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인의 시세계는 누가 쓴다 해도 그 시대의 요구와 의미, 그 지지(紙誌)의 요구조건, 집필자의 개성(個性) 등을 통해 표출되는 글이기 때문에 견해 차이가 생길 수도 있고, 작품을 보는 눈의 깊이와 마음의 정적 감정의 정리 등으로 독자들의 눈을 맑게 또는 흐리게도 할 수 있는 것이다. 필자는 ‘백수정완영 론’ 원고청탁 받을 때 김 회장에게 자료도 없고 둔한 평필로 대가의 글을 어떻게 논할 수가 있겠는가? 한사코 거절한 적이 있다. 막다른 골목까지 와서야 어쩔 수 없이 써야 된다는 청탁을 다시 받아서 필을 잡기는 했으나 만족한 정평이 될지, 아니면 백수 선생의 훌륭한 글에 사족이 될까 우려된다.
필자가 모 중․고등학교장으로 봉직하던 당시 그곳의 시인이 시비를 세우면서 시비 제막식에서 한 말을 생각해 본다.
“내가 죽으면 누가 내 시비를 세워줄 사람이 있겠는가? 나는 내가 살아있을 때 내 시비를 다 세우고 죽겠다.”
매우 중요한 말이다. 아무리 훌륭한 글을 써 놓아도 독자들이 읽어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 글이 되고, 아무리 훌륭한 돌로 만들어 세운 시비도 후세인의 평이 좋지 못한 석비(石碑)는 뽑아서 돌다리를 만드는 것만 못하지 않겠는가? 이 글을 쓰면서도 무서운 말 한 마디가 생각나서 평필을 잡기가 겁난다.
백수 정완영의 시조전집 연보에 의하면 첫시집<採春譜>(1969), <墨鷺圖>(1972), <失日의 銘>(1974), 동시조집<꽃가지를 흔들듯이>(1978), 회갑기념으로 <白水詩選>(1979), 수필집<다홍치마에 씨 받아라>(1980), <시조창작법>(1981),<고시조감상>(1982),<蓮과 바람>(1984), <시조산책>(1985), <古稀紀念詞華集(1989), <蘭보다 푸른 돌>(1990), 수상집<茶 한 잔의 갈증>(1992), <오동잎 그늘에 서서>(1994), 서간문집<白水散稿>(1995),수상집<나비야 청산 가자>(1995), 동시조집<엄마 목소리>(1998),<이승의 등불>(2001), <세월이 무엇입니까>(2001), 일기초<하늘 구만리>(2003), 白水書簡集<기러기 葉信>(2004), 그리고 제13시조집<내 손녀 然奵에게>(2005) 등을 출간하였다.
이렇듯 한 시인이 평생을 살면서 많은 저서와 시집을 출간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또한 작품세계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고 자기 자신의 시세계를 누구나 흉내는 낼 수 있어도 그의 시 세계를 범접할 수 없는 확실한 범위를 확보한 시인은 드문 일이다.
어제같이 문단에 나와서 오늘같이 비개덩이 같은 시집을 묶어내고 내일같이 평필을 잡는 시인에게 따끔한 충고도 잊지 아니한 백수 정완영은 우리 문인들에게 있어서 우러러 보이는 태산이요 푸르게 내다 볼 수 있는 드넓은 대양이다.
白水 정완영 시조의 작품을 언급해 보자.
그 많은 훌륭한 작품을 다 언급할 수는 없고 필자가 시조집에서 눈에 띄는 작품을 얻어 단단하게 감동을 받은 것을 함께 감상하는 방법적인 면을 취하고 싶다.
행여나 다칠세라 너를 안고 줄 고르면
떨리는 열 손가락 마디마디 애인 사랑
손닿자 애절히 우는 서러운 내 가얏고여.
둥기둥 줄이 울면 초가삼간 달이 뜨고
흐느껴 목 메이면 꽃잎도 떨리는데
푸른 물 흐르는 정에 눈물 비친 흰 옷자락.
