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골목으로 들어서면
나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들고 긴장이 된다.
골목의 여인들과 눈이 마주칠까 두려워서다.
그곳에 아무도 서 있지 않을 때면,
삼류 영화 제목 같은 술집 간판들을 슬그머니 곁눈질하고
내부 모습이 보고 싶어지는 호기심이 발동되었다.
‘야화’, ‘여왕벌’, ‘산딸기’등의 간판에 노래와 장구,
술이 덧 붙어있다.
그리고 여인들이 머무는 곳의 표현이 느껴진다.
짧은 치마에 몸에 꼭 끼는 옷차림으로 담배를 피우던 여자.
부스스한 머리를 하고 의자에 털썩 앉아 있다가
그 앞을 지나는 우리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그 낯선 시선 곁으로 다섯 살, 아홉 살배기 손자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영어로 재잘거리며 걸어간다.
나는 괜스레 마음이 급해져 "빨리 가자"며
아이들의 손을 재촉한다.
이틀 먼저 도착한 사위에게 숙소 상태를 물었을 때,
주변이 좀 그렇다며 말끝을 흐렸다.
딸아이가 실내 상태는 어떠냐고 묻자 훌륭하다고 했고,
딸은 "그럼 괜찮네"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내 마음은 편치 않았다.
교통과 실내 구조, 가격, 이용 후기까지
꼼꼼히 살피고 예약한 사람이
바로 나였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한국을 찾은 큰딸 내외와
태어나 처음 부모의 고국땅을 밟은 손자들에게
기분 좋은 여행이 되길 바라는 마음 하나뿐이었는데,
시작부터 예상이 빗나가 버렸다.
고궁과 재래시장, 명동과 한옥마을을 염두에 두고
서울 한복판에 자리를 잡았건만,
정작 딸네 식구들은 강남 쪽으로 오갈 일이 더 많았다.
무엇보다 그 골목의 풍경은 나에게도 적잖은 충격이었다.
번쩍이는 서울 도심 바로 뒷골목에
아직도 이런 곳이 남아 있으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아주 오래전에
여름휴가를 떠나려 늦은 밤 영등포역 광장에 나갔던 적이 있다.
짙은 화장을 한 여인들이 남자들에게 다가가 무어라 속삭이면,
남자들이 슬슬 피하던 기이한 모습.
처음 보는 광경에 남편에게 저게 뭐냐고 물었더니
"몰라도 된다"며 말을 아꼈다.
또 언젠가는 남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서울 어느 골목을 지날 때,
쇼윈도 안쪽에 인형처럼 우두커니 앉아 있던
여자들을 보기도 했다.
그때서야 비로소 그런 세상도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았으니,
나는 세상물정에 참 무디고 늦된 편이었다.
이번 여행 내내 하루에도 두세 번씩 가족들과 함께,
때로는 혼자서 그 골목을 오가야 했다.
다행히 숙소 바로 앞 건물 두 곳이
우리가 도착한 다음 날부터 철거를 시작하더니,
사흘째 되던 날엔 말끔하게 가림벽을 쳤다.
덕분에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시간이 덜 민망하게 느껴졌다.
대로변을 가득 채운 고층 빌딩과는
전혀 다른 세상 같은 뒷골목에는
낡은 술집과 여인들이 있었다.
낮에는 고요한 적막 속에 두런두런 말소리가 새어 나오고,
담배를 태우거나 가게 앞을 청소하는 여인들과 마주쳤다.
그들의 삶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우리는
이방인이자 스쳐 지나가는 여행객일 뿐이었다.
찾는 이가 있으니 저곳도 남아 있는 것이겠지만,
과연 생계유지는 될까?
저 일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스치기도 했다.
내가 그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했던 것 역시,
내 안의 편견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삶의 방식을 경멸하거나 탓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고 값싼 동정이나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는 것이,
어쩌면 그들의 삶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존중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만큼 살아보니 알겠다.
누구의 삶도 제 뜻대로만 살아지는 것은 아니며,
저마다의 자리에서 버텨내는 모든 삶에는
함부로 잴 수 없는 무게와 배움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보름간의 길고도 짧았던
그 골목길을 지나는 여행은 끝이 났다.
영문도 모르고 그 길을 지나다녔던 어린 손자들의 기억 속에
그곳이 어떻게 남을지는 알 수 없다.
그저 어린 시절,
부모님의 나라 첫 방문에서 보고 , 느끼고 , 먹은 음식들이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지나친 무수히 많은 골목 중 하나였던 그 골목,
그 여인들이 아무런 의미 없이 흐릿하게 잊히길 바랄 뿐이다.
이번 여행에서 딸 내외와 나 사이의
감성과 문화의 차이를 실감하며,
숙소 선택의 아쉬움을 절실히 느꼈다.
