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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동안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통곡하며 회개
초등학교 2학년 때 부모님이 이혼을 하셨다.
집안의 불화 때문인지 초등 4학년 때 한글을 뗄 정도로
나는 모든 면에서 다른 아이들보다 느렸다.
유일하게 잘하는 것은 욕하기, 말썽피우기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의 짱이었던 나는 중학교 입학 후에 큰 싸움을 일으켜 시골 할머니 댁으로 전학을 갔는데 중학교 3학년 때는 그곳 경찰서를 제 집 안방처럼 들락거렸다.
고등학교를 목포로 가게 되었는데 18세에 깡패의 세계에 뛰어들어 진도, 목포, 광주 3개 지역의
짱이 되었다.
나만 지나가면 “쟤가 한용주야?” 하며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하자 기뻤다.
누구에게도 관심을 받지 못하던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았다.
어쨌든 그렇게 살고 있었던 나를 어머니는 인천의 한 학교로 전학시키셨다.
그러나 선생님들과 마찰이 생겨 다시 목포로 내려갔고
5개월여 동안 3개 지역의 깡패생활을 하면서
못된 짓이란 못된 짓은 다 하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대 선배가 와서 했던 말 한마디가 내 마음에 변화를
일으켰다.
아들이 가정통신문란에 아버지의 직업을 무직으로 썼다
는 것이었다. ‘나도 이렇게 살다가는 저 선배처럼
되겠다’는 생각에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집에 들어오는 조건으로 어머니가 다니는
교회 목사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고 했다.
목사님은 교회에서 45일간 근신하라는 명령을 내리셨
고, 교회에 들어간 지 4일 만에 흰돌산수양관으로
수련회를 가게 되었다.
흰돌산 수양관에 도착한 첫날, 찬양을 들으면서부터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또 윤석전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들으면서
왜 그렇게 쏟아지는 눈물을 절제할 수가 없던지....
내가 지은 죄가 너무 많았나 보다.
3일 동안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통곡하면서 회개했다.
은사집회 때는 방언 은사도 받았다.
수련회가 끝나고 다시 교회로 돌아온 나는 무조건 순종했다.
교회의 머슴이라는 소리까지 들어가며 일을 했다.
교회에 큰 행사가 있었을 때마다 주차장 안내며,
식당에서 음식 나르는 일까지 모든 일에 순종했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칭찬해 주었다.
그렇게 근신을 마치고 더 교회에 머물다
6개월 만에 집에 들어갔다.
나는 올해 20세지만 학교를 2년 쉬었기 때문에 고등학교 2학년이다.
작년 흰돌산수양관에 다녀 온 후로 아직까지
결석 조퇴 같은 건 한번도 해보지 않았고
말썽도 피우지 않았다.
공부로는 대학에 갈 수가 없어 운동을 시작했다.
힘이 들지만 운동으로 주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
힘든 것을 참고 열심히 하고 있다.
이번 하계성회 때도 은혜받고 오면서 간증할 생각을 했다.
작년에 은혜받고 1년 동안 나를 이만큼 변하게 해
주신 주님을 떳떳이 간증하고 싶었다.
아직은 너무 부족하고 모자라지만 언젠간 나도
하나님의 이름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나를 변화시켜주신 하나님!!!! 참 감사합니다....
그리고 윤석전 목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
첫댓글 사람들은 포기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포기하시지 않으시고 붙잡으실때 변화가 일어나죠??/승리를 축하드립니다,
하나님 안에서 참 삶의 가치를 발견하고 성실히 삶을 채워가는 은혜의 복된 삶이 늘 주님 안에서 끝까지 이어지기를 축복합니다 ☆
당신의 삶 속에서 역사하시는 주님 만을 바라보시며 승리 하시길 기도 합니다.
좋은 간증글 감사합니다.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자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