통곡도 다 못하여 하늘은 멍들어도
피맺힌 열두 줄은 굽이굽이 애정인데
청산아 왜 말이 없이 鶴처럼 여위느냐.
-----------------------------------------<祖國>전문
첫 작품집<採春譜>(1969)에 실린 작품 <祖國>은 1962년에 ‘조선일보신춘문예’ 당선됨으로써 우리 시조 단에 큰 별로 등장하게 되었다. 특히 이 작품은 백수 정완영의 출세작이면서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수록된 작품이다. 국어교과서 작품해설을 따르면 3수 연시조로 구성된 작품으로 첫째 수는-도입부분으로 줄을 고르고 가야금 연주를 시작하는 순간을 떠 올릴 수 있으며 손가락이 닿자 애절하게 우는 서러운 내 가야금이라고 했다. 즉 가야금 연주가 시작되는 그 순간 떠오르는 분단된 조국의 현실, 그렇지만 우리는 사랑해야만 하는 조국을 노래하고 있다. 둘째 수는 전개부분으로 가야금의 연주가 한창 진행되는 상황을 노래하고 있다. 둥기둥 가야금이 울면 초가삼간 그 지붕 위에 달이 뜨는 상황의식으로 가장 한국적인 풍경을 그리고 있으며 초장의 선율에서 느껴지는 조국의 과거에 대한 현실이 중장의 목 메이는 조국 현실과 대조를 이루고 있으면서 청각과 시각적 이미지가 서로 교차되어 흐르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 겨레의 한(恨)스러운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셋째 수에서는 결말부분으로 우리의 노래가 아직 절정에 이르기도 전에 하늘은 멍이 들지만 목숨처럼 아끼던 가야금이므로 그것의 선율을 통해 분단된 우리 조국의 현실과 통일에 대한 간절한 바람을 담고 있는 작품으로 셋째 수는 작품의 주제부분이라고 하겠다.
중학교 교과서에는 작품 <부자 상(夫子像)>이 실려 있어서 학생들에게 많이 읽히고 지도되고 있다.
다음은 작품집 <墨鷺圖>(1972)에 실린 작품이다.
매양 오던 그 산이요 매양 보던 그 절인데도
철따라 따로 보임은 한갓 마음의 탓이랄까
오늘은 외줄기 길을 낙엽마저 묻었고나.
뻐꾸기 너무 울어 싸 절터가 무겁더니
꽃이며 잎이며 다 지고 산 날이 적막해 좋아라
허전한 먹물 장삼을 입고 숲을 거닐자.
오가는 윤회의 길에 승속이 무에 다르랴만
沙門은 대답이 없고 행자는 말 잃었는데
높은 산 외론 마루에 기거하는 흰구름.
인경을 울지 않아도 山岳만한 둘레이고
은혜는 뵙지 않아도 달만큼은 둥그느니
문듯 온 산새 한 마리 깃 떨구고 가노메라.
-----------------------------------------<直指寺 韻>전문
白水 정완영의 작품 <直指寺 韻>은 필자가 기억하기로 김천 황악산 직지사 입구에 自然石으로된 큰 시비(詩碑)로 앉혀놓은 작품으로 알고 있다. 읽으면 읽을수록 정감이 가고 직지사의 경내가 한 눈에 들어오는 듯한 느낌을 준다. 백수 선생의 시조 작품의 대부분이 그렇듯이 쉽게 읽히면서 다른 사람이 흉내는 낼 수 있을지언정 함부로 범접 못하는 그런 것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작품에 있어서 백수의 아류는 있어도 그의 작품성을 딛고 넘어설 수 있는 시인은 없다고 감히 말하는 저의(底意)가 여기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다음은 작품집인 동시조집<꽃가지를 흔들듯이>(1978)를 보자.
지지 배배 지지 배배
봄 하늘을 불러 내린다
지지 배배 지지 배배
보리 목을 뽑아 올린다
밭머리 복숭아꽃도
귀가 멍멍 먹는다.