다음 여행의 선택은
온전히 그 아이들의 몫으로 남겨두려 한다.
첫댓글 고국에 다녀가셨군요
77년봄 첫직장이 영등포역전옆이고 버스를 타려면
항상 그앞을 지나쳤지요. 그거리에는 늘 삐끼아줌마들이 서있다가
만만한 사람들보면 잡아채가는데 얼마나 힘이센지 당할수가 없었습니다
한번은 호기심에 따라들어갔다가 짙은 화장을 하고 속옷차림을 여인이
빨리 이불속으로 들어오라고 하는 바람에 얼른 도망나왔답니다
그산님의 그때 그 모습을 상상해 보니 웃음이 나요.
그산님이 만만해 보이기 보다는
순수한 청년으로 보였을것 같아요.
모처럼의 손자들과의 고국 여행에서,
할머니의 마음을 읽습니다.
아녜스님의 속 마음을 들여다 보는 것 같지만,
저 역시 아녜스님과 같은 맘임을 밝힙니다.
아녜스님의 글이 올랐다는 반가움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지금은 살던 곳으로 돌아가셨나 봅니다.
아녜스님,
가족과의 여행에서 즐거운 여행이었기를 바라면서
모처럼의 글, 잘 읽었습니다.^^
집안에 행사,사위 출장의 이유로 식구들의 대이동 이었어요,
한국을 가장 잘 아는 제가
좋은 길잡이가 되고 싶었는 많은 아쉬움이 남네요.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6.11.03 20:44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6.11.03 20:51
한국에 가끔 나오시나 봅니다
한국에 나오면 우리 5060 수필수상방에 연락해서 만날수 있는 기회를 만들면 좋겠어용
충성 우하하하하하
자주는 아니고 드물게 방문해요.
오면 너무바쁘고 정신없이 지내다
가게 됩니다.
다음에 수필방 식구들 만나는 기회를 갖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어제는 장인 장모가 계신 괴산호국원을 다녀왔습니다. 육군대위셨던 장인이 사기를 당해 퇴직금을 날리고 적은 돈으로 장모님이 시작한게 용산역 여인숙이였답니다.
아마도 어른들에게는 그런 홍등가 지역의 추억은 오래 갑니다. 서울오셔서 어디서 주무셨는지 모르지만 아이들은 잘모를수도 있구요.
아녜스님이 모처럼 고국여행을 하고 가셨군요. 즐거우셨으리라 믿습니다.
아이들이 아직 어리니 잘 모를것 같아요..
저는 동대문 근처로 숙소를 잡았지요.
청계천이 가까워 아침 산책하기엔
저는 좋았어요.
아녜스 님 가는 길엔 모퉁이를 돌때마다
단아한 수필 한 편이 나온다고 했었는데
그냥 무심히 지나칠 곳에서 생각이 한참 머물렀던 모양입니다.
날이 점점 쌀쌀해지는데
그런 곳은 더 일찍 쌀쌀해지기도 하지요.
예전엔 비난의 눈길로 보았을텐데
이젠 그들만의 스토리를 알게 되더라도
다 이해 할 수 있을것 같아요.
머지않아 사라질 터전으로 보여졌어요 .
서울구경 갈적엔 으례히 종로3가전철역 이용하는데
나이지긋한 여자분들 골목에서 많이볼수 있습니다.
처음엔 그걸 모르고서 비어있는 의자에 앉아서
고궁 발걸음을 쉬곤 하였는데
낭중에 알고서 골목
으로는 들어가지 않고 지나칩니다.
모국방문 하셨네요.
그런 경험이 있으셨네요.
종로쪽에 유난히 나이 드신 분들이
많이 보였어요.
약국이 많아셔 그런지 ~
공원이 있어서인지~
이번엔 좀 오랜만의 방문이었어요.
시장서 같은 성당분을 만날 정도로 가을엔
고국 나들이를 많이하죠.
오랜만에 한국에 나온 딸 내외와 어린 손주들을 위해 하나하나 신경 쓰며 숙소를 잡으셨을 텐데, 뜻밖에 마주친 낯선 골목 풍경 때문에 마음이 많이 쓰이셨을 것 같아요.
하지만 그 골목을 지나치며 그분들의 삶을 '저마다의 자리에서 버텨내는 삶의 무게'로 바라보시는 아네스 님의 마음이 참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가족분들과 함께 보낸 그 보름간의 시간이 아네스 님과 손주들 모두에게 오래도록 기억될 뜻깊은 여정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차분하고 아름다운 글, 잘 읽었습니다.
자주 오는 저보다 길을 더 찿아 다니는걸 보고
칭찬을 많이 했어요.
