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옥(1935- )
정혜옥은 1935년에 진주에서 태어났다. 수필집 ‘돌미나리를 찾아서’(남강을 향하여)에는 유년시절과 성장기 때를 다룬 자전적 수필이 많이 실려 있다. 그의 글에 의하면 고향 진주와 남강에 관한 추억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유년시절, 성장기 그리고 아버지가 그의 수필에 많은 소재의 역할을 한다. 말하자면 성장기를 보낸 진주의 기억들이 그의 문학관 형성에 주요한 요소로 작용한다고 하겠다.
그는 진주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학창 시절에 문학의 꿈을 가지고 열정을 쏟았다. 여고(진주여고) 1학년 때 쓴 산문 ‘어머니의 손’이 경남일보에 실릴 만큼 문학에 소양을 보였다. 여고 시절에는 개천예술제의 백일장에도 참여할 만큼 문학소녀였다. 그의 회고에 의하면 이후에 시문학 동인인 ‘시영토’ ‘[표현’ ‘운석’ 등의 동인으로 활동하였다. 이때의 그의 문학활동은 시작(詩作)이었다. 이때 그의 수필 작품이 부산일보에 실렸다. 이때도 그는 수필을 썼다.
진주여고를 졸업하고 부산대학 사범대학에 진학하여 미술을 전공하였다. 졸업 후에는 교원의 길을 걸었다. 미술교사로 포항여중, 대구 제일여중, 김천여중, 고에서 근무하면서 대구-경북 지역과 인연을 맺었다.
그는 갑자기 시작품을 쓰는 것이 싫어져서 문학에서 멀어졌다.고 말 하였다. 그러나 글쓰기 중단은 그에게 상실감을 안겨 주었다. 잃어버린 허전함을 메우기 위해서 독서를 많이 하였다. 그때 읽은 책들이 수필을 쓰도록 하였다고 회고 하였다. 그는 시에서 수필로 작품 활동을 바꾸었다.
그에게 수필을 쓰도록 한 감명깊은 책은 한사 카롯사의 ‘전쟁 일기’. 린드버그 여사의 ‘바다의 선물’처럼 우울하고, 아름다운 수필을 쓰고 싶었다고 피력하였다. 아마도 그의 작품의 한 단면을 설명하는 자료가 될 것이다.
그는 1975년의 수필문학 봄 호에 수필 ‘작은 꽃’이 실리면서 수필문단에 정식으로 얼굴을 알렸다. 물론 그 전에도 많은 수필을 썼다. 이후 10년 간 문예지에 많은 수필을 발표함으로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그의 이름도 자연스럽게 널리 알려졌다. 더군다나 대구의 수필계에서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리는 여류 수필가가 되었다. 그만큼 대구의 수필문단에 지도자의 역할을 하였다.
수필은 체험이 바탕이 되는 문학이므로 남편을 따라 유럽에서 일 년 간 머문 것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때의 체험으로 기행수필도 썼다.
귀국한 후로는 문학단체로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수필문학 진흥회 회원으로 가입한 것도 문학 활동의 일환이었지만, 그가 대구를 대표하는 여류 수필가로 전국에 이름을 알리는데 좋은 계기가 되었다.
1972년에 영남수필문학회에 가입하여 2004년까지 작품을 발표하였다. 대구 여류문학회 회장, 대구 문협의 부지부장, 카톨릭 문인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2004년에는 대구 수필가 협회를 창립하여 초대 회장을 하였다.
정혜옥은 수필을 쓰는 여류 문인으로 대체로 문단 경력이 화려한 편이다. 그만큰 대구의 여류 문인, 특히 여류 수필가에게 영향력이 크다.
1970년 대에는 많은 수필을 발표함으로 거의 모든 수필문학 전집에 작품이 선정되었다. 1980년 대에 와서도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한 작가이다. 따라서 많은 수필집을 발간하였다.
그의 수필세계를 다룬 작품론도 수필 문예지에서 여러 차례 다루었다.
1998년에는 현대수필 문학상을 수상하였고, 1999년에는 대구문화상(문학부분)을 수상하였다.