---------------------------<종다리가 울어 싸면>전문
이 작품은 백수 선생의 작품집인 동시조집<꽃가지를 흔들듯이>(1978) 중에 실린 작품이다. 흔히 시조작품은 똑같은 낱말을 쓰지 아니하면서 언어를 최대한 간소화 시켜 사용하는 것이 통례이다. 이 작품 속에는 같은 낱말(의성어, 의성부사)이 초장과 중장에 각각 한 줄씩 사용했는데도 자연스럽고 어색하지 않으며 봄의 흥취를 마음껏 누릴 수 있도록 봄 길을 열고 있음을 독자들은 잘 알고 있다. 이것은 바로 뒤 어구가 내용적인 면으로 그만큼 뒷받침을 해 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즉 종다리의 노래 소리가 봄 하늘을 불러 내리고, 보리 목을 뽑아 올린다고 하는 것, 밭머리에 서 있는 복숭아꽃도 활짝 피어 화사한 봄날을 만들고 있음을 동심의 세계에서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은 작품 <분이네 살구나무>를 보면 “동네서 젤 작은 집/ 분이네 오막살이/ 동네서 젤 큰 나무/ 분이네 살구나무/ 밤사이 활짝 펴올라/ 대궐보다 덩그렇다.” 이 작품 속에는 ‘작다’ 와 ‘크다’ 의 이미지로 상립(相立) 시켜서 시각적 심상을 돋보이게 그려 낸 작품이다. 누가 뭐래도 백수의 작품을 침범 할 수 없는 시의 세계를 감탄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다음은 작품집 <蓮과 바람>(1984) 속의 작품을 보자.
세월도 낙동강 따라 칠백리 길 흘러와서
마지막 바다 가까운 하구에선 지쳤던가
을숙도 갈대밭 베고 질펀하게 누워있네.
그래서 목로주점엔 대낮에도 등을 달고
흔들리는 흰 술 한 잔을 落日앞에 받아 놓면
갈매기 울음소리가 술잔에 와 떨어지데.
백발이 갈대처럼 서걱이는 老沙工도
강물만 강이 아니라 하루해도 강이라며
金海벌 막막히 저무는 또 하나의 강을 보네.
-----------------------------------------<乙淑島>전문
작품 <蓮과 바람>을 언급(言及)하려다가 바로 옆 작품인 <乙淑島>를 읽어보니 마음에 와 닿아서 <乙淑島>를 선택 했는데 사실상 백수의 작품집 어느 곳에 눈이 머문다 해도 다 마음이 가고 감동이 넘치는 작품이다. 어느 것을 선택해도 우리들 정감을 자극하고 우리의 정서를 이끌어 내지 아니하는 작품이 없기 때문에 작품 평자로서는 흐뭇한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이다. <乙淑島> 이 작품을 읽어보면 필자가 모두(冒頭)에서도 언급했지만 쉽게 가슴에 와 닿는 이미지의 형상화가 좋다. 그 당시 을숙도에 대한 시나 시조를 쓰지 않은 시인이 없을 정도로 을숙도 이야기를 많이 노래한 시기도 이때가 아닌가 한다. 요즘은 ‘우포늪’을 노래하는 시인들이 많듯이 말이다. 을숙도 작품에서 첫째 수는 세월이 강 따라 흘러와서 바다 가까운 하구에서 지쳤는지 을숙도 갈대밭을 베고 누워 있다고 했으며 둘째 수에서는 목로주점에서는 손님이 하도 많아 대낮에도 등을 달고 손님을 받으며 술 한 잔을 받아 놓으면 갈매기 소리가 술잔에 와 떨어진다고 했다. 그만큼 갈매기가 사람에게 가까이 와서 날아다니고 있음을 말해 주고 있으며 그것은 자연과 가깝게 생활할 수 있다는 말이다. 마지막 수는 갈대처럼 서걱이는 노사공의 백발도 ‘강물만 강이 아니라 하루해도 강이라며’ 저무는 또 하나의 강을 본다고 했다. 여기에서 단 이 한 줄의 말 ‘강물만 강이 아니라 하루해도 강이라며’ 셋째 수 중장을 읽으면서 작품<乙淑島>를 사랑하게 되었고 또한 언급하게 되었다.
