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어머니는 맷돌을 갈아서 별미로 콩비지나 순두부를 만들어 주시곤 했다. 가끔 나도 어머니와 마주 앉아 맷돌을 돌렸던 기억이 난다. 맷돌은 곡식을 갈아서 가루로 만들거나 물에 불린 곡식 등을 갈 때 사용하는 도구 중 하나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주변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맷돌을 가지고 있는 집이 거의 없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면서 "나를 믿는 이 보잘것없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사람은 그 목에 연자맷돌을 달고 깊은 바다에 던져져 죽는 편이 오히려 나을 것이다"(마태 18,6 참조)고 하셨다.
여기서 연자맷돌을 사람에게 매달아 깊은 바다에 빠뜨린다는 것은 다시는 살아날 수 없는 아주 깊은 곳으로 보낸다는 의미다. 물론 이러한 체벌이 유다인 사회에서 실제로 시행됐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고대 시리아, 로마, 마케도니아, 그리스에서는 이 체벌을 실제로 사용했다고 한다. 이 체벌은 흉악범이나 반역죄, 신성 모독죄를 범한 자들에게 시행됐다.
예수님 가르침에 등장하는 연자맷돌은 보통 가정에서 사용하는 맷돌보다 크기가 훨씬 큰 것으로 짐승이 돌려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커다란 연자맷돌은 나귀나 소 같은 짐승과 노예나 죄수들이 돌리는 게 일반적이었다. 블레셋 사람들이 삼손을 잡아서 장님으로 만든 후 옥중에서 맷돌을 돌리게 하는데 이것이 연자맷돌이었다(판관 16,21 참조).
남자들이 일을 하러 들로 나가게 되면 집에 남은 여자들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맷돌질이었다. 곡식을 갈아서 가루로 만드는 일은 여성들 몫이었는데 매우 고된 노동이었다. 유다 여성들은 깨끗한 천을 깔고 맷돌을 그 위에 올려놓았다.
무게가 가벼운 검은 현무암을 이용해서 만들어진 유다인들의 맷돌은 직경이 약 30~40cm 정도였다. 돌 두개로 이루어진 것은 비슷하지만 옛날 우리가 사용하던 맷돌과는 형태가 조금 달랐다. 맷돌의 위짝은 우리의 전통 맷돌처럼 나무로 만든 손잡이가 달려 있어서 돌리기가 편리했다.
그리고 중앙에는 넓은 구멍이 뚫려 있어서 그곳으로 곡식을 밀어넣었다. 형편이 어려운 가정에서는 보리를, 그리고 여유가 있으면 밀을 갈았다. 구멍으로 들어간 곡식은 손잡이가 달린 위짝이 돌아가면서 잘게 갈려서 옆으로 빠져 나왔다. 더 고운 가루를 얻으려면 여러 번 맷돌에 갈아야 했다.
맷돌은 혼자 돌릴 수 있는 것부터 동물의 힘을 빌려야 사용할 수 있는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가끔 한 사람이 맷돌을 갈기도 했지만 보통은 두 사람이 맷돌을 사이에 두고 바닥에 앉아서 맷돌 손잡이를 주고받으면서 갈았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재림하실 때 상황을 "두 여자가 맷돌을 갈고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둔다"(마태 24,41 참조)는 비유로 말씀하셨다.
이처럼 맷돌은 이스라엘 가정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적 필수품에 속했다. 우리는 곡식 껍질을 벗겨서 통으로 조리하지만 팔레스타인에서는 끼니마다 곡식을 곱게 갈아서 빵을 구워야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다인들에게 맷돌은 평범한 살림도구가 아니었다. 모세 율법도 다른 사람의 맷돌을 저당 잡지 못하도록 금지하고 있다. "맷돌은커녕 맷돌 위짝도 저당 잡힐 수 없다. 그것은 남의 목숨을 저당 잡는 일이다"(신명 24,6 참조).
이처럼 맷돌은 생활에서 아주 중요한 필수품이었던 것이다. 집안에서 들려오는 맷돌가는 소리는 사람들이 정상적 삶을 살고 있음을 알리는 정겨운 소리였고, 그것이 사라지면 폐가가 됐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성서에서 맷돌 소리가 사라진다는 것은 하느님이 내리신 심판의 징조(예레 25,10 참조)와 도시의 멸망(묵시 18,22 참조)을 상징했다.
- 서울대교구 허영엽 마티아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