그의 작품 세계는 부드럽고 잔잔한 문체로서 우아한 삶의 표현이 주종을 이룬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 유년에 대한 그리움 등을 수채화를 그리듯이 펼친다는 평을 듣는다. 그리고 교양있는 주부의 삶 또는 여인의 삶을 즐겨 다룬다. 그의 작품 세계는 후배 여류작가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작품집
1975 대숲에는 바람소리가(세음사)
1982 이 세상 한 가운데 서 있는 나무(범우사)
1993 우체국 앞을 지나며(그루)
1998 수필선집 ‘풍금소리’(선우 미디어)
1999 돌미나리를 찾아서(그루)
2008 강물을 만지다.(선우 미디어)
2008 수필선집 ‘타관의 풀(좋은 수필사)
2011 은목서 그 맑은 향기(선우 미디어)
강물을 만지다.
강에 닿았다. 강에서 강까지 거리는 200미터 정도, 나는 빠르게 강을 향해 걸어갔다. 둑 너머에서 불고 있던 바람도 함께 강으로 갔다. 나를 따라온 바람이 물살을 일으킨다. 이곳은 남강의 하류, 강 건너 월아산도 보이고 촌락도 보인다.
강물 곁에 앉았다. 강에게 손을 내밀었다. 손 끝에 물이 닿고, 마침내는 나는 강과 손을 잡았다. 물은 만져 본다. 부드럽고 서늘하다. 명주 수건 한 끝을 손에 쥔 것 같기도 하고 매화 꽃 한 판을 어루만진 것 같기도 하다. 손을 들어 올린다. 물은 없고 빈주먹만 남는다. 다시 강에게 손을 내밀고 물을 만지고, 물은 또 빠져나가고, 이 일을 일곱 번이나 되풀이 하였다. 아이가 놀이를 하듯이 하였다. 나는 왜 이 짓을 하고 싶어 했을까?
어린 시절, 강가에서 살았다. 남강 둑 밑에 집이 있었다. 강은 물소리를 내지 않는 대신 언제나 바람을 거느리고 있었다. 강 건너 대숲에서 바람이 불고 있던 바람의 소요, 바람이 강을 건너오면 모래사장에 회오리가 일었다. 강둑을 덮고 있던 시퍼런 풀들도 몸을 흔들어 대었다. 나의 머리카락도 바람에 풀썩거렸다. 먼 곳에서 물이 흘러오고 또 흘러가고, 강변의 작은 바위와 나풀거리던 풀꽃들, 강가에서 올려다 본 낮달과 강기슭에 메어 있는 빈 배의 흔들림, 나는 그때 이런 것들에게 한없이 반해 있었다.“강물 귀신 붙었나, 눈만 뜨면 강에서만 논다. ” 어른들은 이런 말을 자주 하시었다.
남강을 떠났다. 사십 년 동안 강을 잊고 살았다. 삶의 계획, 삶의 성취, 삶의 자신만만함, 바쁘고 분주하였다. 옛 기억에 매달린 시간도, 또 그것들을 만나러 갈 한감함도 없었다. 새로 만난 인연들이 꽃부리처럼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지난여름, 열흘 간 병원에 입원하였다. 수술실에 들어갈 때, 많은 얼굴이 눈앞을 스치고 갔다. 남편과 자식들의 얼굴이었다. 혈육들의 환영은 회한의 끈을 풀었다 당겼다 하며 수술실까지 따라 들어왔다. 그리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잠에 빠져 들었다.다시 잠에서 깨어나고, 그때 돌아오는 의식 속에 희미한 형체들이 언뜻언뜻 스치고 있었다. 차츰 선명해졌다. 그것은 나의 집도, 가족의 얼굴도 아니었다. 이 세상에서 얽히고 설킨 사건들은 더욱 아니었다.
산과 들과 강이었다. 유년의 들과 강 같았다. 이불 한 자락이 몸에 감기는 것처럼 따뜻한 느낌이 몰려왔다. 죽음에 대한 공포, 수명에 대한 갈망으로 떨고 있던 시간에 이런 날의 기억들이 왜 비집고 들어 왔을까. 강가에 서 있는 아이가 나타나고 물소리, 바람소리도 들렸던 것 같다. 빼빼하게 야윈 소녀와 강물과 바람, 문득 깨닫는다. 마르고 볼 품 없던 아이가 바로 나였던 것을, 그때 내 주위에는 언제나 강물과 바람이 둘러싸고 있었던 것을, 마침내 깨우침을 받았다.