작품<안경>연작이다 그 중에 첫 작품<안경 ․ 1>을 보자. “가까이 손에 든 책은 안경을 써야 잘 보이고/ 먼 산은 안경을 벗어야 눈에 와서 안겨든다/ 차라리 안경을 접어야 더 역력한 인간사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시인이 나이가 들면 다 한가지로 그렇게 느껴지는구나. 차라리 인간사들은 안경을 접고 보아야 역력하게 보인다고 하는 이 작품, 우리 독자들은 여기에서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얻어내고 있는가? 연작 12편을 읽어나가면서 노시인이 <안경>을 통해 독자들에게 무엇을 얻게 하고 무엇을 느끼게 하는가를 잘 탐독해 보아야할 것이다.
다음은 작품집 <蘭보다 푸른 돌>(1990) 속에 실린 작품을 보자.
옛날엔 칼보다 더 푸른 난을 내가 심었더니
이제는 깨워도 잠 깊은 너 돌이나 만져 본다
천지간 어여쁜 물소리 새소리를 만져본다.
--------------------------------<난보다 푸른 돌>전문
위의 작품은 작품집 <蘭보다 푸른 돌>(1990) 속에 실린 작품<水石 3題>중의 첫째 수이다. 이 작품집의 발문(跋文)은 타계한 서벌 시인이 쓴 것으로 알고 있는데
“무엇보다도 백수라는 외길 인생이 그의 강물에서 건져 올린 일대 名石이다. 이를 테면 강물이 산출시킨 수석의 경우는 엄청나게 거듭거듭 씻어서 닳게 한 한 덩어리의 새로운 존재형성체다. ‘칼보다 더 푸른 蘭→이제는 깨워도 잠 깊은 너 돌’ 이라는 비약의 감행은 유장한 가락에 편승되지 않고서는 전달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칼보다 푸른 난은 어떤 포부를 가슴에 심은 자아인식의 결단력이었고, 그러한 결행성이 돌이 되기까지는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이 있었음을 미루어 짐작케 한다.”
종장은 自性 성취에 도달한 세계로 서벌은 결론 내리고 있다.
우리 시인이 자기 자신이 만족하고 독자들도 만족할 수 있는 작품을 창작 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어느 한 순간에 훌륭한 작품이 단번에 태어나지는 않는 법이다. 여러 작품을 꾸준히 그리고 열심히 쓰다보면 자신도 무릎을 칠 정도로 훌륭한 작품이 쓰여 지는 것이다.
다음은 작품집 <오동잎 그늘에 서서>(1994)에 실린 작품 중 가장 마지막 작품을 언급해 보기로 한다.
옛날 우리 어머님은 빨랫줄에 빨래를 널어야
비로소 하늘 문이 열린다고 하시었다
아득히 너무 푸르러 막막해진 하늘 문이.
왜인지 나는 몰랐다 어린제는 몰랐었다
한 타래 다 풀어 넣어도 닿지 않던 그 唐絲실
어머님 그 깊은 가슴 속 하늘빛을 몰랐었다.
------------------------------------<어머님의 하늘>전문
작품집 <오동잎 그늘에 서서>(1994)에 실린 작품 중 어머님에 대한 작품은 이것이 마지막 작품이면서 어머님의 그 깊은 뜻을 담은 작품이 한 편 뿐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작품을 통해 보면 백수의 어린 시절, 아득히 푸른 하늘이 왜 푸른가를 모르던 시절에 어머님은 빨랫줄에 흰 빨래가 가득 널려서 바람에 나부끼면서 하늘을 씻어줘야만 하늘 문이 열린다고 생각 했던 것이다. 唐絲실 한 타래 다 풀어 넣어도 닿지 않던 어머님의 그 깊은 가슴 속 하늘 빛, 그 깊이를 이제야 알 것 같은 시인의 간절한 마음이 짙게 깔려 있는 작품이다.
