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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마태복음 21:1~3
모든 만물과 사람이 존재하게 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시기 위함입니다. 모든 사람은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을 하나님께 부여받고 태어납니다. 그 일에 쓰시겠다(주님께서 필요 하시 답니다). 하실 때 “안멘. 주여 저를 사용하옵소서.” 라고 고백하고 나오는 자가 되려면 각자에게 부여하신 그릇을 잘 준비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하나님이 필요하실 때 사용하시는 그릇을 준비하고,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할 준비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각자의 위치, 일, 환경과 역할이 다를 수 있으나 주가 쓰시겠다. 하실 때 즉각 내어드릴 수 있는 준비된 자가 되기 위해 예수님 안에 거하고, 진리의 말씀이 내 안에 머물게 해야 하는 것은 모두에게 동일한 과제입니다. 이 일을 가장 잘 해나가는 주향기교회 성도님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의 마지막 한 주를 출발하는 시작의 말씀입니다. 이 한주의 시간의 예수님의 행적의 말씀이 4복음서에 3/1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오늘 본문의 말씀이 유명한 말씀입니다. 주가 쓰시겠다. 이 말씀을 함부로 사용해서도 안 되고, 거절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저는 언제나 이 말씀이 임할 때 두렵고 떨림으로, 때론 불편함으로 행합니다. 엄청 조심합니다. 제가 목회자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고 난 이후 지금까지 수많은 본문으로 말씀을 전했는데요. 그러나 이 말씀은 처음 전합니다. 왜냐하면 주가 쓰시겠다는 말씀을 전하는 것이 그 만큼 두려운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두 제자에게 내려진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예수님의 명령은 어린 나귀를 끌어오라. 왜 가져가냐고(왜 제가요, 왜 제 것을요.) 하면 주가 쓰시겠다. 말해라.
이 명령은 두 제자에게 굉장히 부담이 되는 명령입니다. 돈을 주고 사오거나, 빌려와라 하면 매우 쉬웠을 텐데 그냥 가져오라는 것입니다.
오천명이 넘는 이들이 저녁 먹을 것이 없을 때 너희들이 주어라 하신 명령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제자들에 능력을 보이시려고 하신 것이 아니라 순종을 가르치시고, 그 순종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에 대하여 가르쳐 주시고자 하셨습니다. 즉 말씀의 순종할 때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진다는 사실과 함께 그 순종한 대상자뿐만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과 그 이후에 태어날 미래의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두가지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한 제자들은 굉장한 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주가 쓰시겠다. 즉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것은 아무리 힘들고 부담이 된다할지라도 그대로 이루어지는 구나. 순종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환경이 되는 구나! 예수님의 말씀이 그대로 됨을 경험한 이들은 그 말씀을 생명과 같이 지켰고, 전했고, 소유하도록 자신의 생명을 내놓으면서까지 권면을 하였습니다.
주가 쓰시겠다. 이 말씀에 순종하려면 우리들이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도 내 영혼에 주의 말씀이 내 발의 빛이 됨으로 애타게 주님을 찾고, 주의 말씀이 내 생명의 근원이 됨으로 내 육체가 애타게 주님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 때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이 찾으실 때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주소서” 라고 대답한 것처럼 순종으로 나오거나, 내 자신이 인지하지 못했음에도 자동적으로 순종하는 그런 사람이 됩니다.
주가 쓰시겠다. 이 말씀이 임할 때 누구나 부담이 갑니다. 그러나 응답은 우리들이 하지만, 그 일을 진행하시고, 이끌어 가시는 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고 시행 하십니다. 사람의 시선에서는 잘하고 못하고가 있을 수 있으나 하나님의 시선에서는 모두에게 “수고했다. 참 잘했다.” 라고 인정해 주십니다. 주가 쓰시겠다. 이 말씀에 아멘으로 언제나 화답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일들 중에서 지금까지 주가 쓰시겠다 하라. 이 말씀을 성도들에게 요구하라 하실 때가 가장 힘들고 불편했습니다. 이것은 어떤 일을 시키거나 요구하는 것이잖아요. 모두 희생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일에 대한 순종 후 돌아오는 것이 감사와 칭찬의 말 보다는 원망과 상처의 말이 더 많이 돌아올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때 우리 큰 누님께서 제가 어떤 성도에게 이렇게 하세요. 라고 통화한 내용을 들으시고 그거 왜 성도에게 그렇게 시켜요. 그렇게 하지 말고 앞으로 그냥 무시하거나, 목사님의 것으로 하세요. 나중에 다 말이 나와요. 그게 흠이 되어 제단에서 쫓겨나는 목사님들 많이 봤어요. 라고 말렸습니다. 그때 제가 이렇게 말했어요. 알아요. 그런데 이 문제를 가지고 기도하고 또 기도해도 이렇게 해야 그가 산다고 하시는데 어떻게 해요. 이게 성도들이 죽어도 깨달을 수 없는 목사가 져야하는 짐 이예요. 그 이후로부터 큰 누님이 저를 진정한 목사로 대하시기 시작했습니다.
