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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디오니소스적 긍정과 니힐리즘 극복에
관한 고찰
제주대학교 문기철
1. 들어가는 말
근대사회를 지나 21세기의 최첨단 디지털시대인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사회는 많은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자본주의의 영향과 과학기술의 지속적인 발전에 기인한다. 현대의 인간사회는 자본시장의 논리에 따라서 철저히 지배되고 있으며, 과학 기술력은 이러한 자본주의를 뒷받침해주는 가장 큰 힘이 되어주고 있다.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는 계속해서 발전해, 새로운 자본주의로 발전하고 인간사회에 가장 적합한 것 같은 사회구조로서 자리 잡고 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사회는 인간의 욕구를 넘어서서 욕망을 채워주는 다채로운 생산들을 끊임없이 탄생시킴으로써 발전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같은 발전은 사회적 발전일 뿐이다. 왜냐하면 인간 개인의 삶이 사회적 발전과 항상 같이 발전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 개인의 삶은 사회를 위한 도구로서 무시되고 있다. 또한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의 의미와 가치들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맞춰가기 위해 스스로 일하는 기계로 전락시키고 의미 없는 삶을 향유하고 있다. 여기에서 인간의 철학적 사유는 현실을 망각하는 몽상가적 기질로서 혹은 부유한 자들의 교양에 불과한 것으로 전락하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기계적인 생존을 위해서 자신의 존재의미를 망각하고 무의미를 의미로서 자각하고 살고 있다. 즉, 자신의 주체성을 상실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삶 속에서 인간은 자신의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자기상실의 상태로서 삶의 허무를 느끼며 니힐리즘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니힐리즘의 극복을 자신의 철학 과제로 삼았던 니체의 사상에서 우리들의 이러한 니힐리즘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가능성을 모색해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니체는 서구유럽의 전통철학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인간의 삶에 필연적인 니힐리즘의 도래를 예견한 철학자이다. 니체는 특히 플라톤주의로 대변되는 전통형이상학의 이론을 거부한다. 즉 완전한 이데아의 세계는 인간들이 만들어낸 허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니체는 이러한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세계를 거부했으며,신의 죽음이라는 용어를 빌어서 인간의 척도로서 삶을 이끌어 오던 가치들이 이제는 무가치해졌음을 폭로한다. 니체는 이러한 최고 가치가 무가치함으로 드러나게 될 때 인간에게 니힐리즘의 도래는 필연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최고가치가 무가치한 상태에서 인간은 더 이상 믿고 의존할 가치가 없는 가치상실의 상태에 놓이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경험하지만, 인간은 이전의 생활방식과 사유방식을 과감히 넘어서지 못하고 그 자신의 한계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미래의 삶에 대한 두려움으로 현실에 안주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태에 인간은 자신의 고통스런 현실을
회피할 뿐 극복하려 하지 않는다. 니체는 이러한 인간을 '마지막 인간(derletzte Mensch)이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그러나 니체에게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무엇이다. 즉, 니체에게 인간은 니힐리즘의 지배를 극복하고 자신의 의미와 세
계의 가치를 창조해야 하는 존재이다.
그렇다면 니체에게 있어서 니힐리즘의 극복이란 무엇을 의미하고 그것은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논자는 이 문제를 니체의 사상을 잘 드러내주는 힘에의 의지.위버맨쉬, 운명애 사상을 토대로 해서 비판적으로 고찰해보고자 한다. 논자가 이 논문에서 궁극적으로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첫 번째로, 니체에게 있어서 니힐리즘의 극복은 인간으로 하여금 새로운 삶의 가치를 창조하도록 요청하는 것이며,두 번째로 이러한 니힐리즘의 극복은 고통스러운 삶을 외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디오니소스적 긍정 속에서 비로소 가능하다는 점을 제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논자는 본 논문 2장에서 니힐리즘이란 용어와 그 의미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모되었는가를 살펴보고, 또한 현대에서 상실된 주체성의 문제를 현대의 니힐리즘으로 규정하고 이에 대해서 논해 보고자 한다. 현대에 이르러 급박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안에서 인간은 자신의 삶을 주체적이고 의식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회체제에 단순히 순응함으로써 수동적인 삶을 살아가고