다음은 동시조집<엄마 목소리>(1998)에 실린 작품을 보자.
보리밭 건너오는 봄바람이 더 환하냐
징검다리 건너오는 시냇물이 더 환하냐
아니다 엄마 목소리 목소리가 더 환하다.
혼자 핀 살구나무 꽃그늘이 더 환하냐
눈 감고도 찾아드는 골목길이 더 환하냐
아니다 엄마 목소리 그 목소리 더 환하다.
------------------------------------<엄마 목소리> 전문
작품 <엄마 목소리> 속에서 시인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 그는 아이들에게는 엄마가 최고이면서 엄마 목소리를 통해 듣는 아이들이 정신이 자라고, 몸이 자라고, 꿈이 자라고, 지혜가 자라나는 것이다. 요즘 티비를 통해 세계 오지마을 부족들의 생활 모계씨족사회를 보면서 어머니는 하늘이요 아이들의 어린 시절 생의 전부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백수의 어머니에 대하여 드러난 사상과 생각, 삶의 본질을 우리는 깊은 하늘이면서 목소리의 울림이며 삶의 전부라는 것으로 이해하면 무난할 것이다.
다음은 작품집<이승의 등불>(2001)의 작품을 보자.
남현동은 관악산 밑 둥지만한 작은 마을
나는 멧새 다리 종종걸음 이십 년을
내도록 좁쌀만한 시 줍고 살아왔답니다.
-------------------------------<南峴洞 詩> 전문
당신이 있을 때는 빈 항아리 같던 사람
가고나니 삼월 하늘 祭器처럼 적막하다
봄은 왜 오지도 않고, 겨울 가지도 않네.
--------------------------------<적막 하늘>전문
이 두 작품은 <당신은 가고>라는 제하의 각각의 작품이다. 전자(前者)는 남현동에 살면서 종종걸음 치는 멧새처럼 조그마한 좁쌀 알갱이 작은 모이와 같은 시를 쓰거나, 강의하거나, 문학을 위해서 사람을 만나러 바쁘게 살아 왔음을 표현 한 시이고, 후자(後者)는 당신을 보내고 적막강산과 같은 삶의 표현을 한 작품이다.
박경용 시인은 백수 정완영을 “當代 시조의 순교자적 면모”라는 跋文에서 “그에게 있어서 시조는 신앙이다. 언제 어디서나 시조와의 인연이 닿는 사람과 마주하기만 하면, 마치 노련한 전도사(포교사)가 經書의 구절을 줄줄이 꿰어 외우듯 거침없이 자작시를 읊조리어, 상대야 무슨 속셈을 하고 있건 아랑곳 하지 않고 시조의 진리가 갖는 ‘구원의 도리’를 일깨우기에 여념이 없다.”라고 쓰고 있다. 사실 백수 정완영의 시조강의를 들어 본 사람이면 그렇게 공감할 것이다.
다음은 제13시조집<내 손녀 然奵에게>(2005)의 작품을 보자.
내 손녀 然奵이가 느닷없이 나를 보고
산 좋고 물 좋은 마을에 할아버지 가서 살란다
그래야 휴가철이면 찾아 갈 집 저도 있단다.
그렇구나, 그리운 네 꿈도 산 너머에 살고 있구나
들 찔레 새순 오르듯 하얀 구름 오르는 날
뻐꾸기 우는 마을에 나도 가서 살고 싶단다.