핸드폰 하나면 뭐든 척척 하더군요.
저는 지금도 여전히 지도도 볼 줄 몰라
물어물어 다녀요 .
베이꽃님이 수필방에 오셔서
수필방 활기가 가득해져서 좋아요
아녜스님 한국에 다녀가셨나 봐요.
온 가족이 함께라 더욱 의미깊은 여행 이었겠어요.
그 골목에서 느낀 이질감에 혼란스러웠군요.
번화가 한복판에 그런 음지가 있다니 두 얼굴을 한 서울 이군요.^^
나라마다 뒷골목의 문화는 어둡겠지요.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라 좀 염려 스러웠어요.
해솔정님 , 늘 반갑습니다.
한국을 다녀오셨나 보군요.
다 정리된 줄 알았더니 그런 곳이
아직 남아 있군요.
저는 그저 한국 나들이를 할 수
있음이 부러울 뿐입니다. ㅎ
새벽이랑 한국 가는것은 불가능인가요.?
한국에서 마음자리님을 기다리고 있으니
천천히 계획을 세워 보시면 조만간
이루어지리라 생각됩니다.
고국을 다녀가셨군요.
숙소를 정하신 마음이 잠시 불편 하셨곘지만,
그녀들의 삶을 잠시 보고, 이만큼 살아봤으니~~라며 나름 고찰하신 부분은 존경마져 드는 대목입니다.
어린 손자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을거에요.
어두운 부분은 기억속에 사라지길 바라는 마음에 저도 동감이에요.
아마도 기억에 없을 수도 있을거에요.
짧은 가을을 고국에서 보내셨으니,
돌아가셔서 또 한 페이지 추억을 안고 행복하시길 바래요.
저도 커쇼님과 같은 생각이예요.
집안 행사가 있어 두딸이랑 두손자 , 두사위
모두 함께 모였어요.
처음 있는 일이었고 앞으로도 쉽지 않을
특별한 기회였답니다.
커쇼님 , 반가워요.
방석집 골목이군요. 이젠 보기 힘든 풍경입니다. 일레븐클럽이라고도 불렀어요. 젓가락 두 개로 장단을 맞추거든요.
월급을 날린 추억이 있습니다.
예상외의 고든의 젊른날의 경험을 들려 두시네요
방석집, 일레븐 클럽 명칭이 재미있어요.
누군가에게는 삶의 터전이었겠네요
자녀분들 오랫만의 귀국이
숙소주변 풍경으로 걱정였어도
귀한 추억 될겁니다
나도 내일이면 떠나는 동생과
광장시장 청계천 돌다가
기름범벅 빈대떡 먹고서
속이 느글거려 혼났어요
밀려다니는 관광객들 먹는
별맛 없어보이는 노점음식들
걱정됐습니다
동생이 즉흥적 두어개 산거도
바가지 썻고요
울동네 와서야 비로소
와~이동네가 좋구나 ㅎㅎ
단풍이 아주 이뿌네요
동생과 즐거운 시간 많이
갖으셨겠네요.
광장 시장이 바로 옆이라 꽈배기
호떡 , 김밥 사 먹었어요.
애들이 한번은 해 보고 싶다 해서요.
한국인보다 외국인이 많아서
놀라웠고요, 한편으로는
자랑스럽게 느껴졌습니다.
ㅎㅎㅎ
예전에 그골목에 들어서 놀란적이 있었지요
아련히 그여인들의 모습이 떠오르는 시간입니다
가을 하늘 청명한 지금
언니를 만나는 그날이 기다려집니다
언니 감기 조심하시고 행복한 나날이 되세용
오랜만이네 ㅎㅎ
좋은 계절 , 좋은 날
우린 또 만나야지 .
고등학교때 부터 통학을했던 나로선
아주 익숙한 풍경속 거리 입니다.
길가 양쪽으로 허술한 포장 마차가 줄지어 잇었고. 버스와 기차를
번갈아 통학했던 나 . 당시 나는 세상이 모두 그렇게 살아가는줄 알앗는데
70년대 말 구로동 출퇴근길을 본적 있는지요 . 산업 여전사들 에 발길
군인일때는 군대(원주) 휴가 집으로 가는길은 원주 _ 청량리 _ 수원 _ 평택
대단한 한국 이엿지요. 짧지않은 세월을 미국에서 살아가지만 한번도 그런 풍경은 접하지 못했으니요.
지금도 한국에 계신지요?
학창시절 , 여러 삶의 풍경을 보면서
많은 느낌을 갖으셨네요.
저는 세상을 좀 늦게 , 지금도 여전히
잘 모르기에 늘 뒤쳐져 사는것 같습니다.
예 -
곧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