또한 그 삶을 유지하려 한다. 현대인들의 이러한 상태를 주체성의 상실로 바라볼 수 있다. 따라서 현대인의 삶의 모습이 어떻게 수동적인 삶의 면모로 변화되었으며, 이로 인해 발생하는 주체성 상실의 상태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2장에서 다루어 볼 것이다. 그리고 3장에서는 본격적으로 니체의 사상을 다룰 것인데, 여기에서는 그가 니힐리즘의 원인이라고 지적하는 전통 형이상학, 종교, 도덕에 대한 그의 비판을 다루어 볼 것이다. 니체는 니힐리즘의 근본적인 원인을 형이상학, 종교, 도덕에 두는데, 그 이유는 이러한 것들은 인간의 삶을 이끄는 척도로서 절대적인 가치로 인간에게 받아들여져 왔는데, 그에게 있어서 이러한 것들은 삶의 고통을 해결하고자 하는 인간의 심적인 염원에서 만들어진 허구의 세계에 불과하다. 니체는 그러한 것들이 허구임이 드러남에 따라 인간은 필연적으로 니힐리즘을 겪게 된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모든 것의 가치 전도를 시도한다. 따라서 3장에서는 이러한 형이상학, 종교, 도덕들이 왜 허구에 불과한 것이며 이것들이 허구서 드러날 때 도래하는 니힐리즘을 모든 가지의 전도를 통해 극복해야 한다는 니체의 주장에 대하여 논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4장에서는 니체가 새로운 삶의 패러다임으로서 세시하는 디오니소스적 긍정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며, 이러한 디오니소스적 긍정이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해서 논의해 볼 것이다. 니체는 인간의 고통을 해소하기 위한 사유로서 디오니소스와 아폴론의 사유를 제시하고 이 두 가지 사유의 융합을 통해서 인간의 진정한 실존을 이룰 수 있는 비극적 사유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러한 비극적 사유를 예술-형이상학을 정초함을 통해서 이루려고 하였다. 그리나 그는 이러한 형이상학적 작업을 포기하고 후기사상에서는 인간의 개별 실존을 위한 철학을 본격적으로 전개한다. 그는 이러한 자신의 철학을 위해서 디오니소스를 초기사상에 이어서 사용하지만, 후기사상에서 디오니소스가 지닌 의미는 초기사상과는 다르게 전개된다. 그의 후기사상에서 디오니소스의 의미가 변화하는
것은 후기의 디오니소스가 디오니소스적 긍정의 사유로서 변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1장에서는 디오니소스적 긍정이 어떤 것인가를 다루기 위해서 니체가 전개했던 사상과 그의 주장에 대해서 살펴볼 것이다. 마지막으로 5장에서는 니힐리즘이 인간의 자기극복을 위한 계기를 제공해주며 이러한 인간의 자기극복을 디오니소스적 긍정이 어떻게 가능하게 하는지에 대해서 논의해볼 것이다.
6. 나오는 말
지금까지 자는 니힐리즘과 그것의 극복을 위한 니제의 주장을 고찰해 보았다. 여기서 드러난 것은 니체에게 있어서 니힐리즘의 극복은 구체적인 삶 속에서 인간이 자신의 삶의 고통을 극복하는 자기극복이라는 것이다. 또한 인간에게 있어서 이러한 자기극복은 운명애를 바탕으로 하는 디오니소스적 긍정을 통해 자신의 삶에 대한 무한한 긍정과 사랑이 있어야한다는 것을 밝혀보았다. 니체가 니힐리즘에 대해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문제의식은 인간에게 도래한 니힐리즘의 원인은 무엇이며 그것의 극복을 위한 과제가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니체는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던 것들이 무가치한 것으로 드러난 가치상실의 상태를 니힐
리즘으로 규정한다. 이러한 니힐리즘의 원인은 인간을 이끌어 오던 가치들의 무가치함이 폭로됨에 따른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삶을 이끄는 어떤 가치들을 상정하는 이유는 인간이 그러한 가치들이 자기 삶의 고통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심적 믿음에 근거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인간의 고통을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외면하게 함으로써 인간을 더욱 나약하게 만드는 것으로 니체에게 이해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니체는 형이상학, 도덕, 종교를 비판한다. 왜냐하면, 그는 이러한 것들이 인간의 심적 믿음에서 근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인간을 이끄는 질적인 가치로 여겨지게 되면서 인간의 나약한 상태를 조장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이러한 형이상학, 도덕, 종교로 인해 절대적인 것으로 여겨지던 가치들이 우리의 심적 믿음에 근거한 허구로써 드러날 때 인간에게 니힐리즘은 필연적으로 도래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니체가 니힐리즘의 도래를
주장할 때, 우리들이 중점적으로 관심을 두어야 할 점은 바로 니체가 인간의 니힐리즘 상태를 자기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출발점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니체의 생각은 니힐리즘이 인간의 현 상태를 자각하게 하는 성찰적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니힐리즘은 인간의 최고가치가 무가치화 되는 가치상실의 상태에서 비롯되는데, 오히려 그것이 인간의 현 상태를 자각하게 하고 기존의 가치들을 비판하게 해서 인간의 삶의 의지를 상승시켜 줄 계기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니체는 니힐리즘을 인간의 새로운 가치해석 즉, 기존의 가치들을 주체적으로 새롭게 평가할 수 있는 계기로 삼는다.