--------------------------------<내 손녀 然奵에게>전문
작품 <내 손녀 然奵에게>를 읽으면서 백수 정완영 할아버지는 손녀가 느닷없이 한 말이지만 즐거우면서도 한 편으로는 조금은 섭섭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왜냐하면 노부부가 함께 구존(具存)하고 살고 있는 상황에서 손녀가 한 그런 언어들이 그렇게 들리지 않겠지만 부인이 타계한 지금 그런 말을 들으면 두고두고 눈물 나는 말이 되고 있는 것이리라, 시로 승화는 시켰지만 그 행간에 흐르는 눈물, 쓸쓸함, 외로움, 등 여러 가지 정감이 교차할 것을 생각할 수 있다.
다음은 백수 정완영의 시조집 自序나 수상집 속에서 보여 지는 번득이는 명문장들을 잡아 내 보았다. 그리고 서간문 집, 등 여러 곳에서 산문으로 남겨진 작품들의 면모도 한 번쯤 볼 생각이다.
옛적부터 어느 마을에서나 우물가에 향나무 한 그루쯤은 심어둘 줄 알았었다. 왜 그랬을까? 감나무, 배나무, 호두나무, 앵두나무, 자두나무, 하고많은 과일나무들이 많은데 왜 하필이면 향나무를 심었을까? 거기에는 우리 조상님들의 후손을 위한 깊고 먼 배려(配慮)가 숨어있으니 우물가에 향나무를 심어두면 향나무 뿌리가 우물바닥으로 스며들어 우물물이 소독이 되고, 그 물에 향내도 보태주기 때문이었다.---(<다홍치마에 씨 받아라> 自序에서>
나의 노래는 나의 뿔 나의 冠이었다. 이 뿔에 감기는 하늘빛은 몹시도 애달팠다. 앞으로 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거추장스럽기야 하겠지만 그래도 이 뿔을 고이고이 간직해 두었다가 내 사랑하는 祖國, 내 사랑하는 兄弟 앞에 벗어놓고 가야겠다. 그것만이 주어진 목숨에의 갚음의 길이라 느껴지기 때문이다.---(<採春譜>(1969) 自序에서)
祖國, 그것은 내 久遠의 사랑이었기에 이 가슴의 병이었고 因緣, 이도 내 받고 온 오랏줄이라서 핏줄처럼 당기어 아파오는 것일까? 流水는 울면서 흘러가도 청산에 푸르름을 더하고 搭은 含黙에 서도머리 위 구름을 맑히느니 타고 난 情과 恨이 몇 萬石이 길래 한 生을 거의 다 기울였는데도 解之를 못하는가?---(<墨鷺圖>(1972) 自序에서)
나 이제 서울에 왔다. 가향의 선비 遊京하는 것이 아니라 時流와 世波에 밀려 서울의 착잡(錯雜)에 표류(漂流)해 왔다. 육백 오십만의 망양(茫洋)에 떠서 시시로 沙工을 잃고 빈 배만 남아 自失할 때가 있음은 진실로 나의 孤舟가 方向을 을 모르는 까닭일까? 아니면 水天이 하도 멀고 아득하기 때문일까?---(<失日의 銘>(1974) 自序에서)
가을나무가 제 가지에서 제 잎을 털어낸 연후에 비로소 제 하늘을 확보하고 섰듯이, 나도 무거웠던 想念의 나날들을 다 털어낸 다음 날 내 하늘을 얻어 이고 싶어서이다.---(<꽃가지를 흔들듯이>(1978) 自序에서)
내가 무슨 古山子일까마는 그래도 이 까치집만한 일을 해내는데 宮闕만한 힘을 기울였었다. 진달래 피는 漢拏의 남에서부터, 눈서리 치는 雪岳의 북에 이르기까지, 작품의 素材(寫眞)를 찾아 진실로 2년이란 짧지 않은 세월을 허물어지려는 몸과 마음을 채찍질하며 步步의 길을 재촉했던 것이다.---(<白水詩選>(1979) 自序에서)
나이가 칠십이면 이웃 나라를 犯境해도 벌주지 않는다는 중국의 故事가 있다. 그만 나이가 되면 이 저승 나들이를 맘 놓고 해도 아무 탈이 없다는 뜻이리라.---(<蘭보다 푸른 돌>(1990) 自序에서)