가끔 생각합니다. 그때 누님의 말을 따르고 그 일을 더 밀어붙이지 않았으면~~ 그러나 돌아오는 결과는 누님의 말이 다 맞았습니다. 그 일로 그는 지금도 살아 있지만 이 문제가 엄청난 상처가 되어 긴 세월이 지난 지금 현재도 저를 힘들게 하는 이유로 남아 있어요.
그래서 종종 찾아봅니다. 만약 성도들이 나를 쫒아내면 난 어떻게 아내와 자식을 먹일 수 있을까?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30,40대에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았는데 현재는 거의 없더라고요. 그래서 작년에 아내에게 이런 거 배워봐 하고 권했는데 듣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처음 했던 것처럼 현재도 하나님만 바라보고 기도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재산이 하나님밖에 없는 목사들에게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의 두려움이기 때문입니다.
주가 쓰시겠다. 이 말씀을 전달 받는 성도의 입장에서도 매우 부담이가고 스트레스를 동반하게 되지만 듣고 순종하는 성도들에게는 상상 이상의 축복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엄청 즐거운 것으로 받아들이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이때는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전도사 앞에 대놓고 그래요. 목사님도 아니고 목사가 또 무엇인가 필요한 게 있어서 저렇게 떠드는 거야 하고 부정적적으로 받아들이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전하는 이에게는 아무것도 없어요. 그 일을 위해 부름 받았기 때문이죠. 이 말씀을 전하는 것과 또한 이것을 성도들에게 요구하셨을 때 다른 목사님들은 모르지만 저는 22년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힘들고 불편합니다.
그런데 전도사 때는 마음껏 즐기면서 했습니다. 나가라고 하면 나가면되지 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땐 저만 책임지면 되었으니까요. 그때만큼 과감하게 행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전도사 때는 모든 성도님들이 사랑으로 받아 주시더라고요. 이상한 것은 목사님과 똑 같은 말을 해도 담임목사님이 할 때는 곁눈질로 보고 사랑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의심하더라고요. 전도사 때는 다 담임목사님이 시켜서 한 일이거든요. 그래서 지금도 지나온 모든 교회 성도님들에게 아직도 저는 인기가 만고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여전히 무한 사랑과 저의 사역을 지지하고, 돕고, 기도를 해주고 계십니다.
주가 쓰시겠다. 이 말씀이 성전에 필요한 것이나 목회에 필요한 것을 교회 재정으로 해결하면 참 쉬운데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누구누구에게 해라 하면 그게 힘든 거예요. 돈이 들거나, 그가 시간을 들여야 하는 것이나, 돈도 없고, 가정에 문제도 생기고, 몸 상태가 별로인데 꼭 그럴 때 일을 시키래요. 이럴 때 엄청 괴로워요. 끝내 순종하지만 그 과정은 많이 힘들었습니다. 제가 그것을 요구하는 순종의 행동이 빠르면 3주 늦으면 2달 정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한 가지 일만 실 예로 들겠습니다. 가장 편한 것으로. 이일은 제가 6개월 순종하지 않았을 때 하나님께서 직접 그를 저의 앞으로 데려오셔서 그 일을 하게 만드신 유일한 것입니다.
발이 너무나 아파서 한번은 신발을 사 신어야겠다. 하고 마음을 먹었는데. 바로그때 누구에게 사오라 해라. 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때 그는 많이 힘들고 어려운 곤경에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것을 무시하고 성경이 에게 슬리퍼를 사달라고 해서 좋은 것을 받았습니다. 그것으로 신을 대처하고 그냥 지냈어요. 그랬더니 많이 책망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이래이래서 그랬습니다. 라고 해명을 했어요. 6개월 많은 시간이 지났는데 그가 와서 목사님 필요하신 거 없으세요. 그때 생각이 났어요. 주가 쓰시겠다. 그 성도가 그 말을 할 때 엄청나게 부끄럽고 그에게 죄송했어요. 그래서 용기를 내어 말했습니다.
