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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신다 ( 2부 )- 여호와의 이름 “여호와 삼마”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신다 ( 2부 )- 여호와의 이름 “여호와 삼마”
“창세기28:10~22”
부 르 심:요한복음3:23~24
교 독 문:78번. 요한복음 14장
찬 송: 104(104), 88(88),197(178),179(167)
기 도: 1)우리 안에 하나님이 계시는 거룩한 성전되게 하소서
2)우리 안에서 계시는 성령의 역사가 되소서
3)성령의 나타남과 하나님의 능력
4)자유통일, 자유대한민국, 주사파척결, 성령충만
야곱이 외삼촌 라반이 있는 하란으로 가다가 한 곳에 이르렀습니다.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였습니다.
야곱이 그 곳의 한 돌을 취하여 배개하고 거기 누워 자더니 꿈을 꾸었습니다.
야곱이 꿈에서 하늘세계를 보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본 것은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섰는데 하늘에 닿았습니다.
두 번째 본 것은 하나님의 천사들이 사닥다리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었씁니다.
세 번째 본 것은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 계셔 말씀하시기를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 너와 함께 있어
지키시며 돌아오게 하시고 야곱을 떠나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야곱이 잠이 깨어 말하였습니다.
“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창세기28:16)”
1.여호와의 이름 “여호와 삼마”
야곱이 한 곳에 이르러 거기 누워 잠이 들어 꿈을 꾸어 하늘세계를 보기 전에는
여기가 여호와께서 여기 계신 것을 몰랐습니다.
야곱이 꿈에 하늘세계를 보고나서 잠이 깨어 말하는
첫 말은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여호와의 이름 중에 하나는 “여호와는 여기 계신다”는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여호와 삼마”입니다.
여호와 삼마란 “여호와는 거기에 계신다”는 뜻입니다.
“여호와 삼마”란 말은 에스겔서 48장 35절의 말씀입니다.
“그 사면의 도합이 일만 팔천 척이라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 하리라(에스겔48:35)“
하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하나님은 성전에 계십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성전에 계신다는 것은 성전은 살아있는
거룩한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구약성경 에스겔서는 48장으로 되어 있는 대선지서입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바벨론 2차 포로로 끌려가 바벨론의 그발강가에 있었습니다.
그발강가에서 하나님의 소명을 받고 포로 된 유다 백성을 향해
본토 회복의 소망을 선포하며 위로와 용기를 심어준 선지자입니다.
에스겔의 같은 시기에 바벨론 궁에는 다니엘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진 예루살렘에는 예레미야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비록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져 바벨론 포로가 된 그발강에서 본 이상의
결말의 절대적 희망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여호와 삼마”였습니다.
절대적 희망의 가지는 여호와의 이름 “여호와 삼마”라 부름으로
하늘세계가 열리는 거룩한 예배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에스겔에게 처음부터 보이시는 하늘세계의 네 그룹의 네 생물
에스겔 선지자는 비록 바벨론 침략으로 나라가 망하고
바벨론 2차 포로로 끌려갔지만
그발 강가에서 선지자로 활동을 하였습니다.
에스겔 선지자 30세에 하늘이 열리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에스겔 1장부터 바벨론 그발 강가의 환상으로 시작합니다.
“제 삼십 년 사 월 오 일 내가 그발 강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더니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이상을 내게 보이시니 (에스겔1:1)“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세상의 종말을 있다하더라도 망하지 않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중심 거룩한 성 새예루살렘이 있음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요한계시록21:1~2)“
에스겔 선지자가 바벨론 2차 포로로 끌려갈 때
바벨론은 큰 바다에서 올라온 큰 짐승 사자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는 하늘의 거룩한 성전을 볼 때에는
바다는 다시 있지 아니함으로
짐승이 다스리는 세계는 없는 것입니다.
에스겔이 30세에 소명을 받아 그발 강가에서 보는 환상은
하늘세계의 보좌 중심의 그룹에 속한 네 생물의 형상입니다.