사람 사는 세상을 멀찌감치 물러서서 서로 呼兄呼弟하며 부르고 대답하는 저 北岳과 道峰과 이 冠岳山, 이 산들이 저렇게 의연하고 푸르럴 수 있는 까닭은 아마도 하늘 아래 심고 섰는 억천 년의 긴 침묵이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時調는 말로만 쓰는 시가 아니라 말과 말의 行間에 침묵을 더 많이 심어두는 시,---(<오동잎 그늘에 서서>(1994) 自序에서)
나무는 반드시 꽃을 피우고(木之必花), 꽃은 반드시 열매를 맺는다.(花之必實)고 했다. 내 세월의 가을이 깊을 대로 깊었는데도 하늘 아래 따 내릴 열매 없는 나인지라 낙엽이나 긁어모아 불사르거나.---(<茶 한 잔의 갈증>(1992) 自序에서)
수많은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가당찮은 신산(辛酸)도 밟아 넘어왔거니와, 분에 넘치는 정의(情誼)도 힘입어 왔다. 돌이켜 보면 미운 정 고운 정이 온 몸에 반점처럼 돋아나 있는 나는 속절없는 한 마리 얼룩 배기 사슴이다.---(<기러기 葉信>(2004) 自序에서)
이상에서 백수 정완영의 전 작품 중 전반적으로 부분부분을 언급해 보았다. 한 마리의 놀래기가 어찌 큰 바다의 깊이와 넓이를 짐작이나 하겠는가마는 필자가 보는 지금의 위치에서 서투른 문장의 솜씨로 당대의 대가 론(論)에 필을 잡기는 했으나 백수선생의 문학옥전(文學玉田)에 가라지와 같은 흠이 되지 않을까 심히 염려(念慮)가 된다.
이제 수필집<다홍치마에 씨 받아라>(1980)의 발문(跋文)을 쓴 朴在森 시인의 글을 결론으로 인용(引用)하면서 글을 맺을까 한다. 이유는 그 발문의 일부가 시조문단에서 백수의 지위를 명확히 꿰뚫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필자 외 객관적인 입장에서 당대의 대 시인인 朴在森 시인이 쓴 정평(正評)을 언급하고 싶어서이다.
“時調를 말할 때 가람과 鷺山을 말하고, 그 뒤를 이어 草汀과 鎬雨를 들고 그 다음에는 白水를 내세우는 것은 거의 상식처럼 되어있다. 이것은 현대시조의 草創期, 繼承期, 完成期라는 뜻과 별로 다른 것이 아니었다. 나는 문득 이 세 시기를 두고 시조의 初章, 中章, 終章과 비슷한 것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 序頭를 열어 韻을 뗀다는 것이 草創期요, 그것을 발전시키고 想의 부피를 정하는 것이 繼承期라고 할 것 같으면, 그러한 것을 한 덩어리로 묶어 정리하는 完成期에 이르는 것이라고,”
오랫동안 현역으로 세월을 산, 그리고 앞으로도 창창한 앞날을 살면서 우리 시조의 발전과 전망을 열어줄 것을 바라마지 않으면서 글을 맺는다. ■
첫댓글 멋집니다. 아무래도 대가의 생애에 대해 언급한다는 것이 부담이 되었을 터인데... 이만한 논문을 작상하신 와남의 필력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두고두고 귀감으로 삼으렵니다.
별도의 방을 만들어서 연재로 하시는 것이 어떠할런지요? 의견 주시길 바랍니다.
와남님 "우리들의 인연들이 잠들고 있을 즈음" 시집 상재 축하 드립니다
잘 읽고 많이 배우고 갑니다 좋은글 넘누 감사합니다 내내 행복하고 건강하세요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것은 시조공부가 될까 싶어서 올려 봤는데요. 모두 복받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