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중론(中論)
나가르주나 (Nāgārjuna, 龍樹 : 150?~250?)가 쓴 책이다.
중론(中論, 범어 : Madhyamaka-śāstra 마드야마카 사스트라)은 용수가 만든 449구의 간결한 게송인 중송(中頌) - 중관론송(中觀論頌) -에 청목(靑目, 4세기 전반)이 주석을 단 인도불교의 논서이다. 중관론(中觀論)이라고도 한다. 4권으로 되어 있다.
구마라습이 다소 수정을 가해 한역하였다.
중론에 포함된 청목의 주석은 중송의 여러 주석들중의 하나이다.
중송은 용수의 초기 작품으로서 초기 및 중기 대승불교 사상의 중요한 기초가 되었으며 그 후의 대승불교의 사상 전개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중론은 반야경에 바탕을 둔 유무 2변(有無二邊)을 초월한 중도(中道)로서의 대승공관(大乘空觀)의 입장에서 원시불교 이래의 연기설(緣起說)에 새로운 해석을 내려, 모든 것이 연기(緣起)·무자성(無自性)·공(空)임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입장에서, 종래의 모든 불교 학설을 종합적으로 비판하면서 불교의 이론과 실천을 일관하는 입장을 설정하고 있으며 원시불교의 근본정신을 재조명하여 되살리고 있다.
중론은 장의 이름을 보면 그 장에서 다루는 논제를 알 수 있다. 즉, 연(緣), 근(根), 온(蘊), 계(界), 유위(有爲), 고(苦), 업(業), 제(諦) 등의 용어가 등장한다. 모두 다 긴 설명을 요(要) 하는 불교 또는 인도 철학의 개념들이다. 이처럼 어려운 개념들이 나오긴 하지만, 중론은 그것을 설명하거나 새롭게 정의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주제를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할 뿐이다. 논제는 달라도 주제는 거의 같다고 말할 수 있는데, 주제는 논서의 서두에 놓이는 귀경게(歸敬偈)에 잘 나타나 있다. 귀경게란 부처님을 기리는 노래다.
소멸하지도 않고 발생하지도 않으며, 단멸(斷滅)하지도 않고 상주(常住)하지도 않으며, 다의(多義)도 아니고 일의(一義)도 아니며,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는, 희론(戲論)이 적멸한 상서로운 연기(緣起)를 설해 주시고 설법자 가운데 최상이신 등각자(等覺者) 그분께 경배드립니다.
앞의 두 행은 연기(緣起)를 보여주는 이른바 팔부(八不)이다.
팔부란 여덟 가지의 부정을 의미한다. 한역본대로 한다면 불생(不生), 불멸(不滅), 불상(不常), 부단(不斷), 불일(不一), 불이(不異), 불래(不來), 불출(不出)이다. 이 여덟 가지의 부정은 두 가지의 부정, 곧 있음과 없음에 대한 부정으로 귀결된다. 그러므로 중론의 모든 장은 있음과 없음에 대한 부정을 담고 있다. 있음과 없음에 대한 부정은 흔히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다는 문장으로 말해지곤 한다. 모든 부정은 여덟 가지의 부정으로 귀결되고, 이 여덟 가지의 부정은 다시 두 가지의 부정, 곧 있음과 없음에 대한 부정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그리고 있음과 없음에 대한 부정은 다시 있음에 대한 부정으로 귀결된다. 따라서 있음의 의미를 알면 그렇게 어렵지 않게 여덟 가지의 부정을 이해할 수 있다.
중국 삼론종의 학승인 길장(吉藏)은 삼론현의(三論玄義)에서 중론의 근본 입장(宗)은 이제(二諦)이며 또한 이제는 중도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중론의 주제는 연기(緣起)라고 명시하였다.
인도의 찬드라키르티(월칭) 역시 프라산나파다(Prasanapada)에서 중론이 천명하고 있는 목적은 연기라고 선언하면서, 일체가 연기하므로 공이라는 것이 중론 전체에서 증명되고 있다고 하였다. 즉, 중론의 주제(主題)는 중도(中道)와 연기(緣起)와 공(空)이며, 이는 불교 철학사를 관통하고 있는 핵심적인 개념인 것이다. 나가르주나는 이들 개념간의 관계를 24장 18절의 게송에서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인연으로 생긴 법(因緣所生法),
나는 이것을 공이라고 한다(我說卽是空).
이것은 또한 가명이며(亦爲是假名),
이것이 또한 중도라는 의미이다(亦是中道義).
