유례가 없다. 세종 20년(1438년)에서 24년(1442년) 사이에 조성된 태실은 세종의 장자 문종을 제외한 모든 왕자와 원손인 단종의 태실 등 19기가 모여 있다. 19기 중 14기는 조성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나 수양대군(세조)의 즉위에 반대한 동생들인 금성대군 한남군 등 다섯 왕자의 태실은 사각형의 기단석을 제외한 석물이 파괴돼 남아 있지 않다.
입구에 위치한 문종의 동생인 수양대군(세조)의 경우 왕이 됐는데도 태를 옮겨가지 않은 이유는 유달리 형제애를 강조한 아버지 세종의 유언에 따른 것. 태실을 옮기지 않은 대신 임금의 태실인 태봉(胎封)으로 봉하고 가봉비를 세워두었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단종의 태봉은 수양대군과 멀리 떨어져 있다.
태봉바위와 용바위에선 가야산이 거의 보이질 않지만 산속 안내판에는 보인다고 적혀 있다. 심지어 이웃한 용바위에선 낙동강도 손에 잡힌다고 표기돼 있지만 그렇지 않다. 참고하길.
맛집 한 곳 추천한다. 참외씨 먹인 돼지고기 전문점 '성주 포동이 숯불가든'(054-931-0770). 성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참외 산지. 일반적으로 참외씨는 칼슘 인 칼륨 등 무기질과 비타민 등이 다량 함유된 건강식품. 특히 비타민E 함유량은 참기름의 26배, 옥수수 기름의 5배다. 실제로 성주 참외포크는 노화방지 물질인 비타민E 성분이 일반 돼지고기에 비해 무려 68배나 높은 반면 콜레스테롤은 22%나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맛은 어떨까. 두말하면 잔소리다. 육질이 두드럽고 쫄깃쫄깃하면서도 뒷맛은 아주 담백하다.
'성주 포동이 숯불가든'은 남편이 직접 참외포크를 생산하고, 부인인 강현순 씨가 식당을 경영한다. 국내 몇 안 되는 국산 돼지고기 판매점이기도 한 이곳은 최고의 고기로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 이미 성주에선 가장 유명한 참외포크집으로 알려져 있다. 고기를 먹은 후엔 매생이 칼국수와 굴국밥이 준비돼 있다. 된장찌개를 원할 경우 비빔밥으로 나온다. 150g 1인분 8000원.
# 교통편
- 대중교통 당일치기 불가, 승용차 이용해야
남해고속도로~중부내륙고속도로 서울 김천 방향~성주IC~왜관 성주 33번~무주 성주 30번~경산교 건너자마자 무주 김천 왜관 30분 좌회전~김천 구미 왜관~김천 초전 905번 지방도 좌회전~선석사 13.1㎞~세종대왕 자태실 선석사 직진~김천 남김천IC(선석사)~김천 구미 남김천IC 905번~어산 세종대왕 자태실 선석사~선석사 갈림길~세종대왕 자태실 관광안내소(주차장) 순. 날머리 '월명 성모의 집'에서 들머리 세종대왕 자태실 주차장에 위치한 차를 회수하기 위해서는 택시(054-931-7673)를 불러야 한다. 1만5000원. 대중교통편으로 당일치기는 불가능하다. 노포동종합터미널에서 북대구터미널로 가서 갈아타야 하지만 오후부터 시외버스가 출발한다.
문의=국제신문 산행팀 (051)500-5168 이창우 산행대장
#참고 [인터넷 검색]
경북왜관에서 905번 지방도를 이용해
성주군 초전면 신거리 고개에서 산행시작하여
영암산~누진산~비룡산을 거쳐 칠곡군
약목면 남계리 두만저수지로 하산하였다
▲누진산은 성주군과 칠곡군의 경계를 이루었으나,
정수리 조망은 역시 구미시가만이 한눈에 들어오고,
국토지리정보원에서 발행한 1:50,000 옛 지형도에는
정상석에 적힌 것 같이 누진산이 분명하나,
최근 발행한 지도에는 이름이 선석산으로 바뀌었다.
▲비룡산은 이름 그대로 하늘로 솟구치려는 뾰족한 산세를 자랑한다.
정상 조금 못 미친 바위지대에선 남녘조망도 시원하다.
누진산 출발한 지 한 시간이면 비룡산 좁은 정수리에 올라선다.
오늘 오른 3개의 산 가운데서 가장 낮은 막내며,
칠곡군에만 속한 산이건만 이름에 걸맞는 참으로 훌륭한
조망을 펼쳐 놓았다. 북쪽으로 도립공원 금오산과
구미시가 샅샅이 보이고, 낙동강대교를 지난
낙동강의 유유한 흐름이며, 경부고속국도, 4번 국도,
경부고속철도 등이 부처님 손바닥 보듯 한눈에 보인다.
▲두만지 북쪽 둑가에는 신유(1619~1680) 장군 유적지가 있다.
이 고장 약목 출신인 장군은 인조 23년에 27세의 나이로
무과에 급제해 여러 무직을 거쳤다. 효종 9년(1658년),
청나라의 요청으로 원군을 이끌고 러시아군을
전멸시키는데 큰 공을 세웠다. 이를 나선정벌이라 하며,
장군은 이 원정의 전말을 북정일기라는 기록으로 후세에 남겼다.
이 일기는 우리나라와 러시아간 최초의 접촉에 대한
현지 사령관의 기록이란 점에서 세계적인 사료로 인정되고 있다.
그후 장군은 경상좌병사, 황해병사, 삼도통제사, 포도대장
등을 역임한 후 숙종 6년(1680) 향년 62세로 생을 마감했다.
경상북도 기념물 38호로 지정된 이곳 숭무사에는
신유장군의 영정과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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