“그 얼굴들의 모양은 넷의 앞은 사람의 얼굴이요 넷의 우편은 사자의 얼굴이요
넷의 우편은 사자의 얼굴이요 넷의 좌편은 소의 얼굴이요
넷의 뒤는 독수리의 얼굴이니 (에스겔1:10)“
네 생물들은 그룹들에 속하여 날개 달린 높은 계급의 천사장들입니다.
한 때 타락한 음악의 천사장 사탄도 그룹에 속한 천사장 중에 천사장 루시퍼였습니다.
“너는 기름 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임이여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 화광석 사이에 왕래하였었도다(에스겔28:14)“
사랑하는 여러분, 에스겔이 바벨론 포로 2차로 바벨론 그발 강가에서 본
하늘세계 환상은 신약성경의 예언서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사도요한도
자기가 본 환상에 대하여 에스겔이 본 것과 같은 내용으로 기록하고
있음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에게 하늘이 열려 하늘세계를 보여주시는 듯이 밧모의 섬에
유배된 사도요한에게도 하늘에 열린 문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보좌 앞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셋째 생물은 사람같고
그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요한계시록4:6~7)“
네 생물의 형상은 예수님의 보좌 중심으로 그 가지는 상징의 뜻은
네 복음서를 가르키고 있습니다.
네 생물의 형상이 가지는 모양을 가지고 그 의미와 관련한
네 복음서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생물이 사자 같다는 것은 마태복음을 가르키고 있습니다.
사자 같다는 것은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강조하는 마태복음입니다.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경배하러 동방의 박사들이 말하였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이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마태복음2:2)“
둘째 생물이 송아지 같다는 것은 섬기러 오신 예수님을 나타내는 마가복음입니다.
마가복음의 주제가 섬기러 오신 예수님이십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가복음10:45)“
셋째 생물이 사람같다는 것은 누가복음을 가리키는 것으로 인자예수님이십니다.
누가복음은 인자 예수님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인성과 신성의 두 가지를 다 가지고 계십니다.
인성으로 오신 것은 예수께서 큰 대제사장이 되셔서
십자가의 죽으시는 대속으로 인간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때문에 담대하게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눅19:10)”
넷째 생물이 독수리 같다는 것은 예수님의 신성으로 요한복음을 가르키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신성을 요한복음 1장부터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신성이란 예수님이 하나님이다는 사실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한복음1:1)“
만물이 창조 되기 전 태초의 영원부터 말씀이 계셨습니다.
이 말씀은 누구입니까?
이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신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는 것은 성부와 성령과 함께 계신 삼위하나님이라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곧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증거하는 것이
신성의 예수님을 증거하는 요한복음입니다.
<<네 생물 = 사 복음서(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첫째 생물이 사자 = 마태복음 = 왕으로 오신 예수님
둘째 생물이 송아지 = 마가복음 = 섬기러 오신 예수님
셋째 생물이 사람 = 누가복음 =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
넷째 생물이 독수리 = 요한복음 = 하나님으로 오신 예수님
사랑하는 여러분, 왕으로 오시고, 섬기러 오시고, 사람으로 오시고,
하나님으로 오신 예수님은 복음의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복음의 능력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1:16~17)“
3. 여호와께서 거기 계신다.
이스라엘의 상징인 나무가 무화과 나무입니다.
예수님의 중요한 설교 중 하나가 마태복음 24장과 25장의 감람산 설교입니다.
감람산 설교는 예수께서 고난주간 화요일 제자들에게
감람산에서 종말의 재림에 대한 설교입니다.
재림에 대한 일곱 가지 비유중 가정 먼저 비유한 것은 무화과 나무의 비유입니다.
1>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 성전의 역사를 배우라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마태복음24:32~33)”
무화과 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이스라엘 중심은 성전입니다.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배우라는 것은 “이스라엘 성전 역사를 배우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성전은 하늘 성전의 모형으로 그림자입니다.
진짜 성전은 하늘에 있습니다.