그러나 중론은 그것이 드러내고자 하는 바 공과 연기의 사상을 자립적인 논증 방식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실체(自性)에 대응된다고 믿어온 언어의 모순성을 그대로 지적함으로써 실체를 부정하는 귀류논증법을 이용한다. 실체의 부정은 연기와 공의 현양을 의미하므로 중론의 정신을 한마디로 잘못을 논파함으로써 정법을 드러냄(破邪顯正)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중론은 용수의 초기 작품으로 27장 449게(한역은 445게)로 이루어져 있다. 그 내용은 반야경(般若經)에 기초한 대승 공관(空觀)의 입장에서 원시불교 이래의 연기설(緣起說)에 독자적인 해석을 가해, 부파불교뿐만 아니라 인도철학 사상 일반도 비판하였다. 그 중심사상은 연기(緣起) → 무자성(無自性) → 공(空)으로 귀결된다. 또한 제24장 사제(四諦)의 고찰 제18게의 연기인 것 모두를 우리는 공성이라 설한다. 그 공성은 상대적인 가설(假設)이며 그것이 곧 중도이다. 라는 점에 있다. 이것은 중론의 중도 공관이 유·무를 초월한 중도이며, 그것이 불교의 근본적 입장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용수의 생각을 표명하는 것이다.
용수의 중론은 대승불교에 이론적 기초를 부여한 것으로, 그 후 대승불교의 사상 전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인도에서는 이 책에 의해 중관학파(中觀學派)가 일어났으며, 유가행파(瑜伽行派:唯識派)와 더불어 인도 대승불교의 2대 사조를 형성하였다.
유가행파도 중론의 공 사상을 계승하면서 현실 세계의 구조를 체계적으로 설명하려는 것으로, 삼계유식설(三界唯識說)·삼무성설(三無性說)이 유명하다. 또한 중관학파와 유가행파가 혼합된 것이 티베트로 전파되어 총카파 교학의 기초가 되었다. 중국에는 청목이 주석한 중론이 번역된 이후 용수의 십이문론(十二門論) 및 그의 제자 제바(提婆)의 백론(百論)과 합하여 삼론(三論)이라 불려 삼론종이 성립되었다. 그 후 삼론종의 대성자 길장(吉藏)의 중관론소(中觀論疏)는 중론 연구의 궤범이 되고 있다. 또한 천태종(天台宗)의 지의(智顗)는 앞에서 말한 중론 제24장 제18게에 기초하여 공(空)·가(假)·중(中)의 삼제설(三諦說)을 세워 천태종의 근본 교리로 삼았다.
1) 문헌과 주석서 : 우리가 보는 중론은 용수가 쓴 총 27장의 중론송에 핑갈라(Pingala, 靑目, 4세기 전반)가 각 송(頌, kārika)에 대해 주석을 붙인 것을 구마라집(Kumarajīva)이 한문으로 번역한 것이다.
중론은 찬드라키르티(Candrakirti, 月稱, 600~650)가 쓴 프라산나파다(Prasanapada)는 산스크리트어로 남아있는 유일한 주석서이다. 그 외 스티라마티(Sthiramati, 安慧, 510~570), 바바비베카(Bhavaviveka, 淸辨, 490~570), 붓다팔리타(Buddhapalita, 佛護, 470~540)의 주석이 알려져 있다. 중론에 대한 중국의 유명한 주석서로는 삼론종의 대성자인 길장(吉藏)이 쓴 중관론소(中觀論疏)를 들 수 있다.
2) 후대 중관학파의 발달 : 공사상에 근거한 나가르주나의 철학은 중관(中觀)으로 불렸고, 대략 4세기 전후해서 그를 계승한 일련의 사상가들이 중관학파를 형성하게 되었다. 나가르주나의 제자인 아리야데바(Aryadeva, 提婆, 170~270년경)는 백론(百論)과 사백론(四百論)을 저술했다. 그 후 5세기경 붓다팔리타(Buddhapalita, 佛護)는 귀류논증파(歸謬論證派, Prasangika)를 확립했다. 프라상기카는 논의(論)를 확립(立)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류의 파괴(破邪)를 통해 진실을 드러내려는[顯正] 하려고 하여, 내가 만일 어떤 주장을 한다면, 그로 인해 나는 이론적 결함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주장이 없다. 그러므로 이론적 결함도 없다고 했다.
붓다팔리타를 계승한 찬드라키르티도, 중관학파가 스스로 독립된 추론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두 가지 주장 가운데 어느 한쪽을 승인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라고 말하여 그 입장을 계승한다. 그러나 디그나가(Dignaga, 陳那)의 인명론(新因明論)에 영향을 받아 정언적(定言的, 어떤 명제나 주장, 판단 따위를 아무 제약이나 조건 없이 딱 잘라서 내세우는 것) 추리에 의한 논증법(自立論證)을 옹호한 바바비베카(Bhavaviveka, 淸辨, 490~570)는 붓다팔리타를 비판했고, 찬드리키르티는 다시 후자를 옹호하면서 전자를 비판했다. 바바비베카는 반야등론석을 저술했고, 찬드라키르티는 프라산나파다를 지었다.