그래서 있지. 신발. 그랬더니 이것으로 사시고 모자라면 말씀하세요. 라고 주고 가는 거예요. 발이 아파서 설교 때 서 있기도 힘들었는데 그 성도 때문에 그 신발을 신고 건강해져서 현재까지 발이 아프지 않아요. 하나님은 저의 발이 아프지 않아 주의 일에 열심히 하는 모든 열매를 그에게 베풀어 주셨어요. 그것이 “주가 쓰시겠다” 하신 일에 동참과 순종한 결과입니다. 다시 말하면 중보의 사역자들이 누리는 복입니다.
그런데 그 이후 많은 세월이 흘렀는데요. 그렇게 심은 성도는 심은 그 해부터 현재까지 하나님의 복 주심을 안고 살고 있어요. 그래서 제가 지금까지 그 신을 신고 버리지 않아요. 제가 신을 사용할 때마다 하나님은 기억하시는 거예요. 또는 건강한 발로 주의 일을 감당할 때마다 그의 순종을 기억하셔서 그에게 좋은 것이 항상 떠나지 않게 하시는 거예요.
교회 일도 그렇습니다. 혼자 다 할 수 있는 데 같이하라, 나눠줘라, 누구누구가 하게하라. 그래서 그렇게 시작하면 일은 잘 끝나요. 그런데 말이 참 많아요. 더 힘들고 괴로울 때가 참 많아요. 어떨 때는 하나님께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께서 하라고 하셔서 순종했더니 이렇게 되었어요. 혼자, 아내와 같이 둘이 했으면 속도 편하고, 그 어떤 말도 듣지 않았을 텐데요. 순종한 것을 후회합니다.
그랬더니 그 주에 일한 그들에게 열매가 맺히고, 그 열매로 그들이 행복해지는 것을 눈으로 보고, 그들의 입으로 말함을 듣게 해 주셨습니다. 그때 제단에 엎드려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끝까지 알고도, 모르고도, 의식적으로나 무의식 적으로나 실천하게 해주세요. 하나님의 배려하심의 은혜가 끊이지 않게 도와주세요. 이렇게 기도하며 살아요. 그 이유가 성도들이 잘되는 비결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주가 쓰시겠다 하시는 말씀을 하실 때 마다 제가 엄청 불편해도 움직이는 이유입니다.
주가 쓰시겠다. 이 일에 공개적으로 하는 것도 있고, 개인적으로 불러서 하는 것도 있고, 때로는 강압적으로 할 때도 있습니다. 다 달라요. 생명이 달린 일에는 그의 생각을 무시하고 제가 생각해도 이상하리만큼 밀어붙이게 하셨고, 가야하는 길이 다를 때는 설득에 설득을 더하게 하셨고, 두 가지 길을 선택해야 할 때는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것을 선택할 수 있기를 끊임없이 밤을 설치며 기도하게 하셨고, 힘들고 고난의 가시밭 같은 삶을 지나야할 때는 그 길에 찔림과 피 흘림이 없도록 이끌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많은 오해와 원망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그 일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은총을 받았습니다.
그 대상자들은 그 길에서 즐거움으로, 때론 무시와 천대와 냉대로, 또는 불순종으로 시작해서 마지못해 순종처럼 하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이렇게 표현되어진 것을 저는 이해합니다. 그 일을 행하는 저 역시도 이성적으로 이해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지금 현재를 보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라고 고백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 싸움 전에 이렇게 해 주마 하셨던 것을 거의 다 본인들이 받아 살고 있기 때문이고, 교회도 성도님들의 순종으로 22년 동안 굳건히 지켜내고 여전히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건물로 지켜 주셨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19의 사태로 수많은 교회가 문을 닫고 건물이 경매로 넘어갔는데, 작고 작은 주향기교회는 건재하잖아요.
저는 이 모든 일을 행할 때 제가 무식하고 단순해서, 좀 무식하게 일을 해서 성도님들이 힘들어 하셨지만 주가 쓰시겠다 하시는 말씀에 순종한 결과로 주신 축복이었음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제 성도님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주가 쓰시겠다. 하실 때 금 그릇은 금 그릇으로 나오고, 은그릇은 은그릇으로 나오고, 나무그릇은 나무그릇으로 나오고, 질그릇은 질그릇으로 나오는 거예요. 저는 여러분들이 하나님이 주셔서 소유하고 있는 이 그릇의 생활이 절박한 처지에 있었을 때나, 견딤을 넘어 여유와 풍요가 넘치고 있을 그때에도 여전히 변함없이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주소서” 라고 고백이 되는 믿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하나님의 생각에 맞추어 일할 자를 찾으시고 계십니다. 우리들은 그 찾으심에 순종으로 화답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은혜의 폭풍 속에서 항상 생활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