병실에 사람들이 다녀갔다. 그들은 우리가 감당하고 있는 삶의 환희와 고통을 많이 이야기 하였다. 혼자 병실에 남겨 졌다. 도시의 밤이 보였다. 불을 밝힌 창문과 집을 향해 달려가는 자동차의 불빛들, 하지만 그 따뜻한 빛들은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 같았다. 깊은 병고 속에 혼자만 버려진 것 같았다. 외로움과 두려움이 밀려왔다. 절대적인 절망과 고독이었다. 견디기 어려웠다. 이런 기분을 떨쳐버리기 위해 창문의 커튼을 닫기도 하고, 병실의 흰 벽에 기대어 눈을 감아보기도 하였다. 지난날이 즐거웠던 기억들도 생각하였다. 이십 대의 열정과 용기, 삼십 대의 성취, 사십 대의 풍요로움을 떠올렸다. 그리고 오십 대의 바람과 같은 자유로움도, 그러나 삶의 마디마디에 끼어있던 아픔이 더 많이 솟아올랐다.
어린 시절로 다시 거슬러 올라갔다. 수술 후, 잠에서 깨어나던 순간에 스치고 지나가던 강과 들을 찾아내었다. 옛집과 강으로 가는 길과 강물의 흐름 등이 차례로 나타난다. 강가에서 맞이하던 봄날, 그 나른한 느낌이며 봄의 아지랑이 속에 발목을 파묻던 게으른 날의 기억도 생각난다. 갑자기 눈물겨운 희열이 나를 둘러싼다.
아, 그것들이 나의 완벽한 행복의 원인이었을까.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그때의 인식은 절대로 마멸되지 않고 기억 속에 내재되어 있었던 것일까. 깊은 잠에서 깨어나던 혼미의 시간에, 혼자 떨고 있는 두려움의 시간에, 나의 절망과 어둠을 쳐부수고 있는 일까.
어떤 결심을 했다. 삶의 아픔과 모순을 몰랐던 시절에 누렸던 기쁨을 찾아가 보자. 흐르는 강물을 따라 뜀박질을 하던 순수한 날들의 흔적 속으로 한번 들어가 보자. 이런 생각을 하였다.
오늘 나는 그 일을 하고 있다. 고향의 산과 듥을 걸어 남강까지 왔다. 오후의 햇살을 받은 강이 발밑에 있다. 가을날이 오후는 짧다. 나는 짧음의 의미를 희석시키듯 강물의 긑을 오래 바라본다. 그리고 강물을 만진다. 손끝을 타고 전해 온 물의 서늘함ㅇ 온몸에 퍼진다. 손으로 물을 움켜쥔다. 주먹 안에 갇혀있던 물이 순식간에 빠져나간다. 새 물이 오고 다시 물을 붙잡고 또 달아나고, 지금 강물과 나는 달아나고 붙들고 하는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서로 희롱을 하고 있다. 장난질을 하며 위로받고 있는 것이다. 철없던 날의 그때처럼,
나는 지금, 오후의 남강 가에서 다시 낮달도 보고 강의 우수도 보고 강물 귀신이 붙어 있다고 하시던 할머니의 목소리를 듣는다. 내가 강으로 던진 작은 돌과 돌들이 강물 속으로 영원히 몸을 감추며 질러대던 소리를 떠올린다. 손끝에서 풀려난 명주 수건이 강물을 따라 남실남실 가버린 날의 비애도 생각한다. 어둠이 오고 있다. 나는 다시 한번 위로 받고 싶어 야윈 손을 남강 물 깊숙이 넣었다.
첫댓글 그의 글들을 읽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아마도 글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믿음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또한 결이 고운 무명베 같기도, 잔잔한 흐름의 강물 같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전에 읽었던 글 가운데 '아직 멀었다'는 낱말을 한 편의 글 속에 부리면서 가야할 길이 '아직 멀었다', 집이 완성되기까지는 '아직 멀었다', 수준이 '아직 멀었다'고 중의로 해석한 것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무거운 짐을 힘겹게 들고 있는 여자에게 오동나무 그늘을 양보하듯 그곳을 떠났다'고 한 결미에서 그의 인품을 떠올려 보았다. 아무튼 낱말이나 문장을 자연스럽고 은근하고 멋스럽게 다루는 솜씨를 가진 작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