이리하여 중기의 중관학파는 귀류논증파(Prasangika)와 자립논증파(Svatantrika)로 나뉘게 된다. 귀류논증파는 후에 산티데바(Santideva, 寂天, 650~750경)에 의해 계승되었다. 그의 보리행경(菩提行經)은 보살행을 밝히는 저술로 유명하다.
자립논증파의 후계로는 관서(觀誓, Avalokitavrata, 7세기경)가 있고, 반야등론광석(般若燈論廣釋, Prajnapradipatika)을 지었다. 후에 티베트 불교를 중흥시킨 아티샤(Atisa, 980~1052)를 프라상기카로 분류하기도 하지만, 티베트 불교는 대체로 자립논증파(Svatantrika)의 전통이 우세하다. 후기 중관학파에서 스바탄트리카파에 속하는 인물로는 샨타락시타(Śantaraksita, 寂護, 680~740경)와 그의 제자인 카말라실라(Kamalasila, 蓮花戒, 700~750경)가 있다. 산타락시타는 진리강요(眞理綱要, Tattvasamgraha)와 중관장엄론(中觀莊嚴論, Madhyamakalamkara)을 저술했고, 카말라실라는 전자에 대한 주석서와 불교 수행의 강요서인 수습차제(修習次第), 중관명(中觀明, Madhyamakaloka)과 진실명(眞實明, Tattvaloka)를 지었다.
이들은 중관 철학에 유식설을 도입했으므로 유가행중관파(瑜伽行中觀派)로 분류되기도 하는데, 실제로 이들은 유식학뿐만 아니라 유부와 경량부의 학설을 자유롭게 수용한 것으로 평가된다. 반면, 바바비베카 계통은 유식설을 수용하지 않고 외계의 실재를 인정했다 하여 경량부중관파(經量部中觀派)로 불리기도 한다.
※ 대승불교가 일어나면서 그 사상적 체계를 세운 사람이 바로 용수(龍樹, Nagarjuna)이다. 흔히 그를 대승불교의 비조(鼻祖)라 하고 제2 석가라 하기도 했다. 그는 대승의 선구자로써 활동을 하면서 많은 논서를 저술하였다. 대표적인 논서로 중론(中論)을 비롯하여 십이문론(十二門論), 회쟁론(廻諍論) 등이 있고 또 대품반야경의 주석서라 할 수 있는 지도론(智度論)이 있다. 이러한 논서에서 주장한 용수의 사상은 한마디로 공(空)을 천명하는 공사상이다. 공이란 곧 존재의 본질을 밝히는 용어로 그 어원이 범어 sunya(舜若라 음사)인데 모든 존재는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불변의 속성이나 독립된 실체가 없다는 뜻이다.
인연으로 생기는 법은 나는 곧 공하다고 말한다. 또한 거짓된 이름이며 중도의 뜻이다(因緣所生法 我說卽是空 亦爲是假名 亦是中道義 24품).
이 4구게에서 설한 바와 같이 인연으로 생기는 법, 곧 연기하는 법은 그 본성이 실체가 없어 공하다고 말한다는 것은 연기하는 것이 공하다는 말로, 무엇이 공하느냐 할 때 그 공의 전제가 되는 연기가 먼저 있다는 말이다. 이 연기를 두고 공을 말하는 것은 상대적인 가설로 공을 말하여 이로 인해 중도를 알게 하는 데 있다는 말이다. 이 4구게를 삼제의 이치를 설한 게송이라 하여 3제게(三諦偈)라고 부르기도 했다.
삼제란 공(空)․가(假)․중(中) 삼관(三觀)의 이치를 달리 말하는 것이다. 연기로 인한 제법이 있지만, 이는 무자성(無自性)으로 공하다는 것, 곧 연기에서 무자성, 그리고 공으로 보는 것이 공관(空觀)인데 이 공관의 관법을 통해 얻게 되는 진리를 공제라 한다.
공한 본질의 이치에서 일어나는 연기 현상이 있을 때 이는 가(假)가 된다. 실체가 없기 때문에 임시로 있는 거짓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공(空)과 가(假)가 서로 분리되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연기하면서 공한 것이고 공하면서 연기하는 것이므로 공이 곧 가고 가가 곧 공이 되는 것이다. 반야심경의 색불이공(色不異空) 공불이색(空不異色)이란 말처럼 공이 가이고 가가 공이면서 더 나아가 공도 아니고 가도 아니면서 공이고 가인 것을 중도(中道)라 하는 것이다. 또 중도에 의해서 보면 삼제(三諦)가 원융하다는 삼제원융설이 나오기도 했다.
