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 총격범, 총기 산 뒤 “난 이제 매우 달라 보여”
美, 열여덟살 되면 총기구입 허용
생일 지나자마자 소총-총알 구입
바이든 “18세가 무기 사는 것 막아야”
미국 텍사스주 유밸디 초등학교 총기 살인범 살바도르 라모스(18)는 18세 생일이 되자마자 총기 판매점에서 합법적으로 총기를 구매했다. 미국 총기규제법과 텍사스 주법에 따르면 18세가 되면 총기 구입이 허용된다.
25일 CNN방송 등에 따르면 라모스는 자신의 18번째 생일(5월 16일) 다음 날인 17일과 20일에 돌격용 소총을 한 정씩 구매했다. 18일에는 총알 375발도 샀다. 라모스는 한 친구에게 총기와 총알을 찍은 사진을 전송하면서 ‘난 이제 매우 달라 보인다. 너는 나를 못 알아볼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동영상 공유 플랫폼인 틱톡 프로필에 “아이들이 실제로 겁을 먹는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사건 당일에는 범행 예고를 여러 차례 했다. 25일 뉴욕타임스(NYT)와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의 브리핑에 따르면 라모스는 24일 범행 30분 전 온라인을 통해 알게 된 독일의 15세 여성에게 ‘할머니를 기다리고 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얼마 뒤 라모스는 ‘나는 할머니 머리를 쐈다’고 보냈고 이어 ‘나는 초등학교에 가서 총을 쏠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전송했다. 실제로 그는 소총과 권총으로 무장한 채 유밸디의 초등학교 4학년 교실에 들어가 어린이 19명과 교사 2명을 살해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5일 총기 규제의 필요성을 호소했다. 그는 “18세 남성이 상점에 들어가 살상용으로 판매되는 무기를 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상식적으로 잘못됐다”고 말했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텍사스 총기난사 희생 어린이 19명, 모두 4학년 같은 반
교사 2명과 좁은 교실 갇힌채 참변
올해 美학교서 총격 137회 발생
슬픔에 잠긴 美 총기난사 희생자 가족들 25일 미국 텍사스주 유밸디에서 열린 총기 난사 사건 희생자 기도회에서 에스메랄다 브라보 씨(가운데)가 손녀 네바에의 영정 사진을 든 채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 네바에의 사촌(왼쪽)도 할머니와 함께 슬픔에 잠겨 있다. 18세인 살바도르 라모스는 전날 한 초등학교 4학년 교실에서 총을 난사해 네바에 등 어린이 19명과 교사 2명을 살해했다. 유밸디=AP 뉴시스
24일 미국 텍사스주 유밸디의 초등학교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의 희생자들은 모두 4학년 같은 반 교실에서 참변을 당했다. 범인이 총을 쏘는 동안 아이들은 좁은 교실에 갇혀 도망가지도 못하고 죽음을 맞은 것이다.
크리스 올리바레스 텍사스주 공공안전부 대변인은 25일 CNN방송에 “범행 현장은 학생 25∼30명에 교사 2명이 있는 작은 교실이었다. 많은 아이들이 갈 곳 없이 교실 안에 함께 있었다”고 말했다. 전날 이 교실에서 어린이 19명과 교사 2명을 살해한 이 지역 고등학생 살바도르 라모스(18)는 교실 앞에서 경찰과 대치하다가 사살됐다.
총격으로 숨진 에이머리 조 가르사(10)의 아빠 앙헬 씨는 사건 당일 페이스북에 “7시간 동안 아이를 찾았지만 소식을 듣지 못했다”고 글을 올렸다가 다음 날 “내 딸을 찾았다. 내 작은 사랑은 지금 저 높은 곳에서 천사들과 함께 날고 있다”고 했다. 그는 “한순간도 당연하게 여기지 말고 당신의 가족을 안아주고, 그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라”고 당부했다. 희생 학생인 렉시 루비오의 부모는 “아이에게 학교 끝나면 데리러 온다고, 사랑한다고 말했는데 그게 작별인사가 될 줄은 몰랐다”고 CNN에 말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국 학교에선 올 들어 137회의 총격 사건이 발생해 역대 최대치를 보였다. 총기 사고가 거의 하루에 한 건씩 발생한 셈이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美 10대의 총기 난사
미국 공화당의 거물 정치인인 밋 롬니 상원의원은 최근 텍사스주 총기 난사 사건의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글을 SNS에 올렸다가 역풍을 맞았다. 마지막에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한마디 덧붙인 것이 빌미가 됐다. 총기 소유 옹호론자들이 “배은망덕하다” “겁쟁이” 같은 비난을 쏟아내며 집중포화에 나선 것. 이들은 롬니 의원이 전미총기협회(NRA)에서 지금까지 1300만 달러(약 165억 원)의 후원금을 받은 사실까지 공개했다. NRA는 총기 규제에 반대해온 미국 내 최대 총기 옹호 단체다.
▷19명의 초등학생 희생자를 낸 이번 총기 난사 사건으로 미국 사회가 또다시 발칵 뒤집혔다. 범인이 18세 청소년이라는 사실도 미국인을 경악시켰다. 얼마나 총기 규제가 느슨하면 10대 청소년까지 총을 손에 넣어 범죄에 사용하느냐는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텍사스주에서는 21세 이상이면 전과나 법적 제한 여부에 관계없이 누구나 권총을 소지할 수 있다. 라이플총의 경우 허가증 없이도 구매가 가능하다.
▷총기 규제에 나서야 한다는 여론이 다시 들끓고 있지만 실제 전망은 어둡다. 20명의 어린이 희생자를 낸 2012년 샌디훅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 이후 지금까지 수차례의 총기 규제 시도가 이어졌지만 성과는 없었다. NRA가 로비력을 총동원해 의회의 총기 규제 관련 입법을 막아온 것은 이미 악명이 높다. NRA의 자금력이 최대 무기다. 2016년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당시 공화당 대선 후보에게 지원한 선거 자금만 7000만 달러에 달했다고 한다.
▷NRA만 탓하기도 어렵다. 미국에서 총기 소유는 개인의 자유이자 권리로 여겨진다. 이를 규제하는 것은 ‘무기 소유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고 규정한 수정헌법 2조 위반이라고 보는 사람도 많다. 총기 난사 사건으로 규제 여론이 높아질 때마다 NRA로 되레 후원금이 몰리는 결과가 이를 방증한다. 뉴욕이나 시카고 같은 대도시를 제외한 상당수 교외지역에서는 아직도 야생동물의 위협이 상존하는 것도 사실이다. 인적이 드문 시골에서는 경찰 공권력이 닿기를 기다릴 틈 없이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고 주민들은 주장한다.
▷그러는 사이 미국은 사람보다 총이 더 많은 나라가 됐다. 인구 100명당 총기 수가 120.5개로 전 세계 1위다. FBI에 따르면 인구밀집지역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 사건은 지난해에만 61건. 2020년에는 교통사고가 아닌 총기 관련 사건사고가 10대와 어린이 사망 원인 1위가 됐다. 그래도 정치권은 “정신병 환자 관리를 더 강화해야 한다”는 식의 해법으로 변죽만 울리고 있다. 로비 자금에 파묻힌 워싱턴 정치의 한계다.
이정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