그러나 이러한 니힐리즘의 상태를 자신의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으려면, 인간은 자신의 삶의 고통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니힐리즘은 인간이 절대적으로 따르던 가치의 상실이기 때문에 그 가치가 더 이상 자신의 고통을 해결해줄 수 없음을 깨닫는 인간은 자신의 가치상실의 상태에서, 즉 니힐리즘의 상태에서 필연적으로 고통을 겪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니체에게 있어서 니힐리즘의 극복은 인간이 자신의 니힐리즘의 상태를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고 자기를 극복할 계기를 만들어 내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런 점에서 니체의 주장은 우리가 고찰해본 것과 같이 인간의 자기극복을 위한 요소들, 즉 운명애와 디오니소스적 긍정을 위주로 전개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살펴 본 디오니소스적 긍정의 사유는 다음과 같은 기능을 통해서 인간의 니힐리즘을 극복하게 한다.
그것은 첫 번째로 인간의 자기극복과 관련된다. 그것은 인간에게 필연적인 삶의 고통을 절대불변의 참된 세계의 도피가 아닌 현실에서 극복할 단초를 제공한다. 따라서 디오니소스적 긍정은 인간이
자신에게 도래한 니힐리즘의 문제를 자신의 구체적인 삶 속에서 적극적으로 극복하게 한다.
두 번째로, 그것은 생성의 세계와 모든 가치전도와 관련된다. 그것은 무한히 변화하는 생성의 세계를 받아들이게 하며, 그 세계 안에서는 절대적인 가치란 무의미하고 그것을 전도해야 함을 깨닫게 한다. 이러한 가치전도를 통해서 인간은 스스로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된다. 따라서 디오니소스적 긍정을 통한 가치전도는 기존의 가치에 대한 맹목적 믿음을 전도하게 함으로써 니힐리즘의 극복을 가능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그것은 힘에의 의지와 관련된다. 인간도 하나의 힘에의 의지인 한에서는 힘에의 의지의 투쟁을 피할 수 없다. 물론 이러한 의지의 투쟁 속에서 우리는 필연적인 고통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고통을 오히려 긍정함으로써 자신의 창조적 의지로 끌어올릴 수 있다. 즉 자신의 의지를 염세적으로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사랑함으로써 자신의 의지를 더욱더 고양시킬 수 있다. 따라서 디오니소스적 긍정은 스스로의 의지를 긍정하고 그것을 창조적 의지로 고양시킴을 통해서 인간의 니힐리즘을 극복하게 한다. 결국, 니힐리즘에 대한 니체의사상은 인간이 자신의 삶의 고통을 이겨내고 이것을 자신의 출발점으로 이해하려는 강력한 긍정의 사유의 가능성을 드러내고자 하는 긍정의 철학이다. 이러한 점에서 니체의 철학은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해준다. 왜냐하면, 그의 철학은 인간의 삶과 인간의 주체적인 의지를 적극적으로 긍정할 것을 강조하는 긍정의 철학이기 때문이다.
특히 니체의 긍정의 철학은 우리에게 인간의 주체성의 문제를 되짚어 볼 자기 이해의 기회를 제공한다. 왜냐하면 그의 철학은 자기 삶의 진정한 주인으로서 인간이 자신의 삶을 긍정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급박한 사회변화와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사색을 등한시 하고 있는 현대인에게 이러한 니체의 긍정의 철학은 인간의 주체성과 진정한 자기 삶의 의미를 다시금 돌아볼 수 있는 자기비판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니체의 이러한 긍정의 철학도 아직 더 논해야할 문제들이 남아있다.
논자가 보기에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문제는 니체가 힘에의 의지로서 세계를 설명하려 하는 것이 또 다른 형이상학의 구축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니체는 처음부터 과격하게 전통 형이상학을 거부한다. 그러나 그의 힘에의 의지 사상 속에는 분명하게 형이상학적인 면모가 들어 있다. 왜냐하면 니체는 존재하는 모든 것의 원리로서 힘에의 의지 사상을 전개하는데, 이렇게 세계를 어떠한 원리로서 설명하려하는 것이 바로 형이상학이 추구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물론 힘에의 의지가 추구하는 것은 절대불변의 존재를 추구하는 형이상학의 세계가 아니라 무한히 변화하는 생성의 세계이지만, 어떤 하나의 원리로서 세계를 설명하려 했다는 점에서 형이상학이 아닌가라는 문제제기의 가능성이 있다. 특히 하이데거는 니체가 존재하는 모든 것을 힘에의 의지로 규정하고 존재자의 근본 성격을 힘에의 의지로 재정립하는 것은 형이상학과 다를 바가 없다고 주장하며 니체를 '서구형이상학의 완성자'라고 비판한다. 하이데거의 주장은 형이상학의 본질이 존재자 전체에 대한 진리를 정립하는 것인데, 니체가 존재하는 모든 것을 가치로 전환하고 가치를 재정립하기 위한 원리로서 힘에의 의지를 수립하고 모든 가치의 전도를 시도하는 것은 그 자체가 형이상학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니체가 힘에의 의지 사상을 존재하는 모든 것의 원리로서 제시하는 한에서, 그의 철학이 형이상학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문제제기가 가능하다. 따라서 니체의 철학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이해와 비판을 위해서 이 문제에 대해 보다 더 많은 연구와 논의들이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