용수는 먼저 중론 초품에서 팔불중도(八不中道)를 말한다.
생기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항상 하지도 않고 단멸하지도 않는다. 동일하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으며,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는다. 능히 이 인연을 말해서 모든 희론을 없애니 모든 설법자 중 제일이신 부처님께 머리 숙여 예배드립니다(不生亦不滅 不常亦不斷 不一亦不異 不來亦不去 能說是因緣 善滅諸戱論 我稽首禮佛 諸說中第一).
여덟 가지 부정(八不)을 통해 그릇된 유(有)의 견해를 척파한 이 말은 중론의 근본 대의라 할 수 있는 내용이다.
원래 중론은 용수가 지은 446개의 게송을 청목(靑目)이 해석하여 27품으로 만들어 놓은 책으로 중관론이라고도 하는데 유식사상(唯識思想)과 더불어 대승불교의 2대 사상체계의 하나인 중관사상(中觀思想)의 전거(典據)가 되는 논서이다. 이 중관 사상이 바탕이 되어 삼제원융설이 나오고 다시 이를 의거 천태 교의가 체계화되었으며 화엄의 일승원교 사상도 나오게 되었다고 말한다(불교신문2959호, 2013년11월6일자)
5
공감한 사람 보러가기댓글 2공유하기
천석
천석
불교를 신행하는 삶! 나의 서원입니다. 그리고 약초와 풍수, 관상 등에도 호기심이 많습니다(經安). 이 곳을 방문하는 님들께 나의 적은 노력이 혹여 도움이 된다면 저의 보람이고 행복입니다(泉石).
이웃
이 블로그
불교상식
카테고리 글
동체대비(同體大悲)
2024. 1. 29.
6
댓글 4
청정도론(淸淨道論, 위숫디막가)
2024. 1. 23.
5
댓글 0
중론(中論)
2024. 1. 22.
5
댓글 2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2024. 1. 21.
8
댓글 1
성유식론(成唯識論)
2024. 1. 20.
5
댓글 2
이전
다음
이 블로그 인기글
히말라야산맥(Himalayas)
2020. 8. 11.
10
댓글 2
광물(鑛物)의 경도(모스의 10경도)
2018. 7. 14.
댓글 0
점안식(點眼式)
2019. 1. 27.
5
댓글 0
이산 혜연 선사 발원문
2022. 3. 13.
38
댓글 4
상향 처리 vs 하향 처리
2020. 4. 15.
11
댓글 1
안궁우황환
2018. 10. 10.
7
댓글 2
신중탱화(神衆幀畵)
2017. 1. 27.
댓글 0
불교의 연기설(緣起說)
2017. 3. 15.
댓글 0
동진보살(童眞菩薩)
2019. 3. 25.
14
댓글 0
법신(法身), 보신(報身), 화신불(化身佛)
2021. 1. 20.
6
댓글 0
이전
다음
맨 위로
PC버전으로 보기
5
공감한 사람 보러가기댓글 2공유하기
첫댓글 중론은 반야경에 바탕을 둔 유무 2변(有無二邊)을 초월한 중도(中道)로서의 대승공관(大乘空觀)의 입장에서 원시불교 이래의 연기설(緣起說)에 새로운 해석을 내려, 모든 것이 연기(緣起)·무자성(無自性)·공(空)임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입장에서, 종래의 모든 불교 학설을 종합적으로 비판하면서 불교의 이론과 실천을 일관하는 입장을 설정하고 있으며 원시불교의 근본정신을 재조명하여 되살리고 있다.
중론은 장의 이름을 보면 그 장에서 다루는 논제를 알 수 있다. 즉, 연(緣), 근(根), 온(蘊), 계(界), 유위(有爲), 고(苦), 업(業), 제(諦) 등의 용어가 등장한다. 모두 다 긴 설명을 요(要) 하는 불교 또는 인도 철학의 개념들이다. 이처럼 어려운 개념들이 나오긴 하지만, 중론은 그것을 설명하거나 새롭게 정의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주제를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할 뿐이다. 논제는 달라도 주제는 거의 같다고 말할 수 있는데, 주제는 논서의 서두에 놓이는 귀경게(歸敬偈)에 잘 나타나 있다. 귀경게란 부처님을 기리는 노래다.
소멸하지도 않고 발생하지도 않으며, 단멸(斷滅)하지도 않고 상주(常住)하지도 않으며, 다의(多義)도 아니고 일의(一義)도 아니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