성전이 되는 것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여호와 삼마입니다.
여호와 삼마는 하나님은 거기 계신다입니다.
하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하나님은 성전에 계십니다.
야곱이 여호와께서 과연 계신다는 것은 여기가 하나님의 전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야곱이 실상 여호와의 이름 “여호와 삼마”를 부르는 것입니다.
“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에 두려워하여 가로되 두렵도다 이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창세기28:16~17)”
하늘의 문으로 들어가는 것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여호와는 하나님의 성전에 계신 그 이름은 여호와 삼마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성전 역사를 보면 “성막 - 제 1차 성전 - 제 2차 성전”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출애굽하여 광야 중심에 있었습니다.
성막은 바깥뜰, 성소, 지성소입니다.
성막의 가장 중심은 지성소입니다. 지성소의 중심은 법궤입니다.
법궤는 보좌에 계신 예수님을 뜻하고 있습니다.
1차 성전은 솔로몬왕이 지었습니다.
1차 성전은 바벨론의 침공으로 무너졌습니다.
2차 성전을 스룹바벨 성전이라 부릅니다.
2차 성전은 바벨론 70년 포로귀환으로 돌아와 스룹바벨이 세운 성전입니다.
그 뒤 헤롯이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성전을 증축하였습니다.
2차 성전은 로마의 디도 장군이 AD70년경에 예루살렘 침공으로
예수님의 예언대로 다 무너지는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성전에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모든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뚜리우리라
(마태복음24:1~2)“
제자들은 사람들이 지은 웅장한 성전을 예수님에게 가리켜 보일려고 하자
사람이 지은 성전이 무너질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는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이 독립하였습니다.
1967년 아랍국가들과 전쟁하여 6일만에 예루살렘과 성전산을 탈환하였습니다.
이것은 제 3성전을 지을 기회가 될 종말이 가까웠습니다.
이것을 여름이 가까웠다는 세상 끝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재림은 사람들이 지은 성전에 있지 않고 살아계신 성전에 계심을 알야할 것입니다.
제 3성전이 지어져고 그 성전에 서는 것은 적그리스도입니다.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살후2:4)“
그러므로 제 3성전도 제 1성전과 제 2성전이 무너지듯이 제 3성전도 무너지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무너지는 성전에 있지 않고 무너지지 않은 영원한 하나님이 계신
성전을 바라보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여호와 삼마”가 되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살아계시는 참된 성전 예수님과 너희가 성전이라.
이 세상에 있었던 예루살렘 제 1성전, 제 2성전은 무너졌습니다.
성전은 하늘성전의 모형이었습니다.
참 성전되시는 예수께서 고난주간 월요일 성전에 들어가셨습니다.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사람들의 앉은
것을 보셨습니다.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는 성전청소를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 일으키리라(요한복음2:19)”
유대인들은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거슬 이해하지 못하였지만 사십 륙년 동안 지은
성전을 어떻게 삼 일 동안 일으키겠는가는 부정적인 반응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성전에 대한 말씀은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성전을 허는 것은 예수님의 죽으심이요 사흘은 예수께서 무덤에 계신 것이요
사흘 동안에 일으키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예수님은 참 된 성전이십니다.
또한 우리가 성전임을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고전3:16~17)“
하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하나님은 거기 계시는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여호와 삼마”입니다. 하나님은 성전에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면 하나님은 우리 안에 계십니다.
우리 안에 성령 하나님이 계시면 우리는 거룩한 성전인 것입니다.
성막의 구조가 바깥뜰, 성소, 지성소입니다.
성전의 구조가 바깥뜰, 성소, 지성소입니다.
사람의 구조가 육체, 혼, 영입니다.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이 되시는 성전으로 거룩하게 보전하여 참된
성전이신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거기 성전에 계시는 이름으로 부르는 “여호와 삼마”입니다.
쌍문동 산소망교회 김 목사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신다 ( 2부 )- 여.. : 네이버블로그 (naver.com)